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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앞으로 전진 합시다 (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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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5년 봄에 언더우드 선교사님께서 한국에 처음 발을 디디시고 전도하시면서 새문안교회를 설립하시고 10년 후 1894년 3월에 김포에 교회를 개척하시고 초대 당회장이 되셨습니다.
오늘 뜻 깊은 교회창립기념일을 맞아서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면서 역사 깊은 우리교회가 계속 성장하기를 기대하면서 ‘앞으로 전진 합시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할 때 피차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물은 흘러가야 살아있는 물이 되고 나무는 자라나야 살아있는 나무입니다.
곡식은 열매를 맺어야 하고 삶은 발전해야 합니다.
성장해야 하는데 성장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 아프고 슬픈 일은 없습니다.

***** 열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식탁 위에 올라가서 기어 다니는 모습을 보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저 아이가 왜 저럽니까?”하고 물으니까 그 아이는 열네 살인데 지능이 두 살 까지 밖에 성장하지를 않아서 하는 행동이 그렇다고 하면서 그 부모의 마음이 못질을 당하듯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네 살이 되었으면 열네 살 만큼의 지능도 성장되어야 하는데 생각은 두 살인 아이를 보면서 참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라야 합니다.
사업도 자라야 재미가 있고 나라도, 경제도, 정치도, 지식도, 자라야 발전합니다.
자라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사람은 성장 속에 가치가 있고 보람이 있습니다.
어렵고 힘들다고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정체되어있는 어려움은 더 큰 어려움입니다.
성장하지 않고 있는 고통은 전진하는 고통보다 몇 십 배나 더 어렵습니다.

어느 분이 사업을 하면서 가게에 너무 손님이 많이 와서 몸이 피곤하고 지쳤다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하기에 그건 감격스러운 고통인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손님이 없어서 하루 종일 기다리면서 쉬고 있는 고통은 일하면서 피곤한 고통보다 말할 수 없이 괴로운 고통이라고 했더니 맞는 말이라고 수긍하십디다.

피곤해도 건강해서 움직이고 활동할 때가 행복한 것이지 병원에 누워 쉬고 있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달려가야 합니다.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전진이지 후퇴가 없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향해서도 앞으로 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천국을 침노하는 이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적으로도 달려가야 합니다.
신앙의 성장을 위해 더 힘써야 합니다.

주일 낮 예배만 드리는 분은 찬양 예배까지 드리시고, 수요기도회도 참석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 예배도 매일 드리다가 짐이 되어 포기하지 말고 매월 한 번, 혹은 매주 한 번씩 52주 만 드려도 신앙은 한 단계씩 전진하게 됩니다.

십일조 못하던 사람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열을 가지고 사용할 때 보다 하나님의 것을 온전히 구별하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쓸 때에 오히려 하나님께서 지출 구멍을 막아 주시고 우환, 재난을 막아 주시며 부족이 없도록 오히려 재워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신앙은 자전거와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넘어지지만 자꾸 패달을 밟고 앞으로 나아가면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가게 됩니다.
신앙도 움직여야 넘어지지 않고 전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 주시면서 앞으로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서 죄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며 어떤 장애물이 앞에 있을 지라도 앞으로 나아가면 내가 가는 길을 열어주시리라는 약속입니다.

여호수아는 이 약속을 믿고 나아갈 때 에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전진하는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이 전진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신앙이 전진하려면 마음의 자세를 바로 가져야 합니다.

7절에 “오직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담대한 마음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 가는 근원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관리하고 지키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음이 건강해야 합니다.
마음이 아름답고 깨끗해야 합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마음에서 떠나면 모든 것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포기하면 그때부터 모든 것이 포기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사람이 지킬 만한 것 가운데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사랑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 마음에서 하는 충성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관리는 곧 마음의 관리입니다.

우리의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 안에 있습니다.
행복과 불행도, 기쁨도, 감사와 원망도 환경이라기보다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건강해야 하고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 이전에 네 마음을 먼저 강하게 하고 담대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여호수아 앞에 놓여있는 현실은 어떠합니까?
너무나 절망적인 현실입니다.
믿고 의지하고 따랐던 지도자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더구나 원망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까지 갈 것을 생각하니 너무 두렵고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런 여호수아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 축복의 땅을 보여 주시면서 위로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네가 발바닥으로 밟는 것마다 너와 네 자손에게 줄 땅이니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실 것이다.”(9절)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약속을 믿고 일어나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라는 말씀은 마음에 담력을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담대한 마음이 큰 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담력은 세상 적으로 가지는 천성적인 배짱하고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배짱으로 밀어붙이려고 하는데 신앙생활은 배짱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배짱이 좋은 사람도 한계에 부딪히면 주저앉게 됩니다.
성경에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배짱이 좋은 사람의 모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다고 하니까 붙잡으며 ‘주님 우리가 지킬 것입니다.’ 했고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는 칼을 빼서 즉석에서 말고의 귀를 치는 배짱 좋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빌라도 법정에 섰을 때에 자신의 죽음의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하찮은 계집종 앞에서도 벌벌 떨면서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하고 돌아서는 초라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배짱이란 항상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성도의 신앙은 배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담력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할 때 담대해집니다.
다윗의 용맹을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창검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모세를 보십시오.
하나님을 의지하기 전에는 담력이 없는 아주 나약한 사람인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앞에 가라고 하실 때 ‘저는 입이 뻣뻣합니다. 말주변이 없습니다.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라’고 하면서 벌벌 떠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그랬습니까?
자기 힘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깨달을 때에 이스라엘의 수백만을 이끌고 담대하게 애굽을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힘만 의지하면 약하고 한계가 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갈 때 담대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마음이 강하고 담대해 질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또 하나, 넓은 마음을 갖고 살기를 위해 자꾸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무엇보다 마음을 넓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의 성도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다 말하였고, 우리 마음을 여러분에게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여러분에게 닫아 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자신들의 마음을 닫아 놓은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을 나의 친자식이라 생각하고 말하겠습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한 것처럼 여러분도 우리를 향해 마음을 열어 주십시오.』(고후6:11-13)

