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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십자가 (창 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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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안합니다 하나님 우린 너무 자랐어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건방지기 짝이 없는 인간의 돼먹지 못한 수작이라고 할 수 있는 그 글 가운데 일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아시겠습니까? 당신이 세상을 지으신 이래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사람은 과학적으로 상당히 발전했어요. 우리는 자그만치 원소를 103개나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원자를 분열시켰습니다. 그래서 우주 안에 숨어 있는 가장 거대한 힘을 뽑아냈지요...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우주를 정복하는지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무서운 질병들을 물리쳤는지 보십시오! 지금도 우리는 해마다 새로운 치료법을 발견한답니다. 그리고 인간 관계 분야에서 우리가 이룩한 놀라운 업적을 보십시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십계명’ 같은 것은 필요 없습니다. 성숙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돌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우리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정신과 의사들도 있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이제 우리가 너무 많은 관심을 하나님께 기울인다는 것은 어리석고도 시대에 뒤진 짓이 된다는 까닭을 하나님께서도 아실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리게 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만 그러나 이것이 진보라는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도 이 이야기에 동의할 수 있습니까? 아니 과연 하나님께서 어느 정도 수긍하실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까? 참으로 가소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인내를 통해서 어른으로 성장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는 인내를 가지고 그 아기가 성장하기를 기다리지 않습니까? 부모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되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의 우리가 있게 된 것도 알고 보면 하나님의 인내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말하고싶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무던히도 오래 참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후 또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지으시고 친히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 앞에서 감격한 시편 기자가 외쳤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시 8:4) 그러나 얼마 못가 인간은 그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교만한 마음 때문에 범죄했습니다. 타락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등을 돌렸습니다.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세계가 죄악이 지배하는 더럽고 추한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내는 참는 것입니다. 인내는 오래 참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그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에 대해서 무던히도 오래 참으셨습니다. 인간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은 도무지 돌이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인간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갈수록 악해지는 세상을 심판하시고 재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놀랍게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결코 멸망이 아니었습니다. 재창조를 위한 심판이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노아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노아를 부르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구원의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렇게 큰 방주를 지으라고 지시하신 까닭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참으로 순종하기 곤란한 지시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첨단 장비를 두루 갖춘 조선소에서 배를 건조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작업은 엄청나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지극히 비효율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물로 세상을 심판하리라!”

  인간은 과거, 현재, 미래 이 세 가지 시간 중 어느 한 가지 시간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살기 쉽습니다. 그러나 어느 한 가지 시간에 편중된 삶은 결코 건강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마치 좋은 음식도 골고루 먹지 않고 편식할 것 같으면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처럼... 때문에 시간에 대한 균형 잡힌 생각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먼저 내가 어떻게 여기에 설 수 있게 되었으며 내가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삶을 출발점으로 하여 미래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바로 그 점을 깨우쳐 주셨던 것입니다. 멸망시켜 마땅한 세상에 심판의 매를 드시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노아와 그 가족을 구별해 놓으셨습니다. 또 혈육 있는 모든 생물도 그 생명을 보존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들 모두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방주를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과연 심판은 새로운 구원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때문에 노아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구원하셨으며 어떻게 그에게 새 생명을 허락하셨는가 하는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세계를 다시금 새롭게 세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마음 속에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는 상상력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새로운 걸음을 시작하는 노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창 9:11) 그 말씀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더욱 놀라운 구원 역사를 펼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약속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다만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의 증거도 친히 그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홍수가 쓸고 간 심판의 자리 한복판에서 노아는 그 약속의 증거인 무지개를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도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매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돌보신다는 사실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약속의 증거를 분명히 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가 그친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무지개를 바라볼 때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의 말씀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그리고 구원하시는 능력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옛날 노아에게 약속의 증거인 무지개를 보여 주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구원의 무지개를 보여 주십니다. 갈보리 십자가, 그 놀라운 사랑에 이끌려서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은 오늘도 그 구원의 무지개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찬란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약속의 증거라면 그 흉한 십자가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마땅한 우리를 멸하시지 않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노아의 방주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또 약속의 증거인 무지개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죄로 물든 세상에 구원을 베푸시려고 노아로 하여금 방주를 만들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또 그 방주를 통해서 무서운 심판의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방주는 심판과 재창조를 뜻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보여 주시면서 사랑과 은혜의 소망에 관한 메시지를 이 세상에 전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갈수록 어두워져가는 이 세상을 밝히도록 마침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랑의 무지개, 즉 십자가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로하여금 세상으로 나아가 그 십자가의 사랑을 증거할 것을 지시하십니다. 우리는 십자가로 세상을 변화시키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부르심을 받은 까닭은 바로 그 구원의 십자가를 높이 들고 세상으로 나아가 그 사랑을 전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보리 십자가 사건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사건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죄값으로 벌을 내리신 사건이라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 사랑의 십자가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받아야 마땅한 벌을 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지우신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노아에게 무지개를 보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해서 그 십자가를 바라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너희를 내가 다시는 심판하지 않으리라!” 그 사랑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주님과 함께 세상 끝날까지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다짐하는 여러분 모두의 삶의 현장에 주님이 주시는 놀라운 사랑과 기쁨이 항상 넘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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