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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하나님 답게 하라 (출 8: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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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나간 얘기를 하나 해 드리겠습니다. 친구를 만났는데, 하루는 집에 온 손님이 차를 안가지고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구를 위해서 ‘택시 태워 보내야지..’ 생각을 하고 택시를 잡으러 나갔데요.
그러면 택시를 잡아 가지고 집으로 들어와야 되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타고 갔데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죠.... 한참 가다가 내가 지금 어디 가지? 그 때 생각해보니 집에 온 손님을 태워 보내기 위해 택시를 잡은 거예요! 그래서 다시 집으로 왔어요. 기사에게 택시비를 주고는 헐레벌떡 집으로 들어가니까 아내가 묻더래요. “여보 택시 잡으러 갔다가 왜 그냥와요?”
돌아 와서도 손님 태워 보내야 하는 것을 잊은 것입니다. 얼마나 정신없이 사는지....
하루는 일가친척들이 다 모였는데 한사람이 막 웃어요. 그래서 왜 그런지 물었더니 핸드폰을 가지고 나온다는 것이 집에 있는 무선전화기를 가지고 나왔다는 겁니다.

한분은 열쇠를 잘 잊어버려요. 그래서 열쇠를 고무줄에 끼어서 손목에 걸고 다니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루는 집에 못 들어가고 계신 겁니다. 그래서 왜 집에 안 들어가냐고 했더니 열쇠를 잃어 버렸다는 겁니다. 주머니를 봐도 가방을 봐도 없다는 겁니다. 손목에다 열쇠를 끼워 놓고 계속 찾는 것입니다.
얼마나 우리가 바삐 사는지 참 정신이 없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 때가 있다는 겁니다.

필립 얀시가 지은 책의 제목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로' 인데 국내에서 번역하는 사람이 책 제목을 바꾸었습니다. 바뀐 책의 제목이 '아, 내 안에 하나님이 없다'인데...이 바뀐 제목도 좋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읽습니다. 주일에 예배당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속에는 하나님이 없다는 겁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이번 주간에 장로회신학대학교의 신학생들이 졸업을 합니다.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도 어렵지만 졸업하는 것도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이 졸업생들이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한다고 그럽니다. 신문사에서 “목사님, 후배들을 위해 필요한 말씀을 한 마디해 주세요.”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런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필요로 하는 교회에 가지 말고 교회가 필요로 하는 일군이 되라!”
무슨 뜻인 줄 아시겠어요?
처음 신학교에 들어 갈 때에는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하면서, 하나님이 중심이예요. 신학교 들어가서 1년 지나고 2학년, 3학년 지나고 졸업할 때 되니까 어디든지 가기는요. 내가 앞날이 보장되고 출세할 수 있는 교회는 없을까? 이런 교회를 찾아 가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시작을 했다가 하나님이 없이 끝나게 되면 안 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애굽왕 바로에게 히브리민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그러자 바로는 모세에게 애굽을 떠나지 말고 이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말을 합니다.

25절을 같이 봅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아-멘
바로는 모세에게 예배를 허락을 합니다. 그러나 이 땅, 애굽 땅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그럴 수 있잖아요! 그런데 모세는 어떻게 해요?

27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사흘 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아-멘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데 바로는 이 땅에서 하라고 했고, 모세는 광야로 사흘 길을 가서 하나님이 명령하신 곳에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단호히 거절을 합니다.

바로는 아무데서나 드리면 어떠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부분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는 제목을 찾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되게 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시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과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겁니다.
여러분 지금 이 시간에 문제는 제사의 장소가 아닙니다. 이 문제를 깊이 들어가면 제사의 주체가 누구에게 있느냐는 겁니다.

바로는 제사의 주도권은 사람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제사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중요한 것은 제사가 아니냐? 제사의 장소가 어디인들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뭘 교회까지 가서 예배를 드리느냐? 집에서도 예배드리면 되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방송을 하는 TV나 라디오로 예배만 드리면 되지 않는가?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 사이버교회도 있습니다. 집에서 예배를 드린 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뭘 그 교회까지 가느냐? 가까운데 가서 예배를 드리면 되지. 교회가 거기 밖에 없느냐?”고 하기도 합니다. 이런 말은 굉장히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 묻고 싶은 것은 제사의 주체가 문제입니다. 주인은 누구냐? 누가 예배의 주인이가?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가? 나냐? 하나님이냐? 이십니다.

