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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양하라 (대상 2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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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봉독해 드린 말씀, ‘하나님께 찬양하라’를 저는 오늘과 다음, 그리고 셋째 주일까지, 세 번 이어서 찬양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또한 그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며, 우리 모두의 삶이 찬양하는 삶, 여생을 찬양하면서 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현재 문화 관광부 2004년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노래방이 36000 개나 있다고 합니다. 노래방은 우리나라에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일본에서 널리 알려진 가라오케가 그 원조입니다. 우리나라는 1980년에 부산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것이 이 짧은 기간에 지금은 농촌까지 전국이 노래방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서울에도 7800 개나 되는 노래방이 있어서, 인구 천오백명당 노래방이 하나가 될 정도로 노래방이 골목마다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인구가 약 세배나 많은데도, 노래방이 10000개밖에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본에 비하면 6배 이상 많은 노래방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사히신문은 말하기를 ‘원조를 넘어선 노래대국’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정말 노래방에 빠져서 온 나라가 노래방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이렇게 노래방에 흥청거리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답답해합니다. 외롭고 공허하며 소망이 없고,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불안하고 이래서 모두 노래방을 찾는 것입니다. 노래방에 간다고 해서 허전한 마음이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노래방을 찾습니다. 성경을 통해서보면 오늘 현대인들이 왜 이렇게 마음이 공허하고 답답한 것입니까? 그것은 너무 물질중심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먹는 것을, 물질을 우선할 때 우리 마음은 공허하게 되고 불안하게 되며, 있어도 없어도 물질은 항상 부족하니까,

또한 늘 더 가져야 되겠다고 하는 이런 욕심이 우리의 삶에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피곤을 가져다줍니다. 또한 너무 이기적입니다. 나 하나만 잘 살려고 하니까 모두 다 부모도 형제도 대립하고, 친구도 이웃도 없으며, 이렇게 나 하나만을 위해서 경쟁하고 ‘지면 안 된다’ 그러니 얼마나 피곤합니까? 100m를 자기 혼자 힘쓰고 달려도 피곤한데, 인생 전체를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니 얼마나 피곤합니까?

  우리 모든 선조들은 그런 노래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여유가 많이 있었습니다. 아주 가난해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서로 베풀며 나누어 먹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을에도 우리 집에서 닭 한 마리를 가져다가 삶으면 동민들에게 모두 다 주고, 우리식구도 모두 다 먹습니다. 저보고 나누어 주라고 저 집에도 갖다 주고, 저 집에도 갖다 주며 그래서 이 집에 한 그릇 갖다 주고, 큰집에도 한 그릇 갖다 줍니다. 저 앞 장로님 댁에도 한 그릇 갖다 주어도 우리 열 식구가 다 먹습니다. 풍성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나눔이 없습니다. 자기 하나만 먹으려고 하니 한 마리 가져다 놓고 혼자서 다 뜯습니다. 나눔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스트레스가 보통 쌓이는 게 아닙니다. 저가 미국에서 집회하다가 참 착한 우리 목사님 한분을 보았습니다. 이분은, 두 형제분이 있는데 형님 내외분이 가스로 하룻밤에 돌아가셨습니다. 삼남매 다 두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런데 이 동생이 그 형님 아이들을 다 데리고 기릅니다. 그 사모님하고 두 분이 연대 대학원에서 만났는데, 그 사모님이 자기 아이는 안 낳고 이 형님 애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삼남매를 훌륭하게 길렀습니다. 미국에서 선생님이 되고 애들을 잘 길렀습니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서울로 데리고 온 일이 있습니다. 얼마나 착한 사람입니까? 마음이 천국이지 않습니까? 둘 부부가 그렇게 웃으며 즐거워 할 수가 없습니다. 나누고 남을 생각하며, 남의 어려움,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는 참 평화롭고 여유가 있는 삶입니다.

