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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질투심을 극복하라 (민 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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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민수기 1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브롯 핫다아와에서 하나님을 원망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를 먹지 못해서 하나님께 불평하자 하나님께서는 메추라기 떼를 불러서 한 달 동안 고기를 실컷 먹여 주시고, 먹은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끼어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앙을 내리셔서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민수기 11장을 요약하면 ‘백성들의 원망’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민수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닌 모세의 가족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의 형인 아론과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하세롯이라는 곳에서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래서 민수기 12장은 ‘형제들의 원망’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왜 모세를 원망했을까요? 사람의 모든 죄의 뿌리는 교만입니다. 교만은 영어로 pride라고 하는데 사람이 pride를 갖고 있다는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학벌이 좋아서, 집안이 좋아서, 혹은 우리 가정이 잘 되어서 pride를 갖게 되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사람이 아무런 자존감도 갖지 못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런 pride를 가지는 것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pride란 자기 자신에 대해 적극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입니다. 이 교만심, 즉 pride가 자기 자신으로 국한될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교만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기 시작할 때, 거기서 문제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한 단계 낮은 위치에 있을 때 비로소 만족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나도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걷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인생을 살다보면 어떤 영역에서는 내가 남보다 뛰어나지만 또 다른 영역에서는 남이 나보다 탁월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떤 영역에서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뛰어난 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문제를 일으킵니다. 질투심과 시기심이 일어나서 결국 상대방을 비판하고 원망하는 데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유명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에서 “교만은 매우 누르기 어려운 감정이다. 교만을 쳐서 누르고 가능한 한 교만을 죽이라. 그러나 교만을 다 죽였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 다시 교만이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교만이 다 죽어서 내가 겸손한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는 그 때에 자신이 겸손하게 됐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또 다른 교만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1. 원망과 비방의 5가지 특징

아론과 미리암의 문제도 궁극적으로는 교만입니다. 이들이 모세와 접촉할 때에,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인해 모세를 시기하고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어떤 이유로 모세를 비방했습니까? 1절 말씀에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스는 오늘날의 에티오피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구스 여자라는 말은 아프리카 여자라는 말입니다. 모세는 흑인 여자를 아내로 취했습니다. 미리암은 이를 가지고 모세를 비방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원망과 비방의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첫째로, 원망과 비방은 주로 은혜를 베푼 사람이 하기 마련입니다. ‘내가 은혜를 베풀었는데 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생각할 때, 원망과 비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미리암은 모세의 누이입니다. 모세가 태어났을 당시에 애굽왕은 히브리인의 모든 남자아기를 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모세의 어미는 그 명령에 따르지 않고 모세를 갈대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웠습니다. 그 때에 강가에 서서 갈대상자가 어디로 가는지 지켜본 사람이 바로 미리암이었습니다. 후에 애굽의 공주가 그 갈대상자를 취해서 모세를 끄집어 낼 때에 얼른 따라가서 모세를 위해 그 친어머니를 유모로 소개해준 사람이 바로 미리암입니다. 홍해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무사히 건너고 홍해를 뒤쫓아 온 군대가 모두 빠져죽었을 때, 소고를 치며 부르는 모세의 노래에 화답 한 사람도 바로 미리암입니다. 미리암은 이스라엘의 여선지자요, 모세와 함께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미리암은 모세의 생명의 은인이요, 모세의 후견자요, 모세의 누이로써 모세와 늘 함께 하며 그를 도왔던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암이 더욱 모세를 원망한 것입니다. 이처럼 ‘과거에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마음속에 원망과 불평을 갖기 십상입니다.

두 번째로 원망과 비방은 주로 가까운 사람을 상대로 합니다. 자기와 상관도 없이 멀리 사는 남아메리카나 푸에르토리코 사람을 비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가까이 있는 자신의 아내나 남편, 부모와 자식, 친척, 그리고 목사와 성도들을 비방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까운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봐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가서 잘 하는 것은 별로 소용이 없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나와 상관이 없기에 그들을 비방할 이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속에 지금 원망, 비방, 교만, 질투의 정신이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가까운 나의 가족, 친구, 성도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이렇듯 우리는 가까운 상대를 향하여 원망하기 쉬운 존재들입니다.

