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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은 어디에서 사십니까 (요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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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속담에 몸과 마음이 다른 장소에 있다는 의미의 속담들이 매우 많습니다. 동가숙 서가식이라는 말도 몸과 마음이 다른 장소에 있음을 말하는 속담이고, 몸은 어디에 있어도 마음은 어디에 있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옛 가요 가운데 갑돌이와 갑순이라는 가요가 있는데 가사를 보면 서로 다른 곳에 시집가고 장가를 간 갑돌이와 갑순이가 마음으로는 서로 사랑을 하면서 잊지 못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람은 몸과 마음이 같은 장소에 있지 않습니다. 몸과 마음이 다른 장소에 있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몸은 공간과 시간의 영향을 받지만 마음은 공간과 시간의 영향을 넘어서서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보면 몸이 머무는 자리가 귀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보면 우리의 마음이 머무는 자리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에 우리의 마음을 보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가 육체의 건강에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육체의 건강에 대해서 나름대로 할 이야기가 없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건강에 대한 노하우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육체의 건강에 관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건강에 대한 이야기는 결론에 가면 통일이 됩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두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하나는 먹는 음식이고 다른 하나는 적당한 운동입니다. 먹는 음식은 육체에 생명을 공급하는 일이기 때문에 건강과 직결이 됩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몇끼를 먹지 않으면 금새 연약해 지고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금새 죽을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적당한 운동은 사람의 몸은 사용하지 않으면 그 기능이 약해집니다. 그러므로 육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걷는 것도 상당한 연습을 거쳐서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사용할수록 점점 유능한 도구가 됩니다. 동일한 상황에서 연습을 통해서 기능을 개발한 사람과 개발하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것도 원리가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마음을 무엇으로 채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육체는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 육체의 환경이지만 마음은 무엇으로 채우느냐 하는 것이 영적인 환경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보이는 환경은 동일할지라도 사람마다 영적인 환경은 다른 것입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영적으로는 전혀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평안을 채우면 그의 영적 환경은 평안이요 우리 마음에 기쁨을 채우면 우리의 영적 상황은 기쁨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1.근심을 채우는 사람도 있고 믿음을 채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마음에 근심을 채우는 사람도 있고 믿음을 채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은 그 영적 환경이 근심에 쌓여 있을 수 있고 그 영적 환경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감사함으로 살 수도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근심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나 자기 마음에 근심을 채우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에 평안을 채우기 원하고 기쁨을 채우기 원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근심을 채우지 않고 믿음을 채울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적 원리 가운데 하나는 우리의 마음은 무언가 채워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마음은 아무 것도 채우지 않은 채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먼저 채우는 것이 마음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에 근심을 먼저 채우게 되면 그것이 우리 마음에 주인공이 되어 우리 속에 믿음을 가지는 일에 끊임없이 방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먼저 채우면 염려와 근심이 우리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동일한 상황에 살면서도 마음에 근심을 먼저 채우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근심을 먼저 채우는 사람은 계속해서 그 근심의 노예가 되어서 새로운 환경을 보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면서 계속해서 원망하고 불평한 것은 자신들의 마음에 근심을 먼저 채웠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을 먼저 채웠기 때문에 동일한 상황에서도 원망과 불평을 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면서도 염려부터 먼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좀처럼 감사할 수 없습니다. 어떤 정신적인 질병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항상 두려움을 먼저 마음에 채우는 사람이었습니다.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자신이 자고 있는 동안에 도둑이 자기 집에 들어 올 것 같은 마음 때문에 시달렸습니다. 양식을 항상 집에 많이 채워 두어야 했습니다. 혹시 금년에 흉년이 들면 어떻하나 걱정을 합니다. 두려움은 끝이 없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교회에서 믿음에 대해 들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에는 달게 잠을 잘 수가 있었고 마음에 두려움이 극복된 것입니다.

2.세상을 채우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 나라를 채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 세상을 채우고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그 마음이 세상으로 가득찬 사람이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사람인 것입니다. 유다는 그 마음에 세상을 가득 채우고 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마음에 채워질 수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 받고 난 이후에 그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득히 채웠습니다. 그러므로 고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산 것입니다.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는 그 마음에 애굽을 채우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에 가나안을 채우고 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애굽을 채우고 사는 사람은 광야에 살면서도 그 삶의 영향은 날마다 애굽의 영향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가나안을 채운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가나안을 바라 보면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습니다. 천국을 마음에 채운 사람은 천국의 위로를 날마다 받는 것입니다.

3.사람의 마음 속에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두 가지 길이 있어서 우리의 마음은 그 길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그 마음 속에 자기의 길을 만들고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이 있고 그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그리스도를 따라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어떤 길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육체는 눈에 보이는 길을 가지만 우리의 마음은 마음 속에 나 있는 길을 걷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마음 속에 욕심의 길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러면 그의 마음은 항상 욕심의 길을 걷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 음욕의 길을 만들어 두면 그는 마음은 음욕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믿음의 길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은 믿음의 길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한 평생은 자기 마음에 나 있는 길을 걷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의 길을 마음에 가져야 우리의 마음은 언제 어디서나 믿음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 마음 속에 세상의 길을 만들어 둔 사람은 언제나 방황하는 사람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천국의 길을 가진 사람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조병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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