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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을 아는 믿음 (요일 4: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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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귐 속에는 믿음과 사랑의 이중성이 담겨있다.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요인은 다양합니다. 낮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 인간관계의 두려움 등 그 요인도 수 없이 많습니다. 경외감을 유발시키는 긍정적인 두려움도 있고, 공포 속에 빠지게 하는 부정적인 두려움도 있습니다. 긍정적인 두려움은 그 대상을 경외하고 의지하며 순종하게 하는 신앙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두려움은 그 대상과 장벽을 쌓거나 공격하거나 자신의 일과 역할을 포기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멀어지게 합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대상과의 관계는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 속에서는 상대를 인격적으로 알기도 전에 둘 사이에 장벽이 만들어집니다. 인격적인 관계는 상대를 경험적으로 아는 지식으로부터 출발합니다. 그런데 두려움은 결코 상대를 알고 믿는 관계를 형성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의 대상을 알지 못하면 그를 신뢰하며 믿고 의지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경험적으로 아는 지식에 기초하여 믿고 신뢰하는데, 그렇지 못할 때는 오히려 그를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적인 지식이란 우리가 찾아가서 배우는 지식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내게 다가와서 일방적으로 알려주는 지식을 말합니다. 그 지식이 두려움의 지식일 때 우리들은 그 지식에 근거하여 그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장벽을 쌓습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세상에서 만난 경험적인 지식들이 이런 것들입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곳마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경험케 하는 지식들의 대다수가 두려운 지식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지식과는 전혀 다른 지식을 주시고 경험케 하셨습니다. 성령을 통한 경험적 지식입니다. 요일 4:13은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성령을 주셔서 알게 하신 지식입니다.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지식은 두려움이 아닌 사랑의 지식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가오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지식으로 하나님 안에 거합니다. 이 지식으로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 안에 거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의 지식은 장벽을 쌓지만, 사랑의 지식은 마음을 열게 합니다. 우리는 이 지식으로 하나님을 알고 증거합니다. 그래서 요일 4:14는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께서 알려 주시는 사랑의 지식으로 보고, 증거합니다.

요일 4:15는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나의 노력에 상관없이 내게 찾아오신 예수님의 화목제의 사랑의 경험을 통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기만 하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가 됩니다. 즉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귐 속에는 믿음과 사랑이 함께합니다.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고, 믿는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가 됩니다. 믿음과 사랑은 하나입니다.

2. 믿음과 사랑의 이중성을 통한 하나님과의 사귐이 두려움을 이긴다.

믿음과 사랑의 이중성과 하나님과의 사귐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일 4:16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알고 믿게” 되는 “믿음”을 얻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사랑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로서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요일 4:13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을 시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일 4:15는 “우리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함”으로 말미암아 그 사귐이 시작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일 4:16은 “사랑 안에 거하는 자”가 그 사귐을 시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사귐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 사귐이 성령을 통한 믿음과 사랑의 이중성을 통해 임한다는 말씀입니다. 믿음, 사랑, 성령의 역사와 사귐은 동시적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심으로서 십자가의 사랑으로 내게 나타나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그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으로 다가오신 것을 알게 하셔서 그 사랑의 경험적인 지식을 지니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의 경험적 지식을 통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는 믿음으로 반응할 때 사랑이신 하나님이 우리 안에 상주하시며, 우리 또한 사랑의 하나님 안에 정착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사귐입니다. 성령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입니다. 사랑으로 함께하는 그리스도인의 사귐입니다. 우리는 이 사귐을 통해 사랑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사귐을 통해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요일 4:14처럼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사랑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그 사랑을 증거하는 사랑하는 자들의 공동체는 세상의 모든 두려움을 이깁니다. 현재의 두려움뿐만 아니라 장차 임할 두려움도 이기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임하셔서 사랑의 경험을 통해 하나님과 사귐을 갖게 하시는 목적은 미래에 우리에게 임할 그 두려움을 이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일 4:17은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라고 하시며 그 목적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경험은 미래에 심판주로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담대하게 맞이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일 4:18에서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심판날의 형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사랑이며, 믿음으로 시작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으로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전혀 수치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의 확신과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별도의 역사가 아닙니다. 동시에 병행되어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심판 날을 두려워하며 기다리는 자들은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자들이며, 아직도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자들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이중성을 통한 하나님과의 사귐만이 두려움을 이깁니다. 이러한 승리의 사귐의 경험은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경험하고 증거한 경험들입니다. 그래서 요일 1:3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보고 들은 바”라고 말합니다.