삼상15장에 보면 사울 왕이 하나님의 버림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초대임금으로 사울을 세우셨는데. 하나님이 세워 놓고는 이제는 하나님이 버리신다! 말이 되는가? 사실입니다.

사울 왕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은 전리품 중에는 기름진 양과 소가 있었습니다. 사울 왕은 이 전리품들을 가지고 사무엘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제가 이렇게 기름진 양과 소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합니다.”
제사장이자 선지자인 사무엘이 기름진 소와 양으로 제사를 드리겠다는 사울 왕에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합니다.
“왕이여, 하나님이 당신을 왕으로 세우셨는데, 당신은 전쟁에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가지고 오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호와께 악한 일만 하십니까?”

사울왕은 제사를 드리는 헌물을 중시했는데, 제사장사무엘은 그것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중시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일에 대해 사무엘이 뭐라고 합니까?
삼상15:22-26에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과 당신의 말씀을 어긴 것은 내가 백성을 두려워하여 그들의 말을 청종하였음 이니이다 청하오니 지금 내 죄를 사하고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하여금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나는 왕과 함께 돌아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보다 좋은 제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과는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저기 생각과 자기 편리한 대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바로도 사울 왕과 같은 생각을 모세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도 사울왕처럼 제사가 중요하지, 장소가 뭐 그리 중요하냐? 는 말인데... 얼핏 봐서는 그럴싸한 말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예배의 주도권을 사람이 쥐어야 한다는 마귀의 유혹입니다.
세상의 임금들은 아무데서나,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예배하라고 합니다. 세상 의 왕들은 편의주의라는 세상의 논리를 내세워 하나님의 사람들을 혼돈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제사의 제물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귀히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먼 곳이지만 한남제일교회를 찾아서 나온다는 것은 하나님만이 주인이시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기 위해 찾는 사람을 축복하시는 법입니다. 왜? 여기에 하나님은 내 삶과 인생에 주인이 시라는 고백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닙니다.

느 10:31에 “혹시 이 땅 백성이 안식일에 물화나 식물을 가져다가 팔려 할지라도 우리가 안식일이나 성일에는 사지 않겠고 제칠 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리라 하였고”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주일을 지킨다는 일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제가 국민일보에서 본 내용입니다.
경기도 광명시에서 한 장로님이 목욕탕을 개업했습니다.
장로님은 목욕탕 개업예배 때 담임목사님이 주일성수를 잘해야 복을 받는다고 신신당부를 하시기에 철저히 주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습니다.
목욕탕 수입은 주일에 30% 이상을 차지하는데 목욕탕을 하면서 주일을 휴업하게 된다는 것은 사실상 사업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목욕탕 사업은 갈수록 어려워져서 수도세 내기도 힘들 정도였습니다.

하는 수없이 장로님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지하수를 파기로 결정했습니다. 수도세라도 건지려고 말입니다. 150m 가량을 파니 물이 터져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그 물은 구정물 같았고 계란 삶은 냄새가 지독하게 나는 물이었습니다. 장로님은 처음에는 무척 실망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물을 끓여 놓고 보니 물이 깨끗하고 투명해졌습니다. 그 물은 유황온천이었습니다. 그 후로 이 장로님의 목욕탕은 성황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도심지에서 유황 성분이 다량 함유된 온천이 개발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겠습니까?
이 장로님은 주일을 꼭 지키겠다는 그의 마음 때문에 그 교회의 교회건축위원장이 될 수 있었고 건축헌금을 가장 많이 드리는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장로님은 주일성수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얻은 좋은 모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일성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고자 하는 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매우 귀중합니다. 하나님의 엄청난 복들이 우리에게 약속되어 있는데 그 약속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데서 있는 것입니다.

