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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역전의 명수(1) (창 25:19-26; 삼상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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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人生流轉이요 塞翁之馬라>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군산 상고를 다 기억하실 것입니다.
9회 초까지 지다가 9회 말에 역전을 잘해서 '역전의 명수'라는 별명이 붙은 팀입니다.
아마 70년대에 중고등학교를 다니신 분들은 군산 상고의 짜릿한 역전승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이 항상 내려가라는 법만 없고 또 올라가라는 법만도 없습니다.
언제 어떻게 역전이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인생유전(人生流轉)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지요.

또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중국의 어떤 국경지대에서 노인이 기르던 말과 같다는 것이지요.
중국 국경지대에 말 한 필을 소중하게 기르던 노인이 있었습니다.
암말이었는데 어느 날 국경을 넘어 오랑캐 호(胡)나라로 도망을 쳤습니다.
워낙 말이 귀한 재산인지라 동네 사람들이 위로합니다. 
그러나 노인은 그저 덤덤했습니다.
"이런 화가 변해서 복이 될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월경했던 말이 다시 돌아왔는데 숫말 한 필을 더 데리고 왔습니다.
이번에는 동네 사람들이 축하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영감님, 참 잘 됐습니다.
말 한 필이 그냥 돌아온 것도 감사한 일인데
공짜로 준마 한 필이 더 생겼으니 이제 영감님은 큰 부자가 되셨네요."
이번에도 노인은 무표정했습니다.
"글쎄요. 이런 복이 변해서 화가 될는지 누가 알 수 있나요."

과연 그랬습니다.
이번에는 영감님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 그 준마를 타고 놀다가 낙마를 했습니다.
다리가 부러져서 불구자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또 동네 사람들이 위로한다고 찾아왔습니다.
"애지중지하시던 외아드님이 불구자가 됐으니 이제 장가가기도 힘들고, 너무 안됐습니다."
노인은 또 침착했습니다.
"글쎄요. 이런 불행이 변해서 또 행운이 될지 누가 알겠습니까?"

나라 안에 난리가 터져 건장한 장정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전쟁터에 나가 죽어 넘어졌는데 이 노인의 아들은 장애인이었기 때문에
징집면제가 되어 아버지 잘 모시고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고사성어이지요.

이 노인의 이야기처럼 인생은 참 신비합니다.
언제 어떻게 역전이 될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 때 노벨상 후보자로서 대한민국의 영웅이었던 황우석 씨가 추락한 것을 보세요.
인생만사가 새옹지마라는 말이 맞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
저는 우리 하나님께서 꼭 역전의 명수 같은 분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높은 자들을 낮추신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형편없이 추락한 사람들을 존귀하게 높이신 경우도 엄청나게 많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해 설움을 당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해서
아들 사무엘을 낳은 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린 찬양입니다.

그런데 6-7절 말씀을 주목해서 보세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얼마나 중요한 말씀인지요!
하나님은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이라는 말씀이지요!
모든 생사화복과 빈부귀천의 주권이 하나님 한 분의 손안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역사의 주권을 한 손에 쥐고 계신 분이십니다.
모든 생사화복이 주님의 손에 있음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음부에 내려가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다시 돌아오게도 하십니다.
정말 지옥이라는 표현이 실감나듯 엄청나게 어려운 환경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다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유하게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유하다고 해서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 떠나 살면 안 됩니다.
언제 어떻게 역전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가난하다고 해서 너무 걱정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면 하나님께서 역전시켜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십니다.
높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오만하면 안 됩니다.
언제 어떻게 역전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낮은 자리에 있다고 해서 너무 기죽을 필요도 없습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잘 참고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역전의 명수이십니다. 
하나님은 높은 자를 낮추시기도 하시며 낮은 자를 높이기도 하십니다.
저는『역전의 명수』라는 제목으로 두 차례 설교하려고 합니다.
먼저 오늘은 하나님께서 높은 자를 낮추시는 경우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다음 주일에는 낮은 자를 높이시는 경우에 대해서 말씀하려고 합니다.
오늘 모든 일이 잘되어 간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제 말씀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에서가 높은 자에서 낮은 자로 역전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높은 자를 낮은 자로 역전시킨 대표적인 경우가 에서일 것입니다.
에서는 장자로 태어났지만 장자의 신분을 동생에게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장자의 특권을 가진 채 태어났지만 자신의 부주의로 장자권을 야곱에게 빼앗겼습니다.

