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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훈련 : 사랑 (고전 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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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제는 사랑훈련입니다. 다른 모든 것은 훈련이 있어야 할 줄 압니다. 피아노를 그 험난한 훈련 없이 잘 칠 수 없음을 누구나 압니다. 그러나 참 사랑에 훈련이 필요한 것을 아는 이가 적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랑의 훈련을 받는 훈련병들입니다. 우리 사랑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교회는 여러 가지 신학적 논쟁 중에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그런 논쟁을 해결해 나가도록 돕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은사’ 문제였습니다. 특히 방언은사가 큰 이슈였습니다.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만하게 되고, 은사 없는 사람은 기가 죽었습니다. 그런 잘못을 시정하기 위해 사도바울은 보다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사랑 없는 모든 은사는 울리는 꽹과리 류가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서 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진정한 사랑이란 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의지합니다.

본문에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다” 했습니다. 사랑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사랑의 어린아이성을 버려야” 합니다.

어린아이는 ‘부분’을 전체로 착각합니다. 사탕만 주면 어떤 아저씨라도 따라 나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할 수 있는 고통도 그냥 겪습니다. 또, 그런 고통을 소화해 낼만큼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큰 상처를 입습니다. 일평생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냥 ‘흔적’이 아니라, 현재와 과거를 부정적으로 결정짓는 악역을 맡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어도 ‘참 사랑’이어야 합니다. 참 사랑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입니다. 부분적 평가가 아니라 전체적, 통전적 평가를 내립니다. 그 사람의 일부분이 아니라 인격 자체를 신뢰합니다.

장성한 사람들은 상처를 다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해결할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어른들이 상처를 입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상처는 어렸을 때 얻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공부에 재미가 있어서 해야 정상인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잃어버릴까봐 공부했습니다.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기 위해 공부했습니다. 공부 자체는 ‘스트레스’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소위 ‘미덕’을 지키는 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순종의 미덕을 지켰습니다. 자기의 감정을 다 내려놓았습니다. 끝내 자존심 다 상할 때까지 순종, 순종을 했습니다.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인내의 미덕을 가졌습니다. 참고 또 참았습니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지쳐 지독한 병이 들었습니다. 고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양보를 했습니다. 자기는 늘 생선의 꼬리만 먹었습니다. 낡은 옷만 입었습니다. 설거지를 도맡아 했습니다. 마침내 허무함(sense of nothingness)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순종, 인내, 양보 자체는 모두 아름답고 귀한 미덕입니다. 그러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서’ 했습니다. 그 결과 겉으로는 아름답고 귀했지만, 속으로는 뼛속 깊이 골병이 들었습니다.

사랑을 잃을까봐, ‘아름다움’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1. 굶었습니다. 날씬해지기 위해서였습니다. 조금만 먹어도 죄책감에 시달렸습니다. 음식의 맛을 자연히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2. 옷에 치장을 했습니다. 하루종일 생각하는 것이 옷이었습니다. 돈이 조금만 모이면 곧 백화점으로 달려갔습니다. 옷 입은 것으로 사람들을 평가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도 옷 이야기만 했습니다. 자연히 그런 친구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3. 성형수술을 했습니다. 끝내 얼굴 근육이 모두 망가져 버렸습니다. 흉측한 얼굴로 대인관계 기피증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아름다움’에 집착했습니다. 본래 ‘아름다움’이란 ‘자연스러움’에서 납니다. 자연스럽지 않은 아름다움은 곧 질리는 법입니다.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 긴장을 풀지 못했습니다.
1.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잠은 최고의 휴식입니다. 잠이 없으니 휴식이 없습니다. 쉼이 없으니 긴장은 극도로 예민해졌습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 하셨습니다. 잠은 사랑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선물을 누리는 귀한 시간이 고통의 시간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2. 웃음이 사라졌습니다. 해맑게 웃어 본 적이 언제 있나 싶습니다. 웃음도 보여주기 위한 것일 때, 그것은 빈 병을 지나가는 바람처럼 공허합니다.

