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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순절] 듣는 자와 행하는 자 (롬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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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을 시작하는 첫 주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귀한 절기를 맞이하는 성도들에게 주님의 붙드심과 강건케 하심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순절이란 주님께서 부활하신 안식후 첫날을 깃점으로 40일 이전의 기간을 의미하는데, 그 기간은 철저히 십자가를 통한 주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회개치 않는 예루살렘성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주님,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이 맞도록 간구하시되 땀방울이 핏방울되도록 기도하시던 주님, 피해가다가 할 수 없이 지신 십자가가 아니라 로마 군병을 향해 나아가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는 주님의 모습이 사순절의 잊지못할 사건들입니다.

이 고귀한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고자 하는 거룩한 성도들의 삶의 고백이 이번 사순절을 통하여 다시한번 회복되기를 다짐하는 것이 사순절을 맞는 우리의 자세이어야 할줄로 믿습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나도 가겠습니다. 이왕이면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자랑하면서 기꺼이 가겠습니다..." 이것이 사순절을 맞는 성도들의 각오이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올해에도 우리 교회는 사순절을 맞이하여 세이레 특별새벽기도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사순절 기간 내내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기도의 공동체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로마서 1장 18절 이후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세 가지 특징을 보았습니다. 그들의 첫번째 특징은 썩어질 인간과 짐승, 그리고 버러지 우상으로 썩지아니할 하나님의 영광과 바꾸는 삶이었습니다. 마치 다이아몬드 원석을 초코렛과 바꾸어 먹었던 무지했던 서부 아프리카인들이, 나중에 다이아몬드의 중요성을 깨닫고 나서는 절대로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어리석은 인생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할 때에는 썩어질 것과 썩지 아니할 것을 구분치 못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 특징은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사랑하고 섬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참기 어려운 부분이셨습니다. "나는 질투하는 야웨"라고 스스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정체성을 밝히심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묻지요? 아빠가 좋으냐? 엄마가 좋으냐? 그러면 엄마가 좋다던가 아니면 아빠가 더 좋다고 쉽게 대답하는 아이들의 연령은 대체로 3세 미만입니다. 심지어는 제가 심방을 가서 사귄 아이는 목사님이 더 좋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커보세요. 어린이집 갈만 할 때가 되면 절대로 쉽게 대답하지 않습니다. "곤란한 건 왜 물어보세요?"

세 번째 특징은 저희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생각 속에 하나님을, 생각 속에 교회를, 생각 속에 말씀을 두는 일을 싫어하고 불편해 합니다. 오히려 세상적인 것들을 더 좋아하고 그것을 소유하기를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1장 29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원치 아니하시는 버려야할 21가지의 삶의 모습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불의와 추악과 분쟁과 사기..." 지난 주간의 말씀이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자들을 대상으로 선포된 말씀이라면 오늘 로마서 2장 1절에서 16절의 말씀은 하나님을 오래도록 믿고 있는 이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새신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기보다는 오래토록 믿은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둘째는 헬라인에게로다고 하심으로서, 먼저 오래토록 가문 대대로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뿐만 아니라 처음 복음을 접했던 이방인들에게도 해당됨을 말씀하고 있지만, 그러나 강조되는 대상은 바로 유대인 곧 오랜 기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웠던 이들을 주된 독자로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의 포커스는 먼저 구원의 기회를 얻었던 이들을 향한 메시지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먼저알고, 일찍부터 믿어 오래토록 신앙을 유지한다는 것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요 복된 사건입니다. 성기는 교회를 변함없이 출석하는 이들 역시 든든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예수를 믿었다든지, 우리는 부모님과 함께 예수를 믿고 있는 2대째 신앙이라든지...” 이러한 고백은 참으로 자랑스럽고 복된 일입니다. 영국에서는 3대째 예수를 믿는 사람은 그의 신용은 보지도 않고 인정할 정도로 신앙의 대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도 인정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오래도록 대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영광과 자랑스러움이 있는 반면에 오늘 본문에서 오래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강력하게 선포하시는 메시지는 오래된 사람들이 가지는 부정적인 모습 때문입니다. 오늘 1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바울사도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보고 하는 이야기냐 하면, 오래 예수를 믿은, 오래도록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입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오래된 사람들이 버려야 할 부정적인 모습의 대표적인 것이 남을 판단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자꾸 남이 보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 못하는 것이 자꾸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시어머니가 시어머니라고 교육 받고 시어머니하는 분들이 있나요? 시어머니 학교, 더 이상 며느리를 구박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며느리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 있을까? 이런 것을 어디서 배우고 와서 시어머니 노릇을 하나요?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며느리들은 시어머니가 힘들고 굉장히 어렵습니다. 시어머니가 어머니로서,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준 부모로서, 좋은 점이 있는가 하면 역기능적인 부분도 있어요. 무릎이 아프도록 한, 두시간 걸레질을 하고, 방청소를 했는데, 시어머니가 이렇게 들어오고 나서 ‘야, 이거 청소 한거냐?’

