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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아들 예수 (요 1: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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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강해 두 번째로 1장 19절부터 24절입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세례 요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서는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6절).. 요한이라는 이름이 많기 때문에 어떤 요한인가를 말하기 위해서 그 앞에 세례를 많이 준 요한이라 하여 세례 요한이라 부른다는 것이고,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7절).. 이 세례 요한에게 유대인들이 사람을 보내어 질문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낸 이 유대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보통은 유대민족을 가리켜서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때로는 유대 종교지도자를 가리켜서 유대인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오늘 본문은 후자입니다. 즉 요한에게 사람을 보낸 사람은 유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에 대해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들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세례 요한의 아버지가 제사장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버지가 제사장이면 아들도 당연히 제사장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성전에서 일해야 하는 제사장 세례 요한이 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밖에 나와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오늘 성경 24절에서는 이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입니까? 여러 가지 일을 많이 있지만 바리새인들의 직무 중의 하나는 거짓 선지자를 적발한 후 재판에 회부하여 형을 내리는 것인데 바로 이를 위해서 바리새인들이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이 당신이 메시아인가 입니다. 유대인들은 당시에도 지금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그리스도라고 말할 때 그리스도와 메시야는 하나는 히브리말, 다른 하나는 헬라말로 같은 말입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하게 자기는 아니라고 말했는데 여기에 대해서 성경은 조금도 감추지 아니하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란 정직한 것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좀 더 귀하게 여겨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분명히 나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 그렇다면 그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엘리야인가를 물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엘리야는 대단히 유명한 선지자입니다. 갈멜 산상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 850명과 대결하여 통쾌한 승리를 거둔 사람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세례 요한이 말도 잘하여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니 혹시 그 엘리야냐 라고 물은 것입니다. 이 질문에도 세례 요한은 아니라고 아주 분명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이어서 세 번째 질문, 그렇다면 바로 그 선지자냐 라고 물었습니다. 그 선지자라고 할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지 다 압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대한 지도자,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가 아주 옛날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신18:15) 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언제 이 위대한 선지자가 오는가 생각하였는데 세례 요한은 이 질문에 대해서도 아니라고 아주 정직하게 대답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러면 누구냐 라고 물었습니다. 당신이 누구며 어떤 인물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에 세례 요한이 대답하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 둘만합니다. 그는 이 질문에 나는 소리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상대방은 지금 내가 누구며 어떤 인물이냐고 묻는데 인물을 이야기하지 않고 기능과 역할을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인물로 말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곧 오시는데 나는 준비하라는 말씀을 전달하기 위한 역할을 감당할 사람일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들어 올리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귀한 존재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중요한 가르침을 오늘 성경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드러내고 나를 높이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가 사람들의 눈에 드러나고 높여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자기의 얼굴과 이름이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깊이 생각하고 이대로 살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명제입니다.

미술가들은 누구나 자기 작품에 서명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위대한 거장 미켈란젤로는 자기 작품에 서명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여기에는 사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천지창조라는 위대한 그림이 걸려있는 시스틴 성당의 천정벽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은 그는 몇 달 동안 아주 열심히 그렸습니다. 그리하여 완성한 그림이 불후의 명작 천지창조였습니다. 물론 그는 벽화위에 서명을 남겼고 아주 흡족해하면서 성당을 나섰습니다. 성당을 나선 미켈란젤로는 눈부신 햇살과 푸르디푸른 자연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고 어떤 화가도 그려낼 수 없을 대자연의 아름다움에 미켈란젤로는 압도당하고 만 것입니다. 이때 미켈란젤로는 갑자기 아주 소중한 것을 하나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시고도 그 어디에도 서명 같은 것을 남기지 않았는데 기껏 작은 벽화 하나 그려놓고 이름을 써서 자랑한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웠던 것이었습니다. 미텔란젤로는 즉시 돌아가서 자기의 서명을 지워버렸고 이후 어떤 작품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이어지는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서 있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이 일은 요한이 세례 베풀던 곳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일어난 일이니라(25~28절)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 혹은 위대한 선지자 이사야, 예레미야 같은 사람만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닌 사람이 세례를 베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면 도대체 당신이 어떤 사람이기에 세례를 베푸느냐고 물었지만 세례 요한은 또 다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자기를 보지 말고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말로 그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 분을 보게 되면 자기에게 이런 질문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위대한 분이가를 세례 요한은 신발끈을 비유로 표현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집에 올라갈 때 신발끈을 자기가 메고 풀지 않습니다. 조금 여유가 있으면 종이 그 일을 합니다. 유대인들은 다른 어떤 일은 다해도 신발끈 푸는 일만은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만나게 될 그 분이 얼마나 위대하신가 알게 된다면 나는 그 분의 신발끈을 푸는 노예도 과분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물을 것도 없고 알 것도 없으며 단지 그 분만 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분을 보게 되면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할 필요도 느끼지 않을 것이라고 세례 요한이 대답하였습니다.

