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오순절 성령 강림 (행 2:1-13)

  • 잡초 잡초
  • 194
  • 0

첨부 1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우선 건강해야 되겠고요 살아가는데 필요한 만큼 돈도 있어야 됩니다. 또한 남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서는 지혜로워야 되겠고 또 좋은 이웃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무얼 꼽을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우리네가 밥을 먹기 위해서는 숟가락과 젓가락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포크를 쓰는 사람도 있겠고 맨 손으로 먹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해서 밥을 먹습니다. 그런데 수저를 주지 않고 그냥 밥을 먹으라고 한다면 주먹밥이 아니고서야 밥을 먹기가 참으로 힘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주 예수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전제가 되어야 하지만 이 믿음만 가지고서는 부족합니다. 믿음으로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마치 수저 없이 밥을 먹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우리들에게도 필요한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기에 더해서 은혜와 진리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해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으로가 아니고서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악한 무리를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난 뒤 아니 예수님이 군병들에 의해 붙잡히시고 난 다음부터 그토록 두려움에 떨었던 제자들이 어떻게 초대교회의 부흥을 일으킬 수가 있었습니까? 물론 부활하신 예수님이 거듭 거듭 저들을 만나서 “평안이 있으라” 말씀도 주셨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마음속에 그냥 평안이 생긴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어떻게 평안을 누릴 수가 있었고 어떻게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까?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성령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비결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자들은 한곳에 모여  말씀과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역사하실 수 있는 토대가 마련이 되어야 합니다. 그냥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성령이 내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 앞에 나올 때마다 주님 앞에 엎드려 나의 죄인 됨을 고백하고 그런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십자가의 은혜로 나를 용서하시고 온전케 하신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온전히 머물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죄 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온전케 하여 달라고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붙들어주시며 나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여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먼저 이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그 말씀을 의지해서 성령이 나를 온전히 사로잡아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제자들과 120여명의 성도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서 먼저 가룟 유다가 버리고 간 그 직분을 기도 가운데 제비 뽑아 맛디아에게 맡기고 말씀을 함께 나누며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이렇게 하기를 열흘이 지나 오순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건이 그들 앞에 펼쳐졌습니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 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서,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모여야 하고 우리가 말씀과 기도하는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주님의 영이십니다. 또한 말씀의 영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씀이 있는 곳에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그 말씀을 근거로 해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말씀이 없을 때에도 성령이 우리들을 사로잡아 주실 수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만들 때도 별 재료가 없이 음식을 만들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지를 않습니까? 하지만 풍성한 재료가 있다면 마음껏 음식을 만들 수 있지를 않습니까? 더군다나 솜씨 있는 요리장이라고 하면 더할 나위가 없겠죠?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있는 말씀을 근거로 해서 우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양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말씀을 함께 묵상하며 나누기를 힘써야 하고 그 말씀을 놓고 기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그 자체로 귀한 약속들이며 능력의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리고 우리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하나님이 놀랍도록 역사하신다고 하는 것도 우리는 이미 잘 배워서 알고 있습니다. 아지만 약속의 말씀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믿음의 고백을 할 수가 있겠고 승리의 고백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할 때 악한 마귀는 물러가게 되어 있고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한 마귀와 싸울 때 이 말씀을 의지해서 예수의 이름으로 악한 마귀를 물리치는 것이고 우리의 온갖 간구와 소원을 하나님께 예수의 이름으로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120여 성도들도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의지해서 마가의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했던 것이요 그러한 그들의 믿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시어서 충만케 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것도 마치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앉는 모양으로 그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는 성령이 비둘기 같은 모양으로 예수님에게 임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좀 더 강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그들에게 나타나더니 각 사람 위에 내려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뜨거운 열기가 그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열기는 지금까지 그들 속에 머물던 모든 두려움을 다 태워버리는 열기였습니다. 더 이상 저들에게는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모든 두려움이 다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겁쟁이가 아닙니다. 성령께서 저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능력이 저들 안에서 용솟음칩니다. 더 이상 저들에게 그 어떤 것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바로 이래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두렵게 하지 못합니다. 그 어떤 것으로 인해서도 우리는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위해서 말씀을 묵상해야 하고 그 말씀을 근거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 혼자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함께 모여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함께 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갈라놓는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우리는 벗어나야 합니다. 거기에 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죄라면 돌이키십시오. 그것이 시기와 질투와 반목이라면 얼른 사랑으로 회복하십시오. 시험에 들게 만드는 어떤 것들이라면 그것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래서 우리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말씀과 기도에 힘쓸 때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서 놀라운 은혜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 귀한 성령의 사람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리들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저들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놀라운 역사가 저들에게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시키는 대로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언을 듣고 모여든 무리들이 놀라서 수군거립니다. 예루살렘에는 경건한 유대 사람이 세계 각국에서 와서 살고 있었는데 제자들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많은 사람이 모여 와서 각각 자기네 지방 말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서 어리둥절하였습니다. 그들은 놀라, 신기하게 여기면서 말합니다.

