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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독수리 같이 높이 올라 가라 (사 40: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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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씀은 본래 이스라엘 민족이 멀리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람 이사야를 통해서 주신 말씀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은 그들이 범한 죄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50년, 60년, 70년 가까이 되었지만, 아직도 포로생활에서 해방될 희망은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가운데 낙심하는 사람도 생기고 실망하는 사람도 점점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했습니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낙심하거나 두려워하게 됩니다. 실망하고, 포기하며, 좌절하기 쉽습니다. 지치고 피곤이 밀려옵니다. 그런 우리의 상태를 아시고 하나님은 새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독수리가 높고 푸르른 창공을 향하여 날갯짓을 하며 높이 올라가는 것 같이 올라갈 수 있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앙망하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앙망한다'는 말은 '의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나를 의지하지 말고, 내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내 지식을 의지하지 말고, 내 힘을 의지하지 말고, 내 재물을 의지하지 말고, 내 환경을 의지하지 말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지고 변하는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시간이 지나면 늙어질 청춘을 의지하지 말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없는 주님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우리는 언제든지 믿음의 주인이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겠습니다. 그것이 주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앙망한다'는 말은 생각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절 이하에 보면 이런 말씀으로 권면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항상 주님을 바라보면서 한 걸음, 두 걸음 풍파 많은 고해 같은 인생항로를 건너가야 하고, 태산준령과 사막이 많은 인생행로를 걸어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인 것입니다. 사람을 우러러 바라보지 말고, 세상에 있는 향락과 영광을 바라보지 말고, 세상에 있는 지위와 돈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우러러 바라보며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마치 식물이 언제나 위를 향해서 자라 올라가는 것처럼, 꽃이 태양을 향하여 뻗어올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언제든지 하나님을 향해서 자라 올라가고 꽃피우는 심령이 되라는 것입니다. 불길이 언제든지 위를 향해서 타오르는 것처럼, 우리의 심령이 언제든지 하나님을 향해서 타 올라가는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언제든지 영혼의 방향을 위로 향해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가운데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의 삶입니다.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기도를 통해 모든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게 됩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드리게 됩니다.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아뢰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있는 말로 바꾸어 말한다면, 하나님을 앙망한다는 말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을 항상 앙망하면서, 주님과 교통하는 생활을 하라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주님을 앙망하고 묵상하며 바른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성경은 어떤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1. 주를 앙망하는 자는 피곤하지 않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이유들로 피곤을 많이 느낍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그 피곤을 어떻게 푸십니까? 아마 각자 나름대로 피곤을 푸는 방법들이 다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머리가 지긋지긋 아플 때면 으레 친구들과 만나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금새 피곤이 풀어지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몸이 무겁고 말을 잘 안들을 때면 잠깐 동안이라도 눈을 붙인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내 몸이 가뿐해지는 것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몸에 조금 무리가 온다 싶으면 배낭을 메고 등산을 하기도 하고, 라켓을 들고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방법들은 각자 누적된 피곤을 푸는데 나름의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생의 삶 자체가 주는 본질적인 피곤은 어떻습니까? 이를테면 실패가 주는 피곤이나 고질적으로 우리를 괴롭히는 질병 때문에 오는 피곤, 남모르는 고뇌를 안고 가슴앓이를 할 때 오는 피곤 같은 것들은 어떻게들 풀고 있습니까? 잠을 잔다고 해결됩니까? 라켓을 들고 미친 듯이 코트를 누비며 뛰어다닌다고 풀립니까? 산에 가서 두세 시간 있다가 오면 풀립니까? 몸이 피곤하고 머리가 복잡할 때 오는 피곤이라면 아마 이런 방법들로도 얼마든지 풀 수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의 본질적인 피곤은 다릅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그런 방법들로는 어림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이와 같은 근본적인 피곤은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한 가지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라는 것입니다. 29절 이하를 보십시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은 자기를 앙망하는 자에게는 그가 느끼는 피곤이 실패가 주는 피곤이든, 질병이 주는 피곤이든, 인생의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이 주는 피곤이든 간에 반드시 그 피곤에서 벗어나게 하고 새 힘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애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11:28,29)" 예수님은 우리에게 쉼을 약속하셨습니다. 특히 마음의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특히 스트레쓰를 많이 받으며 마음이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움직여도 피곤해서 어쩔줄 모릅니다.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낙심하며 주저앉습니다. 그러나 이런 때 주님을 바라보면 새힘을 주십니다. 피곤하지 않고 쉬 지치지도 않는 새 힘을 주십니다. 그래서 끝까지 사명을 잘 감당하며 달려갈 수 있습니다. 비전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 공급됩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홀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맞대결을 하여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우상숭배로 혼탁해진 이스라엘에 엘리야는 담대하게 공개적으로 자기가 믿는 신에게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면 그의 하나님이 참신이니 맞대결을 하여 진위를 가리자고 도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가 드린 제물을 열납하시어 불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선을 잡아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자 하나님이 큰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이제는 우상을 몰아내고 종교개혁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정결케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보고도 왕후 이세벨은 눈 하나 꿈벅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엘리야는 원수로 여기며 잡아 죽이겠다고 현상금을 걸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야는 두려움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급히 도망하여 로뎀나무아래에서 누워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찾아오셔서 어루만지시며 먹을 것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누린 후 엘리야는 다시 새 힘을 얻어 담대하게 말씀을 외치며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번에 몽골에 도착하자 선교사님들이 말했습니다. "여기는 표고가 1500m 이상 높은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쉽게 피곤합니다. 낮에 낮잠을 자지 않고는 활동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짧은 시간에 준비해 간 강의를 모두 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습니다. 게다가 혼자서 다 해야 하는 부담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열과 성을 다해서 강의했습니다. 어떤 선교사님은 "여기서 저렇게 하면 코피 터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코피도 터지지 않았고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주께서 새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지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 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주님을 바라봄으로 지치지도 않고 피곤하지도 않으며 주님이 주시는 새 힘을 힙입어 큰 일을 잘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주를 앙망하는 자는 높이 올라가게 하십니다.