세계인들에게서 우리 한국인에 대한 불가사이 2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일본 사람을 우습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일본사람이 얼마나 대단합니다. 세계 각국을 다니다 보면 일본의 영향력이 안 미치는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위대한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 사람은 한국사람 뿐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한국이 6․25동란과 일제식민지를 겪은 지, 이게 언제의 일입니까? 광복이 된지 60년밖에 안됐습니다. 6․25전쟁이 지난 지 50년,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10대 경제대국 가운데 우리나라가 들어가 있습니다.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주던 많은 나라들을 이제는 우리의 도움을 받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축복을 받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역사적으로도 이것은 아주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이런 놀라운 축복을 우습게 여기는 것이 불가사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분명히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축복하셨기 때문에 이 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 줄로 믿습니다. 한국교회가 부흥을 할 때 한국사회가 부흥을 했습니다.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겪으면 한국사회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이 은혜 속에서 마땅히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북에 용천이라고 하는 곳이 있는데 그 도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참 많이 하십니다. 온 도시 전체가 주일이 되면 가게 문을 닫습니다. 일제 36년,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 소망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이 된 것입니다. 그 말씀 안에, 약속이 있고 그 말씀 안에 그 축복이 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 친구들이 저보고 그럽니다. “오목사는 빽이 많아” 그런데 제가 무슨 빽이 많습니까? 아버님이 목사님이십니까? 장로님이십니까?
우리 아버지는 교회 안수집사이셨습니다. 저는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훈장처럼 달아 주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주일에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말씀입니다. 한주도 빠짐없이 말입니다. 이거 하나 가르쳐주셨습니다. 기록을 다 찾을 수는 없지만 유치부 1년, 아동부 6년, 중등부 3년, 고등부 3년, 교회학교 13년을 기록합니다. 개근은 제동생과 저뿐입니다. 제가 다닌 50년 역사에 아직까지 유일무이한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저에게 빽이 있다면 주일 성수하게 한 것과 하나님만이 우리의 주인이시라는 그거 하나 믿고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우리가 먼 곳이지만 이 교회에 나오는 것도 하나님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예배의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는 자를 복주시고 은혜주시고 능력 있게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는 것은 그의 순종하는 믿음 때문입니다.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쳐라하실 때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아들을 바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은 삶의 모든 주도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삶을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만이 내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이런 고백을 하시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모세는 이 땅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26절을 한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하나님의 백성들은 소와 양과 같은 짐승을 잡아 희생 제사를 드리는데 이것을 애굽 사람들이 싫어 한다는 것입니다.

애굽은 모든 동물들을 숭배하는 신앙입니다. 이 숭배하는 동물들을 죽여서 하나님께 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애굽 사람들에게는 불경죄 중에 불경죄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인도와 비슷합니다. 소를 우상시 하는 힌두교는 소가 지나가면 달리던 자동차도 멈춥니다. 이런 나라에서 소를 해치거나 죽이는 것은 곧 죽음입니다. 범신론인 힌두교는 약 9천개의 신을 모신다고 합니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거의 모든 것이 다 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도에서 “예수를 믿으세요.” 하면 인도사람들은 “아니요” 라고 하지 않습니다. 거의가 “예...”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했다고 해서 이들이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다는 것은 아닙니다. 수천의 신 가운데 하나를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어떤 분이 기도를 하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니 예수님 이름이면 끝이지... 무슨 또 나무아미타불입니까?” 그랬더니 하는 말이 “이 기도가 예수님이 받으면 좋겠지만, 혹시라도 안받으면 부처라도 받아야 될 거 아니냐?”했다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는 하나님을 애굽의 여러 우상중의 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유일신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출7:3-5에서 하나님은 바로에게 수많은 표징과 이적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인 것을 알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출9:16에도 하나님이 모세를 세우신 목적에 대해 말씀하기를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 아멘
하나님만이 참신이라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알려 주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애굽 땅에 내린 10가지 재앙은 하나님만이 참신인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이 의지하고 살았던 애굽의 신들이 거짓임을 알게 하신 사건입니다.
10가지 재앙은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요, 온 땅의 통치하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10가지 재앙을 봅시다.
첫 번째 재앙은 피 재앙입니다. - 출7:14-25
나일 강의 하수를 피로 만드셨습니다.
당시 나일강은 애굽 사람들에겐 생명의 젖줄과 같은 것인데 이 나일 강을 보호하는 신으로 ‘하피’라는 남신과 ‘이시스’라는 여신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일 강을 피로 만드시면서 애굽 사람들이 그렇게 의지했던 신들이 아무 것도 아님을 드러내 버렸습니다.