이렇게 한 마디 하면 그것은 어머니로서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 한 것이지만, 무릎 꿇고 한, 두시간 땀 흘려 청소한 며느리에게는 비수를 꽂는 이야기지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말입니다. 막 힘들어 하고, 상처 받고, 무슨 상담소 가서 상담하고 그러면 ‘웬 난리야? 내가 뭐라고 그랬다고? 그거 청소한거냐?’ 그 한 마디 밖에 한 것이 없는데 웬 난리 법석이냐고 그러지만 그만큼 간섭하는 사람은 그 말이 주는 아픔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래된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나는 뭐라고 몇 마디 안 했는데, 왜 그렇게 교회를 나오니, 안 나오니 상처를 받았니, 안 받았니 알 수가 없어요.’ ‘뭐라고 그랬는데?’ ‘난 뭐라고 몇 마디 안 했는데, 별 이야기도 안 했는데요.’ 그렇지요? 그 별 얘기 했겠어요? 시어머니가 청소 했니? 그 한마디만 놓고 보면 그게 무슨 별이야기겠지요? 그런데 한 시간 무릎이 아프도록 청소를 한 며느리에게는 얼마나 상처가 되는 말인지 모릅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마치 시어머니가 어디서 배워와서 그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오래된 교인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툭툭 던지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지요. 바울 사도는 한 걸음 나아갑니다. 당신들이 판단하면서도, 당신들이 잘못 된 것을 지적하면서도 당신들은 그 사람들처럼 미워하는 사람이다.

오늘 1부예배 기도하시는 장로님이 교통법규를 어겼노라고 고백을 했어요. 뭐, 별 것도 아니지요. 여러분도 다 교통법규 어기고 살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공적인 예배 때 제가 지난 주간에 교통법규를 어긴 적이 있었고, 그게 장로로써 부끄러운 일이었고, 회개합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라고 공적인 이야기라고 고백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지난 주간에 우리 축구선교회가 일본 큐슈를 다녀왔는데, 그 큰 도시 일본의 3대 도시, 후쿠오카 시내를 아무리 다녀도 교통 경찰관을 볼 수가 없어요. 거리는 얼마나 깨끗한 지, 止まれ라고 써져있는 정지선에서 모든 차들이 영업용이라고 서로 우리는 버스, 택시 영업용이라고 하는 그 영업용 차들까지도 정확하게 정지선을 지켜줍니다. 약 오를 정도로 멋있어요.

그런데 그 일본사람들이 800만가지가 넘는다는 우상을 섬긴다는 사람들이예요. 우상을 섬긴다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보다 사회성이 낫단 말이예요.

우리는 부끄럼움을 가져야 되요. 저는 우리나라에 교통법규문화, 저도 영국에서 1년 살다 오니까 저도 속이 막 뒤집어 질려고 그래요.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서.... 우리 김병천 권사님 미국에서 오래 산 권사님이 그랬어요. 처음에 한국에 왔을 때 굉장히 힘들었지요?

저는 생각합니다. 한국의 1천만 크리스찬들이 제대로 살아도 이 사회는 멋지게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이 사회를 이야기 할게 없어요. 우리가 잘 못된 거예요. 사순절은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 앞에 우리의 모든 것을 부끄러움이 없이 내려놓는 기관입니다. 주님 내가 예수의 사람이면서도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보다도 더 부끄럽게 살았습니다.

