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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사람 (창 5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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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50: 15-21
제목: 인생을 성공으로 이끈 사람

“요셉의 형제들이 그 아비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 아니할까 하고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가로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데 그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다 하라 하셨나니 당신의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의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가로되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1938년 미국의 하버드 대학교에서 그랜트 스터디라고 하는 심리학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연구는 자선사업가였던 윌리암 그랜트라는 사람의 후원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버드 대학교 역사상 가장 탁월했다고 생각되어지는 268명을 선발해서 이들이 대학을 졸업한후에 어떠한 인생을 살았는가를 조사하는 연구였습니다.  이 연구는 장장 60년 이상 진행되었는데 그 결과가 아주 충격적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하버드 대학교는 세계 최고의 대학입니다.  가고 싶어도 아무나 가는곳이 아니에요.  공부는 기본이고 공부이이에도 다른 특기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런 학생들중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 268명을 뽑아서 이들의 인생이 어떠했는가를 조사해본거에요.  최고의 환경과 최고의 조건. 자 그렇다면 이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가 난다고 아마도 최고의 삶을 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겁니다.  그런데 결과가 아주 뜻밖이었습니다.  1998년에 결과가 나왔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왔냐면 성공한 사람 30%, 부적응적인 삶을 산 사람 30%, 그리고 실패한 삶을 산 사람이 30%였습니다.  최고의 지적능력, 최고의 조건, 최고의 환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했다는것입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조사해봤는데 그 결과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성공의 삶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보고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환경이 좋고 조건이 좋아도 사람이 게으르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할수 없게 되는것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환경이나 조건이 최악일지라도 그 마음이 삶에 대한 태도가 살아 있으면 안되는일도 되게 되어 있습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100m, 200m, 400m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있습니다.  윌마 루돌프라고하는 흑인 육상선수입니다.  윌라 루돌프는 한 흑인 가정에서 20번째로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6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잘 걷지 못했는데 병원의 의사들은 절대로 걷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윌마 루돌프의 엄마는 윌마에게 말했습니다. “의사는 할 수 없다고 하지만 넌 할 수 있다. 네가 걷고 뛰는것은 네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  넌 할 수 있어.” 그리고는 억지로 걸음마 연습을 시키고 운동을 시켰습니다.  괴로웠지만 난 할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래서 11살에는 목발을 버리고 혼자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또 연습하고 연습해서 걷고 뛰고 그래서 중학교때는 학교 농구선수 대표로 뽑혀서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육상코치의 눈에 뛰어 달리기를 시작했는데 소아마비에 걸려서 잘 걷지도 못했던 사람이 올림픽에 나가서 단거리 3관왕이 된것입니다.
  인생의 성공은 환경이나 조건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달려 있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에 있어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어떤 태도와 삶의 자세를 가지고 있을까요?
첫째, 삶이 긍정적입니다.  여러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세상이 바뀌는것이 아닙니다.  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변하면 세상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이런말을 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얼만큼 마음 먹느냐에 따라 행복해진다”.  다시말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는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할 수있다라고 하는 긍정적인 사고로 변화되기를 기원드립니다.
어느 유명한 신발 회사에서 아프리카로 판매 사원을 보내어 그곳의 신발 판매 가능성 여부를 조사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파견된 판매 사원이 가보니 놀랍게도 그 부족 사람들은 아무도 신발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생활하고 있는거에요. 그래서 이것을 보자 마자 회사로 바로 연락을 했습니다.  “구두 판매 계획 취소 요망. 이 부족은 전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으며 구두를 판매하는 상점도 전혀 없음.”  그 후 회사에서는 다른 판매 사원을 그곳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전 사람과 전혀 다른 연락을 취했습니다.
“구두 판매 계획 절실히 요망. 이 부족들은 아무도 신발을 신고 있지 않으므로 얼마든지 신발을 팔 수 있으며, 구두 상점 또한 얼마든지 세울 수 있음.”
자 상황은 다 똑같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한사람은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시각으로 보았고 또 한사람은 긍정적이고 생산적으로 본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나중에 성공하겠습니까?  신발 회사는 이 두 번째 판매 사원의 의견을 받아들여 그곳에 신발 공장을 세워 크게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환경이나 조건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각이 더 중요한것입니다.  생각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해요.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안된다는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마귀가 주는 생각은 다른게 아닙니다.  “넌 할 수 없어. 너 같은게 뭐 한다고 그래, 다른 사람 피해 주지 말고 일찌감치 포기해 버려.”  여러분 속지 마세요.  우리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둘째,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했던 헬렌켈러는 이런말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이다. 앞을 못 보는 사람이 불쌍해 보이지만, 인생에 꿈과 비전이 없는 사람이 더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다.”