어째서 그랬을까?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해 보면 어떤 실마리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힘입으면 지나간 날들을 투명하게, 솔직하게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고등학생 딸을 둔 여자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딸을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딸에게 평안이 없습니다. 지극정성을 다해 기르는데, 딸은 그 사랑을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한번은 정색을 하고 불렀습니다.

딸이 말했습니다: “엄마, 엄마의 사랑은 부담스러워. 왜 그러지? 나도 모르겠어.”

실제로 이 여자는 친정어머니와 가까이 살았는데, 기어이 핑계를 대서 집을 이사했습니다. 억지로 집을 팔았기 때문에 싸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멀리 떠났습니다. 친정어머니는 지극정성을 다하는데 이 여자는 그게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바로 자기의 딸이 자기의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다가 어떤 20대 중반의 젊은 여자를 보았습니다. 너무 낯이 익었습니다. 바로 자기의 친정 어머니였습니다. 어떤 집 앞에 나와 서 있는데, 몹시 불안한 얼굴이었습니다. 임신 8개월쯤 된 몸이었는데, 임신에 대한 감사나, 태어날 아기에 대한 기대감, 그런 기쁨 같은 것은 일체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있다가, 이 여자는 고등학교 때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그때 죽어 없어졌어야 했어!” 무엇인지 깜깜한 것이 내려앉는 느낌이었습니다.

태아로 있을 때 불안했습니다. 태아 때부터 살기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철이 들기 전부터 “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열심히 웃었습니다. 공부도 부지런히 했습니다. 시키는 것은 무엇이나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착한 딸이 되려고 무진무진 노력했습니다. 어린 것이 살기위해 몸부림치는 것은 처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겉모습은 그렇게 평화롭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의 속은 썩어만 갔습니다.

그런데 결혼 하고 나서, 딸을 낳았는데, 그 딸을 자기의 방식대로 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를 닮은 딸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면서도 어쩔 수 없는 그 방식대로 사랑했습니다.

이 여자의 문제는 여기 있었습니다. 사랑을 갈구했으나, 사람의 사랑을 구했습니다. 살려달라고 빌었으나, 사람에게 빌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구해야 옳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찾고 간절히 찾는 자에게 만나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렇게 집착해서 매달리면 무서워서 도망갑니다.

살려달라고 사람에게 비는 것은 잘못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같은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결국 이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사랑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서 사랑을 구하는 것은 위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우리는 어린 때의 상처를 치유 받아야 합니다. 어렸을 때 버림받은 기억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빚어 주셔야 합니다. 나를 온전히 깨뜨리시고, 가루처럼 갈아버리셔서는, 이제 다시 물로 개어 새로 빚어 주셔야 합니다. 이것이 “인격의 새 창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남”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의 역사 아니고 얻는 모든 사랑은 ‘이기심’일 뿐입니다. 그런 사랑은 부담스럽습니다. 그것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 사랑의 우산 아래 있는 모든 사람이 불행합니다. 물론 자기 자신이 가장 불행합니다.

이제 우리는 치료 받아야 합니다. 지난날들, 가장 힘없고, 연약할 때 받은 상처, 그 상처가 치료되어야 합니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갑시다.

모든 어렸을 때의 일은 기억됩니다. 우리가 아이들을 기르고 교육할 때 참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아이들은 다 기억합니다. 다만, 때때로 ‘일부러 잊으려고 애를 쓰는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다른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잊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경험한 모든 것은 어떤 형태로든 되살아납니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는 데도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불안, 공포, 초조함, 까닭 모를 슬픔, 이런 것은 어린 때의 상처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냥 묻어둘 수 없습니다. 치료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사랑으로 치료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과거는 지나갔는데 이제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성도 여러분. 우리는 거기 그 나라에서 해처럼 밝게 살 것입니다. 주님 찬양하면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어떻게요? 어떻게 그런 일이 우리에게 가능할까요?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를 품습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의 상처를 고칩시다. 굳은 땅이라면 갈아엎은 은혜입니다. 가시덤불이라면 피 흘리며 걷어내는 은혜입니다. 돌짝 밭이라면 그 딱딱하고 교만한 마음을 제거하는 은혜입니다. 은혜입니다. 말로 할 수 없는 은혜가 우리를 치료합니다.