잘 변화가 안 되는 사람의 몇몇 특징 중에 하나가 다음부터는 잘 하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앞으로는 잘 하겠습니다. 여러분, 삭개오를 기억하시지요?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부자였습니다. 권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앞잡이라는 그런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세금을 걷어들이는 일에 로마정부의 공무원 역할을 했어요. 거둬들이라는 것보다 더 거둬들이고, 그것으로 착복을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지적하지 못 합니다. 로마의 권세를 등에 업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가 주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다고 하는 사건은 우리 인생의 최대 사건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의 생애에 최고의 기적의 사건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 만난 날,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고 나서는 너무나 많이 변했습니다.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제가 이렇게 해서 부자가 되었고, 이렇게 해서 좋은 집을 마련했고,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살았는데,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말씀 속에서 어떤 고백이 생깁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말씀, 특별히 사도행전 2장을 보면 베드로가 설교할 때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다고 그랬습니다.

사도들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어찌할꼬, 우리가 어찌할꼬, 사도들 앞에서 그 마음의 찔림을 고백했습니다. 그 때 사도들이 뭐라고 권면합니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찔림이 있는 시간이 은혜로운 시간인 줄 믿습니다. 말씀을 들었을 때 찔림을 주는 말씀을 주는 선포자가 능력의 선포자인 줄 믿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저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목사님, 능력의 목사님 되게 하옵소서. 그 말은 그가 설교 할 때 내 마음을 찌르게 하옵소서. 그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 말씀은 능력의 말씀, 세계적으로 능력있는 말씀을 전파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 놓고, 말씀을 듣고 찔리면 그 찔림을 회개로 무릎을 꿇는 것으로 바꾸지 않고, 입이 이만큼 나와가지고 시험 들어가지고 토라져서 간다 그 말이예요.

앞 뒤가 안 맞는 행실을 보이고 있는 거예요. 마음에 찔림이 있는 말씀이 능력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삭개오가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의 말씀 속에서 삭개오의 마음에 찔림이 있었어요.

아, 이건 아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주님, 제가 남에게 토색한 것이 있으면 더 받은 것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 4배를 갚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일로 인해서 제가 부자가 되었는데,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내어 놓겠습니다.

삭개오의 고백이 진정한 행함의 고백인 줄로 믿습니다. 지금 말씀 듣고 은혜 받았다고 해서 ‘목사님, 이제 앞으로 잘 할께요.’ 제일 희망 없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앞으로 잘 한대요. 그러면 그 앞에 그 전에 토색하고 잘 못한 것들은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예요? 그냥 도매급으로 넘어간다는 말입니까?

편지 쓰시기 바랍니다. 목회자에게 잘 못한 일이 있으면 편지 쓰세요. 요즘 이메일 얼마나 편합니까? 목사님, 사실 이렇게 이렇게 오해해서 이렇게 목사님을 비난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말씀을 듣고 보니까 잘 못 되었네요. 목사님 용서해 주시고, 목사님 앞으로 사랑하렵니다.

성도들끼리 잘 못한 일이 있으면 편지를 쓰세요. 요즘은 이메일로 편지를 써도 카드메일이 있어서 음악도 나오고, 그림도 근사한 것들 무료로 막 줍니다. 얼마나 멋있는지 몰라요. 이런 이야기 하면 난 인터넷을 못해서.... 65세 이상은 괜찮습니다. 그 65세 이하가 인터넷 모른다고 그러면 죄송해요. 지구를 떠나야지요. 제가 좀 심한가요? 아니예요. 심한 이야기 아닙니다.

지금 시대가 21세기인데, 지금은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게 아니라 오래 살려면 오래 사는 것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야 어울리는 것이지요. 우리 성도들, 우리 교구장님들에게도 전부 미니홈피를 만들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그 성도들 섬기는 일에 구체적으로 다가가라고 그랬어요.

그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제가 책을 사 보아도 이 주일의 베스트셀러 한 5권 정도, 이 주간의 세상 사람들이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지, 적어도 5권 정도는 사서 봐야지요. 아, 요즘 사람들은 이런 소설들을 많이 읽는구나.

내가 섬기는 사람들이 2,30대면 그 2,30대가 주로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4,50대는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그것에 어울리게 자신이 따라가 줘야 되지 않아요? 그것이 좋고 뭐하고는 좀 지나친 거예요. 우리하고는 조금 거리가 있어요.

