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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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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분이 질문을 제게 했습니다. 이 분은 그 문제로 아주 심각한 혼란에 빠져있었습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마음이 평안하고 사랑이 넘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안 그러니 저도 예수 믿는 것인가요? 구원의 확신이 흔들립니다. 도대체 제가 불신자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이런 문제와 무관합니까?

문제의 핵심은 신앙과 행위의 관계입니다. 믿으면 능력이 주어지는 데 저절로 선행이 되나요? 미운 시어머니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나요? 나를 속이고 배신한 사람을 축복하나요? 성경은 그렇게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또한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은 평안을 예수께서 주신다고 합니다. 그 평안을 지금 누리고 있나요? 대단히 실질적인 질문입니다.

주위를 살펴보세요. 아니, 자신을 보세요. 성경에 나타난 신자의 삶이 경험되고 있나요? 교회 다닌다면 안 믿는 사람들이 최소한의 정직성이나 너그러움을 인정해주나요? 그렇지 못하지요? 그렇다면 믿는다는 게 단지 죽어서 천국 가는 것 말고 무엇이 있나요? 그저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것으로 그친다면 죽기 직전 믿지 뭘 하러 일찍 믿나요?

1. 옛 사람을 벗으라

어떤 분들은 말합니다. “예수 믿었으면 더해서 성령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능력 받아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면 성령은 또 어떻게 받나요? 예수는 아무 것도 안 하고 그냥 믿기만 하면 되는데 성령은 안 그러니 열심히 매달려 기도해야 한답니다. 금식도 하고 철야도 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믿음의 방법을 떠나서 고행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 것은 무엇이건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성령도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사람은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고전12:3) 열심히 선행하고 고행하는 모두가 성령 받고 능력 받은 뒤의 일입니다. 자기 힘으로 하면 너무도 고생스럽고 모양새도 안 좋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잘 했다는 인정도 받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도행전에 나오고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살 수 없나요? 왜 날마다 하나님 뜻대로 하지 못하고 거짓말하고 실수하고 성질부리고 후회하면서 죄의식 속에 살아야 하나요? 남들처럼 열심도 못 내고 전도도 못합니다. 그러니까 복도 못 받을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잘 못되면 내가 지금까지 잘 못했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긴 것 같아요.

이것을 가리켜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눅5:36) 그러나 신앙은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옛날식 사고방식에 적용시킨다는 말입니다. 낡은 옷에 새 옷을 붙이면 아름다워지나요? 당연히 둘 다 엉망이 됩니다. 너무도 이상해집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내가 예수 믿어 새사람 되었다. 천국은 가게 되었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요? “그런데 나는 예수처럼 살 힘이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나는 남을 위해 살고 싶지 않다. 원수를 사랑하거나 축복하고 싶지 않다. 나는 원수가 내 앞에서 망하고 가장 비참하게 된다면 무엇이든 하겠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옛날식 사고에 붙이는 행동입니다.

이제는 새 방법대로 살아야 합니다. 남을 위해 살면 내가 더 잘되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원수 사랑하고 축복하면 원수만 잘 되고 나는 손해 보나요? 예수께서 바보라서 그러셨나요? 아닙니다. 그분은 내게 최고의 유익이 되는 삶을 아십니다. 혹시 상대가 받을 자격이 있건 없건 여전히 축복한 내가 더 복을 받습니다. 옛 사람의 생각을 버려야지요.

옛 사람이 사는 대로 살면 내게 큰 손해예요. 너무 힘들고요, 얼굴도 흉악해집니다. 늘 불안하고 미래가 두렵습니다. 의지할 데 없는 고아 같아요. 그러면 실제로 삶이 그리 진행됩니다. 마음속 세상대로 이 세상도 되니까요. 왜 하나님의 친자녀가 자신을 고아로 대합니까? 무능하고 자신은 늙었고 아무 것도 아니라고 믿습니까? 그게 옛 사람입니다.

그러나 방법이 없습니다. 고아는 누가 때리고 학대해도 보호해 줄 사람이 없습니다. 불신자들은 아무리 불이익이 와도 무방비입니다. 신자요 하나님의 자녀라도 옛날 사고로 살면 별 도움이 없습니다. 맨 앞부분에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도대체 내가 예수 믿는 사람입니까? 어느 점이 불신자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나요? 구원은 받았나요?”

2. 예수로 옷 입으라

어거스틴은 탁월한 철학교수였습니다. 플라톤에 능통했고 신플라톤주의의 신비체험까지 했습니다. 자부심이 넘쳤어요. 그러나 그는 너무도 정욕이 강했어요. 특별히 여자를 좋아했어요. 욕망이 조절되지 않습니다. 16살부터 동거하던 낮은 지체의 여인이 있었어요. 29살에 출세하기 위해 그 여인을 고향으로 보내고는 14세의 로마여자와 약혼을 합니다.

그러나 법적 결혼연령 16세까지 2년을 못 기다려 다른 여인과 동거합니다. 양심이 그를 괴롭힙니다. “최고의 철학은 무슨 소용이 있느냐! 이렇게 기초적인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네가 무슨 대학교수이며 무슨 스승이냐?” 그런 가운데 그는 자신이 사는 밀라노의 교회를 나갔습니다. 당대의 설교자인 암브로시우스의 철학을 연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는 그를 빛으로 인도합니다. 예수 믿고 싶지만 한 편에서는 거부합니다. “그러면 이 생활도 끊어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 깨끗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그게 싫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살 수도 없다. 내가 무슨 교수요 스승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갈등하며 울고 있을 때 아이들이 놀면서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들고 봐라.”

이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립니다. 방에 뛰어 들어가 성경을 아무데도 펼칩니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고 호색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롬13:12) 이렇게 해서 위대한 스승 어거스틴이 탄생합니다. 그는 옛날의 옷을 벗었습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었습니다.

