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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꿈이 이루어질 때 (창 41:4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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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 역대대통령은 처음 집권할 때 보통 50%가 넘지 않는 지지도로 출발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대통령이 된 뒤에 집권 초기에는 국민의 지지도가 대체적으로 상승하는 것을 봅니다. 어떤 대통령의 경우, 90%에 가까운 지지도를 얻었습니다. 이런 변화가 오는 것은 대부분 국민들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표를 주었다가, 일단 대통령이 되면 가능하면 국정을 잘 수행하도록 힘을 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 의욕을 가지고 국민과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이면, 지지도는 급상승하여 고공행진을 계속합니다. 그런데 그 지지도가 오래 동안 지속되지 않습니다. 서서히 떨어지고, 어떤 경우에는 급속히 떨어집니다. 나중에 퇴임 때가 되면 처음 대통령이 될 당시의 지지도에도 훨씬 못 미치는 것으로 마감합니다. 게다가 퇴임 후에도 잘못한 것이 드러나면 비난을 피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역대 대통령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공통적인 특징입니다. 외국처럼, 처음부터 신뢰를 받고 그것을 바탕으로 열심히 일하여 지지도가 상승하고, 마지막까지 지속되다가, 퇴임이후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며 존경받는 그런 대통령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요? 가만히 보면 대통령이 되기 위한 준비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대통령이 된 이후의 준비가 부족하다고 봅니다. 대통령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보다 더 성실하게, 겸손하게, 바르게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입니다.

  분명 대통령은 최고의 자리입니다. 모든 정치인이 꿈꾸는 자리입니다. 모든 아이에게도 꿈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 가를 물으면 대통령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을 위해 달려가다가 꿈을 이루었는데, 뒤를 잘하지 못합니다. 꿈은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뒤가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모든 꿈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시기에 꿈을 이룬 뒤에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꿈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개인과 공동체의 소원을 이루자고 출발한 우리에게 이것을 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하면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첫째, 감사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에 관한 말씀을 본문으로 함께 읽었습니다. ‘꿈’하면 성경에서 가장 떠오르는 인물이 요셉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꿈으로 시작해서, 꿈으로 마칩니다. 그는 꿈을 꾸었고,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13년만의 이룬 꿈입니다. 우여와 곡절 끝에 이룬 꿈입니다.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꿈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고, 왕이 ‘내게 남은 것은 자리뿐’이라고 말할 만큼 애굽에서 큰 권세와 영예를 얻었습니다. 요셉의 모든 소원이 다 이루어진 셈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이야기는 꿈이 이루어진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이후 요셉이 얼마나 잘했는가를 알려줍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4명의 족장가운데 요셉만큼 뛰어난 사람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좀처럼 흠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죄와 허물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그가 처음 성경의 무대에 등장하면서부터 마지막에 사라지기까지 동일하게 보여지는 모습입니다. 그만큼 요셉은 뛰어났다는 말입니다. 요셉의 생애에 큰 반전을 이루는 총리가 된 뒤, 그는 여느 대통령과 같았으면, 지지도도 추락하고, 자신도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요셉은 한결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의 기적적인 꿈이 이루어질 때, 그에게 보여지는 첫 번째 귀한 모습이 바로 ‘감사’입니다. 요셉의 이야기에서 그것이 잘 나타나 있지만 특히 본문에서도 그것을 먼저 강조합니다.

