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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알자 (호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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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에서 자란 한 아이에게 어느 날 아주머니 한 사람이 찾아왔는데 고아원 원장님이 아이에게 그 아주머니를 보이며 너의 엄마라고 소개하였다. 엄마라는 분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었고 더군다나 손과 얼굴이 흉한 모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이는 그 낯선 엄마 앞에서 "아니예요, 우리 엄마는 죽었어요! 난 엄마가 필요치 않아요" 라고 외치고 돌아섰다. 엄마는 아이를 향해 눈물을 흘리며 내가 너의 엄마라고 나에게 오라고 외쳤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로 손을 저었다. 그 때 고아원 원장님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얘야, 저 분은 너의 엄마란다. 네가 엄마에 대해서 몰라서 그러는데 엄마의 흉한 얼굴은 불에 데었기 때문이란다. 네가 갓난 아이였을 때 집에 불이나 집안에서 잠든 너를 불구덩이에서 건져내어 살려내려다 화상을 입었고 너를 키울 여유가 없어서 고아원에 오랜 기간 맡겨 두었던 것이다. 이제 엄마가 너를 데리러 왔으니 엄마라고 부르고 엄마에게로 달려가렴."

그제서야 이 아이는 엄마가 어떤 분인지 자신을 사랑해서 화상을 입고 타서 일그러진 피부를 가진 분이 되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아들은 엄마를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모르기에 오해가 생기고 모르기에 업신여기고 모르기에 화해하지 못한다. 부모 사이에도, 부부 사이에도 서로를 알고 지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알면 서로의 관계가 깊어지고 친교도 사랑도 깊어지기 때문이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에 대해 우리가 알지 못하면 잘못 생활하게 된다. 하나님을 오해하게 되면 가치있는 일을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오늘 성경 호세아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영적 문제점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들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잘못된 것을 사랑하고 잘못된 것을 먹고 마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애인처럼 사랑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부르시고 찾아가시고 어찌하든지 이스라엘을 신부로 생각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스라엘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함께 있고 싶어서 함께 동행하고 싶어서 모든 최선을 기울이셨다. 호세아 2장 19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관심은 온통 자기 백성에 대한 사랑뿐이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들며 진실함으로 장가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여기 하나님의 품성과 하나님의 감정이 드러난다. "내가 장가들어, 장가들며, 장가들리니..." 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밖에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만을 원하신다. 택한 처녀 이스라엘만 원하시듯 하나님은 지금도 나의 영혼을, 나의 마음을 원하신다. 나의 계급, 나의 집, 나의 소유물보다 나를 원하신다. 이것을 알지 못하니까 우리는 고개를 돌린다. 나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지 못하니까, 누군가 사랑을 받아야 되기에 방황하고 세상의 정욕에 빠지고 명예, 권세, 이생의 자랑을 흠모한다.

오늘 본문을 보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저들은 계속 하나님을 아프게 하고 하나님을 떠났다.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는가?

첫째, 다른 길로 간다.
하나님을 모르면 쓸데없는 길로 간다. 호2:6을 보라. 하나님대신 다른 신을 연애한다. 우상의 신이 떡과 물과 양털과 삼과 기름과 술을 준다고 생각하고 어리석은 길로 간다. 호2:8을 보면 하나님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는 것인데 저희들이 무지하여 그것을 알지 못하고 바알을 더 사랑하고 그 모든 것이 바알이 주는 복이라고 연애하려 한다. 결국 하나님께 예배하므로 사랑에 화답해야 하는 자들이 거짓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 음행과 쾌락의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길로만 가는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가지 못하게 막으신다.
호2:6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저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가시에 찔려 피가 나고 담에 부딪혀 길을 잃어버리는 아픔을 겪게 하시는데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계속 다른 길을 찾아 방황하는 것이다. 터지고 찢기고 아픈 것은 참으로 괴로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을 모르기에 다른 것을 사랑하고 연애하다 겪는 상처들인 것이다.

둘째, 돌아오지 않는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모든 것이 다 준비되어 있는데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다.
호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남편되신 하나님을 두고 다른 길을 가기에, 다른 애인을 마음에 두기에 찢기고 매 맞고 괴로움을 당했다면 오늘 선지자는 외친다. "여호와께 돌아가자! 돌아오면 여호와는 회복시켜 주신다. 낫게 하시고 싸매어 주시는 넉넉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돌아오면 산다."

호6:2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돌아오는 것을 꺼린다. 지금 이 순간 돌아오면 무조건 살려주시는데 머뭇거린다. 세상의 것이 좋아 신앙의 정조를 지키지 않았어도 신앙적으로 바알을 쫓아다니다 바알의 사생자를 낳았어도 돌아오면 다 용서하고 살려주시는데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문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중요하다. 하나님을 아는 체험이 중요하다.

