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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예수 그리스도 (고전 15:20-22, 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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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이스라엘 가기 전에 두 주일에 걸쳐서 창세기 3장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도 거기에 대한 연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리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자, 부족함이 없는 동산은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담, 이브에게 하나님은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온 모든 만물 위에 충만하며,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어, 저들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인간을 괴롭게 하는 세력은 에덴동산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인간은 고통을 당하는 피조물이 아닙니다. 물고기 하나도 근심 없이 살아가는데, 우리 인간은 근심하며 고민하게 살도록 지음 받음 피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 인간의 힘은 인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있는 것도, 이 세상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기쁘게 하며 영광스럽게 하는 이 모든 요소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생명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땅에 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물고기는 물속에서,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들은 이 땅에서, 동물은 필요한 생명을 땅에서 섭취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비록 땅에서 나오는 것을 먹을지라도 하나님을 떠난 우리 인간은 땅의 것으로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의 힘, 인간의 자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한 분을 잘 믿고 섬기는 것이 억만 가지를 다스리고 관리하며, 풍요롭게 하며 충만한 능력이 하나님 한 분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진다라는 것이 창세기에 그리고 성경 전체에 흐름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세상에 있고, 하나님을 떠나면 재미있고 기쁘며, 만족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성경은 유혹이라고 말합니다. 설령 우리에게 ‘나는 마귀다’ 그렇게 말은 안 할지라도, 친구든 부모 형제든 어떤 문화적으로 우리에게 유혹을 하던 ‘하나님을 떠나도 길이 있다’라고 하는 모든 것은 거짓말입니다. 속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길이, 행복이 없습니다.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오랜 경험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배후에 있습니다. 마귀는 언제나 세상이라는 배후에서 아담, 이브를 유혹하듯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유혹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합리적 접근이라 하더라도 그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집에 가서 ‘아~ 이거 참, 룸싸롱에 가면 정말 얼마나 좋으냐. 롬싸롱에는 마담이 있지 않냐?’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마담 뒤에 마귀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아~이 세상에 좋은 길이 있는데 얼마나 좋으냐?’ 아닙니다. 좋은 길 뒤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축복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실 이는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없는 에덴동산은 결국 누릴 수가 없고, 마귀와 손잡고 누리려고 하면 에덴동산에서 쫓겨납니다. 아담, 이브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뒤로 마귀를 불러 마귀와 손을 잡았는데, 그것은 자기 스스로의 함정을 파게 되고 실패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귀를 대적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순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 분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며,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제일로 살아야 합니다. 간단한 공식, 이 공식 하나가 확실하면 우리는 모든 일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이스라엘에 가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 교인이 한 330명 정도 갔습니다.  저는 한 주일 전에 가 있었고, 우리 성도들을 한 주일 지나서 예루살렘에서 맞이했습니다. 또한 갈릴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만나던 날이 금요일이었는데. 금요일 저녁에 이미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들어갑니다. 같이 저녁예배를 보려고 하는데 마이크를 켜주지 않습니다. 마이크 설치를 그 호텔에서 해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일날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이라 우리는 노동을 안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서 막 소리를 지르니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래도 안 도와주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안식일을 지켜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너희들 안 와도 좋다. 기분 나쁘면 가라. 필요 없다’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외국인들이 와도 안식일이 되면 철저하게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너희와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너희들 돈 안 벌어 줘도 살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분 1,2년이 아닙니다. 유대인은 4000년 믿은 민족인데도, 4000년 동안 안식일을 지켜서 저들이 무슨 손해를 보고 어려웠을 거 같으면 누가 그렇게 하겠습니까? 시내버스도 안 다닙니다. 모두 다 All stop 합니다. 그것만 아닙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지 않습니다. 호텔 엘리베이터도 쉬게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겠다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잘 믿는 길이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해서 어둡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세상에 대해서 어둡다고 해서 안 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제일 잘사는 민족이 유대인입니다.