세 번째로 이 원망은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원망하면 온통 다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본문을 보면 아론은 미리암에게 이끌려 함께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를 향해 수군거립니다. 아론도, 이스라엘 백성도 뒤따라가면서 원망하게 만든 사람이 바로 미리암이었습니다. 우리가 앞장서서 원망을 하게 되면 이 원망은 결국 전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원망을 전염시킬 때 앞장섰던 사람은 나중에 벌 받을 때도 앞장서게 됩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벌을 받을 때 문둥병에 걸렸던 사람은 미리암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좋지 않은 것을 전염시키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로 비방거리를 찾으려고 달려드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들에게서도 결국 비방거리를 찾아내고 맙니다. 잘한 사람에게도 비방하려면 비방거리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모세는 인류 역사상 위대한 인물 중의 한 사람으로 뽑을 수 있는 훌륭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를 비방하였습니다. 예수님 또한 비방 받을 아무런 죄와 허물도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대제사장, 서기관들,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는 일 등을 트집 잡아 예수님을 비방하고 시기해서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비방하려고 마음먹으면 누구라도 비방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애초에 그런 마음을 갖지 마십시오. 사람은 좋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미리암과 아론처럼 남을 비방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면 그 과정과 결과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섯 번째 특징은 다른 사람을 향한 비방은 사실상 자신의 문제를 은폐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몇 해 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 목회하던 짐 베이커 목사가 TV에 나와서 전도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함께 TV에 출연해서 재미있게 방송을 진행하고 전도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이 목사가 성추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제가 목회를 하던 루이지애나 주에 있던 한 오순절 교회의 지미 스웨거트 목사가 짐 베이커 목사를 마구 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 이 지미 스웨거트라고 하는 목사가 짐 베이커 목사보다 더 큰 죄를 지었 던 것이 발각 되어 더 큰 망신을 당했다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지미 스웨거트 목사는 왜 짐 베이커를 비방했을까요? 자기의 죄를 은폐하기 위해서 더욱 짐 베이커를 비방한 것입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구스 여인을 취했다고 비방했지만 사실 근본이유는 그것이 아닙니다. 2절이 원인입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미리암과 아론은 모세의 지위를 질투했습니다. 모세를 시기하고, 모세에 필적할 만한 권력과 명예를 원했던 것입니다. 모세로 말미암아 자기들도 선지자의 대열에 서게 된 것을 감사하기는커녕, 도리어 모세를 비방하고 자신들도 모세 못지않은 존재임을 과시하기를 원했다는 것이 근본원인입니다. 이런 질투심의 근원이 바로 교만입니다. 사람이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해도 안 되지만, 자기를 너무 과대평가해도 안 됩니다. 자기를 과소평가하면 열등감에 시달리고, 과대평가하면 과대망상에 걸리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사람에 대한 교만심을 일으켜서 질투를 유발하고 결국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남을 비방하고 원망하는 죄에 빠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2. 질투에 대한 모세의 반응

그렇다면 이런 질투를 당한 모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3절을 보면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유함이라는 단어가 영어성경에서는 humble이라고 기록되었는데, 이는 ‘겸손하다’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겸손하고 어려움을 인내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민수기 11장에서 백성들이 원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부르짖느라 상당히 지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형제까지 원망하고 대드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제가 모세 같으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형님, 그리고 누이! 제가 한 두 살 먹은 어린애입니까? 내 나이 여든 둘에 저의 결혼문제, 가정문제까지 형님과 누이의 간섭을 받아야 합니까?” 그러나 모세는 오래 참는 인내심과 겸손함, 그리고 온유함으로 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바란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는 존 웨슬리와 조지 휫필드입니다. 두 사람은 목회의 방법이 같았고 구령의 열정도 똑같았습니다. 그러나 신학에 대한 이해는 달랐습니다. 존 웨슬리는 알미니안주의자요, 조지 휫필드는 칼빈주의자였습니다. 하루는 이 두 사람의 신학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던 한 사람이 조지 휫필드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웨슬리 목사님과 신학과 진리에 대한 이해가 다른데, 목사님께서 천국에 가시면 웨슬리 목사님을 만나실 수 있을까요?” 그러자 휫필드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마도 우리는 천국에서 웨슬리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을 것이고,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휫필드의 대답이 얼마나 온유한 것입니까? 비록 신학이 다르지만 웨슬리 목사의 능력과 영향력을 인정한 휫필드 목사의 태도는 매우 훌륭합니다. 모세의 태도 또한 이와 같이 온유하였습니다.

