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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소망으로 인내 합시다 (골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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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친구가 그의 다정한 친구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 했습니다.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마친 후, 차를 마시며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교회에서 설교시간에 목사님이 이런 설교를 하더군! 곧 예수님이 오시는데 이를 재림이라고 하는데 그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 천국으로 가지. 그리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지옥의 형벌을 당한다네. 나는 그 사실을 믿거든. 자네는 무신론자이니 믿지 않겠지?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예수님이 오시면 그때 자네가 나의 재산을 다 가지게. 이 집도, 내 땅도, 저 TV도, 은행에 예금되어 있는 돈도, 차도 전부 자네가 그냥 가져. 각서를 써 달라고 하면 지금 당장 써주지"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횡재를 한 친구부부는 집으로 돌아와 그날 밤 좋아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각서까지 받아 놨으니 빨리 예수님이란 분이 왔으면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날이 갈수록 그 좋던 마음은 사라지고 친구가 자기의 모든 것을 한 점 아쉬움도 없이 선뜻 포기할 만큼 그 하늘나라란 곳이 좋은가? 하는 생각과 함께 지옥의 형벌을 당한다는 말이 사실처럼 믿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몇 날을 고민하던 친구부부는 드디어 전화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 이보게 친구... 나에게 자네의 전 재산을 주지 말고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는 방법을 주게. 우리 부부도 천국에 가고 싶네..."

소망으로 인내하며 소망으로 즐거워하되 복음의 소망으로 인내하는 달입니다.

'복음의 소망'은 이미 성도들에게 들려진 것으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생에 대한 확신과 주께서 재림하시는 날 모든 믿는 자들이 소유하게 될 궁극적이고도 완전한 구원에 대한 기대를 가리킵니다.

  복음은 구원의 능력입니다.

  (롬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입니다

(마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로 마귀의 종으로 살아야 하는 신분의 변화가 왔습니다.

어떤 아이가 새총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폼을 잡아도 잡을 새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아버지가 집에서 기르는 거위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쏠까 말까 망설이다가 시험 삼아 한번 쏴 봤는데 아주 정통으로 맞아 그만 거위가 죽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서 죽은 거위를 마당에 파묻었습니다. 그 집에 마음씨가 아주 고약한 일하는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아주머니가 아이를 불렀어요. 아무개야!  왜요? 너 우물에 가서 물좀 길어 와. 그것은 아주머니가 할 일인데 왜 날 시켜요? 너 거위 죽이고 땅에 파묻었지. 아주머니는 그 약점을 이용해서 아이에게 추운 겨울날 우물가에 물을 길러 보냈습니다. 아이는 물을 길어 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에 아이 부모가 없으면 일하는 아주머니가 아이를 불러서 집안의 허드렛일을 시키고 자기는 앉아서 쉬었습니다. 아이는 꼼짝 없이 발목이 잡혔습니다. 죄의 약점을 잡히면 죄의 종이 됩니다. 죄를 지으면 종이 됩니다. 주인집 아들이 일하는 아주머니의 종이 된 꼴입니다. 죄는 종의 종이 되게 만듭니다.

이로 인하여 인생의 시작에서 영적으로 죽고 인생의 종말에서 육적으로 죽고 내세에서 영원히 죽게 되는 생명이 끊어지고  나누어지는 상태의 변화가 왔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에서 15년을 왕위에 있던 네로 황제. 그가  살던 왕궁은 복도의 길이만도 1마일이나 되는 호화찬란한  궁성이었습니다. 집안의 모든 벽은 상아와 자개로 장식되었고 천정은 특별한 샤워장치가 붙어있어서 찾아오는 손님에게는 향수가 이슬처럼 포근히 뿌려지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네로 황제가 머리에 쓰고 있던 왕관은 오늘날의 미국 돈으로 10만 달러가 넘는 것이었고, 그가 사용하던 노새와 조롱 말은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가 한 번 정식으로 출타할 때면 천 명 정도의  군사와 마차와 말들이 뒤따랐으며, 네로 임금이 낚시질을 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을 썼다고  합니다.  값비싸고  좋은  옷이  너무나 즐비하게 많았기 때문에 한 번 입었던 옷은 두 번 다시 입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세상의 극치의 부귀영화를 다 누렸지만  네로  황제는  결코 행복하거나 만족한 생활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네로 임금은  허무와 공포 가운데서 스스로의 생명을 끊는 자살로 일생을 마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적 소경이 되어 하나님과 교통 교제 할 수 없게 되고 죄의 지배아래 있으며 죄를 좋아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인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미국인 선교사가 거리에서 소경을 만났습니다. 의학적인 식견이 있던 이 선교사는 “내가 보기에 당신은 수술을 받으면 앞을 볼 수 있겠습니다 고 말하면서 수술비용까지 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소경은 한참을 망설이더니 “선교사님, 눈을 뜬 후에도 구걸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선교사는 아니, 눈을 뜨면 구걸할 필요가 없지요. 당신은 밝은 세상을 보며 일을 해서 더 잘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며 지극히 당연한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소경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구걸하는 일을 그만두다니요. 그렇다면 절 그대로 있게 해주세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롬3:10-12)

