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라! (창 6:2~5)

  • 잡초 잡초
  • 412
  • 0

첨부 1


창세기 6:8절에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씀이 ❶ 버클레이 새번역 성경에서는 “그러나 노아는 주님의 존전에서 은혜를 발견했더라(The New Berkeley Version)”고 했습니다. ❷ 테일러 번역 성경에서는 “그러나 노아는 주님에게 기쁨이 되었더라(Kenneth Taylor)”고 했습니다.  ❸영어 새번역 성경에서는 “그러나 노아는 주님의 총애를 얻었더라(The New English Bible)”고 했습니다.

“그러나”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노아는 홍수심판 당시의 상황을 신앙으로 잘 대처했다는 말씀입니다.

인간들은 범죄하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 앞에 의를 행하므로  구원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당시 인간들은 하나님의 탄식과 근심을 자아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당시 인간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했습니다. 세상에 죄악을 관영시켰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잘난 척, 유명한척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습니다.

당시의 인간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가족들과 함께 방주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에게도 “그러나”의 신앙생활이 필요합니다.

1.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어야 합니다.

노아는 의인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의인이란 말은 “바르게 사는 사람, 옳게 살아가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창세기 6: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a just man”으로 번역했습니다. “의인”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이어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구약을 보면은 각 시대마다 성경에 기록된 의인,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의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로 각 시대마다 의로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의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고, 바로 그 사람들을 데리고 역사하셨습니다. 많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소수의 바로 그 사람들에게 은혜를 입혀 쓰셨습니다. 

1) 네피림의 죄악된 세상에 빠지지 말아야 !

노아 시대에는 “네피림”들이 극성을 부렸습니다. “네피림(Nephilim)”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나팔(Naphal, 넘어지다. 타락하다.)”라는 말에서 그 어원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즉 “네피림”이란 “타락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길 없는 심판의 대상자”들을 말합니다.

노아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다 네피림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네피림의 영향권 안에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노아의 자부들도 네피림의 자손들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네피림의 세계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13:32-33절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❶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❷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❸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❹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❺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가나안을 정복할 당시 ❶ 어떤 이들은 가나안의 네피림들을 먹으러 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자들은 절대 가나안의 네피림의 죄악에 빠져 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네피림을 “그들은 우리 밥이라”(민14:9)고 까지 자신했습니다.

❷ 어떤 이들은 가나안의 네피림들에게 먹히러 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믿지 못하는 자들은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3)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네피림의 메뚜기 반찬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요, 요나와 고래의 싸움입니다. 다니엘과 사자들의 싸움이요, 다니엘의 친구들과 풀무불의 싸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죽음과의 싸움이며, 사도 바울과 유라굴로 태풍과의 싸움입니다.  기독교인들과 콜로세움(Colosseum)의 사자들과의 싸움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먹히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의 신앙이 네피림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것이 의로운 신앙생활입니다.

2) 인간의 모든 악한 계획을 따르지 말아야 !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악했습니다. 창세기 6: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말했습니다.

그때의 사람들에게서 선이라고는 그림자조차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모질게 악했습니다. 항상 악했습니다. 어제도 악했고, 오늘도 악하며, 내일도 악할 것이었습니다. 도무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당대의 인간들의 악한 계획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추종하지 않았습니다. 독자적인 행보를 취했습니다. 오로지 악한 세상에서 오로지 의로운 길을 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22절에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러기 위해서 곤두박질치면서 회개했고, 사도 바울은 로마로 끌려갔으며,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성도 여러분 !  하나님이 찾으시는 바로 그 사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사람, 하나님의 눈에 들어오는 바로 그 사람,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바로 그 사람이 되십시오. “just man”이 되십시오.

2. 그러나 완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완전주의(perfectionism)”라는 것이 있습니다. 완전주의를 추구하는 자를 “완전주의자(perfectionist)”라고 말합니다. 완전주의를 추구하는 완전주의자는 절대 성공 못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 완전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보시고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비난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1절에서 아브람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완전”을 요구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사람 앞에서는 불완전한 사람이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는 완전해 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새 이름에, 새 언약에, 새 축복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야곱은 사람 앞에서는 불완전한 사람이었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해 지려고 무척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루스 들판에서의 서원, 하란에서의 부지런한 생활, 얍복 나루터에서의 뒤집어 지는 기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의 새 출발은 하나님 앞에서 누구보다 완전했습니다.