3. 질투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

모세의 온유함은 언뜻 보면 연약해 보이는 것이지만 결국 하나님의 개입을 불러왔습니다. 본문 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와 미리암과 아론을 회막 앞으로 나오라고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에 개입하셔서 첫째로 하신 일은 미리암과 아론의 죄를 드러내시고 모세를 변호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변호를 받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변호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내가 왜 너를 천국에 넣어주어야 하느냐? 너는 이런 저런 죄가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실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변호사가 되셔서 “하나님! 저 사람은 나를 믿는 사람이기에 저 사람의 죄가 나에게 모두 옮겨져서 십자가에서 이미 처리 되었습니다”라고 우리를 변호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변호는 단 한 번도 실패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변호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변호를 받는 사람은 복된 사람 인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암과 아론도 내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지만, 비록 그들이 선지자라 할지라도 꿈과 이상으로만 계시를 주실 뿐 모세처럼 직접 대면하여 은밀한 말로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권위와 존귀와 영광이 그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고 질투한 것은 그들의 죄이며 모세가 잘못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통해 미리암과 아론의 죄를 드러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원망과 비방은 우리의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는 죄를 깨닫게 하여 결국 죄를 자백하도록 만드십니다. 11절부터 12절까지를 보겠습니다. “아론이 이에 모세에게 이르되 슬프다 내 주여 우리가 우매한 일을 하여 죄를 얻었으나 청컨대 그 허물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소서 그로 살이 반이나 썩고 죽어서 모태에서 나온 자 같이 되게 마옵소서.” 아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흑인 여자를 취한 문제로 모세를 비방했지만, 이제는 모세를 “내 주여”라고 부르면서 자신들의 죄를 자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죄는 모세의 기도를 통해 용서를 받습니다. 13절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 주옵소서”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미리암과 아론을 향하여 그들이 받는 벌이 당연한 것이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쳐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얼마나 온유한 사람입니까?

결국 모세의 기도를 통해 미리암과 아론은 죄 용서함을 받았지만 죄의 흔적은 남게 되었습니다. 나무에 못을 박았다가 빼면 못자국이 남는 것처럼, 죄를 짓고 나서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할지라도 죄는 반드시 아픈 상처와 흔적을 남기게 마련입니다.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려 7일 동안 진 밖에 쫓겨나는 벌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버지가 딸을 부끄러워해서 딸의 얼굴에 침을 뱉은 사건으로 비유십니다. 아버지가 딸을 부끄러워해서 그 얼굴에 침을 뱉어도 그 수치를 씻으려면 일주일은 걸리는 것처럼, 미리암은 일주일 동안 진 밖에 쫓겨나 고생하다가 치료를 받고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드러내시고 변호할 사람 변호하시며, 죄를 자백하게 하고, 죄에 대한 적절한 벌을 내리신 후에 다시 회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결론

남을 비방하는 근원은 시기심과 질투심이며, 그 뿌리는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교만입니다. 성경은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이 교만해서 일단 자신을 높이기 시작하면 결국 고꾸라지기 되지만, 겸손하게 몸을 낮추면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올리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시기한 것을 작은 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것은 결코 작은 죄가 아닙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서 모세는 예수님을 나와 같은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인물입니다.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시기해서 비방한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죄를 크게 다루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공생애를 사실 때에 대제사장, 서기관, 사두개인,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능력과 이적을 마음 속 깊이 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인류의 근본 죄는 바로 시기심과 질투심이며, 이 시기심의 근원은 인간의 교만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므로 오늘 2006년을 새롭게 시작하시는 여러분들은 마음을 낮추고 겸손한 영으로 무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다음의 세 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비방하고 시기하는 사람들은 그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형벌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무서울진저”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비방과 시기를 당해서 억울하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모세처럼 온유함과 인내와 겸손으로 하나님께 모든 일을 맡겨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말씀이 윤리적인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비방하고,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비방을 그치고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하나님께서 세우실 것인데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고 선포한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2006년을 바로 살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겸손함을 가지고 예수님과 동행하시는 2006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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