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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리석은 자 (시 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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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29일 소련 연방 최고회의는 찬성 283표, 반대 29표, 기권 52표라는 표결로 모든 공산주의와 활동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하였습니다. 공산주의 종주국가에서 공산주의 신봉자들의 손으로 공산주의를 사형시킨 것입니다. 이어서 소련의 여러 공화국들에서는 레닌의 동상을 끌어내리고, 그의 초상화를 불태우는가 하면, 낫과 망치고 그려진 공산주의의 붉은 깃발을 내리고 대신 러시아 고유의 삼원색 깃발이 모스크바 창공에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태를 세계의 매스컴들은 연일 톱뉴스로 다루면서 마르크스와 레닌의 치욕적인 파산, 레닌주의의 종말,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사망선고, 공산주의의 조종(弔鐘) 등 여러 가지 용어를 동원하여 이 세계사적 변혁의 장면을 묘사하였습니다.

돌이켜보면 1900년대, 곧 20세기에 있었던 공산주의의 발흥과 몰락이 우리에게 역사의 아이러니를 정확히 실감하게 하였습니다. 1917년 당시 소련의 수도였던 상뜨뻬체르 부르그(St. peters burg)에서 볼셰비키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레닌은 이듬해(1918년) 러시아 공산당의 기치를 내걸고 지구상에 최초로 사회주의 공산국가를 수립하여 바야흐로 세계 공산화의 야심찬 발길을 내딛었습니다.

한 때 사회주의 지상천국을 부르짖으며 세계 지도를 붉은색으로 물들여 가던 공산주의가 그 심장부에서 붕괴되면서 74년 만에 조종을 울리고 말았습니다. 이 세기적인 역사의 현장을 사람에 따라서는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공산주의의 취약성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권자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성경계시의 척도에서 관찰할 때 이는 필연적인 하나님의 심판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중에 두지 않고 무신론적 사관(史觀)에 근거하여 세계를 주도하려는 세력들이 일어날 때마다 성경은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 2:4)하고 하나님의 심사를 나타내곤 하였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침묵 속에는 인간의 불순한 생각과 패역한 행동을 감찰하시는 눈과 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성경의 저자 다윗은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들이 종횡무진으로 부패하고 가증된 소행을 저지르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굽어 살피시며 그 중에도 지각이 있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하나님이 없다고 단정한 사람들의 무지하고 무모한 행동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신경을 날카롭게 자극하며 종말을 자초하는 것 같은 불길한 징후가 나타납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세력을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한 자”라고 하였습니다(롬 1:22).
여기서 우리는 “어리석은 자”, 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곧 자기뿐만 아니라 모두를 불행하게 하려고 날 뛰는 자들의 실제와 그 결국이 어떠한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I. 하나님이 없다 하는 자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인 하나님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또 사실 하나님은 인간의 판단에 따라 있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자존자일 뿐(출 3:14) 어떤 피조물이나 다른 세력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런 판단 위에서 행동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1) 어리석은 자입니다.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자”라는 말(ל󰔧󰗺 나발)의 어원적 의미는 “미련한 자”를 뜻합니다.
이 말은 세상적인 무지보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강퍅하고 무디어져 있는 영적상태를 뜻합니다. 사무엘상 25:25에 “원하옵나니 내 주는 이 불량한 사람 나발을 개의치 마옵소서 그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28에는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셨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마음의 소유자는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자”라고 하였습니다(롬 1:25).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 신명기 32:6에 “우매무지한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너를 얻으신 너의 아버지가 아니시냐 너를 지으시고 세우셨도다”고 하였습니다.

(2) 사탄의 사주를 받은 자입니다.

사단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이면서 매우 교활하게 사람을 충동하여 자기의도대로 행동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까지 찾아와서 아담과 하와를 설득하여 자기편으로 만들었습니다(창 3:1-6). 엄연히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면서 의도적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하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처럼 사단에게 접촉되기만 하면 그 때부터 하나님을 불신하게 되고 사단의 말이 맞는 것으로 믿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창 3:6).
사단은 본래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사인데 자기의 지위를 이탈하고 타락하므로 마귀가 되었습니다(유 1:6). 계시록 12:9에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4에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3) 무신론자입니다.

지금은 몰락했지만 한 때 세계를 공산주의 혁명으로 붉게 물들이려 했던 세력들이 무신론자입니다. 공산주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마르크스(K. Marx)나 엥겔스(Engels)는 하나님이 없다고 말한 자들입니다. 레닌(Lenin)은 이들의 이론을 행동에 옮겨 공산주의의 정치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공산주의(Communism)란 말은 원래 물건을 공동으로 균등하게 가지자는 재산공유사상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혹자는 오순절 이후 초대교회가 유무상통한 것(행 2:44-45)이 공산주의의 원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중심의 사상에서 은혜 받은 사람이 감사함으로 헌신하는 신앙 행위요, 자원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살피고 돌보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렇지만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들은 이와 같은 원리를 무시한 채 경제 균등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경제의 불균형은 자본주의와 노동자간의 격차에서 생긴 것으로 보고 가진 자들의 독점을 무너뜨려 못가진자에게 배분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 경제적 불균형을 없애는 방법은 오직 투쟁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공산주의 체제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심지어 종교까지도 경제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보았으며, 오직 ‘배고픈 자에게 빵을 주라’는 구호로 혁명이나 투쟁의 노선을 합리화 했던 것입니다.

