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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심지 (마 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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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밀어닥친 산더미 같은 파도 앞에 인간은 속수무책으로 휩쓸리고 수십만의 생명이 죽음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단 몇 초 동안의 지진으로 인간은 그렇게 집짓고 살던 생활터전이 다 무너지고,
수만 명의 죽음과 수백만의 이재민을 이루고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권세와 물질을 움켜쥐고, 천하를 호령하던 사람도, 질병으로 쓰러지면 하루아침에 역사 속으로 퇴장당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보통사람인 우리들 역시 지금 이 순간 겉으로는 평온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상처'없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연약하고 상한 심령으로 살아갑니다.

지금 제가 말소리를 멈추면, '적막'이 이 공간에 흐르겠지만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작은 신음소리를', '가슴속으로 울부짖는 비명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우리 인생은 얼마나 많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얼마나 잘 쓰러지고 꺽여지는 존재인가를
하나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흙에서 인간을 만드셨지만, 인간은 체력도 약하고, 의지력도 약한 존재입니다.

"초로인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풀에 맺힌 이슬 같은 인생"이라는 이 말도 인생의 무상함과 연약함을 우리들에게 잘 들려주는 말입니다.
성경 사사기 40장에는 "땅의 모든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 얼마나 형편이 없는 존재들인지를 표현하는 구절입니다.
성경은 종종 인생을 "갈대"라고 묘사합니다.

마태복음 11장7절에서 예수님도 말씀하실 때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이는 갈대냐?"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기 갈대는 '너무 연약하고, 결코 의지할만한 존재가 못되는 그 무엇'을 상징합니다.
구약에서도 '너희는 갈대 같은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는 말도 나옵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며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은 '갈대'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이 갈대가 상처까지 입어서 이젠 더 이상 제 힘으론 서 있기도 힘든 상태까지가 있습니다.
세상은 '무자비'합니다.
그래서 갈대 같은 인생은 세상 속에서 꺾이고, 짓밟히고 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세상은 냉정하여서 '포기'도 빠르고, 사정없이 내다버리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가정에서 사용하는 밥그릇이 한 귀퉁이 조각이 떨어져 나가면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애지중지 키우던 짐승도 병들고 흉한 꼴 되면 내다 버리는 세상이 아닙니까?
냉엄한 세상에서 또한 사람도 외면당하고, 버림받고, 짓밟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우리들은 언제든 '낙오자'가 될 수 있는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야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소생불가 상태인 상한 갈대를 다시 살리시기 위하여서 였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분의 사역중 많은 시간을 '상한 갈대'같은 병든 인생을 고쳐주시는데 할애하셨습니다.
주님의 관심은 몸이 상한 사람,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있으셨습니다.
문둥병자, 중풍병자, 소경, 손마른자, 귀머거리만 고치신 게 아닙니다.
'마음에 병든 자'를 부르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음의 상처까지 다 치유해 주시길 원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 주님이 돌보신 상한 갈대는 또 있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상한 심령, 죄로 상한 인생조차도 꺾어 버리시지 아니하시고,
'회복'과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 주님이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때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셨는데 바리새인들이 이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묻습니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이제 기세가 등등하여 이 여자를 돌로 쳐 죽일 작정인 저들이
'사랑'과 '치유'와 '회복'을 가르치시는 예수님께 이 여인을 끌고 온 것은,
'예수님도 이 여인을 살리자고는 못하실 것이라'고 단정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 이 여인 역시 '상한 갈대'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이 갈대를 꺾어버리자고 하고 있지만, 예수님은 조용히 뭔가 글을 쓰시다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시고는 다시 땅에 무슨 글자를 쓰기를 시작하십니다.
자신들 역시 현장에서 들키지만 않았을 뿐 이 여인과 다를 바 없이
"죄로 상한 갈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자들이 하나, 둘 물러가고, 거기에는 예수님과 여인만 남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리니 돌아가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은 결국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마지막 장에서 우리는 이른 아침시간에 예수님께서 디베랴 바닷가의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기록을 봅니다.
이때 베드로는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쓰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상태에서 매우 허탈감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음성을 듣고 그렇게 하였다가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혀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고,
그제야 말씀하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막상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베드로는 선뜻 예수님 앞에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체포되실 때 그 당당했던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기 때문입니다.
'면목이 없는 베드로' 그 역시 상한 갈대였습니다.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운 베드로를 예수님이 다시 찾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과거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실패자 베드로, 자격상실자 베드로, 풀이 죽은 베드로, 상한 갈대인 베드로를 만난 예수님은 다른 것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단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날 믿느냐', '네가 과연 날 위하여 죽을 수 있겠느냐'고 물으시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날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으시는 주님이셨다면,
'베드로야 난 네게 실망했다. 넌 자격도 없는 배신자이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가 아직도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는 제자라는 사실 하나 그 고백만 듣고자 하셨고,
세 번을 그 사실을 물으신 다음에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시며 그의 무너진 권위, 실추된 자존심을 다시 회복 시켜주셨습니다.
옛 사람들은 갈대를 펴서 불러 쪄서 말려가지고 '파피루스'라는 종이를 만들어 책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 같은 사람들을 회복시키셔서 '복음증거자'로 사용 하셨습니다.
상한 갈대 출신 베드로는 주님의 부름을 받고 3천명을 회개케 하는 복음의 사도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지금도 상한 갈대의 우리들을 찾고 계십니다.
실패하고, 세상에서 버림받고, 죄악에 물들고 죄책감에 시달리고 질병과 고난과 상한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찾고 찾으십니다.
여기 이 자리에 상한 갈대인 우리들이 모여서 주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도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는 주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도 않으십니다'고 하셨습니다. 원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연기 나는 삼대를 끄지 아니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상을 보십시오, 이미 불은 꺼졌습니다.
불은 꺼지고 불씨만 겨우 심지 끝에 가물가물 남아있으며 거기선 연기가 되어 오른다.
이런 작은 불씨조차도 멸하지 아니하시고 사랑의 순결을 불어서 다시 불꽃이 살아나게 하신다는 표현입니다.
어찌 보면 우린 이미 꺼진 불꽃과 같은 인생인지 모르겠습니다.
소망이 전혀 없어 보이지만 주님은 마지막 불씨를 보고 계십니다.
죄인 된 우리들이지만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음으로 인한 마음의 고통이 아직 불씨처럼 남아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동경도 남아있습니다.