옛 사람은 방탕을 좋아합니다. 음란합니다. 성질도 나쁩니다. 욕심만 많습니다. 그러나 약합니다. 힘이 없어요. 병이 오면 그냥 아픕니다. 사고가 오면 당합니다. 귀신이 덤비면 속수무책입니다. 그래도 약한 옛사람노릇 그만 둘 수 없습니다. 그냥 두고 예수를 옷처럼 입으면 됩니다. 그의 말씀을 그대로 받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대로 믿고 주장합니다.

옷은 이상한 힘을 줍니다. 군복 입으면 군인이 됩니다. 예비 군복을 입으면 아무데서나 방뇨하고 싶습니다. 장교 옷을 입으면 사병의 생각이 없어지고요 장군 옷은 장군을 만듭니다. 신부의 드레스는 신부의 마음을 줍니다. TV에서 보았습니다. 이혼하고 삶이 괴로운 여자 몇을 실험합니다. 먼저 입은 옷을 살펴봅니다. 삶처럼 아무렇게나 입었습니다.

색깔도 맵시도 없습니다. 가진 옷이 다 그래요. 그 옷을 입으면 마음도 그렇습니다. 취직하려면 면접에서 떨어져요. 뭔가 어울리지 않고요 자신도 없어요. 밤마다 친구들에게 전화해 죽고 싶다고 웁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단지 옷만 바꾸어 봅니다. 전문가들이 몸에 잘 어울리는 밝은 옷들을 입힙니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면서 몇 달이 지나갔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어요. 성격도 밝아지고 생기가 넘치게 됩니다. 친구들도 좋아하고, 애인도 생깁니다. 얼굴도 훨씬 아름다워집니다. 취직하려니까 면접관도 좋아합니다. 예수는 그 이상입니다. 이상하고 신비한 옷입니다. 그를 입으면 그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온 천하 만물이 왕으로 알아봅니다. 본인도 예수처럼 보입니다.

3. 예수로 옷 입었음을 믿으라

신자라 하더라도 이 비밀을 모르면 옛 사람으로 남습니다. 복된 삶이 없어요.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안 느껴집니까? 미운 사람이 용서가 안 되나요? 용서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요? 무능하게 느껴집니까? 불안하고 걱정됩니까? 병에 눌립니까? 열등감이 일어납니까? 우울해지고 다 귀찮아집니까? 사는 목적도 없나요? 습관적 옛사람 증후군입니다.

새사람을 입는 것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자신의 부끄럽고 약한 부분이 느껴질 때마다 예수가 덮어주었다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름답고 강하게 되었습니다. 마음도 영혼도 모두 예수로 옷이 입혀집니다. 다시 말해서 내가 달라지는 게 아닙니다. 달라지려고 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예수의 하신 일로 나의 약한 부분을 덮으면 되는 겁니다.

미움이 일어나면 참지 마세요. 그저 예수 사랑이 내 것이라고 믿고 주장하세요. 우울하고 슬퍼지면 예수 기쁨이 내 안에 있다고 믿고 기쁜 사람의 행동을 해 보세요. 몸이 아파도 예수의 건강으로 내가 바뀌었다고 믿고 움직이세요. 무리해서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나 작은 움직임부터라도 그 믿음으로 하세요. 두려움도 걱정도 그렇게 하세요.

그런다고 뭐가 달라질까요? 즉시 달라질 수도 있어요. 효과가 얼른 안 나와도 계속 그렇게 하세요. 그 옷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입고 다니세요. 세상에서도 옷은 사람을 다르게 만듭니다. 왕의 옷은 더욱 그래요. 옛날 조선의 왕은 용이 그러진 붉은 옷을 입었습니다. 보통 사람이 입으면 역적입니다. 그 옷을 입으면 온천하가 무조건 복종합니다.

예수는 왕이신 자신을 우리에게 입힙니다. 예수로 옷 입으면 영적 세상의 질서가 바뀝니다. 입는 순간에 왕이요 제사장으로 바뀝니다. 나를 억압하던 사탄의 권세가 풀어집니다. 사람은 아기 귀신도 이기지 못합니다. 그들은 영물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지도 않아요. 그러나 예수로 옷 입으면 아무리 강하고 무서운 그리고 많은 귀신도 이길 수 있어요.

그렇게 했는데도 해결이 안 되나요? 귀신이 안 물러가고 계속 괴롭히나요? 병은 계속 통증과 마비를 주나요? 사업은 계속 엉망으로 나를 괴롭히나요? 미운 인간은 계속 밉고 내게 고통을 주나요? 그것은 내가 예수로 옷 입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옛 사람이 그대로 살아있어요. 내 약함은 예수가 덮어주었음을 믿으세요. 확실해질 때까지 주장하세요.

신자처럼 살지 못한다고 구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를 영접했다면 천국은 분명히 내 것이요, 나는 하나님의 친자식입니다. 그러나 신자처럼 살지 못한다면 삶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하늘의 평안과 기쁨과 권능은 없습니다. 천국이 영원하다면 지금부터 완전히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는 경험 되어야 합니다. 그 일은 예수를 옷으로 입어야 가능합니다.


QT를 위한 말씀

1. 성령은 어떻게 받나요? 당신은 받았나요?(1/1,2)
2. 옛 사람과 새 사람은 삶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요?(1/6,7)
3. 어거스틴이 신앙 앞에서 한 갈등이 무엇인가요?(2/3)
4. 옷은 입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나요? 특히 예수란 옷은 어떤가요?(2/6-8)
5. 옛사람 증후군이란 무엇인가요?(3/1)
6. 새사람 또는 예수로 옷 입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3/2,3)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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