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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열나흘 간의 반전 드라마 (행 27:2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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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은 단순하지만
평범한 삶을 비범한 삶으로 바꾸어 놓는 놀라운 위력이 있습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바울의 비전은
결박과 광풍 앞에서도 체념과 한계의 벽을 허물고
가능성의 미래로 나아가도록 도전과 용기를 줍니다.
이와 같이 인생반전 드라마를 연출하는 하나님의 사람은
인생이 풀리지 아니할 때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릴 때
바울에게 그날 밤의 주의 음성이 들려오듯이
그날 밤의 성령의 조명이 비쳐올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알렉산드리아 호를 타고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호송 되어 가던 바울이 탄 배가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나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쯤 되면 아비규환을 질러다가 절망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은 다릅니다. 뭐가 다를까요?
세상이 깜깜해지면 하늘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23-24절 [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내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
이렇게 남다른 신앙의 노하우를 가진 바울의 고백이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시기 바랍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지고
열나흘 동안 배가 표류할 때 바울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
1. 열나흘 동안 바울의 마음은 어떠했겠습니까?(27절 침조/23-24절)
19절 20절에 보면 광풍만나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다 버리고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성경에 보면 사흘이란 시간이 종종 나타나지요
이 사흘이란 시간은 바로 인간의 한계를 나타내는 시간입니다.
작심 삼 일 이란 말이 있지요. 금식도 제일 힘든 시간이 삼일 째라고 하잖아요.
풍랑 만나 삼일 쯤 되니 이제 희망을 포기하고 낙심하여
배의 기구도 다 내 버리고 이제 절망상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바울이 무어라고 말합니까?
22절 [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
바울이 이렇게 사람들을 안돈시키는 말을 할 수 있었든 것은
23-25절
[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했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 고합니다.
이렇게 위로의 말을 하는 바울의 심정이 열나흘 동안 어떠했겠습니까?
마치 롬8:37절에
[ 넉넉히 이기느니라 ] 는 말씀처럼
유라굴로 광풍 속에서도 마음의 여유를 갖는 바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이 [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 했을 때
보통 때 같으면
백부장이 - 왜 그걸 지금 말하느냐? 고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된 현 상황에서 누구 한 마디 말 할 입장이 못 됩니다.
한 번 바꿔 생각해 보세요.
제 같아도 주의 음성을 듣자마자
할렐루야, 하면서 당장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나한테 특별 계시를 주었는데
여러분들이여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으니 안심하라 ] 고 하더라
그러나 바울은 계시를 받고서도 24시간을 기다립니다.
그것도 풍랑이 일어 전신에 지금 박살나는 판국에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지긋이 24시간을 기다립니다.
여기서 바울의 마음의 여유와 겸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마음의 여유와 겸손은 바로 바울의 신앙인격이요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인 것입니다.
저도 목회 하면서 절실히 느껴지는 것이
바로 마음의 여유와 겸손이구나 싶어요.
이 마음의 여유와 겸손은 바로 그 사람의 신앙인격이요
그 사람의 하나님의 축복의 그릇인 것입니다.
어느 군목의 간증입니다.
군목으로 임관되어 군인교회에 새로 부임을 해서 열심히 일을 하니까
그 부대의 사단장이 군목이 사역을 열심히 하는 것을 보고는
자기도 예수 믿는 사람이어서 그 군목이 기특해서
[ 아~ 목사님 제가 사단장으로서 목사님 무엇을 좀 도와드릴까 합니다 ]
이 사단장은 무슨 군목이 원하면 교회라도 신축해 줄 수 있고
주일날 사병들이라도 다 교회로 가도록 몰아줄 수도 있고
교회와 군목의 편의를 봐주려고 해서
[ 내가 뭘 도와드릴까요? ] 이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군목이 그 장군에게 부탁한 말이
[ 장군님 제 부탁 들어주시려면
주일날 교회 나오실 때 장군 예복을 입고 나오십시오.
다 입고 훈장 받은 것도 다 가슴에 차고
별도 번쩍번쩍 닦아서 붙이시고 나오셔서 주보를 나눠주는데
허리가 90°되도록 인사를 하면서 나눠주십시오 ]
생각해보니까 여러분 좀 그렇지 않습니까?
별 단 장군이 졸병들에게 굽신 굽신 한다는 것 이상하잖아요.
그러나 뭐든지 도와주겠다는 말을 했기 때문에
별단 장군 사단장이 교회 앞에 서서 병사들이 오는데
허리를 완전히 90°로 굽혀서 인사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렇게 한 주 두 주 했더니 그 교회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군대의 장군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심지어 하루 먼저 들어온 사람이 짠밥 그릇 수가 많다고
하루 뒤에 들어온 졸병을 기압 주는데
장군은 옆에 가도 덜덜 떨리는데
장군이 사병들에게 90°로 절을 하면서 주보를 나누어주면서
[ 어서 오십시오 어서 오십시오 ] 하니까
그 부대에 병사들 사이에 소문이 났습니다.