여러분 꿈이라는게 뭡니까? 꿈은요 내 삶의 목표입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이러이렇게 살것이다.” 사람과 동물의 차이점은 다른게 아닙니다.  동물은 꿈이 없지만 사람은 내일에 대한 소망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는것입니다.  내일이 있기에 오늘을 참는것이고 내일이 있기에 지겹고 힘들어도 노력하고 수고하는것입니다.  시각장애우들은 거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담배연기가 보이지 않는거에요.  보이지 않으니까 담배를 안핍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면 모험을 안합니다.  뭔가 될것같고 이루어질것같으니까 좀 위험이 있더라도 한번 해보는거지 “이건 해도 안돼, 절대 안될거야” 이렇게 완전히 마음이 꽉 닫혀져 있으면 할 수 일도 안되는것입니다.  여러분 불가능이라는것은 환상이에요.  환상이 뭡니까? 없는데 있는것처럼 느껴지는거잖아요.  그런것처럼 불가능이라는것은 있는것같지만 사실 없는 것입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안되는것이지 사실 안되는 일은 없는 법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정말 안되는일이라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그 일을 해서는 안되는것입니다.  그런데 누군가 만약 그 일을 했다면 나도 할 수 있는거에요.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난 안돼, 난 할 수없어”. 여러분 말이 씨가 되는겁니다.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안되는거지 안되는일은 없는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속으로 품는 꿈도 마찬가지에요.  “난 나이도 많고, 배운것도 없고, 가진것도 없으니까 할 수없어. 그럭저럭 살다가 가면 되는거야.”  여러분 이런말이 신앙인이 해야할 말로서 맞는 말입니까? 틀린말입니까?  이건요 분명히 틀린말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어디 이런말있습니까? 오히려 성경은 정반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실 때 나이가 몇이었습니까? 75세였습니다. 모세를 부르실때는 80세, 갈렙이 헤브론지역을 정복했을때는 85세였습니다.  자동차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름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차라도 기름이 없으면 그건 고철과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사람도 마찬가지에요.  사람이 사람일 수있는 것은 꿈이 있기때문입니다.  사람이라는것은 꿈으로 살아가는 존재에요.  꿈이 없고 희망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은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것입니다.  여러분 작은 목표라도 품기를 바랍니다.  보잘것 없는것이라고 해도 한번 뭔가 해볼려고 시도해 보세요.  가만히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것보다는 뭔가 하다보면 길이 보이고 거기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되는것입니다.
셋째, 성공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은 주어진 삶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을 보세요. 하나님은 절대로 게으른 사람은 부르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을때 모세는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 미디안 족속이 쳐들어왔을때 사사로 하나님께 부름받은 기드온은 밀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성전에서 자면서도 궤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양떼를 지키고 있었고, 엘리야는 쟁기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느혜미야는 왕의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시므온과 안드레는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고 야고보와 요한은 그물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성경역사에서 가장 크게 쓰임받았던 사도 바울을 보세요.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실 때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족칠려고 가고 있는 도중이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움직이시기를 바랍니다.  서양 속담에 “일찍 일어나는새가 벌레를 잡는다” “Early bird catches the worm”.  일어나도 일찍 일어나고 뭘해도 뭔가 하는것처럼 해야지..이건 자는건지 조는건지,,,하는건지,,노는건지...여러분 대충하지 마세요.  대충하다보면 대충인생 되는겁니다.  하나님은 뭔가 하려고 하는 자들에게 역사하시는거에요.  전도하면 능력을 주시고 기도하면 응답을 주시고 찬양을 하면 기쁨을 주시는것입니다. 뭐든지 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요 하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실만한 것만 골라서 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러분에게 인생에 있어서 성공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특징 세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첫째, 성공하는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람이라는 것. 둘째, 꿈을 가지고 있다는 것. 셋째,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는것.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맥스웰 몰츠라는 사람은 성공의 법칙이라는 유명한 책을 썼는데 성공은 마음먹기로부터 시작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성공은 마음먹기에요. 