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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탐심을 물리칩시다 (출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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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산이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20:17) “네 이웃의 아내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도 탐내지 말지니라.”(신5:21)

우리는 열 가지 계명을 잘 압니다. 요즈음은 십계명이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교회학교 어린이에게도 이것은 가르쳐야 됩니다. 중고등학생, 대학생은 다 알아야 합니다. 전에는 학습, 세례 문답 때 꼭 십계명을 외우게 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해서 중학교 1학년 때 학습, 세례를 받았습니다.

십계명의 결론입니다. 탐심을 금했습니다. 천주교와 루터 교에서는 1,2계명을 합쳐서 1계명으로 했습니다. 대신 제 10계명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9계명은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 제 10계명은 재물을 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남의 정조를 탐하는 것이나 재물을 탐하는 것, 다 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문대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십계명 순서가 맞는 것입니다. 신명기에서는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것이 앞에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는 것이 먼저 나와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습니다. 아내는 진주보다 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명기에는 먼저 쓴 것입니다. (잠 31:10) 아내는 재산보다 귀합니다. 출애굽기는 집을 먼저 쓴 것입니다. 새둥지가 새보다 먼저 있듯이 아내보다 집이 먼저 있기 때문입니다.(T. watson, op cis .p.121) 그러기에 두 성경은 모순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계명을 다 잘 지켰다고 합시다. 그렇다 할지라도 마지막 계명을 범하지 않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날 영생 문제로 젊은이가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예수님은 “네가 계명을 지켰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의 얼굴은 환하게 밝았습니다. ‘그리 어려운 문제가 아니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 계명은 어렸을 때부터 잘 지켰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구제하라는 말씀에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눅17:18~) 그는 참 좋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영생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이걸 보면 재물의 힘은 정말 대단하지요. 그는 영영 그 기회를 얻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1계명에서 “내 앞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고 전심전력 하나님을 섬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8계명에서 정직을 말씀하십니다. 열 번째로 다시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 하신 것입니다. 저도 “탐심을 물리칩시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 탐심이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눈이나 마음에 탐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탐하지 말라.”했습니다.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house ; you shall not covet your neighbors wife or his male servant or his female servant or his ox or his donkey or anything that belongs to your neighbor`s”(출20:17) 탐한다는 히브리어는 “하마드”라 합니다. 헬라어로는 에피두메인입니다. 이는 “남의 것을 바라거나 탐하는 것”(출20:17,34:24,미2:2)입니다. 어떤 것을 지나치게 사모하는 것입니다.(잠6:25,12:12,1:29) 이 죄는 끝이 보입니다. 그 끝을 봐야 깨닫는 무서운 죄입니다. 이러다가 쇠고랑 차는 사람 대단히 많습니다. 이것 때문에 망신 당하는 사람 많습니다. 영영 매장 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분수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니 탐심은 누구나 다 있습니다. 억누를 힘이 있어야 합니다. 감정조절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타바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선한 것이나 의로운 것을 원하는 것 (출10:17,21:3)
②나쁜 뜻으로는 정욕(마5:28,고전10:6)
③불법적인 욕심(민11:4,34:35, 시78:29-30 롬7:7 13:9)

탐심은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충분한 것보다 더 원하는 것”(To desire more that enough)이라 했습니다. “펠라구지오”라는 사람은 “세상을 터무니없이 사랑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을 우상 같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탐심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데서 비롯됩니다. 결국 나 자신을 망치는 무섭고 더러운 죄입니다. 배는 물이 없으면 하나의 나무 조각입니다. 하나의 쇠 조각이고 고철 덩어리입니다. 물이 있으면 그 위를 떠다닙니다. 그러나 배가 물속에 들어가면 죽음입니다. 끝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삽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에 푹 빠지면 내가 죽습니다. 탐심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것입니다.

①우리의 생각이 세상 것으로 차 있습니까?(마19:22)
세상을 위해서는 주일도, 예수님도 떠날 만큼 사랑하시지는 않으시지요?

②하늘나라 것 보다 세상 것 얻는 데 더 고심하십니까?(히3:12) 세상 일 때문에 밤잠 안 자다가 병들어 보셨습니까? 주님의 일 때문에 잠을 설쳐봅시다. 주님의 일 때문에 관공서, 은행, 공공기관, 친구를 찾아 다녀 보셨습니까?