두 번째 재앙은 개구리 재앙입니다. - 출8:1-15
애굽 사람들은 개구리가 생식력이 좋기 때문에 여인들의 출산을 돕는 신으로 ‘헤케드(백만이다. 무지무지하게 많다)’를 믿었습니다. 개구리 모양을 만들고 섬겼는데... 그 개구리 신들이 오히려 자기들을 괴롭히게 된 것입니다.

세 번째 재앙은 이 재앙입니다. - 출8:16-19
모세가 땅의 티끌을 치니까 이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이가 온 애굽 사람과 짐승들을 괴롭혔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섬기는 신중에 ‘세트’라는 신이 있는데 이것은 땅의 신입니다. 사막은 그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지키는 소중한 땅이지요. 그런데 그 땅의 티끌들이 이가 되어 사람들을 괴롭히게 됩니다. ‘세트’라는 신이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력화 된 것이지요.

네 번째 재앙은 파리 재앙입니다. - 출8:20-32
애굽 사람들은 날아다니는 파리가 자신들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었습니다. 구약시대에 보면 사단을 “바알세불”이라고 했는데 바알세불은 ‘파리의 왕’이란 말입니다. 애굽 땅에서는 이 파리의 신을 ‘우앗치트’라고 불렀습니다. 파리 모양으로 된 신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숭배하고 있던 파리가 그들을 공격하게 함으로 파리신이 오히려 그들에게 고통이 된다는 것을 드러내셨습니다.

다섯 번째 재앙은 악질 재앙입니다. - 출9:1-7
생축과 가축들에게 악질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생축은 애굽 사람들의 재산 중에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들이 섬기는 신중에 ‘하토르’라는 신이 있는데 암소 머리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아피스’라고 신은 수소신이다. 그들이 얼마나 가축을 귀하게 여겼는지를 알 수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재앙이 가축들에게 임하였다. 소들이 죽어갔습니다. 생축들에게 재앙이 임했는데 그들이 섬기던 하토르신, 아피스 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 우상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여섯 번째 재앙이 독종의 재앙입니다. - 출9:8-12
이 독종이 애굽 사람들과 짐승들에게 덮쳤습니다.
심지어 애굽의 술객들에게도 붙었습니다. 술객들도 그 독종으로 인해 죽어갔습니다. 원래 애굽의 술객들은 치료자들이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술객들과 함께 ‘새크멘트’라는 치유의 신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자 치료자 술객들도 독종에 들어 병들게 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던 신들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일곱 번째 재앙은 우박재앙입니다. - 출9:13-35
우박이 쏟아지자 두 가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하늘이 어두워졌고, 다른 하나는 땅의 채소와 나무가 다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재앙은 애굽 사람들이 섬기고 있던 ‘누트’라는 신과 ‘오리시스’라는 신을 꺾는 것이었습니다. 누트신은 하늘의 여신이고 오리시스는 수확을 지키는 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는 이 신들이 다 무력했다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재앙은 메뚜기 재앙입니다. - 출10:1-20
메뚜기로 인해 우박 피해를 겨우 피한 농작물이 다 전멸해 버렸습니다. 이 메뚜기 재앙은 애굽 사람들이 농작물을 보호하는 신으로 믿었던 ‘세라피스’라는 신을 하나님이 심판하신 것입니다.

아홉 번째 재앙은 흑암의 재앙입니다. - 출10:21-29
애굽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신이 태양신 ‘라’였습니다. 애굽의 여러 신들 중에 최고의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이 어두워졌는데도 ‘라’ 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들이 믿는 태양신을 심판해 버린 것입니다.