여러분 사는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진흙탕속에서도 연꽃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듯이 최악의 환경, 최악의 조건가운데서도 오뚜기처럼 쓰러져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요셉이 바로 이 성공의 법칙대로 살았던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요셉은 야곱이라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형제들이 시샘으로 에굽으로 노예로 팔려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왜 요셉이 성공의 법칙대로 살았는지 요셉의 인생을 통하여 한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요셉의 어머니는 라헬이라고 아버지 야곱이 목숨보다 끔찍이 사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어머니인 라헬은 좀 일찍 죽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어미를 잃은 요셉을 끔찍이도 애지중지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습니다.  같은 자식이라도 요셉만 편애하니까 형제들이 이게 배알이 뒤틀렸던겁니다.  그래서 늘상 저걸 어떻게 하면 혼내주나 하고 있는데 어느날 요셉이 꿈을 꾸고는 꿈이야기를 하는겁니다.  “형님들 내가 꿈을 꿨는데 곡식을 묶고 있는데 내 단은 일어서고 형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라고....그리고 내가 또 꿈을 꿨는데 이번엔 11개의 별들과 해와 달이 나를 향해 절을 하지 뭐야 글쎄...이게 뭔꿈이야”.  여러분 11개의 곡식단은 뭐겠습니까?  요셉의 형제들입니다. 그리고 해와 달은 요셉의 부모들입니다.  가뜩이나 미운놈이 거기에다 속을 뒤집어 놓는 꿈을 꾸고는 그걸 천역덕스럽게 자랑이라고 하고 있는거에요.  이게 참 이상하죠?  얄미운 놈은 꼭 얄미운 짓만 하잖아요.  여러분 그래서 질투는 미움을 낳고 미움은 증오를 낳는 것입니다.  이 증오가 정말 무서운것입니다.  증오가 사람을 죽일수도 있는것입니다.  아담의 큰아들이었던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이유가 뭐였습니까? 바로 질투때문이었습니다. 질투가 사람죽이는거에요.  그래서 질투하면 안됩니다.  “왜 나는 저 사람보다 사랑못받지?  왜 나는 이렇지?”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려고 그러지 말고 그냥 그저 그러려니 하세요. 그러면 됩니다.
자 형제들이 요셉을 질투하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질투가 증오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이 증오심을 해결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가 왔습니다.  형들이 멀리 양들을 치려 나갔는데 야곱이 요셉을 형들에게 보낸거에요.  집에 있을때에야 아버지 그늘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었는데 집나가니까 이젠 누구의 보호를 받을 수 없게 된것입니다. 여러분 잘 보세요. 아버지안에서는 안전했는데 아버지를 떠나니까 위험이 왔어요. 뭐가 깨달아지십니까?  시편 23편을 보세요. 강원도 버전입니다. “여보서요. 여호와는요 우리 목자래요. 내가요 부족한기 한 개도 음잖소. 이지가지 마카 주이까내 부족한기 머이 있겠소. 달부 어여워요. 그부이요(분이요) 나르 버덩에 눕히지르 않나, 거랑가로 데리고 댕기미 이지가지 주지르 않나 날구장창 데리고 댕게요. 내 영혼을 소생시키이까네 내가 다시 살았잖소. 의의 길로 데리고 댕기니까네 아재야, 나는 아주 편안하다니 사망의 시커먼 벅앙지 같은 어낭으로 뼁창으로 신질로 뙈(뛰어) 댕게도 나는 겁이 안난다니. 왜나 하므느 그 부이(분이) 내하고 같이 댕기고 내가 잘못 가므는 짝때기를 가주고 막 쌔레대니까네 주께서 원쑤 같은 놈들 앞에서 나르 머글걸주고 참지름(참기름)으로 머리에 발라주고 하니까 곱뿌가 달부 어엽게 막 넘잖소.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르 따라 댕기니까네 내가요 그분 댁에 날구장창 같이 살꺼래요. 음매나 좋소”
여러분 집나가면 고생이에요. 하나님품을 떠나보세요. 마귀가 언제 덮칠지 모릅니다.  힘들고 괴로워도 하나님품안이 가장 안전한 장소입니다. 여하튼 요셉이 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요셉의 인생에 괴로움이 닥쳐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고난이었습니까?  형들이 요셉을 죽일려고 하다가 이스마엘 족속에 팔아넘겨버린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마엘 족속은 결국 요셉을 에굽에 또 팔아 넘기고 맙니다.  최고의 환경, 최고의 조건에서 살다가 이젠 미래도 없고 소망도 없는 노예로 팔려간 신세가 된것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한거에요.  요셉이 왜 성공할 수 밖에 없었는가?  창세기 39장에 보면 요셉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장군의 집에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도 않아서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총무로 삼아 가정의 모든 일을 주관하도록 합니다.  창세기 39:2-4절을 보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비록 형들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있었지만 과거에 연연해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연연해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어떻습니까?  “내가 옛날에는 잘 나갔는데...옛날엔 참 행복했는데....아 옛날이여..지난세월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과거에 파뭍혀 사는사람은요 무기력합니다.  좋았던 과거만 생각하니까 신세한탄만 하고 자기 고집만 내세웁니다.  말도요 야생마일때는 제맘대로 뛰어다니고 돌아다녔지만 일단 승용마가 되면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게 잘하는겁니다.  “싫어~”그러면서 반앙하고 까불면 오는것은 매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과거가 중요하지 않다는것이 아닙니다.  과거가 없이 현재가 어떻게 올 수있겠어요.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될 수 있는겁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것은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미 떠나버린 차 뒤에서 아무리 소리치고 후회해도 소용없는거에요. 