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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의로 여겨지는 믿음 (롬 4: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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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믿음은 무엇인가? 할 때 한마디로 이야기 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의지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보는 것입니다.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 신뢰하고 의지하고 바라보고 순종하고 맡기는 모든 것을 합쳐서 믿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믿음은 믿는 대로 될 찌어다. 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루는 것입니다. 믿음대로 행하라 했으니 믿음은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도 믿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렇다 합니다. 그런데 결론이 아브라함이 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었다고 말씀 합니다. 결국 믿음의 가장 크라이막스는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믿었다 해도 의롭다함을 얻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의롭다 함을 얻어야 구원을 받습니다. 의롭다 함을 얻어야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믿음입니다. 행위가 아닙니다. 믿음입니다.

행위로서는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의롭다 아니다 하는 것은 모두 세상 법에 의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말하길 자기는 세상 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법으로는 죄인 중에 괴수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죄인도 보통 죄인이 아닙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사형수입니다. 그런 존재들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입니다. 그 비결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믿음을 우리에게 가장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으로 우리 모두가 의롭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 잠시 모세이야기를 해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못지않게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 모세이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80세에 부름을 받아서 40년 동안을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 하는 동안 그는 생명을 걸고 충성을 합니다. 가데스바나에서 한 사건이 벌어집니다. 물이 없어서 백성이 원성이 생겨납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반석을 쳐서 물을 내라는 명령을 받고 내려오는데 백성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성질이 난 모세가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물을 내랴 하면서 반석을 땅땅 칩니다.

하나님은 이일을 책망합니다. 너는 나를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불신앙입니다. 믿는 것 같았는데 믿지를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제고집으로 한 것입니다. 이 말씀이 저에게는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모릅니다. 믿음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믿음으로 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비판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비판 합니다. 하나님은 정죄하지 않는데 우리는 정죄합니다. 하나님은 용서하시는데 우리는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받아들이는데 우리는 받아들이지를 않습니다. 모두 불신앙입니다. 믿는 것 같았는데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러면 의롭다 함을 얻은 믿음은 무엇이었나요.

자, 그 믿음,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는 믿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믿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바로 그 믿음이란 어떤 믿음입니까? 창세기 1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는데 약속을 두 가지를 주십니다. 하나는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약속의 땅을 주겠다' 땅에 대한 약속. 또 하나는 '자식을 주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25년을 기다려도 아이가 없습니다. 자신은 점점 늙어가고 마누라는 할망구가 되어 단산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와서 말을 합니다. "내년에 아들을 낳으리라." 그러면 여러분은 이 상황에서 믿어지겠습니까?

25년을 기다렸습니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러다가 세월 다 갔습니다. 주시려면 진작에 주시지 이제 낳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주신다구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하고 끝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라가 장막 안에서 어이가 없으니까? 웃었어요. 그런 상황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에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활절 날, 계란을 나누어 주는데 왜 생 계란을 나누어 주지 않고 찐 계란을 나누어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생 계란을 나누어주어야 에디슨처럼 품에 안고 있다 보면 병아리라도 나와서 이게 부활이다 할 텐데 찐 계란을 나누어 주니 병아리가 나오기는 영 틀려 버린 거예요. 그래서 늘 불만인데 어느 날 그게 불만이라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거예요. 야 이놈아 전도사나 되는 것이 그것도 모르냐? 모릅니다. 생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은 그게 부활이냐? 그건 부화지. 찐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와야 부활이다. 그런 믿음을 가지라고 계란을 폭폭 쪄서 주는 거다. 그래요 생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은 부화지 부활은 아니지요.

이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부활신앙입니다. 그가 젊었을 때 난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그의 몸이 다 죽어서 그의 아내 사라의 몸이 여자로서 다 죽은 몸일 때 자식을 낳는 것이 기적이지요. 그것을 믿는 것이 부활신앙이요. 그 믿음이 진정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믿는 것이지요.

그래서 18-9절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주겠다할 때 사실은 아브라함은 염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무슨 염치로 하나님에게 아들을 달라고 하겠습니까? 땅을 준다 할 때 그것을 믿지 못하고 애급으로 갔던 사람입니다. 아들 준다고 할 때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하갈을 첩으로 얻어서 이스마엘을 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무슨 염치로 내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다 할 때 아멘 하겠습니까? 그런데 아멘 했어요.

