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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주신 선물 양심 (욥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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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 욥 (욥1:1-3)
초점:욥으로 본 양심론 

요 약
욥은 성도의 양심을 상징한다. 욥의 이름이 암시하듯 양심처럼 고난과 핍박과 울부짖는 것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욥을 칭찬하셨듯양심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주신 거룩한 율법이다. 이 양심은 욥이 그러했던 것처럼 순전하고 정직하여 타협할 줄을 모른다. 그리고 하나님을경외하고 악에서 떠났듯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려는 성향이 있다. 그리고 많은 것을 거느린 족장 욥처럼 양심의 상황은 평안과 믿음과 능력과 영성과열매와 영적교통과 대인관계와 형통과 기적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본 문)

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2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3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계1:1-3)

(강 해)

오늘 이 시간에는 욥기서를 통해서 양심이란 무엇인가 양심의 정의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흔히욥기를 보면서 욥기의 초반부와 후반부를 제외하고 욥기의 대부분은 욥과 아직 덜된 친구들과의 지루하고 끝없는 토론이 가득히 담겨 있는 아주 은혜없는 책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욥기에는 양심론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양심처럼 중요한 부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행23:1에 바울은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했습니다. 고전8:12에"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딤전1:19에는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했고, 딤전3:9에는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이 있다고 했으며, 벧전3:21에는 세례와 양심과를결부시켜 이는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양심이란 무엇입니까?


1절을 보면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했습니다.

여기 욥이란 이름은 "핍박받는 자, 고난받는 자, 울부짖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이름만들어도 측은하고 불쌍하게 보입니까? 이처럼 우리 안에서 양심처럼 고통받는 것은 없습니다. 좀 잘못하면 죄인이 되어 이렇게 고통받고 저렇게고통받고 마치 율법에 범죄하면 돌로 침을 받는다는 것처럼 하루에도 수없이 일생 고통받는 것이 양심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욥의이름과 같이 "핍박받는 자, 고난받는 자, 울부짖는 자"로서 하나님 앞에 날마다 울부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치 아벨의 피의 호소처럼 우리양심의 고통받음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롬9:1에 바울이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 한다"고 한 것처럼 민족에 대한 의무를 다 감당하지못할 때도 양심은 고통스러워합니다. 그래서 양심은 욥과 같이 온 몸에 만신창이가 되어 날마다 하나님 앞에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양심은 지극히 선한 하나님이 내려주신선물입니다.

다시 1절에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칭찬을 통해서 욥이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었는가를 봅니다. 그런데 욥의 이 모습은 곧 양심의 예표이기도 하다는점입니다. 과학적으로 유신론을 입증하고자 하는 철학자들 중에 양심의 존재야말로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 만큼 양심은신비한 것입니다. 한 마디로 양심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주신 율법입니다. 일반인의 양심일지라도 양심은 상당 부분 그렇게 선하고 아름다울 수가없습니다. 더구나 욥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양심은 더 아름답습니다.
구체적으로 양심이란 순전성이 있습니다. 여기 "순전한"이란'마치다, 완전한, 명백한, 순결한, 올바른'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양심은 악과 타협할 줄 모를 만큼 곧이곧대로 선하기 이르데 없습니다.그래서 죄에는 반드시 양심이 찔리게 되어 있습니다. 거짓말을 해도 마음속의 양심만은 속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거짓말 탐지기가 그 양심의 작용을포착해 내는 것입니다.


또 "정직하여"란 곧다, 공평, 적합하다, 기뻐하다, 옳은, 가장 정직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양심은 옳은일에는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악한 일에는 죄라고 지적하고 선한 일에는 마땅해 하고 기뻐합니다.

또 "하나님을 경외하며" 했습니다. 여기 경외하다는 것은 두려워하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양심은 죄를 두려워합니다.그래서 범죄하면 놀라고 경우에 따라서는 일생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경외한다란 하나님의 주권을 존중함입니다.


