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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Ⅹ) (창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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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비' 또는 '위대한 아버지' 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의 원래 이름은 아브람으로 이 이름의 뜻은 '아버지', '존귀한 아버지' 라는 의미인데 하나님이 고쳐주셨습니다(창 17:5). 아브라함의 부친은 데라이고 동생은 나홀과 하란입니다(창 11:25). 아브라함은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노아의 12대 손으로 출생했습니다. 그리고 사라와 결혼하였습니다(창 11:29).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의 벗이라 하였고 선민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창 12:2). 그는 메시야의 혈통으로 선택받았습니다(창 22:18).
하나님은 그의 신실하신 약속대로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갈의 소생 이스마엘을 축출시키게 했습니다. 이때 아브라함은 명실공히 약속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창 21:10-12).
그후 그는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생하시는 하나님을 부르고 살았습니다(창 21:33).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불렀습니다.
본문 22장 1절에 보면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시험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 시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사단에게서 기원한 시험으로 인간을 유혹(temptation)하기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의한 것으로 인간을 테스트(test)하기 위한 것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시험은 곧 후자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져온 시험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본문 22장 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번제가 무엇입니까? 짐승을 잡아 불에 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정하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아브람은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할 때였습니다.
본문 22장 11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사자"는 전에 하갈에게 현현하셨던 분입니다. 창세기 16장 7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곁 곧 술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나"라고 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사자는 성육신 하시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놀라운 부름에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창 22:1,22:11)라고 했습니다.
본문 22장 12절에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 아이에게 너의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의 음성입니까?

Ⅰ. 예배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계시 의 음성입니다.

본문 22장 2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번제"(burnt-offering)는 대개 짐승을 잡아 죽여서 각을 뜨고, 피를 취하여, 제물 전부를 제단 위에 불살라 드리는 가장 기본적인 제사입니다.

1) 번제의 제물은 이삭입니다.
(1) 네 것, 곧 아브라함의 소유였습니다(창 22:2).
(2) 아들이었습니다(창 22:2). 아브라함의 소유 중에도 그의 가축 중의 소나 우리의 염소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 자신도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3) 사랑하는 아들이었습니다.(창 22:2).
(4) 그 아들은 외아들 독자 이삭이었습니다(창 22:2).
(5) 이삭, 곧 웃음(기쁨)을 요구했습니다(창 22:2).
독자 이삭은 이 세상에서 아브라함이 가진 전부였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가장 최고의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약속의 대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노년의 즐거움이었던 독자 이삭, 사랑하는 아들이 번제 제물로 지정되었습니다.

2) 번제의 장소는 모리아산이었습니다.(창 22:2)
본문 22장 2절에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라고 했습니다.
브엘세바가 아닌 모리아 땅이었습니다. 이 모리아 땅은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산악 지대였습니다. 바로 이곳은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장소입니다. 그 곳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곳입니다. 삼하 24장 16-17절에 "천사가 예루살렘을 향하여 그 손을 들어 멸하려 하더니 여호와께서 이 재앙 내림을 뉘우치사 백성을 멸하는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하시니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여부스 사람 아라우나의 타작 마당 곁에 있는지라 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가로되 나는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삽거니와 이 양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컨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비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곳이 주님께서 기도하신 지역이요, 피 흘려 십자가에서 죽으신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을 지정하시고 그곳에서 독자 이삭을 제물로 죽여서 피와 함께 그 몸을 불태워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

3) 여호와 이레로 나타났습니다.
본문 22장 13-14절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이레"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 혹은 "돌아 보셨다" 는 뜻입니다.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때를 따라 공급해 주신 다는 고백적인 이름입니다.
마태복음 6장 32절에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22장 1절의 "하나님"이 여기에 와서는 여호와의 사자로 나타났습니다. 그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서 친히 오신 것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수풀에 걸려 있는 한 마리 수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창 22:13)
아브라함은 그때야 수풀에 그 뿔이 걸려 있는 수양을 이삭 대신 번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사자의 소리 없는 계시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수양이 여호와의 산에서 하나님이 친히 준비하여 세상 죄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예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자는 자기 제사의 예표를 아브라함에게 한 마리 수양으로 보도록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하시는 산인 오늘의 교회는 우리 죄를 위하여 대신 번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는 교회는 진실로 교회일 수가 없습니다.