오늘 이 아담, 이브가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나서 눈이 밝아졌습니다. 무슨 눈이 밝아 졌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이 영적인 눈이 감겨지고, 인간이 정말 떠야할 신앙의 눈 영적인 눈은 다 감겨졌습니다. 대신 무슨 눈이 열렸느냐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열려졌습니다. 물질을, 인간을 보는 눈이 열려졌습니다. 사람의 허물을 찾아내고 인간의 약점을 찾아내는 인간적인 눈이 열려졌습니다. 그래서 숨어 무화과 나뭇잎을 가지고 가렸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눈을 뜨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신앙의 눈을, 하나님을 보는 영의 눈을 뜨면, 땅의 눈이 열리는 줄 믿습니다. 이 눈 감고, 저 눈 열리면 어떤 분은 돈에 눈이 밝은데 여러분! 돈 눈 밝으면 돈이 떠납니다. 돈만 알고 돈이 귀한 줄만 알며 돈 따라가면, 인생은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행복을 찾아가는
행복의 눈, 사랑의 눈을 뜨고 살아가려고 하면, 사랑은 멀리멀리 떠나갑니다. 예수 믿어 천국의 문이 열리고 영생의 눈이 열린 사람은 사랑을 모릅니다. 물질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잘 살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너무너무 물질을 몰랐습니다. 하나님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복을 주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세계에서 제일 잘 삽니다. 어디 가서도 잘 삽니다. 제가 이번에 유럽을 가보니까 로마에서도 유대인이 이태리의 돈, 재정 모두 다 잡고 있습니다. 독일에 있는 재정도 유대인이 잡고 있습니다.  프랑스도, 영국도, 미국도 유대인이 잡고 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우리의 힘과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위로부터 온다. 하나님을 잘 믿어야 된다. 안식일 철저하게 지키자. 철저하게 십일조 생활하자.’ 이것이 세계 일등 민족으로 만들었습니다. 유대나라의 땅은 적습니다. 2만 평방Km밖에 안 됩니다. 우리나라 남, 북한의 십분의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2만 평방Km 가운데 반은 한사람도 살 수 없는 쓸모없는 땅, 바위로 된 완전 광야입니다. 그리고 1만 평방Km는 기후가 매우 나쁩니다. 1만 평방 Km도 팔레스타인하고 같이 삽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 민족이 어떻게 세계를 다 움직이는 민족입니까? 힘이 어디에 있습니까? 인간이 땅, 지하자원이 있다고 힘 있는 거 아닙니다. 하나님 경외하면 하나님이 힘을 주십니다. 성경은 “혼자서 만을 당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지 않습니까?  한사람이 일만을 당할 수 있고, 한 사람이 백만을 당할 수 있는 일당 백, 일당 천, 만이 되는 아브라함의 자손, 믿음의 자손, 믿음의 사람, 하나님 잘 섬기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저는 좀 멀리 갔다 와서 힘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지금 물 한잔씩 하는 것을 이해를 잘 해주십시오.
아주 힘듭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들을 가르쳐도 학교에서 공부하고 오면, 집에서 어떤 부모든지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을 매일 성경을, 하나님 잘 섬길 것을 가르칩니다.  일, 이년이 아니고 10년, 20년 다 큰 다음에도 철저하게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성경 말씀을 창세기에서부터 잘 가르칩니다. 계속 가르칩니다. 학교에서도 성경을 배우지만 그래도 집에서도 가르칩니다. 아이들에게 철저한 하나님 중심의 삶을, 기초를 잘 닦아줍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수학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수학을 안 가르칩니다. 왜 안 가르치느냐하면 어려서부터 머리가 너무 발전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조그만 어린 아이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잘 커야 되는데, 너무 어려서부터 수학을 해 머리를 복잡하게 개발하면 안 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머리 개발 안 하면 유대인이 무식하느냐? 아닙니다. 물리학자 과학자는 유대나라에서 다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위에다가 늦게 수학을 해도 과학을 해도 안 늦다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이들 때 컴퓨터를 안 가르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유치원 때부터 컴퓨터를 알아 가지고 무엇을 합니까? 총명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하며, 지도자로서 훌륭한 성품과 교양을 가지고 아이들이 컴퓨터를 사용합니까? 안 그렇습니다. 나쁜 게임을 하고, 음란하며, 잘못된 일에 접속하여 애들부터 얼마나 잘못 되어 가는지 모릅니다. 제가 어제도 오면서 큰 신문을 보니 제일 크게 다룬 것이, 청소년들이 컴퓨터를 해 모두 다 단절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친구도 부모형제도 단절 되었습니다. 컴퓨터에 앉아 현실에 없는 이상한 세계에 들어가 완전히 잘못되었습니다. 컴퓨터를 해도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 위에다 컴퓨터를 하면, 컴퓨터는 좋은 기구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을 잘 믿는 믿음의 기초를 어려서부터 닦아 가지고 그 위에 물질을 올리면 물
질에도 부작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어려서부터 돈을, 세상을, 행복을, 사랑을 최고로 여깁니다.

