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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거룩함이 있는곳 (출 3:1~10, 고후 4:6~10, 마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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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 있을 때, 갑자기 해처럼 밝아졌고 옷을 빛같이 변했습니다. 그 곳에 엘리야와 모세가 초청되었습니다. 오늘 제가 예수가 왜 모습이 변했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자신들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지도자 모세입니다. 또한 가장 존경하는 선지자는 살아서 승천했다는 엘리야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 역사의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이 게신 나라에 가서 사는 것인데, 그 상징적인 사건을 엘리야의 승천으로 경험했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복되게 하시는 분이고, 이 세상을 떠나면 하나님나라에서 또 다른 나라를 주시는 분입니다. 이 땅에 있을 때도, 이 땅을 떠날 때도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의 역사를 대변하는 사람이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제자들이 보았더니 예수의 얼굴이 해처럼 밝았고, 옷이 빛과 같이 희게 되었습니다. 변모하신 예수의 모습 속에 하나님은 거룩하심이 나타났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는 인간의 모든 역사의 정점인 구원, 해방, 행복의 역사를 대표로 담고 온 모세를 끌어안으시는 분입니다. 예수에게 오면 모세를 만납니다. 예수에게 오면 모세가 이룩한 민족해방의 역사, 개인 행복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와 만나면 역사가 바뀝니다. 예수에게 오면 모든 인생의 과정과 역사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이 역사도 경험합니다. 하늘로 승천하여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서 예수님 만나면 거룩한 역사가 있고,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에 가도 거룩한 역사가 있습니다. 하늘의 거룩함과 땅의 거룩함이 같습니다.

오늘 제가 땅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여러분께서 최근에 하인스 워드라는 사람의 기분 좋은 소식을 접하셨습니다. 1976년 의정부 미군기지근처에서 소위 양공주, 양색시가 미군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아들이 이혼당한 편모슬하에서 30년 동안 자라나 오늘 미국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슈퍼볼의 MVP가 되었습니다. 쉽게 이 이야기를 보시면 안됩니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필 수 있습니다. 제가 하인스 워드의 행복, 충격을 보고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감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승리의 역사로 이끄시므로 거룩하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반드시 귀한 몸으로 태어나는 인생 뿐 만이 아닙니다. 가장 천대받는 몸에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행복의 역사는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변모의 역사입니다. 우리 모두 즐겁고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모든 일은 가능합니다. 아마,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그의 가슴에서 하나님의 귀한 불길이 일어났으리라 믿습니다. 언젠가는 직접 그 분들의 경험을 듣고 싶습니다.

사람뿐 만 아니라, 나라도 그러합니다. 제가 읽은 유본영 씨라는 역사학자가 쓴 책을 보면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1년에 평균 한 번은 외적의 크고 작은 침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침략을 하지는 않았지만, 침략을 받고 살아 온 불쌍한 민족입니다. 가장 큰 침략은 청일전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일본역사학자들이 쓴 책에는 청일전쟁때 일본이 승리했다. 청국에게서 전쟁 승리 배상금으로 당시 일본 국가 예산의 3배되는 금액을 받았다고 합니다. 일본은 이 배상액을 중공업에 투자하여, 세계 제 2차대전을 일으켰고, 일본이 승승장구했습니다. 그 결과 중국도 피해를 보았고, 우리나라는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1945년 일본은 연합국에 패배를 하고 우리는 해방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변모, 인간의 변모 속에 패배, 실패, 성공, 승리 등 갖가지 요소들이 역사를 주관합니다.

하인스 워드가 어머니와 함께 살아온 역사는 우리나라 식민지의 역사, 패배와 따돌림, 괴로움, 슬픔의 역사였습니다. 우리가 비록 이러한 과거 역사를 살아왔으나, 언제한번 이 세계역사의 슈퍼볼 게임에서 MVP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를 믿으면 됩니까.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면 이 땅의 사람들이 개천에서 용이 나듯,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듯, 양공주와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젊은이가 MVP가 되는 역사가 가능합니까. 저는 그것이 가능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함께 하면 된다고 하십니다. 방법은 무엇입니까. 다시 모세로 돌아갑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건져내기 위해 호렙산으로 기도하러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시떨기가 불길에 휩싸인 이 곳은 거룩한 곳이니 더러운 때를 묻힌 신발은 벗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모세가 가진 인간됨, 역사의 질곡을 벗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동참하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네 신발에 묻은 때, 즉 이집트 땅에서 고생한 백성들의 한과 아픔, 슬픔을 듣고 보았으니 내가 구하러 가기로 했고, 나 하나님이 너를 세웠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백성을 올려 주기 위해서, 약속한 축복을 직접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이집트에 가서 백성을 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가시떨기가 불에 휩싸인 그 곳 자체가 거룩한 곳이 아니라, 이집트 현장에 가서 모세를 통해 바로왕을 설득하고 이스라엘을 모았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거룩하라고 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의 위대함은 더 설명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세에게 보이셨던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를 통해서 산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이 주관하셨던 모든 땅의 역사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상징적으로, 이 세상 끝난 후의 하늘나라 역사까지 엘리야를 통해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는 땅과 하늘을 매는, 역사적인 하나님과 초역사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결합하는 사람이 되어 그 두 사람과 대화를 합니다. 예수는 오늘 모세와 엘리야, 우리의 역사와 하늘의 역사, 하나님과 인간을 매는 중심자로 우뚝 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예수를 가르켜 당신의 아들이고, 당신은 아들을 좋아한다고 하십니다. 예수에게 오면 당신을 만날 수 있다고 하십니다.