  본문은 요셉이 총리가 된 뒤에 있었던 단편적인 모습을 알려줍니다. 여기 말씀에서 요셉은 ‘하나님이...’ 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그가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오르게 된 것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가 총리가 된 뒤에 결혼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을 낳은 뒤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52절입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수고한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 함이었더라...” 요셉은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셨고, 하나님이 이루셨고, 하나님이 창성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그는 지금 하나님께 대한 깊은 감사를 잊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요셉의 믿음입니다. 그는 감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오를 때, 꿈이 이루어질 때 물론 감사했습니다. 아니 그렇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는 늘 감사하던 사람입니다. 감사는 요셉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상황, 어떤 경우에서도 감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런 감사의 생활이 그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모두가 존경하는 뛰어난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오늘 여기에 나타난 그의 감사는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감사의 연속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늘 하나님께 오직 감사한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감사는 인간 삶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감사는 신앙생활에도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 모두는 감사하며 삽니다. 그런데 3종류의 감사의 사람이 이 땅에는 존재합니다. 우선, 받은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이건 사실 누구나 하는 감사합니다. 심지어는 동물도 하는 일입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아껴준 주인에게 평생 충성하는 동물을 보면서 누구나 감사는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두 번째의 감사는 평상시의 감사입니다. 감사가 마치 습관처럼 생활화 된 사람입니다. 감사가 단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만큼 귀한 일이 없습니다. 평상시에 불평이나 원망이 없어야 가능합니다. 세 번째 감사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감사입니다. 이것은 보통 사람의 감사가 아닙니다. 신앙이 아니면, 훈련이 되지 않으면, 은혜가 없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요셉이 바로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감사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하더니, 최고의 자리에 오를 때 감사가 절정에 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런 자리까지 초대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꿈이 이루어 질 때 물론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아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그런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런 감사의 자세와 삶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를 다듬어 가십니다. 요셉처럼 감사의 사람으로 소원을 이루고, 소원을 더 크게 이루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과거를 청산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꿈이 이루어질 때 그에게서 발견한 두 번째 귀한 모습은 바로 모든 과거를 청산하고, 잊어버리고, 치유되고, 현재와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과거를 잊어버리기 위함이었습니다. 51절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나로 나의 모든 고난과 나의 아비의 온 집일을 잊어버리게 하셨다 함이요...” 이것이 요셉의 삶이었습니다. 이것이 요셉이 총리가 된 뒤에, 그의 꿈을 이룬 뒤에 보여주었던 귀한 모습입니다. 그는 과거를 다 잊었습니다. 과거를 청산했고, 과거의 아픈 상처와 괴로움을 다 해결하고 치유 받았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기 최고의 자리에 오기까지 요셉이 어떻게 살았습니까? 그의 삶은 한마디로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17세의 어린 나이로 부모와 고향을 떠났습니다. 남들처럼 편안하고 호화롭게 산 것이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고생고생하며 살았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찾아온 인생의 외로움은 아마 무엇보다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그냥 사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러다가 감옥에 들어갑니다. 잘못해서가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갇혔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얼마나 지치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겠습니까? 이것이 꿈을 이루기 전에 나타난 요셉의 삶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런 고생으로 밤마다 눈물로 얼굴이 뒤범벅이 될 때마다 아마 형들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게 된 것입니까? 피를 나눈 자기의 형제들로 인해 여기까지 팔려온 것입니다. 얼마나 원망스럽고 분노가 치밀었겠습니까? 보통 사람 같으면 아마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을 것입니다. 반드시 지금까지의 고생한 모든 것을 고스란히 갚아 주겠다고 아마 이를 악물고 살았을 것입니다. 언젠가 성공하면, 고향을 찾으면, 형들을 만나면 지금까지 고생한 것 배로 갚아 주겠다고 벼르고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 꿈을 이루었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그의 모든 아픈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꿈을 이룬 뒤 자녀를 낳았을 때 ‘므낫세’라고 지었고 이제 모든 고난도 잊고 형들도 용서하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요셉이 나중에 형들을 만나 본 뒤 변화가 와서 형들을 용서한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미 요셉은 형을 만나기 전부터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총리가 된 순간부터 그는 과거는 다 청산이 되었고, 아픈 과거와 고난은 잊어버린 것입니다. 요셉의 위대함을 우리는 여기에서부터 풀어야 합니다. 그는 과거에 더 이상 메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가진 아픈 과거는 치유되지 않으면 그것이 늘 잠재하고 있기에 자기도 힘들지만 여러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그런 과거가 청산되지 않은 채 어떤 자리에 오른다든지, 영예를 얻고, 성공하게 되면 반드시 그것이 터져 나옵니다. 그것을 품고 바라보는 성공이나 꿈은 성공이 아니라 야망이요, 그것은 성공이 아니라 실패요, 또 다른 화를 불러오게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그런 예를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치유되지 못한 과거 때문에 꿈을 이루어질 때 휘두르는 분노의 폭발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것은 꿈이 아니라 야망입니다. 모두를 힘들게 합니다.