  중국의 어느 곳에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이쪽에서 적군이 쳐들어가 그 성을 점령했습니다. 마지막에 성을 멸하기 전에 선포를 했습니다. “너희들 가운데 하나만 가지고 나가라.” 그래서 모두 보따리를 들고 하나만 들고 나갑니다. 많이 못 들고 나가게 합니다. 모두 한 보따리만 들고, 이며, 안고 나갑니다, 그런데 어느 한 사람은 애기를 안고 또 한 애기는 손 붙잡고 나옵니다. 그러나 애기도 한명밖에 못 나갑니다. 식구가 다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나와 이렇게 보고는, 손 붙잡고 온 애기는 잡고 나오나, 안고오던 애는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는  품에 안은 그 어린 생명을 데리고 와야지 왜 그런 애를 데리고 오느냐?” 그러니까, “예, 제가 품에 안은 애는 저의 애이고, 얘는 형님 애여서, 형님이
돌아가셨기에 이 애를 데리고 나와야 됩니다.” 그래서 그 장군이 적이지만은, ‘야~ 이 나라 사람은 이렇게, 참 존경받을 사람들이구나. 이 나라는 망해서는 안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부인에게 “그럼, 그 애 다 데리고 나와라” 그래 가지고 나와서 잘 살았다라는 그런 이야기 입니다. 그 성을 멸하지를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감동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이야기지만은 우리 마음을 참 흐뭇하게 합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이런 게 없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나 하나 외에는 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날마다 받습니다. 날마다 열 받으니, 노래방을 안갈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믿음이, 하나님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만 바라보고 살아가니 장래도 없고, 소망도 없으며, 믿을 사람도 없습니다. 살아보십시오. 믿을 것이 없습니다. 저는 농촌에서 자라나 항상 밤길을 높은 산, 강, 깊은 산골을 몇 시간씩 걸어 다녔습니다. 항상 밤입니다. 여기서 공부하다가 방학 때 들어가면 항상 밤입니다. 막차타고 내리면 언제나 밤에 올라갑니다. 항상 밤에 다녔습니다. 그래도 늘 믿는 분이 있으니깐 두렵지 않습니다. ‘캄캄한 밤에도 하나님이 날 지켜 주신다’ 그러면서 몇 십리를 찬송하면서 갑니다. 하나님이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지켜주시며, 내 앞날 인도하시고 나를 축복하실 하나님이 계시는데 내가 왜 두려워합니까? 현대인들이 왜 이렇게 불안해하며, 걱정이 많습니까? 도무지 믿는 게, 믿을 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영국황제 루이스는 너무너무 불안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황제일수록 불안합니다. 높은 자리일수록 답답합니다. 총리도 답답합니다. 그것을 이해해야 됩니다. 높이 올라가면 돈 많은 분은 답답해합니다. 성공하면 답답합니다. 올라갈수록 공허합니다. 외롭습니다. 그래서 이 루이스 황제도 답답하고 불안해 민정시찰을 다녔는데, 어떤 방앗간에서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방아를 찧으면서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2절은 할머니가 또한 합니다.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이건 제가 여러분의 마음 문 을 열게 하려고 그렇게 불러본 것입니다. 너무 기쁘게 두 분이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황제 루이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제는 그렇게 부르시지 마시고, ♬세상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영국황제 루이스는 널 부러워해.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난다.♬ 좀 그렇게 부르세요.”라고 권했다 하지 않습니까?

  저도 이 세상에 아름다운 것, 좋은 것도 많이 보았습니다. 좋은 음악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평생에 언제나 감동을 주고 제 발걸음을 멈추게 하며 가장 감격적인 순간은, 밤에 어떤 마을로 지나가다가 어느 골목으로 지나가는데 가정예배 드릴 때, 찬송가가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 이상의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그 집이 부자냐 가난하냐, 그건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어떤 분은 말하기를 산에 새소리가 없으면 산은 죽은 산이듯이, 우리 가정이 아무리 아름답고 울창하게 꾸며도 찬송이 없다면 그 집은 죽은 집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정, 영적으로 살아있는 가정, 믿음의 가정이, 축복받은 가정인줄 믿습니다.

  기독교는 찬양의 종교입니다. 교회는 찬양을 부르러 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우리에게 찬양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찬양을 하도록 선물을 주셨습니다. 찬양하는 것이 예배의 핵심, 중심입니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구속해주신 이 엄청난 은혜에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찬양의 배경은 언제나 해방에 있습니다. 자유함을 얻어야 찬양이 나옵니다. 찬양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찬양이 나옵니다. 찬양은 구속함을 받은 축복이 있어야, 은총이 있어야 나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은 영원히 찬양할 수가 없어 노래방으로 갑니다.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가 대체로 인생의 허무와 슬픔, 지난날의 상처를 노래합니다. 지난날의 모든 아팠던 거 부끄러움을 노래합니다. 인생의 모든 밑바닥에 살아온 이 허무함을 노래하는 것이 세상노래입니다. 그 노래에는 소망이, 내 영혼에 힘을 주는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은 위로받으려고 하지만은 상처는 상처로 치료가 되지 않습니다. 낙심 된 사람은 낙심된 노래로 치료받을 수가 없습니다. 내 마음이 병든 사람이 병든 노래로 치료될 리가 없습니다. 그건 잠깐 뿐입니다. 허무하고, 헛된 세상을 헛된 노래로 어떻게 치료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잘못되는 것입니다. 노래방에 가서 또한 노래방이 흡족하지 않으니까 요사이는
노래방에서 술을 판다고 그럽니다.

