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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을 받으리니 (행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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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만큼 복잡하고 골치 아픈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인들 마음이 편할 날이 있습디까? 온갖 근심 걱정으로 가득한 세상, 뭐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지지고 볶고 하며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온통 세상살이로 우리의 생각이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세상을 나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 혼자 산다면 편하겠습니까? 생각 같아서는 혼자서만 있다면 무어 부딪칠 것도 없고 골치 아플 것도 없다고 생각하시겠습니까? 하지만 잠시는 좋은 것 같아도 나중에는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잡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제자들의 관심은 오직 세상입니다.
정말 끈질긴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한결같이 제자들의 관심이 그들의 나라 즉 세상일에 그토록 매여 있는지 모릅니다. 자 보십시오.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제자들에게는 오직 메시야의 왕국이 최대 관심사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도 그저 주께서 주의 나라에 임하실 때 다시 말해서 주께서 왕의 자리에 등극하시게 될 때 우리로 하여금 그 좌우편 자리 오늘로 말하면 장관 자리 하나쯤 차지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요청하다가 그 자리에 누가 앉을 것이냐로 다투곤 하더니 이제 주님이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 또 다시 그들은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좋은 자리 하나 차지할까 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요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으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바람이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이왕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는 김에 좋은  자리도 하나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남들로부터 존경도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앉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린들 거기서 예외겠습니까? 아니죠.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왕 주님을 믿는 김에 남들로부터 존경도 받고 남들 앞에 큰 소리도 칠 수 있는 그런 자리 하나 차지하고 싶은 마음 누구에게나 다 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으며 이왕이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편하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니 너희는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께서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너희는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정말로 남부럽지 않게 잘 살고 싶다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살고 싶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그것을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높은 자리에 앉고 싶거든 먼저 낮은 자리에 앉도록 하여라. 섬김을 받고 싶거든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라. 부유한 자가 되기를 원하면 먼저 나누어 주도록 하고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자가 되어라, 사랑을 받기를 원하면 먼저 생명까지도 나누어 주는 자가 되어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

그것을 이미 주께서는 실천하셨습니다. 가장 존귀하신 분이 가장 낮고 천한 자리로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자기의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서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면서까지 원수된 자들을 위해서 “저들을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주님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는 기록하기를 “그는 주님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실 때 어찌 고운 모습으로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하지만 주님은 가장 볼품없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가 겪을 모든 고통을 그 몸에 짊어지고 사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주님에 대해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 주님이신들 남들처럼 변명이나 항변 한 마디 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을 끝까지 입을 다무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평화를 누리고 고침을 받도록 하기 위해 이 처절한 고통을 대신 당하셨던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바람은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런 주님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존귀하신 자리로 올리우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며 또한 사랑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앞에서 존귀한 자라고 하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주시는데 거기서 우리가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를 다하기만 하면 다시 말해서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아니하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서 누가 존귀한 자가 될 것이냐 누가 가장 귀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냐에 관심을 쏟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누가 가장 먼저 섬기는 자가 될 것인가 누가 더욱 낮아지고 앞장서서 희생하는 자가 되느냐에 관심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누가 나를 비난합니까? 누가 나를 모욕하고 욕보입니까? 잠잠하십시오. 그들 앞에 변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거리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단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 바라며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끊임없이 용서를 선포하십시오.

왜 그래야 합니까? 그것이 바로 가장 존귀한 자가 되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자가 되지 않고서는 섬김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낮은 자리에 서지 않고서는 높은 자리에 오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종하며 겸손함으로 허리를 동이는 자만이 주님으로부터 존귀함을 받을 받게 되고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될 때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맡기시게 되더란 말입니다. 그리고 용서를 베푸는 자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세상에 더 이상 매이지 마십시다. 세상일 때문에 울고 웃는 자가 아니라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나의 삶을 온전히 드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들에서도 복을 받고 성읍에서도 복을 받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충성된 종이요 기쁨으로 순종하며 섬기는 종의 자리에 있음을 기뻐하시고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을수록 남들 앞에서 귀한 직분을 맡은 자가 될수록 더욱 겸손하게 오직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백성들이요 복된 자녀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서, 그리고 마침내 땅 끝에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일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다면 반대로 주님의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로 시선을 돌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비결은 바로 성령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님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섬기는 자로서 살 수가 있습니까? 주님의 은혜로서만 가능합니다. 어떻게 원수마저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가 있습니까? 주님의 은혜로서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아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우리는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은 이미 성령의 사람인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성령의 사람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미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또한 믿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능력을 받고 라고 주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약속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이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능력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성령의 능력을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에는 깨닫지 못 하던 것을 알게 되었고 전에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나를 모욕하는 자에게 참을 수가 있고 나에게 고통을 주는 자를 용서할 수가 있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고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악한 마귀를 대적하고 멸할 수가 있습니까?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령의 능력을 지니고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바로 증인 된 삶입니다. 중인된 삶이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주님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단지 말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저 사람이야말로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죽여야 할 사람까지도 끝까지 용서하고 사랑을 베푸는 그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처럼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왜 어렵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오히려 그 수고가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수고하고 땀 흘리는 것이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섬기며 베풀고 나누는 것이 오히려 기쁨이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것이 내가 그것을 즐거움으로 알아야지 하고 마음을 먹는다고 되는 일입니까? 아니죠.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 성령의 능력에 사로잡혀서 살아갈 때 우리가 그 모든 일을 기쁨으로 섬기게 되더란 말입니다.