  한국 역사 속에 연산군이 아마 대표적인 인물일 것입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고난을 많이 겪은 사람입니다. 외로움도 많았고, 치유가 되지 않은 슬픈 과거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으뜸의 서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고의 자리에 오를 때 청산하지 않은 과거 때문에 광기를 발동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망치고, 여러 사람을 죽이고, 나라를 어렵게 합니다.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으면 그것이 반드시 이렇게 드러납니다. 그런 사람이 꿈을 이루면 반드시 피의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치유가 되어야 합니다. 혹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남아 있습니까? 이거 해결하지 않으면 꿈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꿈을 이룬다고 해도 위험합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하나님이 우리의 소원을 미루시는 이유는 먼저 과거의 청산이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나쁜 기억은 빨리 잊어야 합니다. 아픈 과거는 해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과거에 아프고 쓰라린 상처가 남아 있다면 해결하십시오. 잊어야 하고, 청산해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서부터 위대한 역사가 시작됩니다. 꿈을 꾸면서, 꿈을 이루어가면서, 아니 꿈이 이루어지면서 나의 모든 쓰라린 과거가 해결되고, 청산되고, 치유되는 놀라운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셋째는 교만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런 관점에서 유의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애굽이란 나라의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가장 실세 있는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한 순간에 얻은 영예와 권세를 거드름 피우며 보냈다면 그도 여지없이 추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꿈이 이루어지고,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 영광의 순간에 서 있었지만 한 순간도 그는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거만을 떨지 않았고, 한가로이 자리만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가 애굽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뒤에 한 일이 무엇입니까? 이것을 유의하여 잘 보십시오. 우선, 칠년의 풍년이 찾아왔을 때 그는 왕궁을 떠났습니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가 머무는 곳을 박차고 떠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거기에서 한가로이 즐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애굽 온 땅을 순찰했다고 말합니다. 애굽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상황을 파악하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제 고생이 끝났으니 여유를 가지면서 즐길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풍년의 칠 년 동안 얻은 곡식을 성에 다 저장하는 일에 선봉에서 더 지혜롭게 일하고, 사람들을 독려합니다. 그래서 저장한 곡식이 얼마나 많은지 바다의 모래 같이 많아 셀 수가 없었다고 기록합니다. 당시 모든 사람들은 왕부터 모두가 요셉의 말을 듣고, 따르고, 그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의 성실과 노력과 인정이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요, 모습입니다.

  바로 이것이 꿈을 이루어 총리가 되어 최고의 자리에 오른 요셉이 보여주었던 모습입니다. 그는 왕궁을 떠났고, 온 애굽 땅을 순찰했으며, 모든 백성과 함께 성실과 근면함으로 곡식을 창고에 저장했습니다. 이 모두는 무엇을 보여주는 것입니까? 교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총리가 되었다고, 이제 꿈을 이루었다고, 모든 것이 다 되었다고, 우쭐되거나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정상에서 오히려 그는 더 겸손했습니다. 더 성실했고, 낮아졌고, 더 열심히 했습니다. 요셉의 위대함은 여기에서 꽃을 피운 것입니다.

  우리가 늘 겸손하게 살아야 하겠지만, 특히 뭔가를 이루고, 가질 때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서 실패합니다. 평상시에는 그래도 좀 겸손하다가도 뭔가 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교만합니다. 그것이 망하는 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사람은 교만해서 추락하고, 망하는 것입니다.

  산을 좋아하는 분들은 잘 아시겠습니다만 산을 통해 배우는 교훈이 아주 많습니다. 산에 올라갈 때는 얼마나 힘들게 올라가는 지 모릅니다. 그렇게 해서 정상에 오르면 아주 상쾌하고 시원합니다. 그런데 정상의 자리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반드시 내려가야 합니다. 사실 올라가는 길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다고 합니다. 올라갔으면 이젠 내려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인생은 올라가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내려가는 것도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오르기만 하지 않고, 언제까지 정상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내려가는 일도 있는 것입니다. 건강할 때가 있는가 하면 병들 때도 있고, 가질 때가 있는가 하면 없을 때도 있습니다. 승리하며 기뻐할 때도 있지만 실패하고 아파할 때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정상에 올라가 있다면, 내려갈 일을 생각해야 합니다. 정상에 오르면 이제 내려갈 일만 남은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사는 사람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결국 이런 사람이 하나님과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안에 꿈을 두고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꿈을 꾸어야 꿈이 이루어집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소원을 품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남은 생애동안, 금년 한해동안,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꿈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꿈이 이루어질 때, 반드시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과거를 잊고 현재와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또한 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귀한 믿음을 다짐하면서 소원의 항구로 힘있게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서해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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