창세기 6:9절에 “노아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완전한 자”라는 말을 영어 성경에는 “a perfect man”으로 번역했습니다.

야구경기에 “완전게임, perfect game”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❶ 사구(四球, four balls)도 주지 않고 ❷ 몸에 맞는 볼(hit by pitched ball)도 없으며 ❸ 안타(a hit)도 맞지 않고 ❹ 득점(a run)도 주지 않는 게임을 완전게임이라고 합니다. 이영광은 투수에게 돌아갑니다.

1) 하나님의 한탄 하시는 소리를 들어야 !

하나님은 창세기 6장에서 두 번이나 한탄하셨습니다.  ❶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창6:6). ❷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과 모든 동물을 쓸어버리실 것을 결정하시고 그 모든 것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창6:7).

노아는 인간의 죄 때문에 한탄하시고, 죄로 말미암은 심판 때문에  한탄하시는 하나님의 한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노아는 영의 귀가 뚫렸습니다. 하나님의 세미한 한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는 말씀대로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들었습니다.

2) 하나님의 근심하시는 마음을 헤아려야 !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서 무슨 근심하실 일이 있으시겠습니까? 죄 많은 인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하실 일 때문에 근심하십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마음에 근심하시고”(창6:6)라고 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마음의 근심까지도 헤아렸습니다. 하나님의 근심하시는 것까지 헤아렸습니다.

이사야 63:10절에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는 모세시대의 인간들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하나님의 근심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려면 하나님이 왜 한탄하시며, 하나님이 마음으로 근심하시는 것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3. 그러나 하나님의 동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길동무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일 정도로 하나님의 길동무가 되어 드렸습니다.

창세기 6:9절에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말을 ❶ Robert Young의 문자적 번역 성경에는 “습관적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번역했습니다. ❷ James Moffatt의 새번역 성경에는 “하나님과 가까이 살았으며”라고 번역했습니다. 

1)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정확하게 받아야 !

하나님의 계시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정확하게 받아야 합니다.

창세기 6:14-16절에서 하나님은 노아에게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고 일러주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심판을 대비하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견딜 수 있도록 정확하게 설계하셔서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은 언제나 확실합니다. 

열왕기상 19:13-16절에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❶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❷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❸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고 계시하셨습니다.

2)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대로 실천하여야 !

기도하는 사람은 많지만 기도한대로 믿는 사람은 적습니다. 믿는 사람은 많지만 믿는 것을 생활에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워서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극히 드뭅니다. 수십 년 교회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왔지만 자기 자신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계시를 따라 120년간 방주를 건조했습니다. 방주의 크기는 길이 135m, 폭 23m, 높이 13m이었습니다. 3층으로 만들어 졌으며 오늘날 대양을 항해하는 43.000t 급의 기선과 같은 규모였습니다. 노아의 가족들과 7.000쌍의 동물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실천하는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끝맺는 말

죄악의 끝날에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도래합니다. 준비된 방주에 준비된 자들이 들어갔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창7:16)고 했습니다.

노아는 ❶ 비가 오기 7일전에 방주에 들어갔습니다(창7:4,10). ❷ 비는 밤낮 주야 40일간 쏟아졌습니다(창7:12). ❸ 물은 150일간 땅을 덮었습니다(창7:24,8:30). ❹ 방주에서 1년 17일 동안 있었습니다. ❺ 5개월 동안 표류했습니다. ❻ 7개월 동안 산위에 있었습니다. ❼ 방주는 800km를 떠다녔습니다. ❽ 해발 5,100m가 되는 아라랏 산에 머물렀습니다. 이 산 아래는 “나구수아나, 낙히체반”이라는 성읍이 있는데 여기에 노아의 무덤이 있다고 합니다.

창세기 7:20-22절에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드렸더니”라고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❶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❷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❸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❹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창세기 9:1절에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축복하셨습니다.

창세기 9:2-3절에서는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었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축복보다 노아에게 주신 축복은 더 구체적이면서도, 더 실제적이었습니다.

John c. Maxwell은 “거인들의 인생법칙”이라는 책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다섯 가지 지혜”라는 제목으로 말했습니다.

나 한 사람을 통해 가정이 달라질 수 있다.
나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물이 달라질 수 있다.
나 한 사람을 통해 후손들이 달라질 수 있다.
나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달라질 수 있다.
변화를 일으키는 데 있어서 나이는 절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신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