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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블루오션 (민 1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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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 가운데 ‘블루오션전략’(blue ocean strategy)이란 것이 있습니다. 주로 기업 하는 사람들이 읽는 이 책은 프랑스경영대학원의 김위찬 교수와 그의 제자 르네 마보안(Renee Mauborgne) 교수가 주장한 기업 경영전략론입니다. 푸른 바다를 의미하는 블루오션이란 수많은 경쟁자로 우글거리는 레드오션(red ocean:붉은 바다)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경쟁자가 없는 무경쟁시장을 의미합니다. 즉 기업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경쟁시장이 아니라, 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기업들이 끊임없이 거듭해 온 경쟁의 원리에서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통해 고객이 모르던 전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는 새로운 기업이론입니다.

이것의 핵심적인 전략은 ‘차별화’가 승패를 좌우한다고 주장합니다. 보통 사람이 보는 시각이 아니라 다른 차원, 보통 사람이 가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을 통해 기업성공을 이룬다는 전략입니다. 이 책은 2005년 2월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출판사에서 출간되자마자 세계적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았고, 26개 언어로 전 세계 100여 개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삼성전자와 LG그룹이 블루오션을 경영전략으로 도입할 것을 선언하면서 이제는 정계, 재계의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기업은 차별화, 발상의 전환, 결국 이것으로 기업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차별화의 전략은 신앙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그러니까 신앙에도 블루오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신앙 그 자체는 차별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남이 생각하지 않는 것을 생각하고, 보지 않는 것을 보고,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 신앙의 원리요, 힘입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 신앙의 블루오션이 없으면 결코 신앙도 성공은 없다는 뜻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것을 대표적으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두 부류의 사람을 통해 우리는 신앙의 블루오션 전략을 배웁니다. 남이 보지 않고, 남이 하지 않는 차별화의 신앙, 과연 그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이것을 함께 생각하면서 우리 신앙에 도전을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 상황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본문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바란 광야에 머물고 있을 때의 사건을 보여줍니다. 거기에서 가나안을 정탐하기 위해 보낸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대표가 탐지한 땅을 둘러보고 보고한 내용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정탐군의 보고는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 졌습니다. 한 부류는 여호수아와 갈렙이었고, 다른 부류는 나머지 열 지파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똑같은 땅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상반된 보고를 했습니다. 열 지파의 대표들의 보고가 13장 31-33절에 나옵니다.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온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는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게 무슨 말입니까? 이 말이 물론 틀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만 파악한 것입니다. 그것을 넘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여호수아와 갈렙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그것을 본문 7절부터 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그들을 두려워 말라“ 열 지파의 사람은 상황만 보았지만, 갈렙과 여호수아는 그보다 더 깊은 것을 보았습니다. 상황만이 아니라 상황을 넘어선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블루오션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나타나는 상황이 있습니다. 상황이 물론 좋은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상황만 보는 것은 얕은 사람이요, 얕은 믿음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상황을 넘어서야 합니다. 상황에 밀려 요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넘어선 것을 볼 줄 아는 힘이 바로 차별화의 신앙입니다.

  보통 상황을 영어로 ‘context’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상반되는 개념으로 나오는 말이 ‘text’입니다. text는 본질을 말합니다. 이것은 움직이지 않는 본질을 가리킵니다. 상황은 변하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바뀌는 것이 상황입니다. 그러나 텍스트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믿는 자에게 오늘 이 시대를 살면서 굳건히 가져야 할 본질, text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이 본질입니다. 상황은 변하지만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의 본질을 붙잡고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상황을 보면서 말씀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보면서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성공과 승리를 이끄는 원동력이 됩니다.

