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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드온의 이김 이야기 (히 11:32-33, 삿 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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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일 아침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조상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건짐 이야기”에 이어서 지난 주일에는 “기생 라합의 놀람 이야기”를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기생 라합 다음에 나오는 사람인 기드온의 믿음과 이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히브리서는 기드온을 소개하면서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라고 아주 간단하게 기록했습니다. 기드온은 사사였는데 침략자 미디안을 이긴 사람입니다. 사사라는 말은 심판자(judge) 또는 구원자(deliverer, savior)라는 말인데, 기드온은 믿음으로 침략자 미디안을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였습니다.

  기드온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전에 사사시대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합니다. 사사시대란 여호수아가 죽은 다음부터 사무엘이 일어나기 까지 주전 14세기부터 주전 11세기까지 300여년 동안의 시대를 가리킵니다. 사사시대의 특징 다섯 가지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첫째 태평 세월이 계속되었습니다. 둘째 이스라엘의 범죄가 있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넷째 이스라엘의 회개가 있었습니다. 다섯째 사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 있었습니다. 태평 세월, 이스라엘의 범죄, 하나님의 심판, 이스라엘의 회개, 사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일들이 사사시대에 일곱 번이나 반복되었습니다.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는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삿5:31-6:14). 사사시대의 다섯 가지 특징은 사실은 이스라엘 전 역사의 특징이었고 기독교 전 역사의 특징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십 여년 동안 (또는 팔십 여년 동안) 평화가 계속될 때에 교회는 타락하여 범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과 환란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회개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손을 사용하여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전 역사의 모습이었고 기독교 전 역사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남북한이 당하고 있는 환난의 위기도 사사시대의 한 싸이클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 환난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부르짖는 진정한 회개의 기도가 있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사사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제 믿음으로 미디안을 이기고 이스라엘의 구원한 사사 “기드온의 이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믿음의 색깔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기드온이 지녔던 믿음의 색깔에는 겸손과 순종과 모험의 색깔이 나타나 있었습니다. 너무나 귀중한 믿음의 색깔들이었습니다. 사실 믿음은 겸손이고, 믿음은 순종이고, 믿음은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탄 마귀를 이기는 믿음은 겸손과 순종과 모험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드온이 어떻게 미디안을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원했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 기드온은 겸손으로 이겼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이김은 겸손에서 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서 구원자의 사명을 주실 때 이미 이 사실을 암시하셨습니다.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삿6:14). 여기 ‘네 힘’이란 말은 기드온의 ‘미약한’ 손과 ‘미약한’ 힘을 가리켰습니다. 기드온의 손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상수리 나무 아래 숨어서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던 미약한 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미약한 손과 미약한 힘을 사용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한 하나님입니다. 약함을 통해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모세에게 나타나서 “[네] 지팡이를 들고 [네] 손을 바다 위로 내 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출14:16)고 말씀했을 때도 모세의 ‘미약한’ 지팡이와 ‘미약한’ 손을 가리켰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미약한’ 마른 막대기에 불과했고 모세의 손은 80세 노인의 ‘미약한’ 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참으로 이상하게도 약함을 통해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오랜 후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약한 것들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12:10).

  기드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즉시 자기의 ‘미약함’을 고백했습니다. 자기는 극히 미약하고 제일 작은 자라고 즉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수6:14,15).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내신 첫 번째 시험에 합격했습니다. 아더 핑크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쏘신 첫 번째 화살이 적중되었다.” 모세도 오래 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비슷한 대답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나는 본래 말이 능치 못한 자입니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입니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시옵소서”(출4:10-13).

  기드온이 자기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솔직하게 고백했을 때 하나님은 즉시 기드온과 반드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삿6:16). 자기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고백하는 종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 네가 반드시 원수를 쳐서 이기리라.” 교만하고 자만한 사람에게는 이김과 구원의 은혜가 임하지 않고 겸손하고 낮아지는 사람에게만 이김과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기드온은 겸손으로 이긴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기드온은 순종으로 이겼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이김은 또한 순종에서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의 겸손을 확인하신 다음 기드온에게 순종을 명하셨습니다. 밤에 나타나서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의 상을 찍으라는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찌니라”(삿6:25).