왜? 사명이 사람을 만들어 가는 거예요. 저는 지금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서 있다고 하는 것이 제가 생각해도 기적입니다. 제가 이집 저집 가서 음식을 먹는 것도 기적이고요. 제가 만나는 모든 모임은 거의 남자는 저 밖에 없어요. 그런 자리에서 있는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기적입니다.

더 나아가서 장례식장에 가서 제가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제 스스로 이건 기적이야. 장례식 장에서 제가 음식을 먹는 것은 제가 생각만 해도 기적입니다. 뭐가 사람을 바꿔요? 사명이 사람을 바꾸는 거예요. 뭐 좋고 나쁘고는 여러분이 예수 만나기 전에 사명 받기 전에 이야기지요.

사명 받고도, 여러분 하나님의 귀한 직분 받고도 인간적인 호구를 따지고 있다면 사명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예요. 나를 쳐서 예수그리스도의 사명에 어울리도록 날마다 나를 쳐서 다듬어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저는 가끔씩 정부의 요직이나 공공기관의 요직을 맡은 사람을 봅니다. 예를 들면 장군으로 예편을 한 사람인데, 어느 기관의 이사장이나 회사의 사장으로 임명을 받을 때 처음 생각은 이 분은 군인인데, 작전이나 전쟁의 전략은 잘 짜겠지만, 예를 들면 도로공사 사장이면 그 사람은 도로하고 거리가 멀을 텐데, 일을 잘 하려나.

어떤 사람은 정말 죽을 쑤는 사람이 있고, 어떤 분은 타고난 리더쉽을 발휘해서 그 회사를 적자에서 흑자로 만들고, 아주 건실하게 회사를 키워가는 분들이 있어요. 주님의 일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이교회를 맡으라고 하면, 저는 어린이교회하고는 거리가 멀고, 저는 청년중심입니다. 그것도 사실은 웃기는 일이지요. 어린이를 맡기면 어린이에게, 청년을 맡기면 청년에게, 여자를 맡기면 여자에게, 남자를 맡기면 남자에게 어느 부분을 맡기면 언제든지 그 역사를 이루어 가는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 아니겠어요? 그러기 위해서 우리의 모습을 감추고, 주님의 사명에 맡도록 우리가 다듬어 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6, 7 ,8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을, 당을 지어 진리를 쫓지 않고 불의를 쫓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이 선을 행하는 삶인지 아니면 당을 지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면서 사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으로 은혜를 주실지, 아니면 분노로 우리를 심판하실지, 그것은 우리의 행한 대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자들, 특별히 오래 믿었다고 하는 이들은 언제나 이 부분에서 더욱더 깨어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늘 남을 판단하는 일이 우리의 습관이 되어져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늘 빗겨 갑니다.

은혜로운 말씀을 들어도 ‘아이고, 이건 아무개가 들어야 하는데...’어떤 중요한 장면이 와도 ‘이건 아무개가 있어야 하는데...’항상 자신은 빗겨 가는 것이지요. 설교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심판으로 여러분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진노에 여러분이 피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심각한 말씀을 선포해도 얼굴색 하나 안 변합니다. 왜? 그것은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라 빗겨 가서 아무개에게 해당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이 관계가 없어요. 항상 그 말씀, 저 말씀은 자기가 빗겨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나를 향한 말씀이 될 때 나를 변화시키는 말씀이 될 때, 그 말씀을 듣고 회개할 마음이 생길 때 그 말씀이 은혜의 말씀, 나를 향한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라. 13절의 말씀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신다고 하십니까? 10절 영광과 존귀와 평강으로 함께 하시겠다고 그랬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일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서 존귀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그 신앙인들에게는 그 삶의 평안과 평강으로 함께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더 큰 아파트, 더 큰 평수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대학이라고 말하면 우리가 IVY리그를 말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하버드 대학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일대학도 좋습니다. 그런 대학들은 주로 설립자의 이름을 따서 그 대학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병원 하면 세브란스 병원이지요? 그 세브란스라는 것도 미국 사람이 한국에 우리 감리교 선교사님을 통해서 한국 땅에 와 보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죽어가고, 치료의 은혜를 못 봤는지 너무 마음이 아파서 다시 돌아가서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모금하고, 자기 돈을 많이 한국에 보내서 병원을 짓도록 해서 그 병원의 이름을 그의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 병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은 존 하버드 목사님이 기금을 내어서 설립을 한 대학입니다. 그런데 그 하버드 목사님이 목사가 되기 전에는 남북전쟁 당시에 장군이었어요. 전쟁에서 승리하고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서부 지역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곳을 간다고 하니까 그 곳에 있는 친구들이 자기를 위해서 환영파티를 준비했는데, 더 기쁘게 해 주려고, 깜짝파티를 해 주려고 알리지를 않고, 전부 지역의 유지들을 초청을 해서 확답을 받았습니다.

