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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가 쓰시면 (딤후 2: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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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수요일 직장예배를 마친 후 우리 교회 세 분 장로님들과 함께 천안에 있는 저희 교회 수련원 부지를 다녀왔습니다. 천안을 다녀오면서 세 분 장로님들도 많이 놀라셨지만 저는 정말 얼마나 많이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곳이 전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천안에 학교와 수련원 그리고 교회를 위한 6 천 여 평의 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4 천 평은 저희 교회 권사님과 집사님 가정에서 교회에 헌납한 것이고, 2 천 평은 교회가 그 땅을 받고 난 후 필요하여 더 사 넣은 것입니다.

헌납을 받은 4천 평은 현재 과수원을 하고 있는 땅이고, 2천 평은 양계장을 하던 땅이었습니다. 저희 교회에 그 부지를 헌납하신 권사님과 집사님의 가정은 약 20 여 년 전 그곳에 친척과 친구들과 어울려 몇 만 평의 땅을 구입하여 공동으로 사과 과수원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당신의 몫 중 절반을 떼어 교회에 헌납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권사님과 집사님 가정이 저에게 그 땅 4천 평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하신 것은 십여 년 전부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땅을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에게 주시려고 그러셨는지 차일피일 미루며 그 땅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땅을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 써야 할지가 마땅히 잘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곳은 천안 톨게이트에서 한 2- 30분 정도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작은 마을 좁은 길을 통하여 진입을 하여야 하고 그 과수원부터는 민가가 없는 허허벌판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땅을 어디에 쓰면 좋을지가 잘 생각이 나지 않는 그런 땅이었습니다.

몇 만 평의 땅 중 제가 어느 쪽이든 4천 평의 땅을 선택하면 그 땅을 우선적으로 드리겠다는 말씀에 제가 둘러보고 현재 저희 교회 부지를 선택하였고 권사님은 땅을 분할하여 저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땅을 잘 볼 줄 모르는 사람이라 선택하고 보니 도로에서부터 저희 땅으로 들어가는 길이 없었습니다. 권사님과 집사님의 땅을 통과해야만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 분들은 훗날 그것 때문에 불편할 수 있겠다 생각하시고 순전히 저희 교회 부지에 입구를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도로와 연접한 땅 천 평을 당시 평당 십 만원 정도를 주시고 구입하시어 그 땅에서 100여 평을 길로 또 내어 주셨습니다.