태신자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누구를 마음에 두고 계속해서 주님께 기도하면서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할 때 우리는 소위 간도 쓸개도 다 빼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성령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혜도 주시고 은혜도 베풀어 주셔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할 수 없다고 주저앉겠습니까? 아니죠. 이미 성령이 내 안에 계신데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내게 있는데 내가 주저앉을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 능력을 힘입으면 됩니다.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시도록 맡겨드리면 됩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었던 일도 오히려 편안하게 쉽게 할 수 있게 되더란 말입니다. 용서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들더란 말입니다. 베풀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왜 내 안에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왜 우리 안에 갈등이 있고 괴로움이 있습니까? 성령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딴청하면 괴롭습니까? 성령의 능력 때문입니다. 성령이 내 마음을 사로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괴로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힘들어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내 마음을 감동하시는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아니 이미 주어진 말씀대로 순종하고 섬기고 베풀고 용서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축복하며 섬기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왜 전도는 힘들다고 생각합니까? 너무도 쉽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만 하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는데 그것을 잘 아는 마귀가 내 생각대로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지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귀의 이끄는 대로 살아가겠습니까 아니면 성령이 이끄는 대로 살아가겠습니까? 당장의 모습을 보면 내 마음대로 즉 마귀가 유혹하는 대로 살아가면 참으로 편하게 느낍니다. 그러면 더 편한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해보고 나면 어떻습디까? 마음이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지를 않습니까? 용서하지 않고서는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지를 않습니까? 남들 앞에서 큰 소리 치기는 했어도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면 내 마음이 어떻습디까? 정말 큰 소리 치기를 잘 했다 내 주장을 내세우기를 잘 했다 하는 마음입디까? 아니었지 않습니까? 참을 걸 그랬네 하는 마음으로 후회를 하게 되지를 않습디까? 그래요 그래서 지금 당장은 힘든 것 같아도 내 마음을 울리는 성령의 소리에 순종하게 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란 말입니다. 오히려 욕을 먹어도 기쁨이 내 안에 가득 차고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당장은 분하게 느껴져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때 내가 참기를 잘했지 하는 마음도 들고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안에서 살아가게 되면 그래서 내 마음을 감동하시는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면 그 즉시로는 힘들게 느껴져도 이윽고는 그것처럼 기쁘고 즐거운 일이 없더란 말이죠. 그리고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끼다가 이윽고는 고개를 끄떡끄떡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 저게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의 모습이야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감동은 이윽고 그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기틀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면 우리가 땅 끝까지 이르도록 증인이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따라 우리는 땅 끝까지도 직접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가지는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사람을 보낼 수 있습니다. 필요한 물질로 도울 수 있습니다. 또 멀리서 그 능력의 현장이 주님의 승리의 현장이 될 수 있도록 기도로 도울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증인된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제 오늘부터 시작되는 태신자 전도 운동은 바로 그런 성령의 인도하심을 체험하는 기간이 될 것입니다. 오직 두려운 마음을 버리고 주님의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노라면 생명을 건져 구원하게 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주님이 가장 바라시는 바 이이기도 하기에 더욱 큰 은혜로 주님이 저와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깊이 기도하시면서 누구를 마음에 품을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그냥 단순히 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내 안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냥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이끄심을 따르기 바랍니다. 그러면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는 왜 안 됐습니까? 내가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단지 주님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나를 사용하시도록 맡기기만 하면 그리고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섬기며 겸손으로 허리를 숙이기만 하면 주님이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으로 말미암아 이 놀라운 승리에 함께 참여하시는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셨습니다.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하늘을 쳐다보면서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하늘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너희가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반드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약속하신대로 다시 오실 것이요 그날에 우리 모두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날에 이 기쁨의 잔치에 빠지는 사람 하나도 없이 우리 모두 하늘나라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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