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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리를 지키는 성도 (행 1: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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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예수 그리스도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그 예수상이 부서져 버렸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흩어졌던 마을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자 이들은 부서진 조각들을 모아 예수상을 복원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손과 발 부분이 너무 망가져 도저히 다시 복원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일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럴 게 아니라 예수상을 전부 다시 만들어 여기에 세웁시다!"
  그러나 한 편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비록 불완전하긴 하지만 그대로 둡시다!"
  그리고 결국 그대로 보수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손발이 망가진 채로 복원된 예수상이 세워졌습니다. 얼마 후, 한 젊은이가 그 예수상 앞에 와서 섰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주님, 당신의 손과 발은 망가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주님의 손과 발이 되겠습니다. 제가 주님의 손이 되어 대신 섬기겠습니다. 주님의 발이 되어 대신 가겠습니다. 주님의 심장이 되어 대신 사랑하겠습니다."
  주님의 손발이 되어 드릴 사람 어디 없습니까?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열심히 기도하여 가룟 유다 대신 맛디아를 제비 뽑아 제자가 되게 한 말씀입니다. 120이라는 숫자는 한 공동체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최소 인원수를 규정한 유대법의 규례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유대교적 견지에서도 제자들의 수는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이 세상에는 사람과 자리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맞는 사람이 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람은 많은데 쓸만한 사람이 적다고 말합니다. 어떤 자리를 차지하기도, 유지하기도, 물러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칭찬과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룟 유다가 제자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여 맛디아에서 빼앗기는 비극적인 내용입니다. 영광스러운 자리를 잘 지키는 이 시대의 좋은 제자와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본문 17절 "이 사람이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예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가룟 유다는 예수 일행의 회계 일을 맡았습니다. 계산에 능통했을 뿐만 아니라 대단한 신임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듯 중요한 위치에서 큰 신임을 얻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욕심을 따라 결국 예수를 배신하는 중죄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직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일반적으로 '섬김과 봉사'를 뜻합니다. 자신을 비우고, 욕심을 버려야 하는 자리와 직분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이용하여 자신의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려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 되면 장관자리를 차지하려는 욕망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목적이 아닌 자기 욕심을 실현하는 도구나 방법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나 직무보다는 자신의 욕심이 너무나 커서 예수와 제자의 직무가 보이지 않았고 결국은 은 30에 팔아먹는 최악의 선택을 한 것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사람들의 신임을 이용하여 욕심을 부리다가 제자와 영생과 명예와 생명까지도 잃어버리는 인류 최대의 실패자가 된 것입니다.

  찬송가 작사자로 유명한 보너가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보너에게 저울에 올라서 보라고 했습니다. 보너가 저울을 가만히 살펴보니 그 저울은 사람의 열심을 다는 저울이었습니다. 보너가 떨리는 마음으로 저울에 올라서자 "100근!"이라는 소리가 나왔습니다. 보너는 속으로 "아, 나의 열심히 100근이나 되다니!"하며 기뻐했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에는 100근에 대한 성분 분석이 나왔습니다.
  "이기심 때문에 나타난 열심 14근, 파당적인 열심 15근, 명예 때문에 나타난 열심 22근, 사람을 사랑해서 나타난 열심 23근,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심 26근!"
  잠에서 깨어난 보너는 무릎을 꿇고 지금까지 자신의 열심이 결국은 자기 온갖 욕심을 채우기 위한 열심이었음을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칭찬, 명예, 우월감, 갈채를 얻고자 하는 헌신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돌아오는 것은 허탈한 마음뿐입니다. 우리의 헌신, 우리의 열심은 전적으로 주님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이 인정해 주시고 주님이 알아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우리 모두는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에는 아직도 가룟 유다적인 욕심과 보너의 욕심이 가득합니다. 이러한 욕심에서 결코 누구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나는 욕심 없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감히 누가 나설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가룟 유다나 보너 이상의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욕심과 야망을 품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 욕심 많은 내가 죽어야 하는데 욕심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죄 때문에 죽으신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신앙과 사명의 자리를 지키기가 불가능합니다. 예수를 팔고 버리게 됩니다. 더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성도의 직분과 자리를 지키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분노를 버려야 합니다

