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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험하시는 하나님 (신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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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함께 애굽에서 올라온 이스라엘 백성은 참으로 행복한 여행을 하였습니다. 430년간 노예 생활의 속박에서 풀려난 것도 엄청난 은혜이지만, 그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희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비록 메마른 광야 사막 길을 여행하면서도 순간순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초자연적인 이적의 신비를 만끽하면서 벅찬 감격을 가지곤 하였습니다. 훗날 모세는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의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고 하였습니다(신 32:10).
이처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애정과 간섭하심은 4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의 양식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하신 것으로 나타나졌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먹이시고 그것으로 그 백성을 시험하셨다고 말했습니다.

본문 말씀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여행 동안 겪었던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축복은 어떤 의미에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시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주님께서는 지상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특별한 은총을 베푸시면서 또 한편 피할 수 없는 시험과 연단의 과정을 거치게 하십니다.

I. 선민의 소양(素養)을 기르게 하십니다.

신약의 야고보는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약 1:13).
그렇지만 여기서 모세는 분명히 시험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시험이 자기 백성에게 필요한 훈련의 과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에는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고 하였습니다.

(1) 값없이 받은 은총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은 우리에게 그럴만한 조건이나 자격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거저 받은 은혜입니다(엡 2:8). 신명기 7:6에 “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라고 하였습니다.
7-8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거나 뛰어난 자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심과 그들의 열조에게 맺은 맹세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처럼 거저 받은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다가도 쉽게 잊어버리거나 배은망덕 해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은혜의 가치를 알고 사모하는 사람이라야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오래도록 간직하게 됩니다. 그렇지 못하면 에서처럼 경홀히 여기고 쉽게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창 25:34). 성도는 시험과 훈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은혜의 가치를 알고 이를 사모하며 소중하게 간직하게 됩니다.

(2) 신앙인격을 겸손하게 만듭니다.

이스라엘의 광야행진에는 감격스러운 하나님의 은혜도 있었지만 거기 못지않게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도 있었습니다. 신명기 8:15에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고통과 시련을 겪게 되므로 그 당시에는 몹시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으나 지나 놓고 보면 그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연약함을 알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한 것입니다. 16절에는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은혜 받은 사람이 가장 경계하여야 될 일은 저도 모르게 교만해 지는 일입니다. 모세는 그 백성에게 경계하기를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신 8:13-14).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는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만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약 4:6).

(3)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 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훈련시키시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곧 시련을 통하여 겸손해지는 것이며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거기에 부응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성군 다윗의 생애에도 있었습니다. 다윗의 말년에 군대장관 요압을 시켜 이스라엘의 인구를 계수하게 하였습니다. 이를 괘씸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려 백성이 칠만 명이나 쓰러졌습니다(삼하 24:15). 사무엘하 24:1에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저희를 치시려고 다윗을 감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으로 보아 다윗의 인구조사는 하나님의 계획된 수순에 그가 걸려든 것 같이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그 일이 있고나서 다윗은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하고 회개하였습니다(삼하 24:10). 결과적으로 이 일이 있은 다음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고 이어서 은 오십 세겔에 그 밭을 사서 훗날 하나님의 성전 부지로 삼았습니다.

Ⅱ. 성숙된 제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개혁자 루터(M. Luther)는 ‘열매 없는 나무에는 막대기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곧 가지를 흔들거나 막대기로 때릴 때는 그만큼 소득을 가져올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의도적으로 시험을 하실 때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거기 상응하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 모인 무리들에게 오병이어(五餠二魚)의 이적을 행하실 때도 제자들을 시험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5-6에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1) 교훈과 체험으로 훈련시키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직접 찾아가셔서 제자로 부르시고 그들로 하여금 장차 교회운동의 초석이 될 수 있도록 훈련시키셨습니다. 그 방법은 말씀으로 교훈하시고 때때로 시련도 겪게 하셨으며 신비로운 이적과 능력도 체험하게 하였습니다.
가령 마태복음 5장-7장의 산상보훈이나, 13장의 천국비유, 그리고 24장-25장의 말세론적 강론 등은 말씀으로 교훈하신 내용입니다.
또 두 차례나 바다 위에서 풍랑을 만나고 죽음의 위기를 겪은 것은 고난의 체험입니다(마 8:23-27). 한편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을 유령인줄 알고 두려워했다가 베드로는 예수님이라는 말을 듣고 저도 물 위로 걸었습니다(마 14:29). 모든 질병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신유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체험하였습니다(마 11:5).

