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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이란 (히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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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11장을 보통 “믿음의 장”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여기서 성공적인 믿음의 삶을 살았던 구약시대의 중요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등등.

구약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거장들의 삶을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며 우리에게 믿음에 대한 큰 교훈과 도전을 줄 것이다.

오늘은 믿음의 거장들의 삶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그들이 가졌던 믿음의 성격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걸출한 믿음의 사람들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그들이 소유했던 믿음의 성격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현대어성경의 번역을 보면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가 있다.
11:1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갖는 게 아니겠습니까? 또한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일일지라도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반드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 게 아닙니까?
11:2 예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정 받았던 것입니다.
11:3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압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그 분들의 믿음을 3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다.

1.미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에 대하여 의심치 않았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 부른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들려 주셨다.
창12: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명동에서 의상 스타일화학원을 운영하던 유집사님, 카나다 이민 신청을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 그는 50대 초반의 나이로 생활은 안정되어 있었고, 여러 대학의 강사로 뛰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이 나이에 과연 이민을 가도 괜찮을 것인가? 그는 고민 끝에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나이는 75세였다. 자녀는 없었으나 그의 고향에서 자리 잡고 안락한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는 나이였다. 그가 짐을 정리하고 고향을 떠나려 했을 때 친척들과 친구, 동네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고 만류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을 떠났고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갔다.
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의 성격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성격을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11장에 언급되어진 모든 믿음의 거장들이 소유했던 믿음의 특징인 것이다.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1)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미래에 속한 것이요.
2)아직 소유하지 못한 것이지만 소유한 것처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직 가보지 못한 곳, 그가 전혀 알지 못한 곳,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곳을 향하여 현재 자신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나아갔다. 무모하리 만큼 담대한 행동,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믿음이요, 11장에 소개되고 있는 사람들의 믿음인 것이다.

성경학자 제임스 모팻(영국)은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세 가지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1)이 세상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믿는 것.
2)현재의 감각보다는 성령을 믿는 것.
3)현재보다는 미래를 믿는 것.

구약시대, 바벨론제국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의 네 소년,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궁정학교의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우상의 음식을 먹느니 차라리 채식을 택하였고, 우상에게 절하느니 풀무불 속에 들어가는 길을 택하였다. 만약 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다면 주권자의 압력 앞에 무릎 꿇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해 주실 것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았다.

믿음이란? 안정을 추구하려는 기본적인 욕구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것을 바라고 얻기 위해 끊어버리는 것이다. 주님께서 부르시면 자기 즐겨하던 취미생활도 버려야 한다. 자신의 직장도 버려야 한다.

현실의 삶에 집착으로부터 벗어날 때 비로소 주님의 모습이 분명히 보이고, 주님의 음성이 확실하게 들릴 것이다. 자신의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때 천국이 가까워지고 분명하게 보이게 될 것이다. 이것이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요 히11장에 소개되고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졌던 믿음인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갖는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한다.

2.신앙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본 받았다.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11:2 예전에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사람들도 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정 받았던 것입니다.
(현대어성경)

2절에서, “증거”라는 용어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일반적 증거나 심증적 증거가 아닌 법정적 증거를 나타낼 때 쓰이는 용어이다. 그러니까 믿음의 선배들이 남긴 증거는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는 증거,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믿음의 사람이 남긴 증거들로 가득차 있다.

노아의 가족이 방주를 짓고 대홍수에서 구원받은 사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받은 사실, 요셉이 고난과 수모를 이기고 애굽에서 국무총리가 되었던 사실,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거느리고 홍해를 건넜던 사실..
히12: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혼자만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다.
청년시절, 처음 교회에 출석했을 때 마음에 의심을 가득 품고 교회당을 출입했었다.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 제일 큰 의문이었다. 믿고 싶었기 때문에 교회당에 나왔지만 믿음이 생기질 않아 번뇌하며 방황했었다. 당시에 나의 가장 큰 소망은 확실한 증거를 받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교회당에 나오는 것을 보니 분명히 하나님이 계시긴 계시는 모양이다.” 그들 중에는 믿음이 좋은 의사, 교사, 많은 지식인들이 있었다.

자신의 믿음을 강화시키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끼리 모이면 약한 믿음마저 떨어진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과 교제하면 그의 믿음을 본 받게 되는 유익이 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현실적 감각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 안에도 현실적 감각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거의 매일 교회당에 출근하다시피 하는 분들이 여럿 있다. 그리고 매일 한 번 이상 얼굴을 대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복을 받아서 잘 살거나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의 삶의 소망이 현실에 매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별로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인생의 위기적 상황에 직면하게 될 때 그들은 결코 소란하지 않는다. 무너지지도 않는다. 신앙의 길에 떠나지도 않는다. 교회는 이런 사람들에 의해 2000년 기독교 역사의 명맥을 유지해 온 것이다. 그 사람들이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왕 주님의 부름을 받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믿음의 증거를 확실하게 남길 수 있는 성도로서 살기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저 사람은 정말 신자야. 이런 소리를 듣도록....

3.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1:3 우리는 믿음이 있으므로 이 세상의 삼라만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압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모두 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압니다.

우주선을 타고 대기권 밖으로 나간 미국의 우주선비행사는 지구를 바라보면서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다”고 고백했고, 소련의 우주선비행사는 “아무리 찾아 보아도 우주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었다”라고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똑같은 사물을 바라보면서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견해를 피력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을 관광한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찬송가 40장을 부른다고 한다. “주 하나님 지은신 모든 세계...” 그러나 비신자들은 “와~ 조물주가 있기는 있는가보다.” 이렇게 말한다.

믿음의 사람들은 나무 잎사귀 풀 한 포기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숨결을 느끼며 찬양한다. 이유는 믿음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하게 믿는다. 이 모든 삼라만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사실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진화론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서는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인류의 조상을 원숭이로 보고 있고, 오랜 세월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오늘날의 고등한 인간으로 진화되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동물의 영역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이다. 요즘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주제가 있다.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법적 지위부여에 관한 것이다. 이미 영국, 프랑스, 대만과 같은 나라에서 수용되었다. 영국에서는 30년간 동성애자로 동거하면서 한 사람은 교장으로, 또 한 사람은 작은 도시의 시장으로 봉직하였던 사례도 소개되었다. 개들도 동성끼리 성행위를 하지 않는다. 불신앙의 시대가 초래하게 될 미래시대의 모습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 사례인 것이다.
롬1:27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믿음에서 떠난 사람들의 삶의 모습에서 삐뚤어진 인간의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말로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심판이요 영원한 저주 아래 놓이게 된다.
롬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천지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과 하나님의 솜씨를 발견하게 된다. 그 말씀의 능력이 삶을 변화시키며, 자신의 삶 속에서 능력으로 나타날 것을 기대하게 된다. 그러므로 결코 방탕할 수 없으며, 교만할 수 없는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믿음으로 살아간 위대한 선진들의 믿음의 성격을 3가지로 요약하였다.
1)미래에 대한 소망과 기대에 대하여 의심치 않는 사람들.
2)신앙으로 살았던 선진들을 본받는 사람들.
3)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었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일시적이고 기만적인 세상에 현혹되지 말라. 믿음으로 살라. 우리의 소망이 이 땅에 있지 않다. 하늘을 바라보라.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을 바라보라.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우리는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주인공이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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