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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기하고 놀라운 일 (롬 4: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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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턴가 백두산 천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살고 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일부 신문과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 괴물이 헤엄치는 모습을 촬영했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런 괴물에 관한 이야기는 백두산 천지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나라, 여러 호수들에도 그와 비슷한 괴물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영국 스콧틀랜드 지방 네스 호에 살고 있다는 네시입니다. 그러나 대체로 사진이 조작되었거나 다른 자연 현상을 괴물로 착각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동물이나 신화나 전설로 전해져 오는 동물의 존재 여부 등을 연구하는 학문이 신비동물학입니다. 신비동물학자들은 그 동안 사람의 손길이 거의 미치지 못했던 밀림이나 깊은 바다 속, 또는 극지방 등을 열심히 뒤지면서 그런 동물들을 발견하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전설의 괴물로만 생각했던 동물들이 실제로 발견된 경우도 의외로 많이 있다고 합니다.

  깊은 바다 속에 살면서 작은 어선도 집어삼킨다고 해서 옛날부터 뱃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어 온 거대 오징어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로 ‘알키투더스’라는 오징어인데 배구공만한 눈에 몸길이 10미터가 넘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무척추동물입니다. 깊은 바다 속에 살기 때문에 눈에 띄기 쉽지 않지만 간혹 큰 어선에 잡히거나 사체가 해안가에서 발견되기도 합니다.

  하여간 신비동물 연구는 아무래도 과학과 신화, 전설과 미스터리, 판타지 등의 세계를 넘나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칫하면 사이비로 몰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약 170만 종의 생물 외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숱한 종들이 더 있을 것입니다. 그 수가 최소한 수백만 종에서 많게는 1억 종에 달할 것이라고 얘기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 삶의 주변에는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고 그래서 믿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세계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그러나 그것은 참된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의 세계는 그런 제한적인 영역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믿음의 삶이란 그런 경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세계와 잇대어 살아가는 삶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평생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는 믿음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리 손해를 볼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나이 늙도록 그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의 생에 있어서 가장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살았지만 죽은 것과 다를 바 없는 시간들을 보내면서 그는 우울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다가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롬 4:17) 그들 부부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와 어머니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그의 나이 99세라는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은 단순히 한 가문의 대를 이을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 이상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 구원 역사를 이루시는 드라마의 막을 여신 것이었습니다. 오늘 봉독한 로마서의 말씀은 그 드라마가 어떻게 펼쳐지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아브라함의 가정에 아들을 주시겠다는 말씀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자녀가 없이 쓸쓸하게 지내던 팔레스타인의 한 노부부에게 다가오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그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습니다.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믿기 어렵지 않습니까? 이제 생을 마감할 준비를 해야 할 나이 아닙니까? 대를 이을 아들도 없는 외로운 그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셨다는 말씀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볼 때 그것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오셔서 임신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아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고 장차 그 아들을 통해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것이라는 말씀은 노부부를 놀리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시기 때문에 신기한 일이라고 하는 것이며 절망 가운데서 소망을 안겨 주시기 까닭에 놀라운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그렇게 신기하고 놀라운 약속의 말씀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또한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요구되는 것은 다만 믿음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개하고 있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렇습니다! 바로 그와 같은 믿음이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요구되는 믿음입니다. 때문에 그 믿음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의로 여기졌다는 말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고개를 끄덕이시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을 지켜보시며 하나님께서 흐믓한 미소를 짓고 계신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아브라함의 그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라는 드라마의 막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그의 자손을 사용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귀하게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역사에 쓰임 받는 일꾼은 그가 얼마나 많이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 하는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지하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오늘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신기하고 놀라운 구원 역사가 펼쳐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믿음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 그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으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과 그가 다시 부활하신 것을 믿는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99세라는 나이에 아기를 임신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어떻게 나를 위해서 죽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2천 년 전에 죽은 분의 죽음이 오늘 나의 생명과 어떻게 연관이 된다는 말입니까? 그가 또 어떻게 온 인류의 죄를 다 용서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 옛날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말씀만큼이나 믿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는 것만 믿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참된 믿음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 역사는 하나님의 신비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눈길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의로 여기신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믿고 받아들일 때 신기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 삭개오 같은 자가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겠는가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믿음으로 영접할 때 주님은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바로 거기서 하나님의 흐믓한 미소를 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의사 출신으로 중국 선교사로 나갔던 허드슨 테일러에게 어떤 사람이 질문했습니다. “선교사님은 하나님께서 크게 사용하시기 때문에 때로는 교만의 유혹을 받으실 것 같습니다. 땅 위에 사는 사람들 중에 선교사님보다 더 큰 명예를 가지신 분이 있을까요?” 허드슨 테일러가 대답했습니다.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저는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대로 쓰실 수 있을만큼 작고 약한 자를 찾으시다가 저를 발견하신 것이라고 말입니다.” 조지 뮬러가 설립한 고아원의 원장 프레드 버거는 최후의 메시지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젊은 형제들에게 가서 말하세요. 그들이 너무 작아서 하나님께서 못 쓰시는 것이 아니라 너무 커서 쓰실 수 없다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원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역사를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입니다. 그 선물을 받기 위해서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비울 필요가 있습니다. 신기하고 놀라운 구원 역사를 경험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믿음뿐이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때문에 믿음을 방해하는 모든 경험과 지식과 수단을 다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주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 영광스러운 부활에까지 동참하는 참으로 복된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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