그리고 "악에서 떠난 자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양심은 악을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양심을 따라서 살면죄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지식에 따라 양심의 특성이 달라지지만 죄를 좋아하는 양심이란 없습니다.

그런데 양심은 굉장한 것을 거느린 부유한 족장과 같습니다.

1:2-3에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그 소유물은 양이 칠 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소가 오 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 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했습니다. 이것이 욥의 가족들과 가산목록입니다. 이처럼 양심은 잘 관리하면 엄청난 신령한 부유함을 거느리게 되고 관계되지 않는 영의 부분이 없습니다.


먼저 아들이 일곱이라 했습니다.


여기 아들들에 대해서 남자가 일곱이요 라고 했습니다. 남자는 능력의 상징입니다. 일곱은완전수입니다. 이처럼 양심은 놀라운 능력을 거느립니다. 그러므로 능력을 받으려면 양심 관리가 필수입니다. 양심 관리 못하면 능력 생활은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 양심이 보혈 공로로 평안하고 또 양심이 기뻐하는 대로 하나님을 잘 섬기게 되면 그 양심에는 놀라운 영적인 능력이깃들게 됩니다. 그러나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양심이 원치 않는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면 이 양심은 능력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보혈 공로 능력있도다 찬송을 하는데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보혈로 말미암은 양심의 능력입니다. 예수 보혈이 양심의 거리낌을 없애주니까 능력을 발하는 것입니다.이처럼 양심이란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거슬리다가 그 귀한 능력들을 잃어버립니다. 우리 성도들도 양심 관리 잘하여 일곱 아들의영의 능력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여자가 셋이라 했습니다.

여기 여자는 성도의 영적인 아름다움인 성령의 열매를 상징합니다. 이처럼 양심이 건강하면 그 심령에는 성령의 온갖아름다움이 거합니다. 그러나 죄책에 사로잡히면 그 심령에 있던 능력도 성령의 아름다움도 죽어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그 평안하던 것도 불안으로바뀌고 그 사랑의 마음도 싸늘한 마음으로 변하고 그 넓던 마음도 좁아지고 맙니다. 왜냐하면 양심 관리를 잘못하여 은혜를 소멸했기 때문입니다.그러므로 이 양심에서 성령의 열매의 의로움을 살려 내려면 보혈의 공로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9:14에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 관리만 잘 되면 성령 열매가 임하여 욥의세 딸들과 같이 참으로 아름다운 인격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유물은 양이 칠 천이라 했습니다.

이 양이란 낮에도 말씀드린대로 우리 영혼의 의로움과 복됨입니다. 칠 천은 완전수 7에 충만수 1,000을 곱한 것이니 성화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양심은 우리를 더욱 선한길로 인도합니다. 그래서 소극적으로는 죄악을 막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고 적극적으로는 우리로 하여금 성화의 온전한 길로 이끌어 줍니다. 왜냐하면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형성된 신자의 양심이기에 이 양심은 하나님의 음성의 역할을 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을 따라서 하나님을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약대가 삼 천이라 했습니다.

약대는 당시 사막의 운송 수단입니다. 그런데 3,000이니 욥의 집에는 얼마나 운송수단이 대단합니까?작은 트럭이 3,000대 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3은 하나님의 완전수요 1,000 역시 충만수입니다. 그러니까 양심 관리가 잘 되면영의 운송 수단이 발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이 잘 되면 하나님과의 교통 성도와의 교통이 잘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양심 관리 잘못하면 하나님 두려워서 앞에 나가지도 못하고 영이 막혀 기도도 안되고 또 양심이 잘못되면 사람들도 그를 상대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심불량하면 하나님께서도 상대해 주지 않고 사람도 상대해 주지 않아서 우주의 고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만 잘 되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담대히 나아가 하나님과 교제하며 마음껏 그 은혜를 누리며 많은 사람들이 그를 사랑하고 추종합니다.

그리고 소가 오 백 겨리였습니다.