훗날 저희 교회가 도로와 저희 교회 부지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양계장 2천 평을 사 넣음으로 그 100여 평의 길이 큰 의미는 없어졌지만 그렇게까지 하셨던 권사님과 집사님 가정의 마음을 하나님은 참으로 귀히 보셨던 것 같습니다.
아전인수격의 생각이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희 교회가 그 땅을 받으면서부터 그곳이 전혀 다른 땅으로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저희 땅으로 들어오려면 국도에서 마을의 아주 작은 길(버스가 들어오기 힘들 정도로 좁은)을 통해야만 했는데, 국도로부터 저희 땅이 있는 과수원으로 직접 길이 뚫렸습니다. 그리고 길도 많이 넓혀지고 포장까지 되었습니다. 과수원과 저희 교회가 나라에 땅을 좀 내어 놓았습니다. 저희 교회 땅도 한 200여 평은 길로 들어간 것 같습니다. 그 마을에서는 길 때문에 보상을 받은 가정도 있었지만 정말 마을의 발전을 위한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무상으로 기증하였습니다. 그것은 권사님 가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길이 뚫리고 보니 그 몇 백 평 나라에 기증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유익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땅이 전혀 다른 땅이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그 땅을 받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우리 땅 길 맞은 편 30여 만 평의 땅에 삼성 협력업체들이 건물을 짓고 들어오기로 결정이 되어 땅을 매입하기 시작하였고 지금은 그것이 다 끝이 나서 이제 곧 공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고속도로도 천안 톨게이트를 조금 지나 천안에서 논산 쪽으로 고속도로가 새로 뚫렸는데 그 쪽으로 가면 남 천안 톨게이트가 나옵니다. 그 남 천안 톨게이트로 나가면 우리 교회 수련원 부지까지 5-6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날도 보니 교회에서 출발하여 약 1시간 20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돌아올 때는 구 도로를 이용하여 천안 톨게이트로 나왔는데 나오다 보니 어느 사이에 지었는지 아파트 단지가 거의 공사를 다 마치고 입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엄청난 일이 우리 교회가 그 땅을 기증 받은 후부터 요 몇 년 사이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돈을 주고 사기도 힘든 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전에는 그곳에 무엇을 하여야 할지가 사실 조금은 막막하였는데, 지금은 너무 할 수 있는 것이 많은 아주 유용한 땅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10여 년 전 쯤 저희 교회 사무장 집사님이 위암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제가 심방을 가서 묶인 나귀 풀어 오라는 본문의 말씀을 가지고 주가 쓰시겠다하면 풀어 주신다는 뜻으로 설교를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저에게는 주가 쓰시면 풀어주신다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고 자신의 남을 삶을 온전히 주사 쓰시도록 서원하고 헌신하면 암에서 풀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어 그렇게 설교를 하였던 것인데 하나님께서 작은 믿음을 귀히 보시고 결과적으로 이야기하면 그 믿음대로 해 주셨습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 천안수련원 부지를 돌아보고 오면서 저는 똑같은 생각을 하였습니다. 주를 위하여 쓰겠다고 내어 놓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풀어달라고 하지 않을 것까지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풀어주셔서 마땅히 크게 쓸데가 잘 없어 보이던 땅이 지금은 돈 주고도 쉽게 살 수 없는 땅으로 바뀌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앞에서 권사님과 집사님의 가정에서 저희 교회에 입구를 만들어 주시기 위하여 도로와 연접해 있는 땅 천 평을 일부러 사셨다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 그 때 급히 사느라고 당시 시가보다 좀 넉넉하게 돈을 주고 평당 십 만원주고 매입하였었습니다. 그것이 불과 2년 전 쯤이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여러분 아마 짐작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저희 교회는 그곳에 6천 평의 부지를 가지고 있고, 그 권사님과 집사님 가정은 5천 평 정도의 땅을 가지고 계십니다. 교회나 그 권사님 가정이나 부동산 투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와 같은 것에 욕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땅을 내어 놓을리도 없고, 준다고 할 때 몇 년 씩이나 받지 않고 있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축복은 투기보다 크고 강하다는 것을 요즘 눈으로 확인하며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 모릅니다. ‘주를 위하여 쓰면 풀어주신다.’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저는 자식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리고 자신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써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부열이 쓰세요.’ ‘하나님 우리 지열이 쓰세요.’ ‘하나님 우리 정열이 쓰세요.’ ‘하나님 저 쓰세요.’ ‘하나님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 쓰세요.’

전에도 설교 중 말씀을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만, 80년 5월 6일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릴 근사한 제 몫의 일을 주세요.’라는 것이었습니다. 노회장이나 총회장과 같은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도 없었고 큰 교회 목사가 되게 해달라고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근사한 일 하나를 온전히 해 드릴 수 있는 일꾼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젊어지기가 싫을 만큼 제 인생과 목회의 길을 풀어 주셨습니다. 돌아보면 제 인생도 ‘주가 쓰시겠다하면 풀어 주신다.’는 말씀의 증인입니다.


둘째 아이가 군대를 다녀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한국예술 종합학교에 들어가 영화를 공부하겠다고 했을 때 저는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 은사대로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은사란 ‘좋아하는가?’ ‘잘 하는가?’ ‘옳은 일인가?’ 이 세 가지를 맞추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도박을 아무리 좋아하고 잘 해도 은사가 아닙니다. 옳은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옳지 않은 일만 아니라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은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잘 하는 일은 대개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좋아한다고 꼭 다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음악을 좋아한다고 음악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이 은사일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영화는 옳지 않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이가 하고 싶어 할 때 구태여 막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에게 주신 은사와 소명이라면 그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옳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영화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쉽게 권할만한 직업을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는 일이 우선 3 D 업종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성공률도 매우 희박한 직업입니다. 우리 아이가 한국예술 종합학교 영상원에 입학하자마자 한국 영화 정말 말도 아니었습니다.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모두 관객 천 백 만 명을 돌파하였습니다. 그것을 보자 사람들이 역시 목사님은 선견지명이 있다고들 하였습니다. 둘째가 영화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한국 영화가 난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르고 하신 말씀들이었습니다. 저는 ‘실미도’와 ‘태극기 휘날리며’가 그렇게 대박을 터트리는 것을 보며 얼마나 마음이 불안했는지 모릅니다.