  그러니 얼마 전에 얼마나 단속하고 야단이 났지 않았습니까? 뉴스에도 학생들까지 노래방에 가서 술을 먹는다고 나왔습니다. 그러나 술 먹어도 만족이 없습니다.  노래도 한 두곡이지, 한 시간 두 시간 불러도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도우미가 온다고 합니다. 핸드백 들고 요래 요래 가지고 누가 온답니다. 노래 불러줄 아가씨가 온답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또한 온갖 음탕한 일이 벌어진답니다. 돈 받고 온갖 죄를 짓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그곳에서 도우미를 불렀는데 제수씨가 온 분도 있고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어떤 분은 자기 딸이 오는 집도 있으며, 자기 부인이 오는 집도 있다고 합니다. 남편이 직장에 간줄 알고, 부인은  나가며, 자녀들은 또한 자녀들대로 가고, 계속 모두 다 가니까 이 사회가 이렇게 노래방 사회가 되었습니다. 노래방 천국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은 말을 하던, 노래를 하던, 글을 읽던, 좋은 것을 만나야 됩니다.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만나야 됩니다. 할렐루야! 찬양하면 힘을 주십니다. 사람의 뇌세포는 대체로 일천억 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를 다 밝힐 수는 없지만, 아직도 무한한 비밀로 적어도 우리 몸의 세포는 일조개 정도로,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이 뇌세포는, 너무 정확해서 보는 대로, 말하는 대로, 듣는 것도 다 입력합니다. 그러니까 입력을 하면 그 입력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 컴퓨터는 지우기도 하는데 이 뇌세포는 일천억 개가 되며 너무나 조직이 잘되어 우리가 어려서 부르던 노래도 모두 다 기억하고 누가 내게 욕한 거도 모두 다 기억하며, 잊혀 지지 않는 게 뇌세포입니다. 이 칩이 얼마나 완벽한지. ‘오등은 자에아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그러면 이게 안 잊혀 집니다. 몇 십 년이 지나도  도무지 잊혀 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쁜 노래가 입력이 되면 이 모든 지시를 그렇게 한답니다. 이걸 자주 부르면 나쁜 사람을 만납니다. 나쁜 것을 텔레비전에서 애들이 보고는 다 나쁘게 되는 이유는 이 뇌세포가 딱 기억하고는 그대로 지시를 한다라는 것입니다. 온 몸에 지시를 해서 그 가는 길이 그대로 그만 나쁜 길로 빠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애들을 몇 살 이하는 못 보는 것을 철저하게 못 보게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머리가 좋고 부모들이 더구나 컴퓨터 세대가 아니어서 부모를 갖고 놉니다. 그러니까 너무나 잘못된 문화가 빨리빨리 아이들에게 유입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는 가정부터 찬송하기를 바랍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영광, 우주만물의 창조, 우리 인류의 영생, 하나님의 구원, 자유하심, 축복하심, 생명에 대한 온갖 은혜와 미래에 대한 무한히 열린 창입니다. 이 창을 향하여 하나님께 노래하기 때문에 이 찬송을 부르는 가정은 천국이 되고 찬송을 부르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영이 임재 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귀신 불러들이는 세계의 모든 무속신앙들을 보면 모두 다 노래로 불러 들입니다. 모두 다 뭔가 주술 외우고 이렇게 춤출 때 귀신이 옵니다. 나쁜 것도 그렇게 옵니다. 하나님은 언제 임하시느냐 하면 찬양할 때 임재하십니다. 나쁜 노래를 부르는 그래서 요사이 락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귀신 숭배하는 노래를 부르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만족이 없으니까 락 음악이, 막 찢어지는 이 악기를 동원해 몸을, 옷을 갈기갈기 찢고 머리를 갈기갈기 흩뜨려 노래를 부릅니다. 그 가사 내용도 ‘죽어라 죽어라’ 그런 것이 그렇게 많이 나옵니다. 사람이 막 극단적이고 그래서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 전부 동성연애며, 마약중독이고, 온갖 퇴폐한 정신문화입니다. 오늘의 흐느적거리고 갈 길을 잃어버려 방
황하는 이 세대를 구원하는 길이 무엇입니까? 예수 믿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찬양과 입술의 열매로 우리의 가슴을 천국으로 만들고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며 이 시대를 변화시키는 것
입니다. 할렐루야!