  런던에 살고 있는 네 살짜리 한 어린 소녀가 잘못 넘어지는 바람에 그만 손목을 부러뜨리고 말았습니다. 소녀는 엄마에게 손목을 보이면서 말했습니다. "보세요 엄마, 내 손목이 참 이상하게 구부러졌잖아요?" 그러나 소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통증을 느끼고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섯 살이 되었을 대, 소녀의 부모는 자신들의 딸이 절뚝거리며 걷고  있는 것을 눈치 챘습니다. 병원에서는 넓적다리에 금이 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처럼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소녀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어느덧 소녀는 열네 살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놀다가 손목이 부러지거나  다리에 금이 갈만큼 부주의한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이따금 손등에 물집이 생기거나 화상 자국이 생길 때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런 상처를 볼 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녀는 고통에 완전이 무각감했던 것입니다! 내과 전문의들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소녀의 병을 고쳐 보려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병은 오늘날 겡글리뉴로파디(ganglineuropathy)라고 부르는 치명적인 무서운 병이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 더욱 치명적이고 위험한 질병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에  대한 무감각증'이라는 병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은 이 병에 걸린 자들을  가리켜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딤전 4:2)이라고 진단한 바 있스니다.-Walter B.Knihgt

이러한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스코틀랜드 북부에 깊은 계곡을 가로지르는 높은 철로가 있었는데 철로 아래 계곡으로는 급류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어느낱 밤 심한 폭풍으로 계곡의 물이 무섭게 넘쳐흘렀습니다. 다음날 아침 양치는 소년이 이곳에 나왔다가 심한 급류에 철교의 중앙 교각이 물에 휩쓸려내려 간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곧 승객을 싶은 기차가 이곳을 통과하게 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기차가 오고 있는 쪽으로 뛰어가서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철로 가운데 선 채 옷을 벗어서 미친 듯이 흔들었습니다. 기관사는 소년을 발견하고 빨리 철길에서 비키라고 호각을 불었으나 소년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고 서서 옷을 흔들어 댔습니다. 기관사는 소년이 비키지 않자 급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승객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기차에서 나와 보고 자기들이 거의 죽을 뻔 했었다는 것을 알고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기관사는 "이리 와서 우리의 생명을 구해준 소년을 보십시요"라고 소리쳤습니다. 기차 뒤에서 사람들은 갈기갈기 찢긴 소년의 시체를 보았습니다. 기관사가 너무 늦게 브레이크를 밟아서 기차에 치고 만 것입니다. 그들은 "소년이 우리를 위해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다 죽었을 것이요"라고 흐느끼며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돌아가셨고 그는 자신을 우리와 지옥, 하나님의 진노 사이에 내던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 공로로 영적 소경의 자리에서 거듭나 죄인의 신분에서 의롭다함을 받고 양자가 되어  영적인 죽음에서 살아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어느 주일날 한 성도님이 예배 후 목사님을 찾아가, "목사님 생일 선물입니다."하면서 포장된 조그마한 물건을 내어놓습니다. 목사님은 당황하며, "성도님 내 생일은 아직 멀었는데요." 하니까, 그 성도님은, "제 생일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아니, 성도님 생일이면, 제가 선물을 드려야지 어떻게 선물을 받습니까?" "목사님, 오늘이 제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은 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 동안 저에게 귀한 말씀으로 먹여 주시고 신앙을 자라게 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받아주십시오."