살기위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우리 주님의 음성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날들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나날이었습니다. 이제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제 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우리 노력으로 어떻게 해 보려는 것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랑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냥 ‘집착’일 뿐입니다. 피고하고 괴로운 집착입니다.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그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그 짐은 여러분의 연약한 어깨로는 무리입니다. 그렇게 지고 오늘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내일을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 소녀는 미시간 주 트래버시 시티 위쪽 버찌 농장에서 성장했습니다. 부모는 농부였습니다. 구식이어서 딸이 듣은 음악, 목걸이, 치마길이 등에 과민반응을 보였습니다. 어쩌다 외출 금지령이 떨어지면 딸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그날도 말다툼 후 아버지가 방문을 두드리자 “아빠가 미워요!”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수없이 생각으로만 연습했던 일을 실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출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전에 교회 중고등부에서 타이거즈 팀의 경기를 보러 한 번 가본 일이 있었습니다. 트래버시 시티 신문마다 디트로이트 시내 갱단, 마약, 폭력 기사가 자주 났습니다. 소녀는 설마 부모가 그런 곳으로 자기를 찾아 나서지 않을 것으로 단정했습니다.

이틀째 되는 날 소녀는 일평생 보던 차 중에 가장 큰 차를 모는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남자는 차도 태워주고 밥도 사주었습니다. 옷도 사 주고 머물 곳도 마련해 주었습니다. 소녀는 남자가 준 알약을 먹고 생전 몰랐던 기분에 빠져들었습니다. “역시 내가 옳았어. 엄마 아빠는 구식이야. 내가 옳았다구!”

그렇게 한 달, 한 해가 별탈없이 지났습니다. 남자들이 마련해 준 최고급 빌딩에서 살았습니다. 룸서비스도 받아가면서 살았습니다.

한번은 우유팩에 “사람을 찾습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자기 사진이 실린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하지만 이제 머리카락도 물들였고 짙은 화장에 보석까지 단 여자를 바로 그 우유팩의 여자와 같은 사람으로 볼 사람은 없어보였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면서 소녀의 얼굴에 병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장의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돈 한 푼 없이 거리에 내쫓겼습니다. 여전히 하루에 두세 건씩 건지기는 하지만 그나마 마약 사는 데 다 들어갔습니다. 겨울이 오자 소녀는 대형 백화점 밖 쇠창살에 기대 잠을 청합니다. 어둠이 깔려 옵니다. 소녀는 기침이 깊어만 갔습니다.

그날 밤도 사람들의 발자국을 들으며 잠에서 깨었는데, 한순간 모든 것이 달라져 보였습니다. 무대의 주인공 같던 기분은 간곳없고, 춥고 무서운 도시의 길 잃은 아이의 모습만 남았습니다. 소녀는 울기 시작했습니다. 주머니는 비었고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콘크리이트 바닥에 웅크린채 벌벌 떨면서 한 가지 끊겼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천지에 벚꽃이 만발한 트래버스 시티. 집의 황금 빛 사냥개가 흐드러진 숲속을 달리는 장면. “하나님. 제가 어쩌다가 집을 나왔을까요?” 혼잣말로 중얼댑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집 개도 나보다 더 잘 먹는데...” 그리고 한 순간 깨닫습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것을.