  그런 노래, 그런 음악을 부른 사람들이 모두 다 일찍이 잘못되어 갑니다. 윤심덕은 ‘사(死)의 찬미’ 즉 죽음의 찬미를 부르다가 극작가 김우진과 동반자살을 합니다. 그 노래를 몇 백번, 몇 천 번 부르니 안 죽을 수 있겠습니까? 차중락은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을 부르다가 자기도 스물 아 홉 살에 낙엽 따라 가버렸습니다. 너무너무 많습니다. 김정호는 ‘간다 간다 나는 간다’ 부르다가 서른 세 살에 자기도 가버렸습니다. 1955년 가을에 ‘하얀새’를 부른 김성재씨도 가장 친한 친구가 죽어 자기가 직접 작사를 해, 내 친구를 간곳에 나도 하얀새가 되어 날아가고 싶다는 이런 노래를 부르다가 그대로 또한 따라 가버렸습니다. 서지원씨는 ‘내 눈물 모아서 하늘에 편지를 써’ 부르다가 또한 자기도 눈물 흘리
고 갔습니다. 정 부르고 싶으면 긍정적인 노래, 세계적인 민요, 좋은 가곡인 ‘금강산’, ‘그네’, ‘목련화야’ 부르면 얼마나 좋습니까? 세계적인 노래, 국내에도 좋은 곡을 부르면 참 좋은데 송대관씨는 ‘쨍하고 해뜰날’ 부르다가 아직도 쨍하고 있습니다. 노사연씨는 참 어려웠는데 ‘만남’이란 노래를 부르고 이무송씨를 만나 잘 살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그 보다 더 좋은 노래는 찬송입니다. 최고의 좋은 노래, 성전에 와서 찬양 듣고 찬양하며, 찬양과 함께 지내다보면 찬양하는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저도 유럽을 이렇게 가서 보면, 그 사람들은 참 노래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퇴폐노래가 적습니다. 노래방은 물론 없습니다. 저가 유럽의 많은 나라에 가서 오페라를 보았는데, 저녁이 되면 온 가족들이 모두 오페라에 갑니다. 술집이 없습니다. 조용합니다. 수준 높은 노래를 부릅니다. 사람이 배우고 잘 살면 수준 높은 문화를 즐겨야 합니다. 유럽 사람들은 오페라 갈 때에 양복을 모두 다 입고 갑니다. 넥타이도 모두 다 매어야 입장을 해주지 그냥 들어가면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여자들도 드레스를 모두 잘 입고 들어갑니다. 늘 보던 거 몇 십번 보던 거 지난번에 두란도트도 몇 십 번 보던 것을 다시 봅니다.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다시 하는 것입니다. 좋은 거 하고는 그 다음에 마치면 박수를 보통 20분 이상 치고 축하해주며 천천히 나와서 Tea Time을 가집니다. 나와서 이렇게  과자하고 커피를 마시는데, 우리는 박수도 안치고 나가면 끝납니다. 그냥 밀고 팍 나가는 이것은  완전이 문화인이 아닙니다. 갈 때도 없으면서 그냥 막 나갑니다. 박수 좀 해주고 나가도 얼마든지 되는데... 여러분! 성도들답게 멋있게 살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에 찬송이 흘러 나오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흘러 나오길 바랍니다. 요사이 돈이 많아 가지고 오디오 시설을 많이 해 놨는데, 노래는 틀지도 않습니다. 텔레비젼만 1번부터 90번까지 왔다 갔다 리모콘만 가지고 계속 돌립니다. 아무리 봐도 찬송보다 더 좋은 프로그램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할렐루야! 찬양하는 성도되기를 바랍니다.