새중에 가장 높이 나는 새가 독수리입니다. 독수리는 가장 힘이 센 새입니다. 하늘 높이 날아 오를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독수리가 창공에 높이 올라감같이 우리가 영적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새 힘을 공급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독수리와 같이 참새 둥지에 안주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독수리와 같이 높이 올라가도록 창조하셨습니다.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갈 수 있도록 새 힘을 공급하십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한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대하는 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며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높이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참새 둥지에 안주해 버리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성장을 하고 나면 '여기서 멈추라. 정착하라. 그리고 만족하라'는 유혹을 받게 됩니다.

등산을 하다보면 곳곳에 쉬는 장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등산을 하는 중에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새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는 정상을 향해 다시 올라갑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다가 그만 더 이상 오르기를 포기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계속 올라가는 동안 자신은 편안하게 주저앉아 기다리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올라온 만큼에 만족하고 참새둥지에 정착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정상에 오르는 것이 너무 힘들고 그에 반해 얻는 대가는 너무 작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도 앉아서 다른 사람이 계속 산에 오르는 것을 지켜보기만 할 수 있습니다. 등산을 직접하는 것보다 등산에 관해 말하는 것이 쉽습니다. 실제 우리 인생에서도 정상에 올라간 사람보다 산 아랫쪽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머물러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가는 것보다 참새 둥지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높이 올라가면 무엇이 좋습니까? 시야가 넓게 열립니다. 아랫쪽에 머물러 있을 때는 보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활짝 열립니다.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활짝 펼쳐집니다. 아주 멀리까지 잘 보입니다. 아래에서는 그렇게 크게 보였던 것들이 그렇게 작을 수가 없습니다. 자질구레한 것들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상쾌하고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올라가면 세상이 더 새롭게 보입니다. 구름위에 까지도 잘 보입니다. 온 세상이 다 발밑에 있습니다.
낮은 곳에 늘 머물러 있는 사람은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보기에 생각이 좁으나 독수리처럼 높이 올라가는 사람은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낮은 곳에 머무는 사람은 눈앞에 놓인 것만을 보지만 높은 곳에 올라가면 멀리 앞에 있는 것까지 잘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몽골에 가서 선교사님들을 여러분 만났습니다. 몽골의 교회도 여러곳 방문했습니다. 몽골에서 신앙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여럿 만났습니다.
그분들과 대화를 나누며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만 계시며 일하시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서도 놀라운 일을 하시고 계셨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좁은 시야를 가지고 사소한 것에 매여 에너지를 낭비한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부분만 보지 않고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인도하셨습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여 몽골의 복음화를 위해 계획을 세우시고 성취하려고 우리를 그곳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높여주셨고 우리를 통하여 크고 놀라운 일을 행하고 계십니다.

이 정도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충분하다고 말하며 안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만의 문제만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만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더 크고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더 큰 비전을 품고 그 비전을 성취하는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달려가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모두 새 힘을 받아 높이 올라가 하나님이 만드신 큰 세계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새 힘을 받아 더 멀리 내다보는 혜안을 소유하시기 랍니다.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물론 여러 힘이 있어야 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력을 하나님께로부터 공급받는 것입니다. 영력을 지닌 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새 힘 곧 성령의 능력을 충만히 받기를 축원합니다.  (문기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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