  그 명령은 실행하기가 매우 힘든 명령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분노를 살 수도 있고 성읍 사람들의 분노를 살 수도 있고 특히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있던 미디안 사람들의 분노를 살 수도 있는 위험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은 미디안 사람들의 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는 자의든 타의든 자기 집에 바알의 단을 세워놓고 아세라 목상을 세워놓았었습니다. 그 당시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의 상을 찍는 일은 아버지와 성읍 사람들과 미디안 사람들의 종교와 권위에 반항하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일본 시대에 집집마다 만들어 놓았던 신사와 남산에 세워놓았던 신사를 도끼로 찍는 일과도 같은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즉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즉시 그 명령을 수행했습니다.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 하신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삿6:27). 낮에 수행하지 못하고 밤에 수행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즉시 수행했습니다.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나 바알의 단이 훼파되고 아세라 상이 찍혔고 새로 쌓은 단위에 수소가 제물로 드려져 있는 것을 보고 요아스에게 달려와서 아들을 끌어내어 죽이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미디안 사람들이 군대를 몰고 쳐들어왔습니다.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삿6:33).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기드온은 사면초가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사방에서 기드온을 죽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위기에 처한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신이 강림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삿6:34).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신이 강림하십니다.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이 위기에 처했을 대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체험을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위기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위기는 오히려 하나님이 함께 하고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축복의 기회가 됩니다. 스데반이 위기에 처했을 때 성부 성자 성령께서 스데반과 함께 하신 사실을 우리는 행7장에서 발견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드온은 순종으로 미디안을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셋째 기드온은 모험으로 이겼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이김은 또한 모험에서 옵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기드온은 처음에 나팔을 불어 수만 명의 군대를 소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수만 명의 군대의 수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군대의 많은 숫자를 믿지 않고 하나님만을 믿는 모험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만 남기라고 분부했습니다. 해변의 모래같이 무수하게 많이 몰려 온 미디안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고 떠는 사람들은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명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떠나 돌아가라 하라”(삿7:3).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가고 남은 사람들이 일만 명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다시 개가 핥는 것 같이 허둥지둥 물을 핥는 자들은 다시 돌려보내라고 명하셨고 침착하게 손으로 물을 담아서 마시는 자만 남게 했습니다. 결국 다 돌아가고 300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300명의 사람들을 가지고 수십 만 명의 적군을 쳐 부신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는 대단한 모험이었습니다.

  믿음은 계산이 아닙니다. 계산에 익숙한 사람은 항상 불안하고 항상 두려워합니다. 믿음은 계산이 아니고 모험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간 것도 모험적인 믿음으로 된 것이었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로 들어간 것도 모험적인 믿음으로 된 것이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6,17).

  기드온이 300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수십만 명의 미디안 군대를 쳐 부신 것은 현대적인 무기가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군사적인 전략도 아니었습니다.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뿐이었습니다. 군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을 가지고 수십만의 군대와 싸운다는 것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고 너무나 모험적인 일이었습니다. 마치 골리앗과 싸우려고 지팡이 하나와 돌멩이 몇 개를 들고 나온 소년 다윗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믿음은 계산이 아닙니다. 믿음은 모험입니다. 현실을 무시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모험입니다. “기드온이 삼백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 가에 이르러서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 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삿7:16-23).

  항아리는 연약한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를 가리켜 질그릇이라고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횃불은 질그릇에 담은 보배인 예수님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항아리를 부수고 항아리 속에 숨겼던 횃불을 높이 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수고 예수님만은 높이 들어 세상에 나타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항아리를 부수고 항아리 속에 숨겼던 횃불을 높이 든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부수고 죽여서 순교의 제물로 드리면서 오직 예수님만은 높이 들어 세상에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팔을 들어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라고 외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능력만을 소리쳐 세상에 알린다는 뜻입니다.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무수한 군대의 칼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칼의 힘을 나타내 보인다는 말입니다. 

  기드온은 이겼습니다. 겸손의 믿음과 순종의 믿음과 모험의 믿음으로 미디안을 이기고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위기와 환난을 당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도 회개의 기도와 함께 겸손의 믿음과 순종의 믿음과 모험의 믿음입니다. 우리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이고 군사적인 현실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핵무기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절대 겸손과 절대 순종과 절대 모험의 믿음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세상을 이기고 환난을 이기고 죄를 이기고 사탄 마귀를 이길 수 있는 길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서 벌벌 떨고 있는 핵 무기를 바라보면서 벌벌 떨고 있는 부끄러운 우리들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절대 겸손과 절대 순종과 절대 모험의 믿음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에게 기드온과 같은 사사를 보내주시옵소서! 환난에 처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며 회개했던 것처럼, 우리들에게도 하늘을 향해 부르짖는 가슴을 찢는 참된 회개를 주시옵소서! 그리고 기드온에게 주셨던 절대 겸손의 믿음과 절대 순종의 믿음과 절대 모험의 믿음을 주시옵소서! 그래서 주체사상과 세속주의의 죄악의 늪 속에 깊이 빠져있는 우리 북한과 남한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다시 한번 이 민족을 동방의 제사장 나라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우리 남북한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순교자들의 피를 보시고 우리 민족을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김명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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