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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사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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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아멘
이런데도 왜 사람에겐 두려움이 있는 것일까요?
두려워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 중 하나입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이 있는 것은 마땅하게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 할 줄 알게 하므로, 인간의 생명을 위험한 곳에서 보존하게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 하면, 이런 본능까지도 변태가 되어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분을 두려워하지 않고, 반대로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이 적게 모인 곳에서는 그렇게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나가면 그만 입이 열리지 않아서 말을 못합니다.
심지어 남자를 두려워하는 여자도 있고,
또 여자를 무서워하는 남자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부 생활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색깔을 무서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검은 색을 무서워하거나, 빨간 색을 보기만 해도 질겁을하고 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큰소리를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천둥소리, 우레 소리를 아주 무서워합니다.
그러나 진짜로 무서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상상의 두려움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건강하지마는 장차 질병에 걸리며 어떻게 하나?
퇴출을 당해서 실직하면 어떻게 하나!
지금은 부족이 없지마는 장차 가난해지면 어떻게 하나!
나중에 나이가 많아서 주변 사람들이 다 떠나면 어떻게 사나, 그러니 며느리한테 잘 보여야지!
지금은 건강하지마는 내일 아프면 어떻게 하나!
그런가하면 오해 때문에 아픈 경우도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 물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바람 불어 요동치는 배에서 다 죽을 지경이었는데 바닷물 사이로 무엇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니까 무슨 바다 요물이 나타난 줄 알고 더 무서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해를 주시던가요?
아니잖아요!
언제나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을 바라보면서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면서 괴성을 질러댑니다.
아무리, 아무리 둘러봐도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그저 두렵고, 겁을 집어 먹고, 두려운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전에 행운의 편지라는 괴문서가 떠돌아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이 편지가 온 세상을 다 떠돌아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저 빙빙 비잉빙 떠돌아다니는 겁니다.
왜 그렇게 돌아가요?
그 행운의 편지를 보면 내용은 간단합니다.
“이 편지를 받은 당신은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을 받으려면 당신이 잘 아는 친구 10사람이나 15사람에게 이 내용을 보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큰 저주를 받습니다.” 말이 있습니다.
저주받는다는 말이 무서워서 공연히 그대로 베끼고 남의 우체통에 몰래 집어넣은 사람이 여기에도 있는 것 같아요?

신앙생활을 한다,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택일을 하는 사람들!
소위 결혼식을 신앙인이라고 하면서도 날을 받는 사람들!
불길한 날 했다가 괜히 저주를 받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들!
미국에 가면 호텔에 거의 13호실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뭐가 없어요?
4가 없습니다.
4층을 그냥 F층이라고 했지 4자를 붙이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야구에서는 4번 타자를 서로 하려고 합니다.
이런 미신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끝장입니다.
쥐를 보세요!
쥐는 뒷다리가 길기 때문에 얼마든지 달아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잡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고양이를 보는 순간 그 다리가 얼어 버린다는 거예요.
고양이를 본 쥐를 도망치면 다 되는데도 그냥 부들부들 떨다가는 잡힌다는 것입니다.
쥐만 그렇습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암도 왜 무서운지 아세요?
암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그 마음이 나를 죽인다는 것입니다.
썩은 나무뿌리를 보고서도 귀신이라고 하면 놀라는 것이 인간입니다.

잊지 마세요!
사람 속에 두려움이 있으면 볼 것을 바로 볼 수 없습니다.
우리 속에 두려움이 살아 있으면
우리의 신경이 마비되고,
근육이 마비되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지면서 결국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요즘 왕의 남자가 인기 최고라고 합니다.
거기에 줄 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순간에 줄 타는 사람이 두려워하여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땅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전쟁에 나가 있는 군인도 그래요.
전투를 잘 하다가도 두려운 마음이 드는 순간 패전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를 죽이는 두려움에서 이기시기를 바랍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이 두려움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요?
2절을 보십시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라고 하였습니다.
기억하세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그를 의지하는 길입니다.
창 15:1을 보세요.
“아브라함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라” 하였습니다.
창 26:24에서도 “두려워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이삭이 외로이 가나안 땅에서 살 때 유대 땅에는 우물이 귀했습니다.
우물을 파 놓으면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자기의 우물이라고 빼앗아 갔습니다.
이삭이 다른 곳에 가서 우물을 다시 파면 또 빼앗아 갑니다.
제가 가서 보니까 보통 우물의 깊이가 100M나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우물을 하나 파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우물을 파는 족족 빼앗겼으니 그 분통이야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이삭아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서 네게 복을 줄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두려워말라고’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너를 크게 사용하리라 너로 하여금 나를 증거 하도록 내가 너를 도우리라”
시 27편 1절도 보세요.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이것이 신앙입니다.
두려울 때 성경을 외워보세요!
시 23편을 읽으면서, 또 시 27편을 읽으면서 두려움을 이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요 베드로와 같은 수제자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붙잡히실 때 다 도망갔습니다.
심지어 어린 계집 종 앞에서까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려워서 그랬습니다.
그러던 사람들이 사도행전에서는 너무나도 달라집니다.
이제는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메시아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그렇게 잡아가두고, 때리고, 위협을 해도 조금도 두려워하질 않습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담대하게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으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옳으냐 너희 스스로 판단하라” 하면서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습니까?
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관복음과 사도행전 사이에는 10일간의 차이가 있는데 그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오순절 성령이 그들의 마음속에 임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더니 두려움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요즘 학생부 동계수련회가 끝이 났습니다.
그래서 누가 방언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중요한 이슈인 듯합니다.
누가 성령의 영을 받은 사람인지 아십니까?
바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
야곱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고,
모세에게도 하셨고,
다윗에게도,
다니엘에게도,
엘리야에게도,
모든 선지자들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하셨고,
바울에게도 두려워말라고 하셨고,
모든 제자들에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라” 하였습니다.

잊지 마세요!
인간생활에서 우리의 행복을 빼앗는 것은 하나는 죄요, 또 하나는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그 모든 두려움에서 건져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으므로 성령을 충만하게 받으셔서 모든 두려움을 이기시기를 축원합니다.
(박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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