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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두운 세상 속의 빛 (창 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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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는 산상수훈에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다. 그 말은 세상의 빛이 되라는 의미도 아니고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아니다. 이미 세상의 빛이 되었으니 세상을 향해서 하나님의 빛을 발휘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우리들이 당신의 흠 없는 자녀로 살기를 원한다고 하신다.(빌2장15절)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당신의 자녀를 세워 세상에 자신의 빛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꿈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밝히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소망을 이루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

노아가 그런 삶을 살았다. 온 세상이 어두움 속에 있을 때에도 노아는 빛으로 살았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를 들어서 사용하실 수 있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으로 지으셨고 그의 형상대로 지으셨다. 그것은 바로 우리 인간을 통해서 당신의 꿈을 펼치시겠다는 뜻이다. 그 일은 어두움 속에서도 빛으로 세워진 자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직접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영적인 제사를 드릴 수 있고 말씀을 선포할 수도 있으며 평신도로서 양육을 받아 다른 평신도를 훈련시키고 그들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오직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2장9절을 보면 우리를 택하신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그의 소유된 백성라고 하셨다. 그런데 ‘거룩한 나라’가 되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거룩하지 못하면 이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주위를 돌아 보면 온통 어두움과 죄악으로 가득 차있다. 이 가운데서 거룩한 삶을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Leadership magazine이라는 목회자들을 위한 잡지를 보면 미국 문화가 얼마나 sex로 가득 차 있는지를 쉽게 볼 수 있다. 내가 성적으로 모범적이라는 사람은 42%에 불과하고 첫번째 date에서 sex를 경험하는 경우는 20%이상 이며 매일 성인 web site에 취해 있는 자들이 무려 11 million명이라고 한다. 또한 성인 중에 다른 배우자와 성생활을 매주 즐기는 자가 26 million명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sex를 경험하는 자녀들이 65%에 이르며 모든 TV방송 중에 성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분량이 70%이상에 이른다고 한다. 하나님께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그리고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간구할 때이다. 또한 우리 모두가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우리의 영적 신분과 순결의 기준을 잘 간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빛으로 세워져 있고 하나님의 사용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이 이 어두운 세상을 보시고 모든 것을 심판할 수 밖에 없었던 세상 속에서 노아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우리는 그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첫째, 그는 하나님의 기준을 희석시키지 않았다.

하나님은 세상에 피조물 지은 것을 한탄하셨다. 너무나 부패하고 죄악이 관영하여 모든 것을 돌이킬 수 밖에 없었다. 6장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고 했다. 어느 시대라도 하나님의 아들들, 즉 그의 백성들이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할 때에 문제가 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둠은 단 몇개의 등불만 있어도 밝힐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면 심판을 피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를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 6장1절을 보면 사람들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하면서 점차적으로 나빠져 갔다고 하였다. 조금씩 희석되었다는 말이다. 가나안의 우상과 정욕의 힘을 이기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완전히 제거하라고 요구하셨다. 사사기를 보면 훌륭한 정치를 하였던 많은 왕들이 산 위에 있는 우상의 산당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라를 망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거룩의 기준을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라고 요구하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다. “이 정도면 되었지. 남들보다는 훨씬 나으니까…”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이스라엘 왕들과 그 민족들만 탓할 수 있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엡5:3)고 하였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말하기를 ‘이 말씀은 맞지만 현실적으로는…’라고 한다. 이것이 희석이다. 희석하는 순간 우리는 넘어지게 된다. 노아야말로 가장 좋은 핑계를 댈 수 있었다. 그의 온 주위가 완전한 부패로 가득하였다. 그러나 노아의 환경은 최악이었지만 그는 결코 그것들에 물들지 않았다. 우리는 결코 환경을 탓할 수 없다. 노아는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과 완전한 동행을 이루었다. 우리의 기준을 하나님의 기준에 맞추고 하나님 앞에서 훈련받고 기도하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의로움으로 인도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바다 속에 있는 물고기를 보라. 주위는 온통 소금물이지만 물고기의 몸 속에는 깨끗한 물이 유지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아무것도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 앞에서 세상의 모든 빛은 오히려 그림자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거룩함과 깨끗함은 세상의 것과 결코 비교할 수 없다. 다른 핑계를 말하지 말라. 오직 거룩한 결단과 소망을 하나님께 드림으로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하자.