“보시오, 말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저마다 태어난 지방의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이오? 우리는 바대 사람과 메대 사람과 엘람 사람이고, 메소포타미아와 유대와 갑바도기아와 본도와 아시아와 브루기아와 밤빌리아와 이집트와 구레네 근처 리비아의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이고, 또 나그네로 머물고 있는 로마 사람과 유대 사람과 유대교에 개종한 사람과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데, 우리는 저들이 하나님의 큰일들을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사람들은 모두 놀라 어쩔 줄을 몰라서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하면서, 서로 말하였습니다.
이귀한 역사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만이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당연히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역사는 오늘에도 똑같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을 통해서 나타나는 역사도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방언으로 기도하기를 소원하였고 거의 대부분의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나도 모르는 말로 내가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까? 억지로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간절히 사모하고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이 놀라운 역사가 우리들 가운데 하나씩 하나씩 나타나더니 이제는 거의 모든 성도들이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방언으로 기도하게 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기도가 힘든 일이 아니게 되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 기도만이 아닙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듣도록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고백인 것이요 긍정의 말들이요 사랑의 고백들입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위로와 격려의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고통당하는 자들에게 격려할 수 있도록 학자의 혀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요 우리가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것도 말씀을 학자처럼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주시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힘들고 어려울 때 더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성령이 내 안에서 그렇게 말하도록 시키시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니까 내가 억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성령이 그렇게 말하도록 시키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원수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고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을 거꾸로 위로해 줄 수가 있습니까? 바로 성령이 그렇게 하도록 내 안에서 시키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내 생각대로 내 소견이 옳은 대로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해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해야 합니다. 왜 우리 입에서 부정적인 말을 빼버려야 하는가 하면 우리 생각에는 부정할 수밖에 없는 전혀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은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기에 우리가 긍정으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의 생각을 온전히 사로잡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을 따라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사야서 58장 6절로 11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는 것, 멍에의 줄을 끌러 주는 것, 압제 받는 사람들을 놓아 주는 것,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는 것,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니냐?”

또한 굶주린 사람에게 너의 먹거리를 나누어 주는 것, 떠도는 불쌍한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냐? 헐벗은 사람을 보았을 때에 그에게 옷을 입혀 주는 것, 너의 골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햇살처럼 비칠 것이며,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신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그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님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님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네가 너의 나라에서 무거운 멍에와 온갖 폭력과 폭언을 없애 버린다면, 내가 너의 정성을 굶주린 사람에게 쏟으며, 불쌍한 자의 소원을 충족시켜 주면, 너의 빛이 어둠 가운데서 나타나며, 캄캄한 밤이 오히려 대낮같이 될 것이다. 주님께서 너를 늘 인도하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너의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너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실 것이다. 너는 마치 물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은 샘처럼 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를 묶이게 만드는 그 어떤 것들로부터 다 벗어나서 오히려 우리는 묶여 있는 자들이 풀려나도록 악한 마귀를 물리쳐야 할 것이요 그러기 위해서 먼저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해야 합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이 내 안에서 시키시는 대로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요 또한 그것이 바로 주님이 기뻐하시며 나의 모든 기도에 응답하시며 나의 삶을 풍요롭게 바꿔 가시도록 만드는 비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그렇게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약속을 믿습니다. 그 약속을 따라 우리는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염려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자유하십시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감사하시고 내게 많은 것이 부족하기에 더 넉넉하게 베풀도록 하시고 내가 고통스럽기에 오히려 고통당하는 자들을 찾아 격려하도록 하십시오. 무엇이 문제요 무엇 때문에 큰일이라고 하지 마시고 그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오히려 그 문제 되는 일에 매이기보다는 그 문제로 인해서 오히려 모든 것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믿음의 고백을 하시고 바로 그 염려되는 모든 것들을 주님께서 해결하시도록 주님께 맡기면 주님께서 문제되는 것들을 바로 잡아 나가실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바로 그랬습니다.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저들이 말을 하고 성령께서 시키시는 대로 따랐더니 놀라운 부흥과 새롭게 하시는 역사가 타나났습니다. 많은 경건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놀랐습니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하며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저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고 비아냥거리든 그것이 더 이상 저들을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한 기쁨이 저들 안에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의 일을 하는 것도 신이 납니다. 누가 뭐라고 하던 누가 내 마음을 상하게 해도 그것에 매이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혹 우리 가운데 마음 상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성령의 은혜가 내 안에 불 일 듯 하도록 만드시기 바랍니다. 다시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말씀과 기도에 전념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기를 바라고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는 일들도 감사로 바뀔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현장이 아름다운 천국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런 천국 백성들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시험꺼리도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시험꺼리에 매이지 마십시오. 악한 마귀는 얼마나 간교한지 언제든지 가장 중요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만듭니다. 하지만 그럴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 가운데 오히려 축복하고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 되게 하시는 주님이 우리들 가운데 놀라운 은혜를 더하시고 모든 삶을 풍성하게 바꾸시면서 우리를 늘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메마른 곳에서도 우리 영혼을 충족시켜 주시며, 우리의 뼈마디에 원기를 주셔서 건강하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치 물댄 동산처럼 되고, 물이 끊어지지 않은 샘처럼 될 것입니다. 이 귀한 복을 아무도 빼앗기지 않도록 하십시오. 악한 마귀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고 그로 인해 이 귀한 복을 누리지 못하게 만들려고 합니다. 아닙니다. 속지 마십시오. 그래서 시험꺼리가 있을 때 더 감사하고 더 기도하고 더 사랑으로 하나 되도록 하십시오. 그래서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우리 모두에게도 넘쳐나야 될 것이요 향남교회가 더 풍성하고 정감이 넘치는 사랑의 현장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