그러니 이 위에다 믿음을 심으려고 하니 믿음이 잘 자라나지를 않습니다. 믿음이 커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물질에 시험을 당하면 한순간에 넘어지며, 세상에 유혹을 받으면 한 순간에 자꾸 세상으로 갑니다. 세상으로 가면 세상은 우리를 멀리하고, 고통을 줍니다. 돈에 늦게 눈을 떠도 아니면 20대에 돈을 우리가 알면 돈을 못 법니까? 30대에 돈을 알아도 세계에 재벌 될 수 있습니다. 록펠러나, 카네기 등 세계적인 부자들이 다 어려서부터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성경공부를 잘 하며, 교회를 잘 다녀 나중에 세계최고의 부자가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너무 건강을 염려해 유치원 다섯 살부터 태권도 팍! 팩! 이렇게 자꾸 하지 마시고 하나님 잘 믿으면 말씀 안에 살면 모든 길이 있는 줄로 믿어야 됩니
다. 요즘 신혼부부들이 아이들을 왜 안 낳습니까? 너무 교육비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교육이 뭐가 힘듭니까? 잠언 1장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교육에, 지식에 근본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세계의 컴퓨터, 세계의 어려운 과학을 유대인들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이런 신앙을, 믿음을 가지고 나아간 민족이 세계에 지금 다 앞서고 있습니다. 세계를 지배하는 대학들, 정치, 경제, 안정된 나라들이 백퍼센트 기독교 국가입니다.

오늘 우리나라는 믿는 교인들이 잘못하고 있습니다. 믿는 성도들이 정말 하나님 중심의 삶을 안 삽니다. 세상 할 짓 다하고, 세상에 소망을 다 갖고 살아가니, 세상에도 성공 못하고, 하나님 앞에도 은혜를 못 받으며, 에덴동산도 잃어버리고 하나님 앞에도 버림받고 있습니다 . 확실한 믿음 위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아담, 이브는 하나님을 떠나서 부끄러움을 가리려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숨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는 것이, 세상이 무섭습니다. 불안하고,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숨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인이 숨을 수 없는 무화과 잎으로 가리운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을 흘려주셔서 우리의 죄를 가리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의 몸 된 성전을 세워주셔서 우리의 피난처를 삼아 주셨습니다. 사람은 어디든지 피할 곳을 찾습니다. 모든 사람이 피할 곳을 찾습니다. 많은 사람은 권력이 우리를 보호해 줄줄 알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권력의 품으로 들어가는지 모릅니다. 저는 서울에서 오랫동안 목회를 하면서 ‘권력을 가지고, 권력의 보호를 받으려고, 권력에 피해서, 권력이 지켜주겠지‘라고 해서 권력으로부터 보호받는 분을 본 일이 없습니다. 가장 핵심 권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다 나중에 줄줄이 영광굴비 같이 붙들려 갔습니다. 권력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대통령이 끝나고 나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 가장 친한 친구에게 이 권력과 돈도 다 밀어 주었는데, 그 분이 된 다음에는 이 분을 백담사
로 버렸습니다.

숨을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기 성경에 보면 ‘숨을 곳이 없다.’라고 나옵니다. 오늘 찬송가도 그거잖습니까? (찬송가 79장) ♬피난처 있으니 환난을  당한 자 이리오라.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 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예수님이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 교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회는 피난처입니다. 우리가 피할 곳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세상에 나를 숨겨줄 곳이 어디 있습니까? 숨겨 줄 곳을 찾아 헤메이는 우리 모든 인류에게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서 우리에게 그늘 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교회는 그늘입니다. 그래서 미국대통령 부시도 지금 한 주일도 빠지지 않고 교회 나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매일매일 주님을 피난처로 삼고 살아갑니다. 주님은 교회로 나와서 피하는 성도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지켜 주십니다.

♬나의 영혼 피할 곳 예수밖에 없으니 혼자 있게 마시고 나를 인도하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 주시고 안식 얻은 곳으로 나를 인도 합소서♬

나의 영혼, 우리가정, 내 앞날, 건강, 생명, 재산을 피할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많은 사람들은 피할 곳을 찾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피난처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서 피난처를 찾다가 길을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든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에게로 나와 피난처를 삼을 때 승리 할 줄로 믿습니다.

