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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소 지으시는 주님 (왕하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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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의 작가 생택쥐베리가 쓴 작품 가운데 스페인 내전 중에 그가 겪었던 일로 생각되는 사건을 소개한 『미소』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전투 중에 적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감방을 지키는 병사들의 거친 태도로 볼 때 그는 머지 않아 처형될 것이 확실했습니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듣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죽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나는 극도로 긴장했고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담배가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면서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한 개비가 있었고 나는 간신히 담배를 입에 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 빼앗아 갔기 때문에 성냥이 없었다. 나는 철장 사이로 병사를 쳐다보았다. 그는 나와 눈도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를 불렀다. ‘혹시 불이 있습니까?’ 그는 나를 쳐다보고 어깨를 으쓱하더니 담배에 불을 붙여 주려고 왔다. 그가 와서 불을 붙여 주는 사이에 그의 눈이 나의 눈과 마주쳤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미소를 지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른다. 아마 지나치게 긴장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둘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까워지면 미소를 짓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하여간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우리 두 사람의 가슴 속에, 우리 두 사람의 영혼 속에 하나의 불꽃이 튀었다. 나는 그가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미소는 철장을 뛰어넘어 그의 입술에도 미소가 피어나게 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여 준 후에도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나의 눈을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도 그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그가 단순히 한 병사가 아니라 하나의 살아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그가 나에게 물었다. ‘아이가 있습니까?’ ‘그럼요, 있고 말고요.’ 나는 얼른 지갑을 꺼내서 나의 가족 사진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그도 자신의 가족 사진을 꺼내 보여 주면서 앞으로의 계획과 희망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찼고 나는 다시는 나의 가족을 볼 수 없을 것 같고, 다시는 나의 자식들이 자라는 것을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두렵다고 고백했다. 이윽고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갑자기 그가 아무 말 없이 일어나서 감방 문을 열고 조용히 나를 나오게 했다. 그는 뒷길로 해서 마을 밖까지 나를 안내했다. 마을 끝에 이르러서 그가 나를 풀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 말도 없이 뒤로 돌아 마을로 걸어갔다. 미소가 나의 목숨을 살렸다.“

  오늘은 주님의 산상 변모 주일입니다. 하루는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는데 갑자기 그들 앞에서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더불어 대화하는 광경을 제자들이 보게 되었습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광경을 보고 흥분한 베드로가 소리쳤습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그런 곳에서 주님을 모시고 사는 것은 정말로 신나는 일이라고 제자들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비한 모습에 정신을 빼앗긴 제자들의 귓가에 구름 속에서 홀연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해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내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이제 그 예수님이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흐뭇한 마음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때문에 그 하나님께서 미소를 짓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엘리야의 승천 장면과 그의 후계자 엘리사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으려는 열심을 가지고 끝까지 스승 엘리야를 따르는 엘리사의 모습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또한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나가는 노선지자의 모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우리가 자연스럽게 머리에 떠올리게 되는 것은 흐믓하게 미소 지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특별히 엘리야는 하나님의 때에 민감한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때로는 심한 난관에 부닥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한결같은 걸음으로 달려온 그가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제자 엘리사도 스승만큼이나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는 스승의 말을 듣고서도 끝까지 따라 나섭니다. ‘너는 여기 머물라.’는 스승의 말에도 그는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까? 스승을 떠나지 않으려는 제자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보면서 오늘 우리도 흐믓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침내 불수레와 불말들이 함께 가던 두 사람을 갈라 놓았습니다.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나갔고 또 한 사람은 남았습니다. 두 사람의 갈라짐을 통해서 우리는 하늘과 땅이 잇대어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여간 스승은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죄 중에 깊이 빠져 있는 이스라엘을 생각할 것 같으면 엘리사는 자신이 매우 왜소하게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냥 우울해할 수만은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로 작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승은 떠나면서 할 일에 대한 세부 지침서 같은 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후계자를 위해서 성대한 취임식 같은 것도 치러 주지 않았습니다. 남긴 것은 평생 걸쳤던 낡은 겉옷뿐이었습니다. 바로 그 겉옷을 들고 나아가는 엘리사 앞에 요단 강이 가로막고 있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그의 앞길을 막고 방해할지 모릅니다.

  사실 그 때까지 엘리사는 하나님을 엘리야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외치며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스승에게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그는 외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대를 하나님께서 친히 도우시는 스승 없이 어떻게 우리가 헤쳐 나갈 수 있습니까? 대답 좀 해 보세요, 엘리야의 하나님!” 낡아빠진 스승의 겉옷을 움켜쥐고 요단 강을 치면서 외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요단 강 물이 갈라졌습니다. 그는 비로소 스승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신학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 신학이요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이 신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존재, 역사, 능력, 사랑, 그 하나님의 소원을 온 마음으로 인식하는 것이 신학이라는 말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이라는 것도 마치 낡은 겉옷처럼 느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오늘 우리의 구체적인 삶의 자리를 두드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금 흐믓하게 미소 지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스승의 낡은 겉옷 자락으로 물을 내리치면서 엘리야의 하나님을 찾고 있는 젊은 일꾼 엘리사의 모습은 더 이상 경험 없는 초보운전자와 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그는 이제 이스라엘을 책임져야 할 위대한 사역자의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보시면서 흐믓해 하시는 것입니다.

  미소 지으시는 하나님의 인자한 모습을 기억하며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에 이끌림을 받는 사람은 과연 자기 몫에 태인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찌 보면 신앙생활이란 미소 지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자하신 하나님을 향해서 미소 짓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또한 어둡고 캄캄한 이 세상을 향해서 밝은 미소를 짓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언젠가 테레사 수녀가 말했습니다. “상대방에게 웃어요. 아내에게 웃어요. 남편에게 웃어요. 자녀들에게 웃어요. 서로에게 웃어요. 그게 누가 됐던지 간에... 그러면 그것은 당신들의 사랑을 키워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에요.” 그렇습니다! 주님의 미소에는 생명을 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온 땅에 주님의 미소가 퍼져갈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먼저 충만한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그 옛날 엘리사와 같은 열정을 가지고... 때문에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미소를 기억하며 일평생 살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변화된 삶을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온전히 주님의 말씀에 이끌려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삶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죄의 사슬에 매여 신음하고 탄식하는 많은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과 함께 미소 지음으로 말미암아 참 사랑과 기쁨과 평강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나라를 지금 여기서부터 건설하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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