  시편33편 1절에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의 마땅히 할 바로다” 시편30편 4절에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찌어다” 시편 119편 164절에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하나님을 자주자주 찬양하는 자가 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축복받은 성도는 모두 찬양했습니다. 창세기 14장 19절에서 20절을 보면 멜기세덱은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으로 영광을 돌렸습니다. 모세는 출애굽기 15장 1절로 2절에 하나님을 찬양 했습니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찬송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일생을 찬양하며 살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되니 나라가 평화로워 졌습니다. 나라가 번영하고 발전했습니다. 온 나라에 번영과 축복이 온 것은 영적인 찬양을 부르면서 영적인 회복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한 번도 없던 성가대원만 288명을 다윗이 임명해서 궁중에서 월급을 주면서 국가가 성가대원을 기릅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아침 저녁 번제를 드릴 때도 성가대원이 서서 찬양하면서 제사를 드리게 했습니다. 수많은 악기가 개발 됩니다. 시편금, 삼현금, 큰소리 나는 제금, 높은 음에 제금 ,낮은 음의 제금, 퉁소와 현악과 비파와 수금이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이런 수많은 악기들이 다윗 시대 때에 개발이 되어서 오늘날까지 온 세계에 최고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악기로 발전해 내려옵니다. 찬양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미리암이, 마리아가, 한나가 찬양을 했습니다. 축복받은 성도는 남자든 여자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 성가대원들에게 찬양 한 곡을 더 부탁 드렸습니다. 이 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영원토록 주 찬양 주 앞에 영광 돌리세 주 앞에 영광 돌리세 영원토록 주 찬양 할렐루야 아멘♬ 너무너무 놀랍습니다. 영원토록 주 찬양, 우리가 할일은 무엇입니까? 힘써서 사는 것입니까? 하나님 은혜로 사는 우리들은 우리를 구속하신 이 높으신 절대자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할 것 아닙니까? 세상을 비관하고 낙심하?저주하고 그러다가 자꾸 자살해 죽고 이러면 되겠습니까? 몸 망가지고 정신 망가지며, 가정이 모두 다 파괴되어도 찬양 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야고보 5장 13절에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저는 찬송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찬송 할 때 마귀가, 악이 물러갑니다. 사무엘상 16장
23절에 보면 다윗이 수금으로 연주하고 노래 할 때에, 사울 왕에게 있던 악귀가 모두 다 떠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찬송하면 물러갑니다. 여러분 가정이 답답하십니까? 찬송을 불러보십시오. 노래방 가지 말고 찬송을 불러 보십시오. 삼십 분 내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찬송하면 두려움과 불안이 물러갑니다.시편 56편 4절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찬송 할 때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옥토에 문이 열렸습니다. 내 가는 앞날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찬양해 보십시오. 어두운 이 감옥이 천국으로 변화됩니다. 찬송 할 때 전쟁에서 이긴 기사도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여호사밧이란 왕은 암몬과 모압과 또한 세일산 민족들이 같이 쳐들어 왔을 때, 여호사밧은 온 백성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세요 주의 종들을 믿으세요 그리고 여호와께 감사하세요 그의 자비하심은 영원합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면서 성가대 가운을 입혀 가지고 노래하는 자들을 군인들 앞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군인들은 뒤에서 따라갑니다. 앞에 가면서 ‘주 찬양 주 찬양 영원히 찬양 드리세 영원토록 세세토록 영원토록 주 찬양’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 모압, 암몬족속을 다 물리쳐 주시고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여리고성도 나팔 불고 제사장들이 앞에 가면서 찬양 할 때 한 순간에 다 무너졌습니다. 찬송하면 마귀는 떠나갑니다. 어둠은 물러갑니다.
불의한 것으로 불의한 것을 해결하려 하지 말고, 의롭고 거룩한 것으로 우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줄 믿습니다. ‘♬원수 마귀 모두 쫓겨 가기는 예수 이름 듣고 겁이 남이라 우리 찬송 듣고 지옥 떨리니 형제들아 찬송 찬송합시다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백성들아 함께 모두 모여서 우리 모두 함께 개가 부르세 영원토록 영광 권세 찬송을 우리 임금 주께 돌려보내세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찬송가 389장)♬’

  저가 다음, 그리고 그 다음 주를 이어서 계속해서 찬송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길은 능력 있는 찬송이며, 찬송으로 나라와 민족을 구하고 우리 가정에 천국이 이루어지시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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