29절과 30절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가장 간결하고 가장 정확하고 가장 명쾌하게 표현한 호칭이 바로 이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제사를 지낼 때 좀 여유가 있으면 일 년 쯤 되는 수양을 바치게 됩니다. 어린 양을 잡아서 칼로 목을 찌르면 피가 쏟아지는데 그 피를 다 뽑아낸 후 칼로 각을 내어 바쳤는데 지금 쉽게 이야기하지만 막상 이 광경을 대하게 되면 저렇게까지 해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가, 사람들이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입니다. 지금 예수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양을 저렇게 비참하게 죽이는가? 사실은 죄인인 여러분들이 저렇게 죽어야 하는데 대신 저 어린 양이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죽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53:4~5)라는 말씀입니다. 어린 양이 우리의 모든 죄짐을 다 가져갔는데 바로 예수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서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잎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뉴질랜드나 호주를 여행해본 적이 있는 분은 털 깎는 쇼를 보았을 것입니다. 기술자들이 양을 잡아서 털을 깎는데 희한하게 양들은 가만히 있습니다. 노련한 사람들은 상처없이 털을 깎지만 웬만한 사람들은 몇 군데 상처를 냅니다. 상처가 나서 피가 흐르는데도 양들은 가만히 있습니다. 심지어는 양을 잡을 때도 가만히 있습니다. 목에 칼을 푹 찔러도 꿈틀할 뿐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그냥 죽습니다. 예수가 바로 이런 세상 죄를 모두 지고 가는 어린 양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여 성경은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감당시키셨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정말로 내가 아끼는 사람을 위해서도 이런 희생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이렇게 희생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이 표현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대신 죽으러 오신 분, 앞으로 저 분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실 것이라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 당시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들의 죄를 지고 가시는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예수가 아니면, 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제대로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우리 죄를 대신 지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분,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31절에서 34절입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 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세례 요한은 자기도 처음에는 사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지 못했다라고 말합니다. 모르는 것도 아는 체하고 살아가는 것이 세상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한 것도 마치 자기 공로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떠들고 다니는 것이 세상 사람들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정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세례 요한을 존경하고 따르고 있지만 세례 요한은 사실 자기도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를 못했는데 이렇게 저 분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가르쳐 주어서 알게 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한계를 아주 분명하게 하였습니다. 자기에게 관심을 집중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기껏해야 어떤 일을 가르쳐 주어야만 아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또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므로 내가 알아서 계획하고 준비하고 작정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자기는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라고 하면 그것을 할 정도 일뿐인 사람 정도밖에 되지 않으므로 종놈에 불과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일꾼은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계획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해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가정의 일도 사회의 일도 교회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혹시라도 우리 교회의 목사가 자기가 무슨 계획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고 자기가 이것저것을 꾸려가는 것처럼 말하고 사람들에게 은연중에 나타내게 될 때 이미 이 교회의 목사는 하나님의 종의 자리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여러분이 많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참된 하나님의 종들은 나의 힘이나 나의 능력으로 나의 것으로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전부 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할 때에 참된 능력이 나옵니다.

모세가 큰일을 앞두고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는데 꺼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통해서 모세에게 대단히 중요한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앞으로 모세가 할 일은 대단히 큰일이므로 자기 힘으로 한다고 생각한다면 얼마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생각하신 것입니다. 남자 장정만으로만 60만 명인 이스라엘 백성을 40년 동안을 광야 길을 인도해야 하는데 얼마나 큰일입니까? 한 가정을 꾸려가는 것도, 회사를 이끌어 가는 것도 쉽지가 않은데 남녀 200만 명이 되는 백성을 모세 혼자의 힘만으로 끌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신 것입니다. 그래서 떨기나무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큰일을 해 나갈 때 네 힘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떨기나무가 꺼지지 않습니까? 그 속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을 공급하셨고 불을 피울 재료를 공급하셨기 때문에 불이 꺼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모세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일을 맡기실 것인데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날 이후, 모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감당할 때에 절대로 자기 힘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일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묻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했기에 모세는 그 위대한 일을 40년간 잘 감당할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참된 일꾼들은 결코 다른데 나서지 않습니다. 얼굴도 이름도 내지 않습니다. 연극으로 한다면 무대 막을 열 때에도 혹시라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수건을 뒤집어쓰고 막을 엽니다. 막이 열리고 나면 모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손톱만큼도 시선이 오지 않게 합니다. 오직 무대 가운데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시선을 집중하도록 하는 사람들이 바로 참된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손톱만큼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일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얼굴이나 이름을 내려고 하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큰일을 하든, 작은 일을 하든, 가정을 이끌어 가든 회사를 이끌어 가든, 회사에서 작은 부서를 이끌어 가든 나라에서 큰일을 하든 이 세례 요한을 보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 이름을 내고 내 얼굴을 내고 사람들이 나를 알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힘과 내 능력 내 재주 내 경험과 내가 배운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대로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가정도 이끌어 가고 교회도 이끌어 가는 것이 참된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들어야 할 말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그리스도만이 모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백과 이 고백을 삶으로 이어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런 종에게 한없는 은혜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영광까지도 함께 나누어 주실 것입니다. (김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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