준비가 다 끝나고 나서 마지막에 하버드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지역에 네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너를 환영하기 위해서 이 지역 시장, 국회의원 다 초대해서 너를 위해서 환영만찬을 준비했다. 그 날이 언제냐? 수요일 저녁이다.

그랬더니 이 하버드 장군이 하는 말이 나는 그 날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갈 수가 없는데, 미안하지만 하루를 미뤄주던가, 앞으로 당겨주면 안되겠느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통령에게도 보고해서 대통령이 그 날 당신에게 축전을 보내기로 했다. 지역에 유명한 유지들이 그 날에 오기로 약속을 받았는데, 그들에게 약속을 바꾼다는 것은 큰 실례가 된다.

그러니 네가 그 개인적인 약속을 바꾸면 안 되겠니? 도대체 무슨 약속인데, 그 날이 안 된다는 것이냐? 그 때 하버드 장군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주일예배와 삼일밤예배는 꼭 하나님을 만나 뵙겠다고 하나님께 약속을 했어요.

미국 사람들이 새벽기도나 수요예배 많지도 않지만 그런 시간에 참여를 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나는 하나님과의 약속이 너무 중요해서, 정말 나는 위한다면 당신들이 날짜를 바꿔 주었으면 좋겠다.

얼마나 하버드 장군이 분명한 태도를 가졌는지 결국 다 초청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그 분이 선약이 있어서 우리가 몰랐는데, 죄송한데 날짜를 다음날 목요일 저녁으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목요일 저녁에 하버드 장군을 위한 만찬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말로 주님이 중요하고, 말씀보다 앞서지 말자고, 기도보다 앞서지 말자고, 예배보다 앞서지 말자고 우리는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로 우리에게 유익한 일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그저 그곳으로 뛰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 아니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지는 중요한 일들이 여러분들을 때로는 당황케 할지도 모릅니다. 지난 주 저에게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조찬기도회와 국회 조찬기도회 등 2곳에서 초청장이 왔어요. 평소 제가 지나가는 말로 그랬거든요. 교회의 중요한 일이 있는 날은 대통령이 초청해도 갈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되었나봐요. 4월 중순인데 신원조회를 위해 미리 서류가 온 것입니다.

우리 베델 수강생들에게 대통령이 참석하는 조찬기도회 가게 되어서 휴강한다면 다 이해하겠지만 저는 이번에도 대통령 초청 조찬기도회를 사양했습니다. 아직 때가 이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사람은 어려울 때나 부족할 때 보다는 잘 될 때나 형통할 때가 더욱 어려운 싯점이라 라고 믿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이 중심이 되고, 그 사람의 스케줄이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드릴 뿐만 아니라 세상이 그를 존귀하게 여기고, 그러한 삶을 사는 그에게 평안과 평강이 넘치는 모습을 온 땅에 증거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라 행하는 자가 의롭게 된다고 하신 그 말씀이 오늘 오래도록 예수를 믿었던 우리의 마음에 양식이 되도록 축원합니다. 바로 나를 위한, 이 시간 나를 위한 말씀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분명히 변화 되게 하셔서 회개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붙잡힌 평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 오늘 이 세상 속에서 우후죽순처럼 주님 앞에 쓰임 받기를 다시 한 번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위해서 사는지, 무엇 때문에 사는지, 삶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도록 용기와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오늘도 순간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입으로 하는, 이제는 우리가 듣는 것으로 그치는 오래된 사람들의 잘 못된 특징을 갖는 저희들 되지 않게 하시고, 이제는 들을 뿐만 아니라 깨닫게 하시고, 행동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셔서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행동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 새롭게 출발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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