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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주신 사명 (행 20: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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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믿음으로 사는 천국 시민이 된 우리는 “나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가? 나는 아직 육에 속한 젖먹이 신자인가, 은혜를 받은 장성한 신자인가? 사명을 깨닫고 충성하는 일꾼 신자인가,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신자인가?”를 항상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듭났습니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회개가 있습니다.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지만 죄를 회개하는 죄인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모두 다 장성한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젖먹이 신자입니다. 젖먹이 신자는 아직도 옛 사람이 살아있고 옛 습관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시기와 분쟁이 있는 교회는 바로 이런 젖먹이 신자들이 많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고린도전서 3:1~3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육에 속한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고 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육에 속한 젖먹이 신자들은 하루속히 은혜를 받아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를 받은 장성한 신자를 가리켜 ‘신령한 사람’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철저한 회개를 하게 되며, 거룩한 자가 되고 겸손한 자가 됩니다. 늘 감사가 넘치고, 예수 믿는 기쁨이 있으며, 행복한 모습이 얼굴에 나타납니다. 더 나아가 사명을 깨닫고 사명에 충성하는 일꾼이 됩니다.

여러분은 육에 속한 어린 성도입니까? 아니면 신령한 성도입니까? 사명을 알고 충성하며 사는 성도입니까? 아니면 사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신만 구원받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까? 아무쪼록 장성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지내는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고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하시니 그가 자리를 들고 걷게 되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이를 본 유대인들이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한다고 예수님을 핍박했습니다. 이에 대해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의 일은 선한 일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한마디로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시는 사역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12:11~12을 보면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죽으면 지옥으로 떨어지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이들이 죽기 전에 속히 살려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안식일이 따로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21을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하시면서 우리에게도 사명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은 사명을 가지고 충성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사명이 중요한 이유는?

1. 우리의 사명은 이 땅에서 예수님의 사명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8:18~20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지상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성도라면 영혼구원을 위해 힘써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2. 우리의 사명은 위대한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영혼구원은 마치 무거운 짐을 지는 것과 같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영광이기도 합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쓰임 받는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3:9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6:1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라고 했습니다. 또 고린도후서 5:20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라고 했습니다. 이는 천국의 대사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사도행전 13:22~23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다른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을 나눠주고, 병든 사람을 고쳐주며, 옷가지를 나누고 안식처를 제공하며 여러 가지로 구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전해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일입니다.

4. 영원한 중요성을 갖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영원히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느냐, 아니면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느냐가 결정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는 한 순간의 복락이나 고통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복락이냐 영원한 고통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일생일대의 가장 중대한 결단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명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5. 우리의 사명은 우리의 삶을 가장 의미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의 삶을 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우리의 삶을 보다 오래 남을 수 있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히 계속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세상은 머지 않은 장래에 모든 것이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예수 믿어 구원받은 모든 사람을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그 외의 예수 믿지 않는 모든 사람은 지옥의 심판을 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자신의 사명을 알고 충성하고 헌신한 사람은 천국에서 상급과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시라도 이 사명을 망각하고 산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삶을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24절에서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라고 자신의 결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6. 우리의 사명을 완수하는 날이 곧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이 되고 이 세상의 종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4:14을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몇월 몇일에 이 세상에 오시는지 조금도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이 말씀에서 분명한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믿고 안 믿고는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일단은 복음이 전파되고 나서 이 세상의 끝이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이 세상은 더욱 더 죄악이 관영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으로 인해 환난과 재난이 더욱 더 심해질 것입니다.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년보다 금년이, 해가 갈수록 더 험한 일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고 마음을 굳게 먹고 사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예수 믿고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들어질 것입니다. 더욱이 죄 많은 세상에서 우리의 어린 자녀들이 어떻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주일학교 학생들이 몇 천명씩 모입니다만, 전국적으로 아이들이 모이지 않아서 주일학교를 하지 못하는 교회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저의 어린 손주가 컴퓨터로 게임을 하며 또 인터넷을 사용하여 자신의 사진을 찾아내 “할아버지 보세요”하는 것을 보니, 우리의 아이들이 신앙을 지키며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 세상이 더 악해지기 전에 하루 빨리 예수님이 오셔야 합니다. 예수님이 속히 재림하게 하는 방법은 우리가 하루 빨리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영혼구원에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가 늘 이기적이 아니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걱정 없이 먹고 살게 해주세요. 건강하게 해주세요. 사업 잘되게 해주세요. 성공하게 해주세요.” 이처럼 밤낮 잘 살게 해달라는 이기적인 기도에서 벗어나 이제부터는 사명을 완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우리 하나님이 다 이루어주시고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1840년 리빙스턴은 런던 선교회 소속 의료선교사로서 남아프리카에 파송되었습니다. 이때 그의 나이 27세로 한창 젊은 나이였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의 발길조차 드문 곳까지 들어가 전도사역에 전력했습니다. 그러다가 전도와 의료를 겸하면서 아프리카 각지를 탐험하기 시작했고, 세계의 사람들에게 오지의 땅인 아프리카의 실상을 밝혔습니다. 그는 탐험을 계속하는 동안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1871년에는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스탠리의 수색 탐험대를 만나 구출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만날 때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리빙스턴은 이러한 자신의 경험으로 ‘사람은 자기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죽는 날은 사명이 끝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명을 완수하는 일에 있어서 죽음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이 신념을 가지고 계속 탐험과 선교를 강행했습니다.

새들벡교회의 릭 위렌 목사는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50년 이상 목사로 사역하셨고, 대부분 시골 중소 도시의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아버지는 평범한 설교자로 사명감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그 중에 아버지께서 가장 애착을 보이신 일은,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 해외에 작은 교회 건물을 지어주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동안 전세계에 150개 이상의 교회를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버지께서는 2년 전 암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한 주일 동안은 거의 24시간을 의식이 반밖에 없는 상태로 깨어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꿈을 꾸시면서 그 꿈에 대해 크게 말씀하시곤 했는데, 숨을 거두실 무렵 갑자기 생기가 돌더니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몸 상태가 너무 약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를 다시 눕혀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계속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시면서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해!”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 한 시간 동안 아버지는 그 말을 백 번 정도 더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야 해!” 나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의 믿음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아버지는 마치 명령을 하시듯, 약한 손을 뻗어 내 머리에 얹고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라! 예수님을 위해 한 명을 더 구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귀한 일에 쓰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 일에 우리도 관심을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장차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자신의 사명을 완수했음을 보고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정필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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