[ 야, 장군 인사 한번 받으러 가자, 90도 절하는 장군 보러 가자 ]
그래서 사병들이 주일날 교회로 몰려와서 교회가 크게 부흥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장군이 졸병한테 머리 숙일 수 있는 것은 바로 마음의 여유요 겸손인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높은 자가 되어서 낮은 자를 섬길 때
거기에 능력이 있고 거기에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축복의 의미입니다
그러고 보니 하나님이 바울을 왜 이렇게 낮추는지 이해가 좀 되는 것 같아요.

풍랑 만난지 열나흘이 되어 사공들이 육지에 가까워짐을 짐작하고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재어 보니 열다섯 길이 됩니다.
이건 무엇을 말합니까?
2.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는 말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 교훈은 무엇이겠습니까?(27-28절)
이제 캄캄한 절망의 늪에서 빠져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럴 때 배의 탄 사람들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 이제 살았다.
여러분 장기간 심하게 아파본 경험이 있습니까?
그럴 때 밤이 지긋지긋할 때가 있습니다.
왜? 곁에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밤이 얼마나 계속될까? 캄캄하니 분별이 안 됩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입니다.
그러면 한 시간만 기다리면 날이 밝아오는구나 하고 참습니다.
밤을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시계 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인생의 밤을 분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말씀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밤중에 부르는 노래가 있습니다.
시30:15절에
[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
사21:11-12절
[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뇨?
파수꾼이 가로되 아침이 오나니 밤도 오리라 ]
밤이 있으면 아침이 있습니다. 밤만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아침도 옵니다.
성도 여러분! 유라굴로 광풍 만나도 끝은 있다는 것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약5:13절 말씀처럼
[ 너희 중에 누가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할찌니라 ]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혹 아직 밤이니깐 바다의 깊이가 점점 얕아지니
배가 암초에 걸릴까봐 고물에 닻 넷을 주고 날이 세기를 기다립니다.
3.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는 모습과 바울의 충고의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29-32절)
상황이 조금 호전되어지니 사공들이 잔꾀를 부립니다.
지금이야말로 도망할 수 있는 기회다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놓았습니다.
여기에 고물은 배 뒷머리, 이물은 배 앞머리를 말하는데
거루는 지금 말로 하면 구명보트입니다.
그러니 사공들이 자기만 살려고 지금 잔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광경을 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군인들에게 저 사람들이 도망가면 다 죽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거룻줄을 끊어 구명보트를 떠내려가게 만들어 버립니다.
살만하면 도망가려고 하는 것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성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부르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란 책이 있지요
한 동안 한국교회에 야베스 기도의 폭풍을 몰고 온 책입니다.
야베스의 기도 한 번 암송해 볼까요? 대상4:10절
[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
마지막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란 기도
우리 성경대로 한다면 단순히
내 인생 가는 길에 환난이 없게 하소서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부르스 윌킨슨은 해석을 조금 달리 합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은혜의 순환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의 순환주기 중 최고조에 달할 때에
교만하다가 쫄딱 미끄러지는 일이 없게 하소서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낮은 데서 넘어지면 그대로 일어나면 됩니다만
높은데서 넘어져 떨어지면 일어나기가 훨씬 힘든 다는 것입니다.
형편이 나으니 도망치려고 하는 사공들
이것이 바로 부패한 인간의 모습이요
바로 우리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로 하여금 이물에 거룻줄을 끊어 버리게 합니다.
왜? 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더 잘 알아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에 이물에 거룻줄이 끊겨 지거든 - 하나님께 항복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날이 새니 완전히 상황이 바뀌어 집니다.
4. 열나흘만의 반전 드라마가 어떻게 나타납니까?(33-38절)
바울은 먼저 그들에게 음식을 먹으라고 권했습니다.
육신적인 힘을 얻으려면 양식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게 35절에
바울은 친히 떡을 가져다가 하나님께 축사하고 떡을 먹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축사하고 떡을 먹었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떡을 먹었다는 말입니다.
열나흘 동안 굶주리다가 먹는 떡 - 어찌 감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사람은요 형통, 형통하기만 하면 감사할 줄 모르는 것 있지요.
꼭 고생 실컨 하고 헤어나야만 그때 비로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지금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열나흘 만에 먹는 떡보다 더 위로가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바울의 위로의 말입니다.
34절 [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 ]
공포에 사로잡힌 그들에게 바울의 위로는
그들의 마음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환난 중에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해 줄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함께 한 사람들의 생명을 책임지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회학에서 쓰는 용어 중에 N-Virus란 용어가 있습니다.
설명하자면 어느 한 국가나 사회가 오랜 침체의 기간을 지속하여 오다가 어떤 계기를 맞아 비약적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그 공동체가 갑작스런 발전을 하게 되는 원인으로
N-Virus를 원인으로 들게 됩니다.