둘째, 그는 심판하실 하나님을 믿었다.

노아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조롱과 욕을 들었을까? 그리고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지독한 모욕을 당했을까? 노아는 어떻게 인내할 수 있었을까? 바로 홍수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거룩한 두려움(Holy fear)을 갖고 산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하나님은 심판의 주이시다. 그의 앞에서 정신을 차리자. 사도신경을 신앙고백하면서 심판하러 오실 주님을 진짜 믿는다면 이렇게 살 수 없다. 물론 사람이기 때문에 실족할 수 있지만 죄와 더불어 살 수는 없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때론 사랑의 매가 감사하다. 그래야 정신을 차릴 수 있다. Speed Limit을 보고 잘 지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잘 지키지 않다가도 Back mirror에 police officer가 보이면 모범적인 Best driver가 되지 않는가? 이것이 우리 인간들의 참 모습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야만 한다. 심판의 홍수가 갑자기 밀려온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도 갑자기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한다. 깨어 있어서 주님의 빛이 되려면 이같이 거룩한 두려움이 있어야 한다. 오늘 이시간부터 그렇게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셋째, 그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창세기에서는 노아를 소개한 이후부터 구원의 하나님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과 동물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 그리고 방주를 짓는 방법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언약을 세우고 하나님의 Kindom을 어떻게 이루어 가실 것이지를 소개하고 있다. 심판 중에 구원의 소망이 보이는 것이다. 노아는 이 구원을 보았다. 베드로후서2장5절에는 노아가 120년동안 방주만을 지은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받아 들이라고 외쳤다고 하였다. 복음을 들고 구원의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빛을 들고 새벽별처럼 빛날 수 있었다. 복음의 열정과 십자가의 구원 기쁨을 갖고 그 메시지를 전파하고저 할 때에 하나님은 능력을 주신다. 우리 주위에 능력과 간증과 기쁨이 충만한 사람들은 대개 선교를 다녀온 성도들이다. 전진하는 다락방은 전도와 복음의 기쁨이 충만한 곳이다. 새생명 잔치는 어떤 면에서는 우리 자신들이 살기 위한 길이기도 하다. 슬럼프에 빠지고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우리들이 구원의 기쁨을 회복하고 복음의 열정을 회복하기 위한 길이 된다. 새일꾼반에서는 주로 구원의 기쁨과 구원의 확신을 다루고 이를 체험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훈련 과정이 있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감격과 기쁨과 힘이 식지 않고 지속되는 교회이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히 전하던 바울처럼 복음의 사신들이 되자.

일본에서 사역하는 후배 목사가 전해준 글(짐 엘리엇 선교사)을 소개하고 싶다.

‘O God, I pray thee, light this idle stick of my life and let me burn for thee. Consume my life, for it is thine. I do not seek a long life, but a full one just like you, Lord Jesus.’

짐 일리엇은 29세에 순교한 선교사이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다. 결코 꺼져가는 불길로 남고 싶지 않다. 훨훨 타오르는 불길같은 삶을 살고 싶다. 짧게 살아도 하나님 앞에 확실하게 살고 싶다. 우리 교회가 주님의 Kingdom Dream을 위해서 그렇게 의미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욱 위대한 비전을 가져야 소망이 있다. 3세대가 함께 주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자리가 있어야 한다. 이민 2세를 책임진다는 말 뒤에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정말로 그들을 살리는 교회가 되자. 우리에게는 태울 수 있는 불이 있어야 한다. 100년전 Azusa와 평양의 부흥이 우리 교회를 통해서 전세계로 다시 퍼져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김승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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