사람이 마음을 좁게 가지면 한 없이 좁아지고 반대로 넓게 가지면 끝없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마음이 소심한 사람은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잘 받습니다.
지나가다가 인사만 소홀해도 나를 미워하는가.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밤잠을 설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이 소심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면 병이 납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을 그릇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릇의 크기만큼 채워지는 것이고 그릇대로 주인은 쓰는 것입니다.
넓은 마음이 큰 그릇이 됩니다.
예수님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원수까지도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하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늘 예수님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한 없이 넓어질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처럼 강하고 담대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신앙의 전진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아야 합니다.

7절 끝부분에 “너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러면 형통하리라.”(7절)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푯대를 분명히 정하라는 말입니다.
앞으로 달리는 사람이 좌우로 기웃거리며 달린다면 푯대를 잃고 맙니다.
예수님도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결단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다고 하셨습니다.
삶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만이 앞으로 전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인생을 경주에 비유했습니다.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이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한 사람은 삶을 무의미하게 살지 않습니다.

사람은 무엇이 되기 이전에 내가 무엇이 되겠다고 하는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대학을 가도 아무 대학이나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생동안 살아갈 목표의 과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목회하면서 한 번도 목회 하게 된 것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 해도 같을 것입니다.
내 가 걸어가는 길이 즐겁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는 삶에 떠밀려 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됩니다.
건물이 지어지기 이전에 먼저 설계도를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의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삶을 전력투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학생이 공부를 해도 장차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 의식이 있어야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목표가 분명한 사람이 희망이 있고, 고난을 이겨내게 됩니다.
기도를 해도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응답이 빠릅니다.
성경에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의 현실은 머슴이지만 거부가 되는 꿈을 꾸었고 수년 후에 그 목표대로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마음을 강하도 담대히 하며 좌우로 치우치지 않으면 장애물을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인생을 사노라면 어찌 좋은 일만 있겠습니까?
삶의 장애물을 만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성도는 이럴 때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 만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마치 법궤를 메고 벧세메스로 가는 소와 같이 환경에 매이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법궤를 메고 벧세메스로 가는 소는 어미 소를 잃은 새끼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좌우에 푸른 풀밭이 유혹을 해하고 있었음에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소는 바로 우리의 신앙의 삶입니다.

또 하나님은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롯의 처는 몸은 소돔 성을 빠져 나왔는데 마음이 빠져 나오지 못해서 뒤돌아보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돔성에 두고 온 사위들에 대한 정, 또 두고 온 물질에 대한 미련, 이런 것들에 매여서 뒤돌아보았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때로 우리의 몸은 성전에 나와 있지만 마음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나오지 못하고 길 잃은 양처럼 헤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앞으로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신앙의 전진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8절에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8절)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살 때만이 전진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가 잘 맺어질 때에 수평적 관계도 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일만이 축복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명과 축복의 원천이십니다.

일본의 피카소 미술관에 가면 조각품 가운데 대조적인 작품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큰 손이 있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The Hand of God"(하나님의 손)이라고 써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어쩌구 저쩌구 해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인간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야 보호를 받습니다.
그래서 너는 여호와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작품은 지구가 톱니바퀴처럼 깨져 있는데 그 안에 최첨단 문명이 다 들어 있는 조각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문명은 스스로 파괴된다는 의미의 작품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과학 문명은 오히려 온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핵이 얼마나 무섭습니까?
한 순간에 온 인류를 죽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지식은 인간을 기계로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재물은 소돔과 고모라 같이 타락된 사회를 만들어 놓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축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의 축복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맺고 사시기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가 밟는 그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향해서 ‘마음을 강하게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너를 도와 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호수아는 이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갔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은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약속, 너를 떠나지 않고 버리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네가 형통하리라 네 길이 평탄케 되리라는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사랑하는 김포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새봄과 함께, 교회 창립기념주일을 맞은 우리교회는 새로운 각오를 가지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 성도의 신앙이 성숙해져야하고 교회가 성숙해져서 힘차게 전진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이나 가정이나 사업이나, 우리 김포중앙교회가,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서, 형통하도록 길을 열어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박영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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