연거푸 세 차례 전화를 걸지만 자동응답기만 울립니다. 두 번까지는 그냥 끊었습니다. 세 번째는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빠, 엄마, 저예요. 집에 갈지도 모르겠어요. 집 방향 버스를 타요. 그쪽에 가면 자정 쯤 될 거예요. 아빠 엄마 없으면 그냥 버스에 앉아 캐나다까지 가겠지요.”

버스가 디트로이트와 트레버시 시티 사이의 경유지를 모두 통과하는 데 일곱 시간쯤 걸립니다. 그 사이 소녀는 자기 계획의 허점을 발견했습니다. 만양 아빠 엄마가 출타 중이어서 메시지를 받지 못한다면? 하루 이틀 더 기다렸다가 전화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설사 집에 계신다고 해도 딸 하나 죽은 셈 치고 단념할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염려 중에도 소녀는 아버지한테 할 말을 준비하느라 생각은 어지럽기만 했습니다. “아빠,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빠 잘못이 아니예요. 아빠, 용서해 주세요.” 수없이 되뇌이는 말, 연습인데도 벌써 목이 잠깁니다.

드디어 트래버시 시티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방송이 나왔습니다. “정차 시간은 15분입니다.” 소녀의 인생의 판가름을 낼 운명의 15분. 소녀는 손거울로 얼굴을 살피고, 머리를 매만졌습니다.

앞일을 전혀 모른 채 터미널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정작 눈앞에 펼쳐진 것은 상상도 해본 일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콘크리이트 벽에 플라스틱 의자뿐인 미시간 주 트래버스 시티 버스 터미널 안에 형제자매로부터 삼촌들, 사촌들, 할머니, 증조할머니, 이모할머니까지 부려 40여명이나 되는 일가친척이 다 나와 서 있는 것입니다. 저마다 우스꽝스러운 파티 모자를 쓰고는 요란한 악기를 불면서 터미널 벽은 온통 “환영!”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환영 인파 속에서 아빠가 다가오자 소녀는 녹아내리는 수은처럼 눈물이 아른거리는 눈으로 아빠를 보면서, 외워둔 말을 시작합니다. “아빠, 죄송해요...”

아빠가 말을 막았습니다: “쉿!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용서를 빌 시간이 없어. 파티에 늦겠다. 집에서 잔치가 널 기다리고 있어. 엄마가 보통 바쁜 게 아니야!” 


1. 콜롬비아 
금문교회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콜롬비아 교회를 지원합니다.
지난 6월과 마찬가지로 이형호 집사님과 함께 갑니다. 태권도 선교를 감당합니다.
오늘 저녁 9시 비행기로 떠납니다.

신학생들 소개
콜롬비아 신학교 신학생들은 대부분 현역 목회자들입니다. 한 달에 한 번씩 강의가 열리는데,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숙식을 제공 받습니다. 이번에 내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모두 원주민들로서, 40여명이 됩니다. 통역은 콜롬비아 원주민으로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선정되었다고 했습니다.

목회의 현장과 학문
신학교 소개
이 신학교는 초교파 신학교입니다. 콜롬비아 목회자의 대부분이 신학교육 없이 목회자가 됩니다. 그래서 콜롬비아에는 이단들이 극성하고 있습니다.

강의 과정 설명
이번에는 학부-대학원 통합 강의에서 4복음서를 강의합니다. 대학원생만을 위한 저녁시간 강의 때는 ‘모세오경’을 강의합니다.

2. 내적치유
여자는 분위기에 약합니다. 여자는 관계(relationship)를 가장 소중하게 여깁니다. 안전(security)을 추구합니다. 안전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남자는 멀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안을 자꾸 야기하는 사람은 ‘여복’이 없습니다. 남편은 아내의 내적 치유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3. 하인스 워드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던 8살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피부색이 자신과 다른 것도 싫었고, 영어를 못하는 어머니가 숙제를 도와주지 못하는 것도 싫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30살이 된 소년은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거립니다. “모든 게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합니다.
지난 주일 오후, 미 프로 미식축구 리그(NFL) 결승전인 수퍼볼에서 우승 트로피와 함께 최우수선수(MVP) 상을 받은 하인스 워드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이야기입니다.
워드는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주한 미군이던 흑인이었고, 어머니는 한국인 김영희(55) 씨였습니다. 김영희 씨는 생후 5개월 된 하인스를 안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하인스는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저와 아버지를 위해 한국을 떴습니다.”