사람들이 자기체면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해 기도하라 해도 그동안 교회를 얼마나 많이 빠졌는데 이제 하나님께 나가 기도하느냐 고 못한다는 거예요. 하나님을 그 정도 밖에 믿지를 못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자기들의 사랑의 분량이상으로 생가하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지를 못합니다.

또 하나는 죽은 것 같은 자기와 사라의 몸에서 아들을 날것을 믿은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토록 바꾸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해줄 수 없음에도 나를 그렇게 믿어주는 자식이 있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아이들이 어릴 때 제 친구들하고 이야기 하는데 옆에서 들으니까? 우리아버지는 어떻다 하고 자랑을 합니다. 그러다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아빠는 하늘에서 별을 따올 수 있다 하는 거예요. 그렇게 믿어주는 자식이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는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믿는 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돈 여자 결혼이 소원인 사람이 있었답니다. 누구겠어요, 노총각이지요. 이 노총각이 늘 돈 여자 결혼을 입에 달고 다닙니다. 하도 노래를 부르니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서 그 소원을 들어주고 오너라. 천사가 와서 네 소원이 뭐냐 하니까? 돈 여자 결혼입니다. 그랬더니 천사가 금방 소원을 들어 주는 거예요, 천사가 이 총각을 돈 여자와 결혼을 시켜주고 떠났데요. 돈 여자 결혼을 믿었으니 돈 여자와 결혼을 했지요. 한 번 웃어라 고 한소리이고요.

루터는 "하나님으로 하나님 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그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믿지를 못합니다. 하나님을 제한하는 것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들의 어설픈 지식입니다. 경험입니다. 자존심 입니다. 체면입니다. 이런 것들이 하나님을 하나님 되지 못하게 하고 우리가 더 큰 기적과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것은 그분을 전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믿으면 의심도 다 풀립니다.

어느 교회에 유명한 대학의 생화학자가 출석을 했습니다. 이 분이 출석하는 것은 예수를 믿으러 나온게 아니라 자기부인을 감시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의처증이 심해서 부인이 누구를 만나나 감시하느라 교회까지 따라 나온 것입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그 교수를 만나 예수 믿고 구원을 얻으라고 전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는 말이. 제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십니까?

목사님 참 불쌍하다. 생긴 것은 멀쩡하게 생겨가지고 설교는 늘 바보 같은 말만 하는구나. 생화학적으로 의학적으로 볼 때 어찌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어떻게 죽은 예수가 사흘 만에 부활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죽어서 사흘이면 세포가 와해되고 피도 썩는데 어떻게 다시 산단 말인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도 한심하다 제가 이런 생각하고 앉아 있습니다." 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확신을 가지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가 눈물을 닦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다가가서 부부싸움을 했느냐고 물으니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하는 말이 "목사님, 오늘 설교를 듣고 있으려니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말씀이 믿어졌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 교수는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의심하던 동정녀 탄생을 증명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처녀가 아기를 낳을 수 있습니다. 생화학적으로 제가 증명할 수 있습니다. 양서류 동물은 개구리나 뱀은 수컷이 없어도 바늘로 알을 찔러주든지 전기로 쇼크를 주면 새끼가 되어 나옵니다. 하물며 성령이 임하셔서 쇼크를 주면 처녀도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음도 하나님 주신 선물입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게 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인줄로 믿습니다. 이 믿음이 이롭게 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부활의 믿음입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자를 믿는 것입니다, 우리도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입니다. 23절 이하를 보겠습니다. 23-5절 “그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 한 것 때문에 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의로 여김을 받는 것은 아브라함만 받는 축복이 아닙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이 이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죄지은 것 때문에 내 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상식으로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는 걸림돌이 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은 누구나 합니다. 믿을 수 있는 것을 상식으로 통하는 것을 믿는 것은 누구나 다합니다.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것, 믿을 수 없는 것 그것을 하나님 안에서 믿는 그 믿음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이 의롭다 함을 얻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김영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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