주님은 이 작은 불씨조차도 일으키시고 화내게 하시고 회복되어 새로운 하나님의 사람을 만들기를 기뻐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시 여리고라는 도시에 삭개오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의 세금을 거두어 로마정부에 바치고 부를 누리고 사는 민족반역자 이었습니다.
가진 재물은 많이 있지는 모르겠으나 유대인들은 그 누구도 그의 부요함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는 멸시, 천대의 대상이 되고 비웃음과 조로의 대상이 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는 존경받지 못하는 명예, 권세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그 부와 명예를 얻었나 하는 점입니다.

과정이 온전하지 못하면 결과가 아무리 화려하여도 그것은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부와 명예와 권세가 얼마나 허전한 것이겠는가 상상해 보십시오.
삭개오는 돈과 민족은 맞바꾼 인생 이였습니다.
자기민족을 배신하고 이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더욱 더 돈에 혈안이 되어있던 인생입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 한구석에 양심의 고통이 꺼져가는 불씨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이 불씨가 삭개오로 하여금 예수님을 향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리로 지나사신다 하는 말을 듣고 그는 예수님을 향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가 뽕나무위에 올라간 것은 그의 심령 속에 아직 효를 사모하는 불씨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바라보시고 그 불씨를 보였습니다.
그리고는 그 불을 아브라함의 아들로 다시 살려내십니다.
불씨가 다시 훨훨 타오르는 불꽃이 된 증거는 삭개오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토핵한 것을 4배나 갚아주고
재산의 절반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자기결단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가라앉고 민족 속에서 소외된 삭개오라고 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꺼져가는 심지조차도 끄지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꺼져가는 심지의 또 다른 뜻은 아주 작은 믿음, 보잘것없는 믿음을 의미 합니다.
이 믿음은 너무 부족하고 작아서 빛을 발하지를 못합니다.
남을 위한 봉사도 못하고 전도도 할 줄 모르고 주님과 복음을 위하여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이제는 다 꺼져가느라고 가느다란 연기만 나고 힘을 쓰지도 못합니다.
의심의 연기, 불행의 연기, 근심과 두려움의 연기를 피우고
언제든지 무슨 핑계거리만 생기면 완전히 열기가 소멸되어 버릴 가능성이 있는 상태 입니다.
인생에서도 이 믿음은 아예 믿음 없는 사람, 쓰임받기는 힘든 사람,
너무 연약하여서 불신자와도 잘 구분이 안 되는 사람 취급을 받기가 쉽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이젠 꺼져가는 불씨 같은 신앙으로 앉아계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우리 예수님이 보시는 눈은 우리가 보는 것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아주 작은 불씨조차도 너무 귀히 여기시고
거기에 성령의 바람을 불어주시고 불꽃이 살아나게끔 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 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그 갈대를 다시 일으키시는 사역이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시고 그 희미한 불을 돋우어 큰 등대를 삼으시기 위한 사역 이였습니다.
세상의 무자비함은 여러분 모두가 세상 살아가면서 몸소 체험하였으리라고 믿습니다.
세상은 상처 입은 사람, 무력한 사람, 이미 낙오된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보잘것없는 나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 주님은 보잘것없는 나에 대하여 관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대지라는 소설을 쓴 유명한 미국의 여류소설가 펄 벅 여사는 한국에 관한 소설을 쓴 일이 있습니다.
그 소설제목은 'The Living Reed' 입니다.
살아있는 갈대 그는 우리 한민족을 갈대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격고 6.25전쟁과 남북분단을 경험한 우리 민족을 갈대와 같다고 본 것입니다.
사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 민족역시 상처 많은 백성임을 부인할 순 없겠습니다.
경제적으로 상처입고, 꺼져가는 기업, 가정이 있습니다.
상처 입은 가정이 있습니다. 사회는 부도덕, 부정, 부패, 무질서로 상처투성이 입니다.
정치문제, 교육문제, 남북문제, 이념문제.. 이 문제들로
차라리 이 민족 이 나라를 등지고 해외로 이민을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정도 입니다.
이 상한 갈대 같은 민족에 소망이 있습니까?
우리 주님은 지금도 우리 속에 작은 불씨를 보고 계시며 상한부분을 싸매고 계십니다.
주님만이 여러분과 저 그리고 우리교회, 우리 민족, 우리 시대의 희망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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