오늘의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마다 거룩한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불이 타던, 물이 흐르던 거룩한 곳은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는 하나님의 거룩함은 십자가에 달리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죽은 일그러진 예수의 얼굴, 피 흘리는 예수의 얼굴에 있음을 깨달으라고 하십니다. 눈으로 보면 죽어가는 자의 얼굴, 흘킨 얼굴, 창에 맞은 얼굴, 물을 못 마셔서, 매 맞아서 찢긴 얼굴에 무슨 거룩함이 있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우리 눈으로는 볼 수가 없으나, 하나님의 빛이 여러분 마음에 들어와서 마음으로 보면 일그러진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보인다고 설명합니다. 사실, 우리는 눈으로만 보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역사현상만 보고 그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눈으로 보고, 마음에 빛을 비추어서 마음으로 함께 보게 하는 역사를 선물로 주십니다. 인간이 동물이 아닌 이상, 우리 몸으로만 역사를 이끌어 가지 못합니다. 우리 정신으로 함께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은 귀신처럼 직접 나타나 역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하여 예수가 보여주신 십자가 공로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의 눈이 밝아진다고 합니다.

우리가 질곡의 역사 속에서 고통을 보아왔지만, 고통 속에 있는 하나님의 부활의 진실도 볼 수 있으려면 예수님의 빛을 받아야 합니다. 나라, 사회,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신비한 존재로 보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역사가 있으면 거룩하다고 하십시오. 하나님은 역사가 바뀌는 곳에 거룩한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하나님이 오시면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를 맺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의 백성과 운명을 함께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와 함께 공동 운명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하셨습니다. 마틴 부버라는 학자는 하나님이 오시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두 관계, 즉 나(I)와 당신(Thou)이라는 인격적 관계, 나(I)와 그것(It)이라는 사물의 관계 중에 바로 인격적 관계가 성립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나(I)와 당신(Thou)이 합쳐져서 우리가 됩니다.

우리는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 삶은 만남의 삶입니다. 어디서든 부부, 부모자식, 스승과 제자, 직장동료 등을 만나게 됩니다. 진실된 만남은 단순이 얼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좋아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관을 서로 나누는 사건들이 생기는 것이 만남이지, 눈으로 보는 것은 만남이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십자가를 아무리 쳐다본 들 그것이 무슨 만남이냐고 물었습니다. 진실된 만남 없이 삶은 없고, 만나면 나(I)와 당신(Thou)의 관계가 성립되어야 합니다. 그 관계의 만남이 복되고 사건이 벌어집니다. 사랑으로 연결되고, 가정과 공동체도 이루고, 우리가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예수의 메시지는 만남 속에 인격관계를 성립하고 만나면 역사가 생기고 사건이 생기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 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서 예배에 나오셨습니다. 제 얘기를 들으러 나오지 마시고, 성가를 들으러 나오지 마시고, 하나님을 만나러 오셨어야 합니다. 또 돌아가실 때는 만남의 기쁨을 가지고 가셔야 합니다. 예배는 만남의 장소입니다. 만나실 때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을 열어서 새로운 것을 보게 해 주십니다. 여러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의 얼굴에 비친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을 보신다면 오늘 만남은 성공하신 것입니다. 만남의 의미가 없으면 무엇 하러 오십니까. 우리 삶 속에 만나는 것이 좋아서, 하나님을 만나면 마음의 빛이 생기므로, 새로운 사건이 생기니까, 기적같은 역사가 있으니까 만나러 오시고 싶으면 오십시오. 만나기 싫으면 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른 곳에서도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음악을 들을 수 있고, 이야기도 라디오나 신문, TV를 통해서 들을 수 있는데 무엇하러 오십니까. 예배는 만남입니다.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났듯이, 하늘에 있는 모든 사람과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을 함께 만나 주십니다. 귀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기적의 역사를 산으로 설정하지 마시고, 두 세 사람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영광을 드리려고 하는 곳마다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시다고 믿으십시오. 오늘 만나십시오. 진실된 만남을 찾아가십시오. 하나님의 모습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이 오늘 당신과 나 사이에 역사를 이루고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어 하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햇으며,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거룩하시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변할 때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역사가 바뀔 때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우리 삶이 변할 때 항상 존재하고 계십니다.

여러 교회 종파 중에 정교회에 본받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정교회가 말하기에, 만남의 장소인 예배는 예배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배를 마치고 또 다른 삶의 현장에 가시면 그 곳도 예배라고 믿고 살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선교, 가정, 사회, 정치 등 모든 분야를 예배 다음의 또 다른 예배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가 모여서 한 시간 동안 예배를 드리는 때만큼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진실한 순간이 적습니다. 그러나, 부부간에 사랑할 때, 가정을 이루어 갈 때, 직장에서 생활할 때, 이런 예배와 같은 순간처럼 경외하시면 그 곳에 구원의 역사, 기적의 역사가 있습니다. 변모의 역사도 생깁니다. 다만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만남은 좋은 것뿐만 아니라, 아픔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십자가라는 엄청난 희생과 고난을 수반한 후에 있었습니다. 모든 승리의 역사의 과정은 전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은 아프지만 결국 승리를 만들어 냅니다. 용기를 가지십시오. 그 분을 만나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우리가 받을 위로의 말씀이며, 우리가 일하는 곳곳마다 만남의 역사가 변모산상의 역사처럼 복된 역사로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박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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