그해 그 두 영화 외에는 모두가 다 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볼 때 영화판이 로또 판 같아 보였습니다. 내 아이가 그런 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참 마음이 싱숭생숭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궁극적으로 제 둘째에 대하여 걱정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둘째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우리 지열이 영화 쓰세요.’..... 제 아이가 작년 예수전도단에서 하는 제자훈련(DTS)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우리 아이가 자기 영화를 하나님을 위하여 쓰겠다는 생각을 아주 단단히 한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제 둘째의 길을 열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천안 땅 풀어주시듯이, 남궁 집사님 암을 풀어주시듯이, 저의 보잘 것 없는 인생을 후회가 없어서 젊어지는 것이 싫고 두려우리만큼 풀어주셨듯이 풀어주실 것이라고 믿어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지난 달 말 큰 아이로부터 기도제목들을 등기우편으로 받았습니다. 유학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 제목들이었습니다. 그 내용을 가지고 나름대로 꼼꼼하게 기도문을 만들어 아이가 내년 유학을 가기 전까지 천 번을 기도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저는 저 기도가 어떻게 하면 그 기도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압니다. 때문에 저는 그 기도가 기도대로 이루어질 것에 대하여 조금도 의심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제 믿음대로 제 아이는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저는 어떻게 하면 기도가 기도한대로 이루어지는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모든 기도와 간구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이 쓰시게 하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쓰임 받는 사람이 되겠다고 서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삶의 목적을 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를 귀한 그릇으로 삼아 주십니다. 귀한 그릇으로 사용해 주시기 위하여 모든 묶인 것들을 풀어 주십니다. 보잘 것 없는 것을 존귀한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저는 둘째를 위하여도 기도문을 만들려고 합니다. 물론 셋째를 위해서도 만들 것 입니다. 교회를 위해서도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높은 뜻 숭의교회의 담임목사로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날마다 무릎 꿇고 위하여 구체적으로 기도하는 것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자식들과 사랑하는 높은 뜻 숭의교회를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와 교회로 세워 주실 줄을 저는 믿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에 보면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운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21절에 보면 ‘귀히 쓰는 그릇’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귀히 쓰시는 그릇이라는 말씀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과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가 쓰시면 풀립니다. 인생의 목표를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에 두고 물질이나 시간이나 전공이나 직업을 주를 위하여 쓰겠다 결심하면 모든 것이 풀립니다. 형통해 집니다. 투기가 좇아 올 수 없는 하나님의 축복이 정말 땅에 쌓을 곳이 없도록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의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모두가 다 원죄가 있는데 성경은 죄의 뿌리를 욕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원죄가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욕심이 있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욕심은 쓰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주를 위하여 쓰는 것을 좋아해야 복을 받는데 죄는 주를 위하여 쓰는 것을 아까워하고 싫어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마음을 통하여 우리의 앞길을 막습니다. 우리의 인생을 꼬이게 합니다.

그 죄와 싸워야 합니다. 우리의 앞길을 막고 꼬이게 하는 욕심과 싸워야 합니다. 죽기 살기로 싸워 이겨야만 합니다. 다음 주일에는 오늘 본문을 가지고 계속하여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인정받는 일군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은 ‘주가 쓰시면’이라고 하였고, 다음 주 설교 제목은 ‘주가 쓰시려면’이라고 하려 합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군으로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여러분의 목적을 삼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여러분의 삶을 이끌 수 있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공부를 하는 목적이 주를 위하여, 주께 쓰임 받기 위하여 이어야 합니다. 돈을 버는 목적이 주를 위하여 이어야 합니다. 주께 쓰임 받기 위하여 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주를 위하여 쓰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출세하고 성공하는 목적도 주를 위하여 이어야 합니다. 주께 효과적으로 쓰임 받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하여튼 모든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자신으로 자신의 목적을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좋은 것을 마시고, 더 좋은 것을 입는 것으로 삶의 목적을 삼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군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4년 동안 하나님은 우리 교회 천안수련원 부지를 위하여 고속도로를 뚫으시고 앞으로 몇 백만 명이 들어와서 일하는 단지를 만드시고 아파트를 건설하시고 고속철 역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이 쓰시면 좋겠다는 일념으로 조르다시피 하나님께 드린 그 땅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저는 저와 제 사랑하는 자녀들과 제가 사랑하는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와 교인들 그리고 저의 부족한 설교를 통하여 늘 함께 은혜를 받으시는 모든 분들의 삶이 우리 천안 땅 같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와 같은 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와 같은 복을 받기 위하여 여러분의 모든 삶의 목적이 오늘부터 철저히 하나님이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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