(2)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가 된다는 사실을 믿고 이를 증거 하는 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예수님에 대한 바른 신앙에 굳게 서야만 됩니다. 벳세다 광야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을 위하여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을 때 그들은 이백 데나리온의 돈이 있어도 먹일 수 없다고 하며 불가능으로 단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무리에게 배불리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게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내려온 떡으로서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주님이심을 믿게 하였습니다(요 6:48-51).
예수님의 제자 된 사람은 세상에서 교회운동을 통하여 주님의 사역을 계승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어야 될 사람들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 위에서 가능합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하고 신앙고백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마 16:16-18).

(3) 투철한 사명의식을 고취시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실 즈음 그의 제자들에게 막중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행 1:8). 복음 증거에 있어서 언어나 종족이나 국경을 초월하여 어떤 대상이든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마 28:18-20).
이와 같은 사명을 수행함에는 엄청난 시련과 고통이 따릅니다. 때로는 공회에 끌려가서 채찍에 맞고 감옥에 들어가고 죽임을 당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뎌내어야만 합니다(마 10:17-23). 이런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시험을 겪어야 되고 고된 훈련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자기의 교회 설립을 선언하신 다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하고 제자의 도를 말씀하셨습니다(마 16:24).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며 그의 제자된 길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의 과정을 거쳐 시험을 이겨내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Ⅲ. 축복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창세기 22:1-2에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사흘길이나 가서 그를 제단 위에 올려놓았습니다(창 22:9-10).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 순종심을 귀하게 보시고 이삭을 죽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 후손들이 받게 될 축복을 예언하였습니다(창 22:16-18). 시험이라는 과정을 거쳐서 아브라함에게 주시기로 원하는 축복의 언약을 더욱 확실하게 해 주시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1) 축복을 받은 사람

아브라함은 축복의 대명사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은 「열국의 아비」라는 뜻으로 그 자체가 축복 받은 민족의 상징성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고 하였습니다(창 12:2).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나이 칠십 오세였는데 그 때까지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창대케 되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어김없이 이루어져서 그가 백세 되었을 때 이삭을 아들로 받게 되었습니다(창 21:1-6).
그뿐 아닙니다. 고향을 떠나 올 때 집과 전토를 다 두고 빈손으로 나왔으나 어느덧 그에게는 많은 우양과 생축이며 넓은 토지까지 소유하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창 21:22-34). 창세기 21:22에 보면 “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고 하였습니다.

(2) 수용하고 발전시켜야 됩니다.

창세기 18:18-19에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를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대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받는 복은 자기들만의 것이 아니라 천하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복입니다. 곧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의 자손(예수 그리스도)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에게까지 전달되는 복의 기관으로서 그 엄청난 특권과 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은 그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시험하고 훈련시키실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수용할만한 그릇의 크기에 따라 받게 되고 또 그것을 누리고 발전시킬 수 있는 자질이 되어야만 오래도록 보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며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신명기 8:17에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고 하였습니다.

(3)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언약을 선포하실 때 그와 그 후손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의와 공도의 표본으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주신 복을 받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 섬기는 자의 삶이 이런 것이라고 보여주는 모델(model)이 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8:19에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총애를 받으며 축복의 특권을 누리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축복의 대상을 삼으신 것도 자기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목적 있는 삶을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목적에 맞는 삶을 사는 사람은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축복의 길을 가면서 그것도 사실상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은 길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사실을 잘 알기 때문에 「여호와 이레」곧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 하였습니다(창 22: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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