다음은 인터넷 신문에 소개된 기사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결혼 14개월 만에 영어도 서툰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면서 모자의 험한 인생은 시작됐다. 워드는 영어를 할 줄 몰라 양육권을 얻지 못한 어머니 품을 떠나 루이지애나주의 할아버지에게 보내졌다.
모자는 워드가 8살이 되는 해 애틀랜타의 작은 마을에 어렵게 정착한다. 어머니는 생존을 위해 하루에 세 가지 일을 했다. 접시를 닦고, 호텔 청소를 하고, 잡화점 계산대에서 일했다. 워드는 “시간당 4달러25센트의 일”이라고 했다. 어머니는 16시간씩 닥치는 대로 일했다. 워드는 “NFL에 진출한 뒤 흔들리던 나를 지탱해 준 건 어머니의 일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저녁에 일하러 나가는 어머니가 밥을 해놓고 랩을 씌워놓으면 학교에서 돌아온 워드가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었다. 워드는 “계속 먹다보니 입맛에도 맞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워드를 한국식으로 키웠다. 워드는 “집에 돌아오면 한국식으로 신발을 벗으라고 했다”며 “한국 문화에 집착하는 어머니가 당시에는 싫었다”고 했다.
워드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흑인 친구들끼리 놀다가 어머니가 오면 도망가기도 했다. 그는 “한국계라고 놀림 받는 게 제일 싫었다”고 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차로 워드를 데려다 주는 데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을 봤다. 워드는 재빨리 차 시트 아래도 몸을 숨겼다. 차에서 내리는데 어머니 눈에 이슬이 그렁그렁했다.
당시 워드는 “나를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다니”란 생각이 스쳤다고 한다. 어머니는 하루에 몇 시간 밖에 자지 못했지만 언제나 워드에게 깨끗한 옷을 입혔고, 풍족한 용돈을 줬다. 워드는 “어머니는 한 번도 자신을 위해 돈을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후 워드는 놀림을 받아도 “그래 나는 한국인이다. 그게 내 인생이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한다. 지금 워드의 오른쪽 어깨에는 한글로 ‘하인스 워드’란 문신이 새겨져 있다.
포레스트파크 고교 시절, 워드는 미식축구는 물론 야구에서도 탁월한 솜씨를 뽐냈다. 미식축구에선 쿼터백을 포함해 모든 공격 위치를 소화했고, 야구에선 1번 타자로 뛰며 타율 4할에 도루 35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40야드(36.6M)를 4.47초에 주파하는 빠른 발도 돋보였다.
그는 고교 졸업 무렵 메이저리그 플로리다 말린스로부터 계약금 2만5000달러의 제안을 받았다. 워드는 망설였다. 그 돈이면 어머니의 고생을 조금 덜어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워드는 “학업은 계속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대신 집(애틀란타)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조지아 대학을 택했다. 어머니를 홀로 두기 싫어서였다.
대학에서도 그는 쿼터백, 러닝백, 와이드리시버를 모두 소화하는 만능 공격수로 통했다. 고교 시절 주로 쿼터백으로 활약했지만, 대학 1~2학년 때는 주전 러닝백의 부상 공백을 메웠으며 빠른 발 덕분에 와이드리시버로도 뛰었다. 특히 워드는 대학 마지막 경기서 쿼터백으로 출전했으면, 리시빙, 러싱, 패싱 공격 3부분에 걸쳐 모두 1000야드를 돌파하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팀 승리를 위해 와이드리시버로 경기를 마쳤으며, 감독은 “워드는 희생을 아는 선수”라고 했다.
98년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잘 웃기로 유명한 선수다. 팀 동료는 “언젠가 강한 태클에 걸린 워드의 입에서 치아보호대가 튀어나갔는데도 그는 웃고 있었다”고 했다. 워드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미국의 한 스포츠전문지는 “워드를 울리려면 어머니 이야기만 꺼내면 된다.”고 썼다. 실제 그는 지난 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저는 어머니에게 신뢰의 가치, 정직,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배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워드는 한 인터뷰에서 “제 선수생활은 어머니의 인생과 비슷하다”며 “처음에는 맘대로 안 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엔 잘 풀린다”고 했다. 어머니 김영희씨는 한 스포츠채널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에게 늘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다. 겸손하라(Be humble)고 한다”고 말했다. 워드와 어머니는 올 4월 한국에 온다.

