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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가 넘치는 예배(1) - 기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눅 2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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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宗敎=인간의 궁극적 관심, 예배=종교의 본질>
덴마크의 한 신문이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를 조롱한 만평을 실어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마호메트의 머리에 시한폭탄을 매단 그림을 그려
아랍인들의 테러리즘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지요.
만평이 나온 작년 9월부터 이슬람권 전체가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요란스럽습니다.
중동 지역의 덴마크 대사관이 불타고 연일 반유럽 시위와 폭력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서방 언론은 이 사태를 '언론 표현의 자유와 종교 신념의 대결'로 보지만
무슬림들은 자기 종교에 대한 모욕이라며 상상을 초월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습니다.
약 14억에 달하는 무슬림들은 일생 동안 마호메트의 그림이나 조각을 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철저한 유일신 사상 때문에 알라 신이나 마호메트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우상숭배로서 엄격히 금해왔기 때문이지요. 
그리하여 서양 사람들이 생각할 때에는 언론의 자유가 있으니 마호메트라고 할지라도
얼마든지 만평과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슬림들은 이것을 이슬람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이요 모욕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저는 신문보도와 TV를 접하면서 종교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새삼 깨달았습니다.
종교(宗敎)는 말 그대로 '마루,' 즉 최고의 '꼭대기 가치'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는 이것을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하는 우리 존재의 전부가 걸려 있는 것이 종교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모든 종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예배입니다.
예배를 뺀 종교는 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신을 예배하는 행위는 모든 종교의 본질이요 전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면서 예배에 소홀히 하면 그 믿음은 거짓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생활에 승리하는 것이 신앙 생활에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예배 생활에 정성을 기울여야합니다.
은혜가 넘치는 예배를 드리는 성도는 어느 곳에 가더라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에 감격과 기쁨이 없는 성도는 다른 신앙 생활에 있어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내리교인들은 무엇보다도 살아있는 예배를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크게 다섯 가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기도와 말씀과 찬양과 봉헌, 그리고 성도의 교제입니다.
저는 앞으로 5주 동안에 걸쳐서 이 예배의 다섯 가지 요소에 대해서 설교하려고 합니다.
이 시리즈 설교는 예배에 대한 근본적인 자세를 가르치는 교육용 설교라 할 수 있지요.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 주님께서 몸소 보이신 기도의 자세>
오늘은 제일 먼저 기도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기도는 예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기도가 빠진 예배는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이며 친밀한 대화입니다.
부부간이나 친구 사이에도 대화가 줄어들면 사이가 자꾸만 멀어지듯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도 기도라는 영적 대화가 줄어들면 사이가 멀어집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과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기도는
우리의 예배가 은혜로운 예배가 되기 위하여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기도는 성서적인 기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성서적인 기도 중에서도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기도가 최고의 기도일 것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기도생활에 대해서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는데
가장 절박한 기도를 드리신 것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감람산에서 하신 기도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감람산 기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 앞에 공포와 불안과 초조를 느낄 줄 아는 참 인간이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공포와 불안과 초조를 기도를 통하여 이겨내셨습니다.

공관복음서들 가운데 유난히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기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세례 받으실 때 기도하셨습니다(눅 3: 21).
나병 환자를 깨끗케 하신 다음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서 기도하셨습니다(눅 5: 16).
12제자들을 사도로 선택하실 때에도 산에 올라가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 6: 12).
12 제자의 선택이 아무렇게나 된 것이 아니고 철야 기도 후에 이루어졌던 것이지요.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실 때에도 먼저 홀로 기도하셨습니다(눅 9: 18).       
베드로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신앙고백이 거저 나온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홀로 기도하신 후에 나온 작품이었던 것이지요.
산에 올라가셔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에도 주목적은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눅 9: 28).
주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주기도문도 거저 나온 것이 아니라
어떤 곳에서 기도하신 후 제자들에게 받은 질문에 응답하신 내용이었던 것입니다(눅 11: 1).

이와 같이 누가복음은 예수님이 기도의 사람이요 기도의 교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평소에 기도로 잘 훈련된 분이셨기에
기도로 십자가의 공포와 불안과 초조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주님의 감람산 기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주님의 감람산 기도 장면은 우리에게 기도의 7가지 원리를 가르쳐 줍니다.