오늘 본문 창 25: 23은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에 대해서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에서는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되었으며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 그대로 나중에 야곱의 이스라엘 족속이 에서의 에돔 족속을 정복했습니다.
동생의 백성이 형의 백성보다 더 강해졌던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맏아들로 태어났던 에서가 어린 동생인 야곱을 섬기게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에서는 왜 높은 자에서 낮은 자로 신분이 역전되었을까요?

① 자신의 신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장자의 신분으로 태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나라에서 장자는 아주 특별한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먼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경우 집안의 우두머리로서 명실공히 가장이 됩니다.
그 다음에 가나안 땅의 기업을 얻을 수 있고, 아버지로부터 축복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장자의 명분을 에서는 동생에게 빼앗겨버렸습니다.
장자로 태어난 자신의 신분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사냥을 다녀온 에서가 배가 몹시 고팠습니다.
이 때 야곱이 꾀를 내어 형이 좋아하는 팥죽을 맛있게 쑤었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팥죽을 자기에게 달라고 통사정을 합니다.
이 때 야곱은 에서에게 형이 가진 장자의 권리를 자신에게 팔라고 요구합니다.

바로 이 순간 에서는 너무나 무책임한 말을 합니다.
"내가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 되었는데
그 까짓 것 장자의 명분이 뭐 그리 대단한 거냐?"
하면서 장자의 권리를 야곱에게 선뜻 팔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창 25: 34은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 가운데 모든 일이 형통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언제 어떻게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삶이 역전될지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을 잊어버릴 때 위험합니다.
"세상 운이 좋고 재수가 좋고 시대를 잘 만나고
사람 잘 만나서 내가 이렇게 되었다," 참 위험한 생각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요 선물로 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의식을 잊고 살면 위험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있는 위치가 아무리 영광스럽고 대단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위험합니다.
언제 어떻게 그 지반이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지진 지대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곳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신 성도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선민의식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②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을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에서는 맏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동생을 섬기는 사람으로 추락했습니까?
영적인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육적인 것만 탐닉하며 세상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육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눈앞에 보이는 팥죽 한 그릇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천금보다 더 귀한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그가 조금이라도 영적인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을 더 귀하게 여긴 에서는 지금 당장 배고픈 것만 생각합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이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을 보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으로 역전된 대부분의 경우가 육욕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삼손이 어떤 사람입니까?
나실인으로서 천사의 수태예고를 받으며 화려하게 태어난 사람 아닙니까?
누가 보더라도 삼손은 이스라엘 민족의 영웅으로서 최고의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사람이지요.
그러나 삼손은 영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에 관심이 더 많았습니다.
블레셋의 기생 들릴라의 유혹에 넘어가 향락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최고의 영웅 삼손은 최고의 조롱거리로 형편없이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한 때 그 누구도 당해낼 수 없는 천하장사 중에 장사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두 눈을 뽑힌 채 놋사슬에 묶여 연자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이 아무리 형통하고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할지라도 육적인 세계에만 탐닉하게 되면 위험합니다.
언제 어떻게 추락하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8: 6에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죽을 것이지만 영을 따라 살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침례교회에서는 세례를 줄 때 전신침례를 고집합니다.
세례 줄 때 온 몸 전체를 물 속에 집어넣었다가 다시 꺼냅니다.
한번은 침례식을 행하는데 어떤 성도가 "목사님, 잠깐만요!" 하더랍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목사님, 제가 깜빡 잊고 주머니에서 돈지갑을 안 꺼냈습니다!"
이 때 목사님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성도님, 주머니의 돈지갑을 그냥 두십시오.
당신의 돈지갑도 함께 세례 받게 해서 죽이시기 바랍니다."