김영희 씨. 그는 식당 접시닦이, 호텔 청소원, 잡화점 점원 등 하루에 three job을 뛸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하면서 아들을 뒷바라지 했습니다.
하인스 워드는 오른 팔에 ‘하인스 워드’라고 한글로 이름을 새겨 넣을 정도로 어머니 나라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울의 신종호 교수는 “어머니의 희생이 피그말리온 효과를 가져온다.”고 말했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한 사람의 기대가 다른 사람에게 간접적으로 전달되면 성취로 이어진다는 교육학 용어입니다. 어머니가 희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식이 더 노력해 결국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인터뷰에서 하인스 워드가 한 말입니다: “어머니는 나의 모든 것이며, 내가 앞으로 아무리 잘해 드려도 다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늘 겸손하라.”고 가르쳤습니다.

4. 본문: 사랑

사랑의 언어
고린도전서 13장은 고전 12-14장의 한 가운데 위치합니다.
은사에 대한 논쟁을 잠재우려는 노력에서 났습니다.

서로 받은 은사는 같습니다.
서로 인정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은 ‘언어’가 바뀝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는 증거요, 아름다운 삶입니다.

콜롬비아 선교에서 언어의 문제
영어-스페인어로 대화합니다.

학생들이 영어가 통하기만 해도 훨씬 좋을 텐데.
그러나 인간 생활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는 언어가 문제가 아닙니다.
감정입니다.
은혜입니다.

5. 금문교회

금문교회는 서로 격려하는 교회, 은혜를 나누는 교회로 탈바꿈해야 하겠습니다.

지난 7일, Daly City Planning Department가 주관한 “공청회”가 5:0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27일에 Civil Council이 주관하는 공청회가 남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파킹장 건설하고 새 건물 세우는 역사적 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파킹장과 건물은 ‘hardware'입니다. 확실히 hardware는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하드웨어만 바뀌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합니다. 소프트웨어는 ‘창의성’이 생명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소프트웨어는 ‘언어’입니다. 소프트웨어를 바꾼다는 것은 우리의 언어생활을 바꾸는 것입니다.

금문가족-금문인, 용어를 정리합니다. 금문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이 모이면 ‘금문가족’입니다. 흩어져 세상으로 나가면 ‘금문인’입니다.

금문가족은 언어가 다른 공동체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입니다. 금문인은 세상 밖으로 나가면 새로운 언어로 세상을 바꿉니다.

치유하는 언어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언어를 바꿔 주세요.
사랑하게 하세요.
하나님께 사랑을 구하기 원합니다.
어린 날의 상처를 치유해 주시옵소서.
그것도 어쩌지 못하는 저희들은 불쌍한 존재입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참 사랑을 알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도서

마이크 플린 & 더기 그레그/ 오정현 역
1995      내적 치유와 영적 성숙. 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IVP)
Inner Healing: A Handbook for Helping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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