찬송 한번 불러 보십시다. 다 같이요. 제가 이제 불렀던 찬송 441장 우리 시간이 바쁘니까, 1절 2절만 한번 불러 보겠습니다. ♬비바람이 칠 때 와 물결 높이 일 때 에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품어 주소서. 2절 나의 영혼 피할 데 예수 밖에 없으니♬ 1절 2절만 한번 같이 부르겠습니다. ♬(441장) 비바람이 칠 때와 물결 높이 일 때에 사랑하는 우리 주 나를 품어 주소서.  풍파 지나가도록 나를 숨겨주시고 안식 얻는 곳으로 주여 인도하소서. 나의 영혼 피할 데 예수 밖에 없으니 혼자 있게 마시고 위로하여 주소서 구주의지 하옵고 도와주심 비 오니 할 수 없는 죄인을 주여 보호하소서.♬
찬송가 439장도 우리 조금 시간 있으니깐 한 번 더 불러 보겠습니다. 439장 1절 2절 두절만 한 번 불러 보겠습니다. 만세 반석 열린 곳이 만세 반석 입니다. 부족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잘 경외하며, 믿음 생활을 잘 할때에,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일에서 우리를 지켜 주십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지 않으신다면 온 인류가 어떻게 하나님을 따라가겠습니까?

수 천년 믿은 민족이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따라 가겠습니까? 우상숭배 하는 민족들을 보십시오. 다 자기들이 버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상은 한때는 잘되게 하는 거 같은데 그 다음에는 안 들어 줍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인간은 천가지 만가지 능력이 있어서 세상으로 가는 것 보다는, 인간은 부족할지라도 아버지 집에 나와서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것이, 세상도 , 하늘도, 땅도, 하늘의 것도 얻고, 모든 일을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며, 나를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공자 같이 의로워도 세상으로 나가면 그건 세상 사탄의 밥이 됩니다. 아무리 부족하고 허물 많은 죄인일지도 아버지 성전을 붙잡고 있는 사람은 악한 마귀가 해칠 길이 없습니다. 그게 성경
전체에 나오는 흐름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약간 부족한 듯 하다고 느끼고 교회를 나오는 분이 잘 됩니다. 조금 아는 척 잘난 척 하고 교회 이렇게 우습게 아는 사람은, 언제 시험이 들어도 듭니다. 여기 찬송가 439장도 그런 내용이지 않습니까?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있으니 원수 마귀 손 못 대고 환난풍파 없도다. 왜 우리가 환난을 당합니까? 여러분이 이 진단을 잘해야 됩니다. ‘아~ 내가 요즘 왜 이렇게 어렵냐?’ 아버지 집과 멀어지면 그런 어려움이 옵니다. ‘아~ 우리 가정에 왜 이런 어려움이 오냐? 왜 이런 사고가 오냐?’ 아버지 집과 멀어지면 어떤 능력이 있어도 여러분 배후에 누가 도와주어도 안됩니다. 그 풍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풍랑은 아버지 집에서만이 보호를 받습니다. 교회는 숨는 곳 입니다. 무화과 잎으로 숨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숨는 것입니다. 주의 은혜아래 숨는 것입니다. 찬송가 439장을 우리 한번 1절 2절만 같이 부르겠습니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숨어있으니 원수마귀 손 못 대고 환난풍파 없도다.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죄에 매여 죽을 인생 편히 쉬기 바라니 주의가슴 넓은 품에 내가 찾아 안기네. 만세반석 열린 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저를 잘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 비디오실 또 2층 여러 곳에 계신 성도님들도 저를  잘 보시기를 바랍니다. 간단한 논리입니다. 우리는 길을 찾되 아버지 집에서 찾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어디 있느냐?’. 성경을 읽으면서 좋은 길을 찾아야 됩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성경을 많이 읽어야 됩니다. 배워야 합니다. 항상 성경을 보면서... 여러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도 이 나라의 번영이 성경에 있다고 보고 대통령도 성경 위에 손을 올려 선서를 하는데 하물며 우리 보잘것없는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잘 되는 길을 성경에서 찾으면 성경에 나옵니다. 성경에서 먹지 말라면 먹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그 거 하지 말라’ 그러면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우리는 순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교회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밖에서 찾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굉장한 거 같아도 그거 별거 아닙니다. 제가 한국에 돌아와 보니 요사이 영화 ‘왕의 남자’가 천만 명이 육박했다, 천만 명이 그리 몰려들었다라고 언론을 통해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 날 까지 인기 있는 영화를 본 일이 없습니다. ‘왕의 남자’, ‘투캅스’, ‘친구’, ‘여고괴담’, ‘태극기 휘날리며’ 등 선전해도 그 당시 보면 대단한 거 같지만은 봐도 그렇습니다. 다 사람이 만든것입니다. 그 작품이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데 생명이, 길이 거기 있습니까? 제가 안가봤지만은 ‘왕의 남자’든 ‘왕의 여자’든 그렇고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행복, 축복, 내 갈  길, 만족, 기쁨을 성경에서 찾으며, 성경이 주는 기쁨만이 참 기쁨인줄로 믿습니다.