어떤 교인의 간증입니다.
어떻게 하다보니 믿었던 사람에게 500만원을 사기 당했습니다.
그 때부터 자나깨나 그 500만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 목사님이 "찬송가 500장 부릅시다." 해도
사기 당한 돈 500만원이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육적인 욕심은 참 무서운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아무리 잘 나가도 육적인 탐욕에 사로잡힐 때 위험합니다.
언제 어떻게 역전이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직분입니까?
그러나 유다는 그 높고 귀한 자리에서 역전되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팔아 넘겨준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은 삼십 냥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복을 지켜나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영적인 경건생활을 하지 않고 육적인 생활을 해서는 복을 지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복을 끝까지 잘 지켜나가기를 원하십니까?
영적인 세계를 육적인 세계보다 더 귀하게 여기십시오!
그리하면 어떤 일을 만나도 안전할 것입니다! 

③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에서는 야곱에게 두 번씩이나 속아넘어갔습니다.
한번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았으며,
또 한번은 아버지 이삭의 장자 축복권을 가로채이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당한 뒤 에서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창 27: 36절을 보면 장자의 축복권을 야곱에게 빼앗긴 다음, 에서는 이렇게 소리칩니다.
"'그 녀석의 이름이 왜 야곱인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그 녀석이 이번까지 두 번이나 저를 속였습니다.
지난번에는 맏아들의 권리를 저에게서 빼앗았고,
이번에는 제가 받을 복까지 빼앗아갔습니다.''
에서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저에게 주실 복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으셨습니까?''"

에서는 자기 못난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를 속여먹은 동생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창 27: 41절 말씀을 보면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면
자기 동생을 죽이고야 말겠다고 벼르기까지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문제입니다!

에서는 자기의 잘못으로 장자의 축복권을 빼앗겼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하지 않습니다.
모든 책임을 동생 야곱의 간교함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엄청난 낭패를 당하고서도 도무지 반성하거나 회개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오히려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광분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 깊은 곳에 인간적인 교만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왜 낙원인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났습니까?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교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라의 몸종 하갈과 이스마엘이 왜 아브라함 가문에서 쫓겨났습니까?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기억 못한다고
자기가 사라의 몸종 되었을 때의 비천한 처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자기 주인 사라는 아이가 없고 자기가 아들을 얻자 교만한 마음이 스며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자기 주인 사라를 깔보고 업신여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하갈은 교만 때문에 아들 이삭과 더불어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삼상 1장에 보면 한나와 브닌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이 낳지 못하던 한나는 왜 높여주시고
자녀를 많이 낳은 브닌나는 왜 낮추셨습니까?
브닌나가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삼상 1: 6-7을 보면 브닌나가 한나를 괄시하고 괴롭혔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잘될수록 고개를 숙이고 겸손했더라면 하나님께서 더욱 큰 축복을 주셨을 텐데
브닌나는 그렇지 않아도 아이를 낳지 못해 괴로워하던 한나를 깔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교만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잠 16: 18은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 18: 12도 말씀합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잠 29: 23도 말씀합니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을 쓰시고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십니다!

그렇습니다.
왜 사람의 인생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역전합니까?
대개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잘 나갈 때 옷깃을 여미고 더욱 근신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만사형통 하는 그 때 나도 모르게 은근히 찾아오는 교만 마귀를 물리쳐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금이나 은상자 안에서는 씨앗이 싹틀 수 없습니다.
씨앗은 오직 흙속에 떨어질 때 아름다운 싹을 내고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금이나 은으로 된 높고 영광스러운 자리가 항상 좋은 것은 아닙니다.
마음을 낮추어 낮고 천한, 아무 보잘 것 없는 흙을 쳐다볼 때 거기에 생명이 있습니다.
때로 아무렇게나 굴러다닌 돌멩이 하나가, 너무나 평범한 흙 한 줌 속에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이 있습니다!

높은 자리에 처할수록 겸손함을 잊어서 안 됩니다.
그리할 때 지금 받은 축복을 끝까지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확실히 역전의 명수이십니다.
언제 어떻게 높은 자를 낮은 자로 역전시키실 지 알 수 없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잊지 마십시오!
육적인 것보다 영적인 세계를 더 귀하게 여기십시오!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안전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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