③모든 말이 오직 세상일, 세상 이야기만 하는 분 보셨습니까?(마17:27 26:33 요3:31 전10:12) 제가 어느 교회 부목사 때였습니다. 청천에 심방을 여 전도사님과 같이 갔습니다. 그 분이 전도사님과 신명여고 동기동창이었습니다. 당시 재산이 수 백 억이 넘었습니다. 농장, 큰 공장. 그런데 저는 예배드리고 와야 합니다. 말이 전부 사업이 잘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돈이 몇 천 만원이 들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목사가 더 이상 축복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계속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이젠 신앙생활 이야기를 하려는 데 일어나더니 김 씨 이것저것 일하라고 일을 시킵니다. 예배드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때 마침 12시 반쯤 점심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점심에 대한 말 한마디 없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너무 세상 욕심이 많습니다. 탐심은 간교한 죄입니다. 너무 위장을 잘 해서 분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울은 “탐심의 딸”(살전2:5)이라고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아담, 하와에게 이 수법을 쓴 것입니다. 이 죄는 위험한 죄입니다. 예수님의 비유를 들어 봅시다. 어떤 이가 밭에다 씨를 뿌렸습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새들이 와서 쪼아 먹었습니다.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싹은 곧 나왔습니다. 흙이 얇아서 해가 뜨자 다 타버렸습니다. 뿌리도 붙이지 못한 채 말라버렸습니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습니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혔습니다. 그러니 그 씨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맺은 열매가 백배가 된 것도 있습니다. 60배가 된 것도 있었고 30배가 된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비유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시나무 속에 떨어진 것에 대한 것입니다. 씨앗도, 자라기도 잘 했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맺지 못했습니다. 이는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탐심을 근본 죄라고 합니다.(mother sin)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딤전6:1)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좋은 집에도 살고 싶습니다. 좋은 가구도 들여 놓고 싶지요. 편리하고 좋은 전자제품도 탐이 나지요. 좋은 차도 타고 싶습니다. 자녀들도 남 보다 더 잘 입히고 먹이고 공부시키고 싶습니다. 시집, 장가 갈 때 바리바리 실어주고 싶습니다. 요는 문제는 돈입니다. 어떤 이는 하늘로부터 돈 벼락이라도 맞았으면 합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되었으면 합니다. 탐심의 죄는 자기를 망치는 죄입니다. 성경에 “탐욕을 미워하는 자는 장수한다.”(잠28:10) 했습니다. 탐심은 사람을 낙담케 합니다.(전5:10) 탐심은 사람을 미련하게 한다(왕상21:2 렘17:11) 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탐심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이 고약한 탐심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난 자마다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5:6) 하나님의 섭리를 믿어야 합니다. 왜 나를 이 정도의 삶을 살게 하셨는가 하나님의 뜻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탐심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탐심이 들어옵니다. 어느새 나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잘 압니다. 무엇이 필요한지도 압니다. 내 약점도 잘 압니다. 자기가 해결해 주겠다고 합니다. 힘들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고 합니다. 거기 미끼가 있습니다. 예수님께도 덤빈 것 잘 아시지요. 물질로 시험합니다. 이성으로 옵니다. 미인계지요. 명예라는 멋진 미끼도 있습니다. 사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공중의 새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들의 백합화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6:33) 하셨습니다. 우리는 늘 자신이 없습니다. 마귀만큼 지혜롭지 못합니다. 마귀만큼 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는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족했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어떤 신문에(2006.1.19일자 조선일보) 이런 칼럼이 실렸습니다. 2년 전 미국 월 스트리트 저널은 국민행복지수를 조사 발표했습니다. 쉽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하는 나라가 어딘가를 조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세요. 혹 이런 나라 이름도 처음 들으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알아도 이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 인구는 얼마고 그런 것은 대부분 모르시는 ‘부탄’이라는 나라입니다. 인도와 중국 사이 히말라야 산맥 속에 위치한 우리 남한의 절반 정도의 크기에 불과한 나라입니다. GNP는 1,400달러(2005년 기준. 1년 총수입이 1년에 140만원, 매월 116,000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들은 농사지어 먹고 삽니다. 외국인 관광객도 1년에 4,000명으로 제한합니다. 왕이 나라를 다스리지만 계급제도도 없답니다. 빈부 격차도 없답니다. 그들은 노르웨이, 스웨덴, 미국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사는 것입니다. 지금 문제는 탐심입니다. 우리도 너무 남의 것에만 눈을 돌리지 말고 자족하는 믿음을 가집시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탐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십계명의 결론입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을 잘 아시지요.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성경은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라. 이웃의 남종이나 여종도 탐내지 못한다. 소나 나귀 할 것 없이 네 이웃의 소유는 무엇이든지 탐내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인지 잘은 모릅니다만, 대전에 조폐공사에 다니는 교인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그 때 일반 공무원, 교사, 군인, 사회에 보너스 제도가 없을 때였습니다. 그 때 그 회사는 보너스를 매달 주었답니다. 그리고 휴가가라고 별의 별 이름으로 수당을 지급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돈을 보고 탐하지 말라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은행 같은 데도 다른 직종보다 월급이 많은 것도 그런 이유도 있으리라 짐작합니다. 탐심은 큰 죄악입니다. 믿음으로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늘 감사하며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6.2.12-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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