여기 겨리란'한 쌍, 짝'을 뜻합니다. 그러나 욥의 집에 소가 천 마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둘 씩 둘 씩 겨리를 짤 수 있는 일하는 소가 오 백이라는말씀이니 기타 송아지나 비육우나 여러 종류의 소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로 치면 밭가는 경운기가 500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이정도의 경운기라면 넓은 들판이라도 갈아엎을 수 있습니다. 대개 성경에서 소는 사역자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왜 500입니까? 500은 5라는고통의 수에 온전히 갖춤의 수 100을 곱한 수입니다. 이처럼 선한 양심에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성취하여 낼 수 있는 귀한 사역적인 여러은사들이 입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문제도 하나님께서 은사를 입혀 주시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른 양심 갖지 아니하면사울에게 그렇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셨다가도 빼앗아 가십니다. 그러므로 받는 것도 좋지만 감당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 감당이란겸손과 충성과 성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주셨는데 그 은사의 도움을 입어 더욱 성화로 나가야 합니다. 양심 관리를 잘 할 때 은사도좋은 결실을 맺습니다. 혹시 받은 은사로 인해 결과가 좋지 않다면 하나님께서 자기 영혼을 돌아보라고 실수를 용납하신 줄 알고 성화의 길로나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사를 통해 육신적 도움을 주시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은사를 주신 목적에서 이탈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예언은사를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고전14:3) 목적과 달리 배추를 심어라 감자를 심어라 복권을 사거라 그렇게 실용적으로 사용하다가 큰낭패를 당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그 때부터 철저한 은사부정론자가 되는데 그것은 오히려 처음보다 더 위험한 일입니다.왜냐하면 성경을 고치는 더 큰 잘못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신비주의도 경계해야 하지만 극단적인 은사 반대론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양심관리 잘해야 은사도 좋은 결심을 맺습니다.

그리고암 나귀가 오 백이었습니다.

당시 나귀는 부한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운송 수단이었습니다. 더구나 암나귀는 순해서 어린이와 부녀자들이 타기에 적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역시 500입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양심 관리를 잘하면 우리의 어떤어려운 삶도 평탄해 진다는 교훈입니다.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에게 범죄로 말미암은 어려움이 생길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또 양심 관리를 잘하여하나님과 화평을 갖은 그 심령에 무슨 고통이 오겠습니까? 그러나 양심 관리를 잘못하면 저주가 옵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양심 관리는 죄책을불러오고 죄책은 사단이 틈탈 기회를 주어 삶에 온갖 저주가 떠나지 않습니다. 혹은 비 양심으로 저질은 악행으로 인해 인격적 물리적 인간적인 여러손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심 관리를 잘하면 평탄함이 옵니다.

그리고 종도 많이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종들은 수종을 드는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양심 관리를 잘하면 하나님께서 많은 천사들을 시켜서 성도들을 수종 들게 하십니다. 히1:14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천사의 도움이 있다는 것을 달리 표현하면 삶 속에 기적이많다는 것입니다. 양심만 관리 잘해 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양심 관리란 결국은 신앙 생활 잘 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양심은 더욱새로워지고 온전해 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양심은우리 영혼에 있어서 가장 비중이 큰 부분입니다.

그래서 3절 하반절에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서가장 큰 자라" 했습니다.
여기 동방은 흔히 이스라엘의 동편 지역인 에돔 모압 암몬 등의 나라들을 가리켰습니다. 욥의 시대는 이스라엘이가나안에 정착하기 이전이요 동방이 광범위한 지역을 지칭한 것이라고 볼 때 어느 나라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그곳은 목축하는 곳이라는점입니다. 그곳에서 가장 큰 자였으니 여호와로 목자를 삼아 신앙 생활함에 있어서 양심의 비중이 매우 큼을 시사합니다.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선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날마다 은혜로 예수님의 공로를 입어서 욥과 같이 복받을 양심을 소유하십시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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