  죄를 좋아하던 자리에서 거룩함에 이르고 죄의 종된 자리에서 거룩케 되는 구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한 사람이 어린 시절에 코카시스 산지에서 자라났습니다. 그 산지에는 나이 많은 은자 한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산지에 사는 사람들은 자녀들을 데리고 그 운둔해 사는 지혜자를 방문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 작가의 부모님도 작가를 데리고 선물을 들고 그 운둔 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운둔자의 거처에 찾아갔을 때에는 마침내  다른 가족들도 그를 방문하여 지혜의 가르침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차례가 되었을 때 어린 소년은 조심스럽게 지혜 자에게 다가갔습니다. 그 늙은 지혜자 는 얼른 소년을 끌어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양손으로 부드럽게  안아주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멀리 손짓하여 내보내었습니다. 소년은 준비해간 선물을 그 지혜 자에게 드렸습니다. 그것을 받은  지혜 자는 웃으면서 "얘야, 지금 나도 너에게 놀라운 선물을 주고 싶다. 네가 어린 아이일 때나, 장차 어른이 되어서나, 네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든지 네가 기억해야 할 선물이다. 이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말아야 된다. 지금 이 순간, 네 생애의 한 순간, 한 순간은 모두  영원의 한 부분이다. 그러므로 그 순간을 즐거워하라. 이 말이 곧 지금  네게 주는 선물이다."

우리의 순간 순간이 천국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한 순간은 이미 영생의 한 부분의 삶이됩니다. 지금도 성화 곧 거룩을 이루는 순간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 마지막 나팔의 때 주님의 재림의 때 육체적 죽음으로부터의 부활로 구원이 완성됩니다.

(고전 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터어키에 선교하던 선교사 한 분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려했습니다.  "나는 여행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고 하다가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산 사람입니까 ? 죽은 사람입니까 ? "그러자 그들은 말하기를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내가 살아 계신 예수님께 찾아가지 않고 죽어버린 마호멧을 찾아 가겠습니까?"

  악한 자는 형벌 받으나 성도의 죽음과 동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고 부활 때에 죽었던 육체가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서 영원 천국에 들어가 영생하므로 영원한 사망으로부터 영화에 이르게 됩니다.

(롬 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미국의 한 때 유명한 설교자였고 목회자였던 아이언 사이드 박사는 죽음을 놓고 이런 예를 들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마을길을 지나가다가 항상 열려 있는 어떤 상점의 문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창문에는 커튼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이상하다 이 집에 무슨 일이 있나?' 하고 자세히 봤더니 창문 밖에다 다음과 같이 써 놓았더랍니다. '내부 수리 중' 그 후 여러 날 동안 그 가게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내부 수리 중' 이라는 팻말만 붙어 있었습니다. 드디어 어느 날인가 가게 문이 활짝 열려서 들어가 봤더니 가게 안 이 얼마나 멋지게 장식이 되었는지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들어가는 손님들마다 아주 기분 좋게 물건을 사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 을 보고 아이언 사이드 박사는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 예수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내부 수리 중인 것과 같구나.'

우리가 죽습니까? 그러면 문 딱 닫아 놓고 '내부 수리 중'이라는 팻말을 걸어 놓은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 몸이 주님의 몸과 같이 영화롭게 변화되는 부활의 날까지 내부 수리 중 팻말 을 걸어 놓은 것입니다.

재림 이후에 실현될 구원은 총체적이며 전면적이고, 구원을 궁극적으로 완성하는 완결적인 구원입니다. 그날이 오면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죽음도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습니다.

(계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어떤 목사님의 지옥에 관한 설교를 듣고 있던 한 부인이, 목사님에게 자녀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있다고 대답하자, 그 부인은 "그렇다면 질문할 것이 있는데요. 자녀가 고통 가운데 빠져 있어도 구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야 물론 그런 아버지는 폭군이나 무자비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목사님 대답에 부인은 "목사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을 그런 하나님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권능을 가지시고 그 자녀들을 구원치 않고 지옥에 떨어뜨린다면 폭군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고 비판했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대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부인, 부인께서는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옥에 있는 자녀들은 한 사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옥에 있는 자녀들은 모두 마귀의 자녀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에 있거나 천국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을 위한 집을 따로 가지고 있고, 마귀는 그 자녀들의 집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옳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거듭난 자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의 아버지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죄를 변명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우리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셔서 벌을 내리실 분이 아니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어느 날엔가 냉혹한 현실을 깨달을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 믿고 거둡나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립니다.

  구원의 궁극적 완성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심으로써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구원에 의해서만 가능합니다. 따라서 재림 후에 이루어지는 구원은 그야말로 재림 전에 모든 세상적 차원의 종말을 고하고, 질적으로 온전히 완결되는 구원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복음의 소망은 이미 구원하시어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살게 하시고  날마다 거룩된 삶을 살며 성화를 이루어 가게 하시고 장차 주님 오실 때 영화의 몸으로 변케 하실 것입니다.

이 복음의 소망 안에서 인내하며 함께 하는 모두가 됩시다.
(강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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