믿음과 사랑의 이중성을 통한 하나님과의 사귐만이 심판날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담대함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임하셨고,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시며, 우리에게 사랑으로 행하도록 요구하십니다. 요한일서에는 그 담대함을 세 번씩이나 강조합니다. 요일 2:28은 심판주가 강림하실 때의 담대함을 위해 하나님 안에 거하라고 명령합니다. 요일 3:21은 하나님 앞에 담대하도록 사랑으로 행하여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요일 4:17-18은 형벌의 두려움을 내어 쫓도록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가라고 요구하십니다. 심판 날의 형벌의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가 모든 자유의 기초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안에 거하면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사귀는 존재이므로 심판주의 임하심이 감격스러운 사건이며, 기쁨이 넘치는 축제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경험이 없는 자들은 심판주의 다가옴으로 형벌로 인한 공포에 빠지게 되며, 진정한 자유가 상실 당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는 자는 늘 심판과 대면하며 삽니다.

3. 믿음과 사랑의 이중성을 통한 교제는 형제 사랑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성령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귐은 우리가 시작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으로 나타나 주셔야만 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을 통하여 그 사랑을 알고 믿어야만 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과 사랑의 교제를 위한 순서입니다. 요일 4:19는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라고 하시며 다시 한 번 더 그 사랑의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기 때문에 우리들도 그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사랑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되었고, 사랑의 공동체와 더불어 사귐을 갖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믿음과 사랑의 교제가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기 때문에 이웃을 향하여 사랑의 실체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은 믿음과 사랑으로 사귀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요일 4:20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으로 임하신 하나님을 알고 믿는 자는 그 사랑 안에 거하는 자로서 당연하게 이웃 사랑의 증거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이웃 사랑의 증거가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이웃 사랑이 없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일 4:21에서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라고 사랑의 권면을 반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에 우리는 마땅히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를 사랑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그의 자녀들도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이 결여된 삶을 영위하는 자들은 심판 날을 전율 속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만이 다가올 심판의 두려움을 벗어납니다.

그런데 지금 이 땅에는 사랑의 하나님을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대하는 수많은 백성들이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내어 주심으로써 사랑으로 오셨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믿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써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믿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아갑니다. 자유와 평강을 잃어버린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경험적 지식으로부터 이루어진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강림은 우리에게 사랑을 아는 믿음을 경험한 역사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전해야 할 믿음이 이 믿음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형제 사랑의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는 사랑의 공동체에 속한 자로서 형제 사랑으로 세상 가운데 나아갈 때 세상 사람은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합니다.

형제 사랑을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케 하는 사역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차적인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역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새 계명으로 주셨습니다. 요 13:34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의 명령은 두려움과 공포로 소망을 잃은 세상을 향해 주시는 유일한 기쁨의 소식입니다. 두려움 속에 갇힌 세상 사람들이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게 해야 합니다.

사랑을 아는 믿음은 마땅히 형제 사랑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사랑의 공동체 안에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는 사랑의 공동체에 속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는 마땅히 형제 사랑을 나타냅니다. 형제 사랑은 세상 사람들이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고 믿도록 인도하는 새 계명의 준행입니다. 이것이 사랑을 아는 믿음에서 나오는 형제 사랑의 증거들입니다.

믿음과 사랑의 이중성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믿음이며, 이웃 사랑으로 그 증거를 나타내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믿음으로 사랑의 증거를 나타내며 사는 사람이 종말 심판 앞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심판의 두려움에 대해 자유로운 자만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삶을 위해 우리에게 사랑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이 그러한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사랑으로 세상을 향해 나가도록 요구하십니다. 사랑을 아는 믿음만이 행복한 인생의 비결입니다. (김종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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