호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하나님을 바로 알아 돌아오는 인생이 되자. 내가 돌아오면 하나님도 돌아오신다. 내가 한 발자국 발을 내디디려 하면 하나님은 열 걸음 달려오신다. 하나님은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 쫓아오시는 하나님, 달려오시는 하나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다 주려고 두 손을 내미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모르기에 돌아오지 않는 이 무지가 백성을 망하게 한다. 나와 우리 가족과 이웃을 무너뜨린다.

셋째, 불량한 회개를 한다.
호6: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그 분의 특성과 신실함을 모르기에 회개가 모양만 있다. 사랑도 모양만 있다. 이슬은 있는 듯 사라지는 것이고 아침 구름도 어느 샌가 사라지는 것들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인애인데 회개하고 난 후 인애가 모양만 있지 계속되지 않는다. 회개가 진실된 것을 보이려면 사악이 끝나고 가증한 일이 끝나야만 한다. 그러나 회개가 흉내내는 것으로만 끝난다. 회개에 열매가 없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니 회개한 듯 하면서, 인애의 사람이 되어간 듯 하면서 행음이 계속되고 패역이 계속되는 것이다.

회개는 완전한 방향 전환이다. 성실하게 돌아서야 한다.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본 남편과 애인 사이를 오가면 안된다. 이것이 모두 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서 오는 실수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알아야 한다.
호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하였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기를 원하신다. 제사보다 인애를,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원하신다. (호6:6)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소개서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1) 하나님은 스스로 게시는 분이다. (출3:14)
2) 하나님은 전지 전능하시다. (시139:1∼6)
3) 모든 것 위에 지존하시며 (시78:35)
4) 그 계신 곳이 무소부재하시며 (렘23:24)
5) 하나님은 진리이시다. (시31:5)
6) 그분은 완전하시며 (삼하22:26)
7) 영원하시다. (사9:6)

그런데 그 하나님의 품성은 사람이시다. (마23:37) 무조건 자신의 전부를 쏟아부어 나와 결혼하시려는 분이시다. 신랑이 되려는 하나님은 감정을 지니고 계신다. 하나님은 나를 기뻐하고 내가 하나님과 함께 걷고 사귀고 알아가며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향해 사람의 감정을 지닌 것을 새롭게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흩어진 마음이 아니다. 신랑이 되려는 하나님의 감정은 나의 태도에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 내가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사람이 되지 못하고 세상의 사람이 되고 육체가 되어버리면 하나님은 한탄하신다.

창6:6의 노아 시대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마음에 근심하셨다.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 뿐일 때 하나님의 감정은 비탄함이었다. 바로 내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은 근심하시는 것이다. 또 내가 하나님 외에 우상을 만들고 그 형상 앞에 절하면 하나님의 감정은 질투로 변한다. 하나님보다 더 다른 것을 사랑하고 인간의 태도에 하나님의 감정은 파도를 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인데 주고 또 주고 또 주시려는 마음이다. 그 사랑의 감정이 있기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싫어하고 우상을 더 사랑하는 죄를 그냥 둘 수 없다. 하나님이 벌하고 그 죄를 갚는다는 것은 나는 너를 잘 되게 하려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내가 하나님과 함께 있으므로 내가 기쁜 것보다 하나님의 기쁨의 이유가 나인 것이다. 하나님의 감정은 오직 나를 기뻐하는 사랑이다.

습3:17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나를 근심하고 나를 가로막고 나를 때리는 것도 사랑 때문이다. 나의 모든 것을 가져가시는 것도 사랑 때문이다. 사랑 때문에 징계도, 채찍질도 하시는 것이다. (히12:5∼8)
하나님의 감정은 결국 질투하는 것, 시기하는 것도 모두 사랑에 연유한다. 나를 얻으려고, 나와 사귀려고 하나님은 자기를 자꾸 어떻게 하든지 드러내 보이신다.

이 하나님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알자. 말씀을 듣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자기 소개서로 들어가자. 하나님을 알기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새벽 아침의 빛처럼 나를 덮어온다. 메마른 밭고랑을 적시는 비처럼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깊이 가슴 속에 스며든다. 그분을 알면 다른 길을 가지 않는다. 더 이상 찔리고 상하고 터지지 않는다. 하나님께 돌아온다. 이젠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 터진 흔적마다 싸매임이 있다. 치유가 있다. 아프고 슬픈 것, 이젠 그분과 관계를 맺고 치유 받고 주님이 나의 전부, 주님이 나의 자랑, 주님이 나의 명예, 주님이 나의 신랑, 그 고백이 여기에서 시작되게 하자. (김철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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