  지금 여러분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혹 좋지 않습니까? 그것만 보면 원망이요 불평입니다. 그것만 생각하면 실망이요 좌절입니다. 거기에만 매달려 있으면 결코 실마리를 풀지 못합니다. 우리는 상황에 따라 움직이거나 매이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상황을 볼 때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이런 믿음과 신앙으로 상황을 넘어 본질을 생각하고, 그것을 붙잡고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현재도 넘어서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 열 지파의 보고를 가만히 분석해보면 이들은 모두 현재만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달랐습니다. 이들은 현재만 보지 않았습니다. 장래도, 미래도 함께 보았습니다. 8절에 그것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여기 나오는 말의 시제가 모두 미래입니다. 실제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주시리라’는 말은 모두 지금이 아니라 장래에 관한 말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에 되는 일이고, 앞으로 먼 장래에 이루어질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40년의 세월이 지난 뒤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여호수아와 갈렙은 미래를 보았고, 먼 장래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미래를 보면서 현재를 보니까 더 활기차고, 힘이 있고, 용기와 믿음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열 지파의 사람과 틀린 것이었습니다.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보는 힘, 이것이 신앙의 블루오션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미래지향적인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자체가 미래에 꿈을 제시하는 종교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의 길을 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사람입니다. 천국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닙니까? 우리는 우리가 갈 곳이 천국인 것을 아는 자들입니다. 거기에서 영원히 사랑하는 주님과 더불어 사는 것을 이미 여기에서 알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으로 부름을 받고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미래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가장 먼 장래까지를 알고 있는 자라면 그 전의 것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차별화의 신앙입니다. 현재만 보지 않고 미래를 보는 힘이 있는 사람이 결국 다르게 살고 성공하고 승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는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는 과거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현재에 안주하지도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이런 바울의 놀라운 신앙이 그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갖지 않으면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생명력도 없고, 자라지지 못합니다. 사실 앞을 내다보지 않으면 갈 길도 없고, 방향도 없습니다. 믿음의 발전도 물론 없습니다. 가만히 보면 이것이 신앙의 무서운 적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는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해하자면 우리가 지금까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당장 사는 것도 힘들어서 죽을 지경인데, 내일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어떤 국문학자가 이렇게 예리한 분석을 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말을 가만히 보면 어제와 오늘은 순수한 우리말인데, 내일(來日)은 올‘래’(來)자와 날‘일’(日)자로 이루어진 한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을 대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늘 먹을 끼니가 없는데 언제 내일을 생각합니까? 오늘 겨우 살고 있는데 백년대계를 바라보면서 무슨 계획을 세울 수 있단 말입니까? 졸속행정이니, 계획성이 없다는 말은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병폐가 아닙니다. 우리 민족정서, 민족의식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리도 건물도 무너지고, 아파트도 또 다시 짓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 민족에 기독교가 들어왔습니다. 꿈과 미래를 심어주고, 멀리 내다보는 힘을 준 것입니다. 멀리 내다보는 민족이 잘 사는 나라입니다. 멀리 보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제 멀리 보면서 인생과 신앙의 성공자,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사람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열 지파의 말에서 발견하는 것은 모두가 사람만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없는 정확한 사람만 파악한 보고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사람만 보지 않고, 하나님도 보았습니다. 오늘 두 사람의 강력한 변론이 가능했던 것은 사람을 넘어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말에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말이 붙어 다닙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것이 두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람만 보면 두려움이요, 안 되는 것이요, 못 들어가지만, 하나님을 보면 용기요, 되는 일이요, 할 수 있고,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블루오션입니다.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살면서 가장 크게 보아야 할 대상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크게 보여야 성공합니다. 하나님을 가장 크게 보면 두려움이 없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빠지면 신앙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크게 보면 상대적으로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작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크게 볼 때 하나님이 위에서 주시는 놀라운 승리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만 보지 않고 사람도 본다는 것에 있습니다. 하나님에게만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자꾸 사람에게 기대고 사람을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실패하고 낙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우리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하고 용서할 대상이지, 결코 믿거나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은 의지하지 않고 사람만 의지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것을 푸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성경은 믿는 자를 향하여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과 신앙을 강조합니다. 특히 사람을 의지하다가 실패한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잘 알려줍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시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요, 신앙의 차별화요, 더디어도 바르게 가는 길입니다.

  ‘타이타닉’이라는 배를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배는 1911년 영국의 화이트스타 회사가 만든 것으로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크고 탄탄하고, 가장 빠른 배였습니다. 타이타닉은 선체가 이중으로 건조되어 있어서 설혹 어뢰를 맞는다고 해도 끄떡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배를 만든 사람들이 타이타닉은 하나님도 침몰시킬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런 이 배가 영국에서 뉴욕을 향하여 처녀항해를 하던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경 한 덩어리 얼음과 부딪쳤습니다. 그 뒤에 배는 2시간 40분만에 허무하게 침몰했고 1,513명이 배와 함께 수장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 배가 가장 튼튼하고, 안전하고, 어떤 경우에도 침몰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아무도 이 배가 이렇게 무너지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사람도, 배도, 그 어떤 것도 장담하지 못하고 의지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이 세상에 하나님만이 믿고, 의지할 대상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생각하면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을 크게 보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가장 든든한 인생의 후원자가 되어 탄탄한 항해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면 어떤 경우에도 낙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부르면 그분은 언제나 내게 다가옵니다. 그분이 우리를 이끌어야 합니다. 인생의 승리는 얼마큼 하나님을 크게 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이런 믿음을 꼭 가지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신앙의 블루오션이 있어야 합니다. 상황을 넘어서 본질도 보고, 현재를 넘어서 미래까지도 보고, 그리고 사람을 넘어서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성공의 길입니다. 블루오션의 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서해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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