  본문 18-19절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게 되어 본방언에 그 밭을 이르되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가룟 유다가 은 30을 받아 부동산에 투자를 하였습니다. 밭을 샀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밭을 산 사람은 대제사장이었지만 결국 유다가 산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양심의 가책과 죄책감으로 인하여 나무에 목을 매고 달려 죽은 뒤에 노끈이 끊어져서 몸이 땅에 떨어져 배가 터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밭을 피밭이라고 말합니다. 욕심과 분노로 인해서 가장 비참하게 죽어 피로 얼룩진 처참한 상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돈과 땅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예수 없는 삶은 죽음과 지옥입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무시하거나 작게 보이는 그때가 바로 신앙과 인생의 위기입니다. 나의 욕심과 명예와 목적이 크게 보이거나 예수를 가리우면 경고등이 켜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섬길 때 건강과 생명과 형통과 영생이 있는 것입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함께 모여 서로를 돕는 AA(Alcoholics Anonymous)라는 모임이 있습니다. 이 모임에서는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켜야 할 12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첫 구절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것(알코올) 앞에서 무력하며 이것(알코올) 때문에 우리의 삶이 통제 불가능해졌음을 인정한다."
  인정하지 않으면 고칠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문제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치료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죄를 인정하고 죄인임을 인정할 때 주님의 치료는 시작됩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기도는 참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이것은 가장 약한 자의 기도이자 가장 강한 자의 기도입니다. 진정 강한 자만이 자기의 약함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죄와 허물, 부족함과 모자람을 인정해야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기도가 드려질 때 주님의 치료는 시작됩니다. 영혼에는 새 살이 돋아나고 새 기운이 뻗칩니다. 안 보이던 사람이 보이고 안 보이던 내가 보입니다. 이는 회개하는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은혜입니다.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특별히 남자들에게는 '욱'하는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홧김에 엉뚱한 말하고 행동하여 일생을 망치고 불행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화가 날 때 더 참고 생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분노 때문에 자살과 살인과 파괴적인 행위를 많이 합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노 때문에 예수를 팔고 밭을 사고 자살을 하였습니다. 분노를 버리고 더 깊이 생각하고 뉘우치고 회개를 하였다면 비극적인 종말을 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 속의 분노를 버리지 못하면 죽음과 지옥입니다. 사순절 기간에 열심히 기도하여 우리 마음 속에 꿈틀거리고 있는 가룟 유다의 분노를 회개와 사랑으로 바꾸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분노하면 직장과 사회와 가정과 교회에서 자리를 잃게 됩니다. 분노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자리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 분노가 자리를 태우고 부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욱'하는 분노를 다 버리고 사랑으로 자리를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 24-26절 "저희가 기도하여 가로되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저가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

  가룟 유다는 죽고 제자의 명단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스스로 버리고 지옥으로 갔습니다. 120명이 열심히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 맛디아를 제자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맛디아는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름대로 예수님의 제자와 사도가 되는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고 제자가 되는 것은 최고의 가치입니다. 이 가치를 깨달을 때 다른 것을 포기하고 신앙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신앙의 가치를 알기에 세상적인 시간과 사람과 물질과 향락을 포기하고 이 시간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치에 따라서 시간과 물질과 몸과 모든 것이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세간에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검색창에 '부자'를 치면 수십 종의 부자 관련 책이 주르륵 뜹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빈대 가족의 부자 완전정복」등 성인용, 어린이용 할 것 없이 어떻게 하면 부자가 되는지를 맛깔스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부자가 되는 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어떤 부자가 진짜 부자인지, 부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책은 매우 드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부자 이상의 목표가 필요합니다. 사람에게는 부을 넘어 보람이 필요합니다. 갈채를 넘어 영광스러운 삶이 필요합니다. 사탄은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부자는 많은데 존경받는 부자가 드뭅니다. 부자에게는 부자의 책임이 따릅니다.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높은 신분의 사람일수록 책임도 크다는 말입니다. 많이 가진 자일수록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합니다. 닮고 싶은 부자, 존경받는 부자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진정한 부자는 나누어 줄줄 아는 부자입니다.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부의 가치를 아는 진정한 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상길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 푸줏간을 냈습니다. 마을에 사는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그 중 한 양반이 그 백정에게 "얘, 상길아! 고기 한 근 다오." 박상길은 솜씨 좋게 칼로 고기를 베어서 주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양반이 주문을 했습니다. "박 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 "예, 그러겠습니다!" 백정 상길은 기분 좋게 선뜻 고기를 잘라 주었습니다. 처음에 고기를 산 양반이 가만히 보니까 자기가 받은 것보다 갑절은 되어 보였습니다. 그 양반이 화가 나서 소리쳤습니다.
  "야,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사람 것은 크고 내 것은 작으냐?"
  그러자 박상길이 대답했습니다.
  "아 예, 손님 고기는 상길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 서방이 잘랐으니까요!"
  권위라는 것이 큰소리 친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깔보면 그럴수록 나만 더 초라해질 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나 다름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대접을 받고 싶은 대로 먼저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섬기는 삶에서 나옵니다. 섬기는 만큼 높아집니다.

  우리 모두는 가치를 알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과 제자의 가치, 교회와 직분의 가치를 깨달아 다른 가치를 포기하고 신앙 가치를 높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가치가 너무 크고 높아 세상 가치를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성도답게 책임을 감당하는 삶을 삽시다. 사람을 존경하고 대접하는 삶을 삽시다. 그리할 때 그리스도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가 높아집니다. 더욱 가치가 높아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사순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욕심과 분노를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깨달아 하나님이 주신 자리를 잘 지키기를 바랍니다. 자리를 빼앗긴 가룟 유다의 비극이 아닌 맛디아처럼 점점 가치가 높아지고 은혜의 삶을 누리는 성도와 가정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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