과거는 과거일뿐, 과거에 빠져 살면 안되는것입니다.  요셉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얼마나 편안했습니다.  다른 형제들은 산으로 들로 양을 치며 고생고생했는데 요셉은 야곱의 품에서 채색옷을 입고 재롱이나 부리고 있었습니다.  꿈에서나 일했지 성경보면 노예로 팔려오기전에 요셉이 뭘했다는 말이 없습니다.  요셉은 그저 호위호식이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거를 다 잊어버리고 현실에 충실했다는것입니다.  “그래 난 팔려온 노예다.  어차리 노예라면 일해야 한다.  그래 이왕 일할거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다보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기겠지..” 전요 분명 요셉이 이런 마음을 가졌을거라 믿습니다.  “지금은 이렇지만 뭔가 좋은 일이 있을꺼야...뭔가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있겠지...” 요셉이 노예로 팔려오고 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때도 요셉은 한번도 대충살지 않았습니다.  뭘하든지 어떤 상황이던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 그러면 과연 요셉이 이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삶속에서 요령안부리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았던 이유가 뭘까요?  저는요 요셉의 꿈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요셉은 꿈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질때까지 한시도 그냥 있지 않았습니다.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있을때는 가정경제에 대해서 배웠고, 왕의 감옥에 있을때는 거기에서 정치를 배웠습니다.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한거에요.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미래에 대해서 뭘 보여주셨다거나 뭔 말씀을 하신적도 없었습니다.  요셉의 일생가운데 하나님은 한번도 요셉에게 말씀하신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삶을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않은것입니다.  여러분 고난이라는것은 당시에는 모릅니다.  “하나님 많고 많은 사람들중에 왜 하필 나입니까?”  여러분 이걸 아셔야 합니다.  왜 하필 나인가? 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할 수없어서 고난이 온것이 아니라 내가 견딜 수 있으니까 그런저런 고난이 오는거에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요셉에게 왜 그런 고생이 찾아왔는가? 요셉이기 때문에 온것입니다.  왜 우리들에게 고난이 오고 어려움이 옵니까?  나이기때문입니다. 내가 담당해야 할 고난인거에요.  다 나름대로 담당해야 할 짐이 있는것입니다.  그런데요 하나님은 절대로 공짜가 없으십니다.  우리에게 감당할 시험도 주시고 문제도 때로 주시지만 그것은 우릴 힘들게 하실려는것이 아니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셉은 견뎠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에 넘어지지 않고 꿈을 가지고 버텼습니다.  그랬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모든 것이 꿈대로 되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20-21절 말씀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저는 이것이 요셉의 신앙간증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인생 내가 살고 보니까 그게 다 하나님의 뜻이었더라. 그것을 모를때는 원망도 많이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다 용서가 되더라.  걱정하지 마라.’  여러분! 지금은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다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요셉의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것은 성공이라는 것은 어느날 갑자기 주어지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어진 삶속에서 하루 하루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다보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뭔가 되어진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것입니다.
제가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정말 깜깜했습니다.  제가 첨 설교했을때가 신학교 1학년때였는데 정말 깜깜했습니다.  뭘 알아야 하죠? 그때 신학이라고 배운거라곤 구약개론 두시간 들은거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피곤해서 조느라고 제대로 듣지도 못했었는데 설교를 해야 했으니 얼마나 심장떨렸겠습니까?  성경에 대해서 아나..그렇다고 신앙에 대해서 아는것이 있나. 완전 백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요 시간이 지나가 하나 하나 하다보니까 저도 모르는사이에 제 머릿속엔 뭔가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이젠 조금 좀 뭘 알것같더라구요.  몰라도 하다보니까 지나고 보니까 뭔가 되어지는것입니다.  여러분! 가만히 있지 마세요.  손놓고 있지 마세요. 뭔가 할려고 한번 해보세요. 안보이면 보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한번 매달려 보세요.  그러다보면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뭔가 되어져 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만들어져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동해 한사랑성결교회 유재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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