Ⅱ. 부패하고 가증한 자입니다.

“저희는 부패하며 가증한 악을 행함이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하였습니다. 원래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가 두절되고 사단과 합력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상실된 자로서 부패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레미야 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가 가증하고 악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1)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다.

요한1서 3:4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생의 도리를 묻는 사람에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라”고 하였습니다(마 19:1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계명은 모세의 율법과 십계명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면서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는 안중에 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오직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다’는 논리로 법과 상식을 초월하는 행위를 자행합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무신론적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불법과 폭력행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파괴와 죽음을 초래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걸고 많은 사람의 호응을 받는 다 하더라도 법을 어기거나 짓밟는 행위는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7:22-23).

(2) 혈육을 권력으로 삼는 자입니다.

예레미야 17:5에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의 공통점은 인간을 내세우며 자기가 만능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는 ‘하나님이란 존재 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니체(Nietzsche)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하였습니다. 야스퍼스(Jaspers. Karl)는 ‘하나님이 앉아 있던 높은 의자에는 인간이 앉아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있게 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게 되면 스스로 자기의 존재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결과가 되고 맙니다. 인간이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부정하던지, 무지해서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던지, 그 마음속에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는 무능한 자기를 최상의 능력자로 착각하고 온갖 무리수를 감행합니다.
홍수 이후 노아의 자손들이 시날 땅에서 바벨탑 공사를 시작했습니다(창 11:1-9). 그들은 성과 대를 쌓고 그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일의 주동자들은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는 목적으로 인간 동맹을 구축하였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므로 흐지부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눈을 감겨 놓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동맹을 맺어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위 다수주의의 횡포가 판을 칩니다. 거짓과 선동을 일삼으며 인간의 숫자를 가지고 하나님께 도전하는 무모한 세력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3) 양심이 화인(火印)맞은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의 현상 중 하나가 양심 없는 자들의 활동이라고 보았습니다.
디모데전서 4:1-2에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양심이 무디어져 버리면 감각을 잃게 됩니다. 본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고 하였습니다(롬 1:19).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핑계할 수 없는 사실이 입증되어도 이를 한사코 거부하고 부당한 주장을 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감행하는 것은 그 양심에 화인 맞은 것을 의미합니다. 시편 49:20에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다”고 하였습니다.

Ⅲ.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자입니다.

본문 말씀 5절에 “너를 대하여 진 친 저희의 뼈를 하나님이 흩으심이라”고 하였고, 또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신 고로 네가 저희로 수치를 당케 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1) 심판과 멸망의 경고

지구상에서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했던 개인이나 나라는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고 결국 멸망당했습니다. 그 중에도 붉은 용의 세력으로 가장 강력하게 세상을 휩쓸었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된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증거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늘날 공산주의 종주국인 러시아와 중국,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 그리고 동유럽 나라들과 아프리카 지역까지 하나님이 없다고 했던 그곳에 수많은 선교사들이 들어가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으로 보아 역사를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북한입니다. 한 때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렸던 평양이 주의 종들을 죽이고 교회를 박멸하는 무신론 집단의 마지막 거점이 되어졌습니다. 마치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탄식하신 예수님의 예언이 거기에 맞추어진 것 같습니다(눅 13:34-35).

천하 만민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권을 행사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저버리고 배도의 길을 걸었을 때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바벨론에 포로가 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그 후에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그 죄 값으로 AD 70년 예루살렘이 폐허가 될 때 그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는 세계사에 기록될 만큼 참혹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주변에 되어 지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의 심판이 맞추어지는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입니다.

(2) 우리에게 주는 경고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 의해서 갈릴리 사람들이 억울하게 학살당한 일을 두고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눅 13: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행한 사태들을 보고 자기 백성들에게 경고의 싸인을 보냈습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이 없다고 말하는 무신론자들의 준동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선지자의 소임을 다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는데도 거기 표적이 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한 채 무사안일에 빠져 있다면 엄청난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 됩니다.

오히려 이를 알고도 묵인하거나 은근히 동조하는 세력이 있을 때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이사야는 “그 파숫군들은 소경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라고 하였습니다(사 56:10). 선지자 아모스는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암 5:13).

결국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어리석은 자들의 무신론적 행위보다 그들을 향하여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선지자적 사명을 수행하여야 될 교회와 성도들의 책임을 엄중하게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손상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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