열 번 째 재앙은 죽음의 재앙입니다. - 출11-12장
애굽 사람들은 바로를 신으로 믿었습니다.
바로의 왕좌를 이어갈 왕자도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의 장자를 죽였습니다. 바로의 장자만이 아니라 온 애굽 땅의 장자들을 다 죽였습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애굽의 문화와 바로를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한 사람들,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우상들을 남김없이 무너뜨림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주재권을 온 애굽 땅에 드러내신 것입니다. 바로는 이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참 많습니다. 오늘 우리들에겐 이런 우상들이 없습니까?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는 것들, 돈, 권력, 지식, 직장, 아들, 인간관계 등등..... 하나님만이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3.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신다.

22-23절을 같이 봅니다.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거주하는 고센 땅을 구별하여 그 곳에는 파리가 없게 하리니 이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라 내가 내 백성과 네 백성 사이를 구별하리니 내일 이 표징이 있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고 ”

하나님은 내가
왜? 우리가 잘되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구나! 하나님이 진짜 전능자이시구나“하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나 때문에 하나님이 여호와, 전능하신 하나님을 증거 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 가지 재앙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애굽 온 땅에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한 고센 땅이 모든 재앙에서 제외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센 땅에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모든 재앙에서 지켜주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애굽 사람들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 같습니다. 똑같이 병들고 똑같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려움 때문에 망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불신자에겐 고통은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어려움은 오히려 축복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재앙과 아무 관계없습니다.
어떤 저주도, 어떤 사술과 복술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망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은 모든 운명과 저주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는 줄로 믿습니다.