Ⅱ. 예배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계시 의 음성입니다.

본문 22장 12절에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여기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 속에는 아브라함의 부활 신앙이 내재 되어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제사를 위해 짐승을 잡는데 능할 뿐만 아니라 짐승을 잡아 각을 뜨는데 아주 숙달된 사람입니다.
본문 22장 10절에 "그 아들을 잡으려고" 한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 '잡는다'는 말은 짐승을 잡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세상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결박시켜라. 월급봉투에서 하나님의 것을 결박시켜라, 하나님의 시간을 결박시켜라!
히브리서 11장 17-19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죽이면 살려 주실 줄을 믿는 부활 신앙이 있었습니다.

Ⅲ. 예배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 계시의 음성입니다.

본문 22장 16-17절에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1) 큰 복을 준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22장 17절에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라고 했습니다.
이 "큰 복"이 무엇인가? 그것은 믿음의 복입니다. 그 믿음의 복은 전 세계적으로 미치는 우주적 축복인데 세계 어느 민족이든지간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다는 사실입니다(갈 3:14). 믿음은 복의 근원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이 세상을 이기고 그 믿음으로 영생을 보장받기 때문입니다.

2) 영적 후손의 축복입니다.
본문 22장 17절에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에 모래와 같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신앙의 후손이 많아질 것에 관한 축복입니다. 교회의 축복입니다. 별과 같이 빛나고 반짝이는 자손, 모래알 같이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큰 무리의 자손의 축복을 뜻합니다. 이 자손은 하나님의 인을 맞은 14만 4천으로 집약 됩니다.
계시록 7장 4절에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14장 3절에도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와 유대인의 충만한 수 곧 온 이스라엘의 충만한 수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2장 25-26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7장 9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라고 했습니다. 계시록 7장 13-14절에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3) 승리의 축복입니다.
본문 22장 17절에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는다"는 말은 영적 아브라함 자손들의 모든 면에서의 승리를 뜻합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모든 영역에서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창세기 24장 60절에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지어다"고 했습니다.
구속사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 승리하신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사탄의 권세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다는 말입니다.

4) 메시야의 축복입니다.
본문 22장 18절에서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브라함 가에서 인류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가 화육강세하여 만민의 구주가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의 안목으로 보아야 합니다(마 1:1). 아브라함의 직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화육강세하심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여기에 천하 만민은 구원 받기로 작정된 모든 시대, 모든 민족을 가리킵니다. 이 같은 축복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말씀을 준행할 때 가능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인격자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예배할 줄 모르는 인간은 이미 유기된 자입니다. 직언하면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자입니다(계 20:15).
창세기 22장을 가리켜 메시야 장이라고 합니다. 결코 본문은 아브라함의 순종에 무게를 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건을 증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시고 열국의 아비가 되기까지 한 단계 한 단계씩 높여 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예배는 신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건의 전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속죄 제물이 되셨습니다. 한 단계씩 높아가는 아브라함의 영적세계의 성화적 삶은 예배를 통해 가능케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는 하나님의 심정을 맛보았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내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너희 죄를 사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내어 주는 나의 마음을 아느냐!
나의 이 마음을 아브라함 네가 먼저 맛보아라!
이것이 믿음의 조상이 되는 첫 번째 조건이 아니겠느냐! 하시는 하나님의 영음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주님을 만나는데 익숙해져야만 합니다. 주님을 어떻게 만나야 합니까?
예배를 통하여만 가능합니다.
다른 곳에서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된 교회에서 우리와 만나기를 기뻐하십니다. 죽고자 하는 자는 산다는 진리는 궁극적으로 부활 신앙의 기초 위에서만이 온전케 됩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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