아담 이브가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나니, 하나님이 두려워지고 싫어지며, 인간관계도 자기 아내가 조금 전에는 내 뼈 중에 뼈요. 살 중에 살이라고 그러더니 살이고 뼈고 막 차버립니다. 그리고 막 불평을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니 인간관계도 끊어집니다. 하나님 한 분만 좋다고 생각하면 다 좋아지고, 이 길만 열면 모든 길이 열려지고, 하나님을 떠나면 욕심은 많은데 채워지지 않으며, 이 모든 것이 이기적이고 정욕 적이며 자기한테 좋은 게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내가 받은 축복이 제일 크고, 지금 까지 산 것도 내가 제일 잘 살았고 복 받았으며, 가장 축복 받은 사람이 ‘나’라고 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감사의 삶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능력 있는 축복의 삶입니다. 우리 민족이 이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서 수습하는 길은 우리 성도들부터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려야 됩니다. 시편에 있는 대로 남방시내와 같이 돌려야 됩니다. 주님에게로 방향을 돌려서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피난처가 되시고 기쁨이 되시며, 생명이 되시고 축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현실을 불평하면 안됩니다.

어떤 부부가 결혼 3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남편은 쉰 다섯 살,  부인은 쉰 네 살. 두 사람이 잠을 자는데 천사가 나타나서 부인보고 “결혼 30주년인데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 “예. 저는 남편하고 세계여행을 한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그래 30주년이니 참 그럴 만도 하다. 내가 그 소원을 이루어 주겠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남편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물었어요. “네 소원이 무엇이냐?” “예. 하나님! 저는 사업을 해 성공도 하고 돈도 많이 벌었는데 제 부인이 너무 늙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많으시니까 우리 마누라 보다 제가 30년 젊은 여자와 살게 해 주십시오.”, “그래, 그럴 만도 하다. 그런 욕심이 생기겠지” 그래서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셔서 남편이 부인을 30년 젊게 해달라고 그러니까 팔십 오세로 남편을 만들었습니다. 자고 깨어보니 완전히 할아버지로...그래서 해외여행을 하는데 이렇게 30년 젊은 여자하고 가라고 하니까 둘이 팔십 오세 할아버지 하고 여행을 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귀히 여겨야지, 자꾸 아내를 나이 많다고 또한 바꾸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현대인들은 자꾸 집을, 사람을, 환경을 바꾸려고 그러고 너무 새로운 인테리어에 관심을 많이 갖습니다. 우리는 인테리어를 바꾸면 안 됩니다. 그 안에 있는 뼈대를 바꾸어야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믿음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살 생각은 안하고 자꾸 보이는 것만 바꾸려 그러니 어떻게 문제가 해결 되겠습니까? 오늘 나오신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에덴동산을 빼앗아 갈 자가 없습니다. 왜 교회에, 무엇 때문에 나오십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이 놀라운 축복을, 하늘의 축복을 받으려고 나옵니다.

저가 이번에 이스라엘에서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 기사분이 노인입니다. 얼마나 나이가 많아 보이시는지, “노인이 어떻게 택시를 하십니까? 몇 살이십니까?” 그러니까 “마흔 다섯 살입니다”, ‘어떻게 마흔 다섯 살이 저렇게 노인같이, 아무리 외국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지 어떻게 저렇게 노인일 수 있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아무래도 수상해서 “부인이 몇 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넷”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분이 그럽니다. “이번에 새로 장가를 갔는데 저의 마지막 부인이 서른 한 살입니다.”라고 그렇게 좋아합니다. ‘야~ 이 사람아! 고생문이 훤하다. 어이 이제 서른한살을 새로 맞이해 가지고 어떻게 살겠냐?’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모릅니다. 하나님을 떠나
면 그 문화가 어두움의 문화입니다. 가족 문화든, 의복 문화든, 생활 문화든, 음식 문화든 잘못됩니다. 이것을 그들은 모릅니다. 하나님이 없으니까 삶을 완전히 엉뚱한데다 맞춰 살아갑니다. 그 마흔 다섯된 분이 얼마 더 살겠습니까? 제가 보니까 한 삼년 더 살면 못살 거 같습니다. ’아~ 저분 살겠냐‘ 싶습니다. 왜냐하면 할아버지입니다. 마흔 다섯에 할아버지입니다. 서른한살 난 분이 새로 들어왔는데 어떻게 살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모든 일에 앞서고 넘치는 축복이며, 피난처이고 힘이 되시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토록 이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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