① 기도의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본문 39절에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쫓아"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평소에 늘 하시던 대로 기도하러 나가셨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 임박했기 때문에
갑자기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고난과 위기가 닥쳤기 때문에 돌발적으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평소 모습 그대로 기도하셨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대개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 갑자기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기도 생활보다는 기도가 하나의 생활 습관이 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것은 왠지 너무 얌체 같고 속 보이는 기도 같지 않습니까?
좋은 기도는 하나의 버릇처럼 어김없이 저절로 나오는 기도입니다.
식사기도야말로 습관을 쫓아 하는 기도의 대표적인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밥을 먹을 때마다 저절로 눈이 감기고 "감사합니다!" 소리가 나오듯이 그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기도도 오래 하면 하나의 버릇이 됩니다.
그래서 새벽 기도가 없는 날에도 그 시간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오후 3시만 되면 어김없이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습관을 쫓아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그 어떤 시련과 위기도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② 감람산, 즉 성전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39절에 보면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감람산은 올리브 나무가 많은 정원을 말합니다.
예수님 시대에 예루살렘 성은 공간이 너무 협소해서 정원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은 감람산에다 개인적인 정원을 여러 군데 조성해 놓았습니다.
아마 본문에 나오는 감람산 정원도 어떤 유복한 주인이 예수님께서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배려해준 정원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홀로 외롭게 밤새도록 기도하신 감람산 정원은 성지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거룩한 성전이라고 볼 수 있지요.
우리는 어느 곳에서나 다 기도할 수 있지만 가장 좋은 기도 장소는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막 11: 17에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은 모든 사람이 찾아 나와 기도할 수 있도록 세워진 기도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은혜가 되고 가장 힘이 되는 기도 장소는 성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할 수 있으면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버릇을 기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더욱 큰 은혜와 축복으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③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40절과 4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두 번씩이나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앞에 두고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제자들과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거리에 떨어져 홀로 기도하러 가실 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돌아와 보니 제자들이 잠에 빠져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때 주님은 다시 한번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경우는 제자들이 아직 깨어서 의식이 있을 때 하신 말씀이고
두 번째 말씀은 쿨쿨 잠이 들어있는 제자들을 깨우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의식이 있을 때 더욱 긴장하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을 때에는 빨리 깨어나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는 사탄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시험은 유혹이라는 말도 되고 시련도 됩니다.
우리는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유혹을 받을지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언제 어떻게 시련과 위기가 찾아올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를 대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평소에 기도하는 훈련을 잘 길러 놓으면
어떤 유혹과 시련이 찾아와도 능히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이아몬드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아는 방법 중에 하나는 물 속에 넣어보면 안답니다.
진짜는 물 속에 들어가도 여전히 빛을 내지만 가짜는 물 속에서 빛을 내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진짜 다이아몬드가 물 속에 들어가서도 영롱한 빛을 발하듯이
진짜 그리스도인은 시험이 닥칠 때 진정한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혹과 시험이 닥쳐와도 평소에 기도로 잘 준비된 사람은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④ 무릎을 꿇는 겸손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41절 말씀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되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는 장교였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습니다.
최고의 겸손을 보였던 것이지요.

우리는 기도할 때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먼저 속마음에서부터 하나님께 다 맡기고 순복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합니다.
육신의 무릎을 꿇기 전에 마음의 무릎을 먼저 꿇어야 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육신의 무릎은 꿇었지만 마음 속에는 여전히 교만이 가득찬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먼저 여러분의 마음을 낮추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겸비한 마음을 받아주실 것입니다!

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42절 말씀을 보세요.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은 33세의 청년이었습니다.
아직도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습니다.
또한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가진 분이었기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잔을 마시지 않고서도 인류를 구원할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가 위대한 것은 인간인
자기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가 성숙한 기도인가 아닌가는 누구의 뜻을 먼저 구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대화는 먼저 상대방의 말을 힘써 경청하려고 할 때 일어납니다.
상대방의 말은 듣지도 않고 내 기분이나 내 의견만 털어놓는 것은 성숙한 대화가 아닙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편에서 열심히 말도 해야 되지만 더 좋은 방법은 하나님의 뜻을 잘 경청하는 것입니다.
자녀들도 그렇지 않습니까?
아직 철이 안든 자식들은 자기의 고집이나 소원만 일방적으로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효성이 깊고 성숙한 자녀들은 자기 생각보다는 부모님 생각부터 먼저 합니다.

우리의 기도도 믿음의 연륜이 더할수록 성숙하고 철든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 기도는 내 소원만 열심히 늘어놓는 기도기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귀담아 듣는 기도입니다! 
내 뜻을 먼저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내세우는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마 6: 33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기도할 때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뜻을 맞출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성숙한 기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⑥ 천사의 도움을 받아 기도해야 합니다.
43절을 보세요.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기도를 드리셨을 때
천사가 힘을 북돋우어 드렸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천사가 우리를 돕습니다.
성령님을 '보혜사'(保惠師)라고 하는데 보혜사라는 말은
'Helper,' 즉 '돕는 분'이십니다(요 14: 26; 15: 26).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흔들림이 없이 혼란 없이 단순한 마음으로 정신을 집중해서 기도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미국의 어느 정치가가 어려서 산촌에서 자랐습니다.
학교를 가려면 깊은 산언덕을 넘어가야 합니다.
무서운 맹수가 나타나 사람을 해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담력을 길러주기 위하여 혼자 학교에 보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 가기 위하여 깊은 숲을 지나가는데 무시무시한 곰이 나타났습니다.
기겁을 한 아들은 공포에 질려 큰 나무쪽으로 피했는데
거기에 아버지가 장총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을 혼자 보내놓고 아버지는 총을 들고 매일 아들의 뒤를 밟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이 아버지와 같이
우리의 든든한 방패가 되셔서 천사와 성령을 보내어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⑦ 땀과 눈물과 핏방울이 배인 간절함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44절 말씀을 보세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주님께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감람산 기도가 얼마나 처절한 기도였는가를 알려주는 대목이지요.

구약 성경에 자주 반복되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응답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사 58: 9은 말씀합니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또한 렘 33: 3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여러분, 기도할 때 간절한 마음으로 부르짖으십시오!
땀과 눈물과 피가 있는 간절한 기도를 드릴 때 우리 주님께서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감람산에서 몸소 보여주신 기도의 모범을 잘 기억하십시오.
이와 같은 자세로 기도하면 여러분의 기도는 아주 훌륭한 기도가 될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자기가 하루를 보내면서 기도한 시간이 얼마인지 계산해 보았답니다.
그랬더니 하루 종일 기도한 시간이 1분도 채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아침 식사 기도 5초, 점심과 저녁 식사 기도가 합쳐서 10초,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한 15초 정도 기도해서 총 30초 밖에 안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이 말이 보통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맞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기도하지 않음에도 모든 일이 척척 잘도 되기에
굳이 기도하지 않고서도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저축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기도하는 습관을 따라 열심히 기도해 놓으면
언젠가 그 기도가 빛과 위력을 발휘할 때가 올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 생활 중에 먼저 기도가 살아나길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하고도 다정한 대화, 기도에 큰 기쁨이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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