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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왕하 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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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심리학자 에릭 프롬은 인간의 삶의 방식은 소유 지향의 삶의 방식과 존재 지향의 삶의 방식 두 가지로 나눠진다고 했습니다.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거머쥐려는 소유 지향형 인간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존재 지향형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소유 지향의 삶의 방식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문화는 그런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것, 더 새로운 것, 더 빠른 것, 더 화려한 것, 더 넓은 것을 거머쥐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처럼 부추기고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소유하지 못하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것처럼 속고 속이고 있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바 능력이나 배경, 경제력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좋은 평가와 더 나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또한 그 무엇인가를 성취한 사람들은 그것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재미로 세상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그릇된 가치관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남을 섬기는 것보다 섬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것을 당연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에서도 우리는 그와 같은 소유 지향형 삶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살았던 한 인물을 만나게 됩니다. 맡겨진 모든 것을 성실하게 감당한 나아만 장군은 나름대로 크게 출세해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올랐습니다. 왕의 신임을 받는 2인자로서 그의 권력과 기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크고 존귀한 자”라고 부를 때마다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모든 것을 성취한 그는 그 성취한 것을 휘두르고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이 세상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있습니다. 침대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단잠은 살 수 없습니다. 책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지식과 지혜는 살 수 없습니다. 약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건강은 살 수 없습니다. 화려한 집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화목한 가정은 살 수 없습니다. 오락은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목걸이 십자가는 돈을 주고 살 수 있지만 구원은 결코 돈을 주고 살 수 없습니다.

  마치 그와 같은 이치를 깨우쳐 주기라도 하듯이 인생의 최고의 위치에 올랐을 때 그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권력으로도, 또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명성으로도, 또한 그의 뛰어난 무술 실력으로도 어쩔 도리가 없는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병을 고치기 위해서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용하다는 의원들은 다 찾아다녔지만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어 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주 엉뚱한 데서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계집종을 통해서 참으로 신기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 계집종은 얼마 전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잡아온 아이였습니다. 평소에는 그런 아이의 소리를 들을 일도 없고 들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의 앞에 선 그 아이의 얼굴에는 어두운 구석이 전혀 없었습니다. 밝고 명랑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이는 아주 진지하게 자기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에 대해서 말해 주었습니다. 그 하나님이 못 고칠 질병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에게 가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병이 나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고 그 먼 거리를 달려가 선지자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그냥 무시해 버릴 것인가?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맑고 진지한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고 웬일인지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기한 능력을 소지하고 있다는 선지자에게 줄 선물을 넉넉히 준비하고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단숨에 달려간 그는 먼저 이스라엘 왕을 찾았습니다. 왜냐 하면 국제적인 관계로 볼 때 적절한 예의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웃 강대국의 2인자가 갑자기 들이닥치자 이스라엘 왕으로서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그를 정성스럽게 대접했습니다. 환대에 기분이 좋아진 그가 갑작스로운 방문 목적을 설명했습니다. 많은 보물과 돈을 내놓으면서 나름대로 당당하게 요구했습니다. 병을 고쳐 달라고... 그러나 이스라엘 왕으로서는 그에게 전혀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불치병을 고쳐 달라는 그의 요구 앞에서 더욱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이 당황해 하는 것을 보며 그는 은근히 화가 났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우리 집 계집종에게서 봤던 그런 진실함이나 확신에 찬 믿음 같은 것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인가?” 그가 볼 때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별로 신뢰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가 선지자를 찾아 왕궁을 나설 때 다시금 한 가닥 희망의 빛이 비치는 것 같았습니다. 선지자를 왕궁으로 불러들이면 될 일이지만 마음이 급한 그는 직접 선지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런데 선지자의 집에 가까이 갔을 때 그는 다시 한 번 속이 뒤집히는 전갈을 들었습니다. 선지자의 사환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기분이 아주 상했습니다. 분노가 끓어올랐습니다. “내가 가서 군대를 끌고 와서 박살내 버려야지!” 선지자는 이웃 강대국의 “크고 존귀한 자”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화를 내며 돌아가려고 할 때 수행원 중 한 사람이 다가와서 말했습니다. “장군님, 이보다 큰 일을 하라고 했으면 어떻게 하셨겠습니까? 언짢게 생각하지 말고 그 말대로 한 번 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치료 과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병든 몸과 영혼을 아울러 치료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시인 천양희는 『상실』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존재를 잃어버리면 가슴을 잃는 것이다 / 가슴을 잃어버리면 자신을 잃는 것이다 / 자신을 잃어버리면 세상을 잃는 것이다 / 세상을 잃어버리면 인생을 잃는 것이다 / 인생은 실패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할 때 끝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포기하지 않는 한 기회는 찾아옵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잠시 넘어졌던 그는 다시금 일어서서 요단 강으로 달려갔습니다.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서서 믿음으로 나아갈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나아갈 때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는 가지고 온 값비싼 선물로, 그의 명성으로, 그의 권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요단 강에 몸을 담글 때 놀라운 치료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은혜는 말씀에 순종하면서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나아갈 때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은혜는 값을 지불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값을 지불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거저 주어지는 것입니다. 회복된 그가 나름대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그것도 거부되었습니다. 은혜는 그대로 누리는 것이지 결코 대가를 지불하고 얻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탈무드』에 보면 “하나님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밀알 그대로는 빵을 만들 수 없습니다. 밀을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야 비로소 맛있는 빵을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라도 사용하십니다. 다만 자아가 너무 강한 사람은 그대로 쓰지 않으십니다. 자아가 부서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방의 구원을 위해서 나아만을 쓰기 원하셨습니다. 그가 자기의 삶의 방식을 포기하고 말씀에 순종하여 요단 강에 몸을 담갔을 때 비로소 하나님은 그에게 크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병 낫기를 원합니까? 오늘 여러분도 문제 해결되기를 원합니까? 여러분도 기도 응답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어린 아이와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기 바랍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주님의 그 말씀에 겸손히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신비하고 놀라운 새 생명의 역사를 날마다의 삶 속에서 체험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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