그 공동체가 오랜 세월 동안의 침체기를 지나 갑작스런 발전을 하는 데에는 N-Virus를 지닌 사람 혹은 단체의 공로로 인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바이러스는 병을 옮기는 바이러스입니다.
감기가 걸리는 것은 감기 바이러스에 감염된 탓이요
에이즈에 걸리는 것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탓이다.
그렇다면 N-Virus란 어떤 바이러스를 말하는 것일까?
N이란 영어의 Need란 단어에서 따온 머리글자입니다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 꼭 필요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바로 역경을 순경으로 바꾸어 놓는 데는
이 사회에 N-바이러스가 있듯이
하나님의 구속사에도 꼭 N-크리스천이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호의 바울같이 꼭 필요한 역전드라마의 주인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듣는 우리 모두가 N-크리스천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제 열나흘 간의 고난이 이제 순경으로 돌아섭니다.
여기에는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 바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한 배에 탄 276명의 생명이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까?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람 바울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나흘 간의 고투 속에 역전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배 안에 N-크리스천 바울이 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 어디서나 바로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 역을 맡은 자들입니다.
어떻게 열나흘간의 구원의 여망이 없는 상황 속에
구원의 여명을 가져오는 사람이 될 수 있었는가?
거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합니다.
1) 하나님의 비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나아가는 바울에게는
결박도 감옥도 유라굴로 태풍도 바울의 발걸음을 묶어 놓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의 심부름을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 리빙스톤이 그런 말 했지요.
[ 사람은 하나님의 사명을 다 감당할 때까지 절대 죽지 않는다 ]
믿으시기 바랍니다 !
비전의 사람, 사명의 사람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면 자녀들-예언 청년들-환상 아비들 - 꿈을 꾸듯이
성령의 은혜 받으면 비전의 사람, 사명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콜럼버스가 미대륙을 발견한 것은 그의 항해기술이 최고였거나
자금력이 풍부해서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비전이 있었고
그리고 비전을 향해 다른 누구보다 먼저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야 말로
나의 삶을 가장 최선의 드라마로 만들어 놓을 줄 믿습니다.
경희대 박물관장 이 석우 교수란 분이
박물관에 있는 예술 작품들을 가만히 감상해 보니
거기서 얻은 결론이 무엇인가? 예술혼은 창조자 만날 때 가장 빛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들고 예술 같은 걸작품 인생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려면
2) 그날 밤의 조명이 있는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울의 로마행은 첩첩 산중 같은 고난의 연속입니다만
그래도 그날 밤에 주께서 내 곁에 서서 가라사대
[ 네가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는 성령의 조명이 비춰주기 때문에
바울은 자신뿐만이 아니라
276명의 생명을 구원하는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어제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바울에게 한 말씀이 무엇입니까?
로마의 비전을 품고 가는 하나님의 사람 - 한 사람 바울 때문에
276명을 살려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요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입니다.
유라굴로 태풍 만난 열나흘 간의 사투, 이것이 우리 인생의 현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고군분투의 삶의 현장에
276명의 생명을 구하라고 우리를 보낸 것입니다.
열나흘 간의 역전 드라마의 주인공 바울처럼
우리도 은혜 받아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가슴에 품고
어려움 당할 때마다 그날 밤의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여러분들이여 안심하라 고 위로하며 살아가는
인생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는 깨어지고 맙니다.
5. 배가 깨어진 가운데 얻은 구원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39-44절)
파선 안 당하려고 노력은 했지만 해류가 합쳐지는 곳에는
뱃머리는 부딪쳐 움직일 수 없고 배꼬리는 큰 파도에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마 당시 지중해를 운항하는 알렉산드리아 호 -위세가 당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유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어지간히 큰 풍랑 다가와도
설마 알렉산드리아 호가 어떤 배인데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호도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내가 의지할 데가 있으면 하나님 의지 하지 않습니다.
돈이든 권력이든 재능이든 지능이든 젊음이든
그것을 의지하려고 하지 하나님 의지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런 것들은 언젠가 다 깨어지고 맙니다.
배가 깨어질 때 사람들은 다 그 배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죄수들이 탈출 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죄수들을 죽이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부장의 마음을 감동시켜 죽이지 못하게 합니다.
왜? 죄수 중에는 바울도 그 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로마 군대 백부장이지만
하나님의 불신자의 마음까지라도 움직이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44절에 보면 마침내 사람들이 다 상륙하여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
276명이 다 구원받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 나 때문에 몇 사람이 구원을 받았습니까?
창12:3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복의 근원 삼으시고
[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 고 했습니다.
오늘도 역시 나를 복의 근원으로 부르심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 때문에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되시기 바랍니다.
이 사회에 꼭 필요한 N-크리스천이 되시기 바랍니다. 역전드라마의 주인공-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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