안산제일교회 고훈목사님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자기네 교회에 한 집사님이 갑자기 갑상선암이 생겼더래요. 5㎝, 4.5㎝, 4㎝이렇게 세 개가 생겼더랍니다. 수술을 하려고 하니까 갑자기 몸에 열이 생겨서 수술을 못하게 된 겁니다. 그러니 얼마나 위급합니까? 지금 수술을 해도 살까 말까한 상황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그 가족들과 성도들이 합심을 해서 “열 내려서 수술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기도를 들으시고 기적적으로 열을 내려주셔서 수술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사가 수술을 하려고 보니까 없애야 하는 암 덩어리가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이 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우리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고 나서는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신다는 것을 믿게 됐다고 합니다. 더 큰 어려움을 주셔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어려움이 기도할 때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국교회 역사서를 보게 되면 백선행이라는 여자 분이 나옵니다. 여러분 인터넷에 백선행이라고 쳐보면 그분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한국 여성 최초 사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진 사람. 이름도 없이 그냥 '평양 백과부'로 불리다가 가진 돈을 선행에 써서 <선행>이란 이름을 얻게 된 사람. 그가 바로 경기도 수원 출생의 백선행입니다.
어려서 안씨 가문에 출가한 백씨는 결혼 1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였습니다. 미천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천한 집으로 시집가 자식도 없이 16살의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것입니다. 백씨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서 근검절약하였고, 생활신조를 '먹기 싫은 것 먹고, 입기 싫은 옷 입고, 하기 싫은 일 하며 사는 것'으로 삼고 억척스럽게 재산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삯바느질과 길쌈은 물론이고 20리나 떨어진 시장에 가서 버리는 음식찌꺼기 주워다가 돼지를 길렀습니다. 또한 봉숭아 씨를 시장에 내다 팔고 콩나물 장사도 했다. 이렇게 돈을 모아 베개 속이나 방바닥을 뚫고 그 속에 숨겨두었습니다. 이런 백씨를 보고 사람들은 '구두쇠 백과부', '악바리 백과부'라 불렀습니다.
회갑(1908년)을 맞이한 백씨는 피땀으로 모은 돈을 털어 대동군 고평면 송산리에 커다란 다리를 하나 놓아 사람들을 깜짝 놀래켰습니다. 사람들은 백씨의 선행을 기리기 위해 이때부터 그를 백과부가 아닌 백선행으로 불렀습니다.
사연인즉 이웃 토지 거간꾼 소개로 시어른들과 남편의 무덤을 위해 구입한 선산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백씨는 입을 것 입지 못하고 먹을 것 먹지 못하고 모은 돈 200냥으로 대동강 일대 만달산을 샀습니다. 당시만 해도 이웃끼리 믿고 살았기에 백씨는 현장답사도 하지 않고 산 것입니다. 그 땅을 찾아가 본 백씨는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 산은 풀 한포기 없는 돌산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백씨는 절망감을 뒤로하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땅을 샀더라면 그가 망했을 텐데, 자신이 그 아픔과 손실을 대신한 것에 감사를 드린 것입니다.
평양 시내에 ' 백과부가 망했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안먹고 안쓰고 그러더니 그리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더니 하나님을 믿어도 소용이 없다라고 조롱을 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백집사님은 하나님이 이러한 고난을 주신 것에 대해 감사를 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뒤 집을 짓고 건물을 짓는데 시멘트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쓸모없었던 돌산이 시멘트 원료인 석회석으로 이루어진 산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 사람들이 도청 직원을 앞세워 찾아 왔습니다. 그들은 시멘트 공장을 차리려는 사람들이었는데 지질 조사를 하던 중에 백집사네 산이 온통 석회석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백집사를 찾아와서 1천량을 줄테니 그 산을 팔라고 했습니다. 백집사는 깜짝 놀라며 절대 못 팔겠다고 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2백냥을 주고 산 것도 잘못된 거래였는데 세상에! 1천냥을 주겠다니 말도 안되는 소리! 그래서 조롱거리가 됐는데 이 산을 다른 사람이 사서 그 마음아픔을 사면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아니다 내가 감당해야한다’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일본 사람과 도청 직원은 이리 달래고 저리 달래었지만 백집사는 막무가내로 귀를 닫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도청 관리와 광산업자는 돈이 적어서 그러는 줄 알고 얼마 만에 다시 찾아와 2천냥을 줄테니 제발 팔라고 졸랐습니다. 백집사는 더 놀라서 절대로 안 되겠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돌아가면서 고민했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너무 싸게 불러서 이렇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조선 사람, 그것도 과부의 땅이지만 돈을 제대로 쳐주어야겠다....."
얼마 뒤에 그들은 다시 백집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산의 돌은 모두가 석회석이며 그 석회석으로 시멘트를 만들면 이렇게 저렇게 좋은 일이 되고, 조선경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된다는 것을 상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신중하게 듣는 백집사의 표정을 살펴가며 그들은 결정적인 말을 꺼냈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잘못 말을 했습니다. 그 산은 충분히 2만냥을 받고도 남을만한 값어치가 있는 산입니다. 2만냥을 드릴 테니 남편과 시어머님의 산소를 더 좋은 산을 사서 모시도록 하십시오. 우리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제서야 백집사는 그들의 의도를 이해하고 땅을 팔았습니다.
우리 성경의 바나바가 원래는 요셉입니다. 그런데 남을 위로하는 것을 잘하니까 바나바가 이름이 된 것처럼 그분이 “선행”일라는 것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백집사는 비록 가난한 과부로 살았을망정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남에게 해가 되거나 손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무슨 억울한 일이든 무슨 손해이든 자신이 감당하려 한 그 마음으로 하늘의 상급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선 먼저 교회를 지었고 민족교육에 뒷받침하고자 1923년에는 광성소학교에 3백50석지기 논을 희사하고, 그 이듬해에는 창덕소학교에 3백석지기, 승현여학교에 2만 6천평의 토지를 기부하였습니다. 장로회 신학대학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평양신학대학교 재단도 바로 백선행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백선행의 아름다운 일들이 퍼지면서 1925년 총독부에서는 백씨에게 표창장을 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백선행은 과감히 거절했습니다.
또한, 민족지도자 조만식과 뜻을 같이하여 1928년에는 일본인들의 공회당보다 더 큰 민간운동 집회장인 '평양공회당'도 세웠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이 건물을 '백선행 기념관'이라 불렀습니다.
비록 슬하에 자식 하나였던 백씨였지만 그의 영결식에는 학생들은 물론 조만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와 사회 단체요인 등 1만여 명이 그의 뒤를 따랐고, 백선행의 업적을 새긴 기념비가 여러 학교에 세워졌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절대로 망하게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하나님만이 내 삶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보호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더 나아와서 기도하고 믿음생활 더 철저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것이 힘이 되고 극복해서 우리에게 꼭 허락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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