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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유한 자의 복 (마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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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유한 사람"이라고 할 때 통상적인 이미지가 "나에게 잘해 주고 내가 상대하기가 편하면 아! 저 사람은 온유한 사람이구나" 다시 말하면 만만하면 온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온유한 사람을 연약하고 무능하고 심지어는 바보같은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용하기에 편한 사람쯤으로 그렇게 온유한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내가 대하기 편하고 만만한 것을 온유함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여러분, 대하기 쉽고 만만하고 내가 부려먹기 좋은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며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처럼 오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온유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큰 능력의 소유자, 큰 힘의 소유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약한 자가 약한 모습이면 그것은 결코 온유한 것이 아니라 비굴한 것입니다. 내 마음이 약해빠져서 큰 소리 한번 처보지 못한 것이 어찌 그것이 온유함일 수 있습니까? 아무 힘이 없어서 잘못됨에 대해서도 항거 한번해보지 못한 것이 어찌 온유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굴종인 것입니다. 넘치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납기가 호랑이와 같고 용맹하기가 사자와 같은 그런 것이 내 안에 있을지라도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잘 길들여 하나님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이 온유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덕을 끼치고 관계에 성공적인 그런 사람이 온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질이 사나움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지식과 자기의 주관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만족을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자기 주관도 없는 사람이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것은 온유함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아집이 강해요 자기 주관도 강해도 자기 독선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서 자신의 모든 힘들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길들여진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온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자기 중심,자기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주장, 자기 강인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조절하면서 그것을 쳐 복종시키며 사는 것이 온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잘 길들여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세상 것으로 길들여진 세속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도 그럴 것입니다. 자가 진단을 한번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 있을 때가 편하던가요? 교회 있을 때가 편하던가요?
교회 식당이 편하던가요? 세상 식당이 편하던가요?
교회 식구들을 만날 때 편하던가요? 세상 친구들을 만날 때 편하던가요?
편한 것이 길들여진 것입니다.
교회적이고 성령적이고 복음적인 것이 편하면 나는 하나님에게 길들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편하고, 세상 친구가 편하고, 세속적인 것이 편하면 이미 나는 세상에 의해서 길들여진 사람인 것입니다.

  "온유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위스"라는 말은 예수님의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세 가지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첫째로는 어떤 환자가 고열이 있어서 의사가 준 약을 먹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 왔을 때를 "온유하다"라고 했다고 합니다.열이 다스려졌다는 뜻입니다.
  둘째로는 뜨거운 태양볕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어쩔 줄 몰라할 때 어디선가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서 심신을 안정시킵니다. 이때도 "온유하다"한다고 합니다. 바람이 열기를 잡고 심신이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때 온유하다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셋째로는 사나운 짐승을 길들일 때 잘 훈련되고 길들여진 상태를 "온유해졌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세 번째 경우에 가장 "온유"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란 곧 "하나님으로부터 잘 훈련되고 길들여진 사람, 성령에 의해서 경건하게 잘 길여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본성이 그렇습니다. 나는 생겨 먹기를 그렇게 생겨 먹었습니다. 이런 말로 자기의 사나움을 합리화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다 길들어질 수 있는 가변적인 것들입니다. 절대로 바꾸어질 수 없는 것이란 절대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모든 성품과 사정을 주님 앞에 내어놓고 하나님으로부터 잘 길들여지기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여, 이 사나운 야생성이 있는 종을 길들여주시옵소서"
  모든 인간에게는 야생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하나님은 우리를 무엇으로 길들이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길들이십니다.
  교회 교육의 최고의 목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길들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쉽게 빗나가지 않고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지 않는 지극히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도 성품과 인격이 길들여지지 않아서 여전히 성질이 나쁜 사나운 늑대나 사자와 같이 물어뜯을 자를 찾아 으르렁거린다면 아직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인격이 아닙니다. 그것은 좋은 성품, 좋은 품격이 아닙니다. 성도는 능력이 부족해서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성품이 잘못되어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훨씬 더 큼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성품의 길들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길들임을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은 결코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부지런히 묵상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매고 내게 와서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식에 길들여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지혜로움으로 길들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담력으로 길들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로로 걷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고난을 이기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유혹을 이기도록 길들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길들여 놓으십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훈련을 통하여 길들이십니다.
  모세는 동족을 구원 하기 위하여 애굽사람을 쳐 죽일만큼 혈기가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훈련을 받고 자기가 온전히 죽었을 때, 그의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할 만큼 온유한 자가 되었습니다(민 12:3). 모세는 그 온유함으로 목이 곧고 완악한 이스라엘을 품고 섬길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때때로 높은 곳에 처하게 하시기도 하시며 또한 때때로 낮은 곳에 우리를 두시기도 하십니다. 시험과 시련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과 시련을 감사함으로 받아서 자신을 길들이는 기회로 삼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성령을 주셔서 우리를 길들이십니다.
  온유한 심령은 성령의 지배와 다스림을 받는 마음입니다. 육신의 감정의 지배를 받아 이웃을 향해 분노하는 마음이 아닌 성령을 통하여서 분노를 잠재우고 사랑하기를 아끼지 않는 마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곧 겸손한 사람이요, 덕을 가진 사람이요, 상대를 먼저 배려하는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성령이 지배하시면 우리 인생은 하나님께 잘 길들여진 인생이 됩니다. 성령이 우리를 조절하십니다. 칭찬을 받을 때도 교만해지지 않고 조롱과 무시와 책망을 당해도 화를 내지 않게 하십니다. 사려깊게 행동을 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이렇게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오고, 심신이 안정되고, 잘 훈련되고 길들여진 상태가 되려면 성령의 임재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온유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을 쓰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잘 길들여진 사람을 쓰십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쓰심을 받기 때문입니다. 기수가 말을 쓸 때도 온유한 말을 쓰는 것입니다. 사나운 말은 그 주인을 말안장에서 떨어뜨리고 자기 성질대로 날뛰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런 말은 그 주인의 쓰시기에 합당한 말일 수가 없습니다. 결국 쓰임을 받는 자가 땅을 차지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땅으로 번역된 헬라어 "게"는 흙, 지방, 지구, 나라, 세상, 땅, 육지, 지역, 세계, 세상 등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이 온유하여 롯과 싸우지 아니하고 모든 좋은 땅을 다 양보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더 넓고 좋은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 13:14~18, 15:18~21). 이 세상 사람들은 흔히 강한 자가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칼을 쓴 나라는 결국 망하였지만 온유의 방침을 쓴 나라만이 승리했다"고 말했습니다.
  전 유럽을 정복한 나폴레옹은 센트헤레나 섬에서 최후로 이런 말을 남겼습 니다. "나는 칼로서 온 유럽을 정복하였지만 결국을 실패아였도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온 인류를 정복하였다" 이 처럼 온유한 자는 나라를 얻고 사람을 얻습니다.

시편에 보면 온유한 사람은 땅뿐 아니라 풍부한 화평을 즐긴다고 했습니다(시편 37:11).
  그리고 온유한 사람은 만족할 것입니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만이 가진 사람입니다. 소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진실로 가진 자입니다.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즐기지 못한 사람은 결국 가지지 않는 자와 같습니다. 더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을 마음껏 즐기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내가 살아나는 그리스도인은 똑똑한 그리스도인일지는 몰라도 온유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살아나실 때 진실로 나는 온유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남을 존중할 줄 알고 친철함이 배어 있는 사람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순종하는 사람이며 온유한 사람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배우려고 하고 고치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통하여 신앙생활을 통하여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길들여서 온유한 성도들이 되셔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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