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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라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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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성도님의 간증입니다. 교회에 나가기 전 3년 전부터 교회에 다니고 싶어서 누군가 인도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전도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교회를 가고 싶어서 주일에 교회 문앞에 서 있었는데 교회 안내위원이 나와서 비켜달라고 하더랍니다. 결국 그날도 교회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기다리던 어느 주일에 교회를 가는 아주머니를 따라가면서 교회에 같이 가도 되느냐고 묻고서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누가복음 19장 1-10절의 말씀은 사캐오를 찾아가 구원하신 예수님의 전도 이야기입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죄인과 동일시되었던 세리장 사캐오가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이야기입니다. 그는 소외된 사람이었습니다. 돈은 많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했던 사캐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철저히 회개를 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하여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 자신의 목적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봉독한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A. 누구나 변할 수 있습니다

사캐오가 변화한 것을 보면 누구나 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할 수 있습니다. 사캐오는 이름만 근사하지 이름값을 하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캐오, 즉 ‘자카이’는 순수하고 의롭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과는 달리 세리장으로서 죄인들과 동급으로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물질만 바라보고 정신없이 살다보니 인격적인 대우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만나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캐오는 이렇게 고백하고 결단하였습니다. 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나이다.” 할렐루야. 돈만 알던 사캐오의 집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참으로 놀라운 역사입니다. 이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줄 믿습니다.

여기서 “토색”은 도적질과 같은 중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거듭난 사캐오는 토색을 도적질과 같은 비중으로 생각하고, 도적질에 해당하는 보상을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부당 취득에 대한 보상은 원급에 대한 120%입니다. 도적질한 경우에만 4배를 갚았습니다. 출애굽기 22장 1절의 말씀을 보면,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을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데 사캐오의 보상은 법을 뛰어넘는 것으로 사캐오의 위대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후대의 교회전승에 의하면, 사캐오는 나중에 베드로에 의해 가이사랴 지방의 감독으로 임명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김득중, 성경주석, 누가복음, 대한기독교서회)

이러한 사캐오의 변화는 누구나 변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 앞에 구제불능은 없습니다. 우리의 눈에 구제불능같은 사람까지도 하나님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 대해 구제불능으로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께 불신앙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어떤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람에 대하여, 그들의 어떤 형편에 있든지, 어떤 삶을 살고 있든지 간에 희망을 버려서는 안됩니다.

런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소녀가 빌리 그래함 집회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빌리 그래함 목사님처럼 집회를 인도할 능력은 없으나 한 사람이라도 전도하여 집회에 참석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이 흉악한 사람이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러나 당일까지도 전도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회가 시작할 때가 되었으나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여 고민하면서 런던의 거리를 걷고 있는데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오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소녀는 그 술취한 사람을 붙들고 빌리 그래함 전도집회가 열리는데 한번만 같이 가자고 하였습니다. 술에 취한 사람이 귀찮다고 하는데도 계속해서 졸랐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한 10살쯤 되는 꼬마 소녀가 하도 조르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후에 알고 보니, 그는 지중해 연안을 주름잡는 마피아 두목이었습니다. 마피아 두목이 소녀에게 끌려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B. 주님이 오신 목적에 우리도 충실해야 합니다

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캐오를 구원하시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사캐오처럼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원칙에 충실하여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느 목자가 양 100마리를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양들을 우리에 넣으며 세어보니 한 마리가 부족하였습니다. 다시 세어보아도, 또 다시 세어보아도 한 마리가 모자랐습니다. 그러자 목자는 양들을 들에 두고 잃은 양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리고 잃은 양을 찾아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친구들을 불러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벌렸다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는 잃은 양 같은 죄인 하나까지도 찾아 구원하기 원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서에 예언된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19절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예수님은 이 말씀을 찾아 읽으시고 말씀하시되 “오늘날 이 글이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하심으로 소외된 자를 찾아 구원하시는 자신이 목적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열심을 가지고 이 일을 이루셨습니다. 이를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으며 십자가까지 지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성도들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서 주님의 뜻을 따라 온전히 헌신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면서 잃은 양을 찾아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열심에 동참해야 합니다.

C. 잃은 양을 배척하지 맙시다

사캐오는 당시 사람들에게 배척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는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뵙고 싶었으나 키가 작아 불가능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감싸고 있었기 때문에 키가 작은 사캐오로서는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애를 쓰고 있는 그를 위해 길을 열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외롭게 뽕나무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찾아내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배척하는 사캐오를 예수님은 찾아내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뽕나무에 올라간 사캐오를 바라보시며 “사캐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그와 함께 사캐오의 집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죄인의 집에 유하려 들어간다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배척받고 있던 사캐오를 받아들이시구 구원하셨습니다.

성도는 구원에 관련되어서는 그 어떤 사람도 배척하면 안됩니다. 포기하거나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구원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참 삶에 대한 소원이 있습니다. 단, 소원은 있으나 죄의 쇠사슬을 끊지 못하고 끌려 다니고 있을 뿐입니다. 사캐오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진실한 삶에 대한 욕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체면을 무릎쓰고 뽕나무에 올라갈 정도로 갈망이 있었습니다. 부자요, 세리장인 그가 뽕나무에 올라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에게 구원에 대한 소망이 컸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를 아시고 그를 받아 주셨습니다.

D. 하나님의 명령대로 잃은 양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전도는 앉아서 기도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기도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전도할 수 없지만 기도만으로도 전도할 수 없습니다. 일어나 잃은 양을 찾아가야 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업고 찾아가야 합니다. 전도는 영적 전쟁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면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잃은 양을 찾아가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전도는 은사가 아니고 명령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특별한 사람들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일어나 잃은 양을 찾는 일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행동으로 옮겨야 전도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원리가 말하듯이 행동하는 2%가 98%를 다스린다고 합니다. 행동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전도도 그렇습니다. 행동하는 사람이 전도할 수 있습니다.

5절의 말씀에 보시면 예수님이 “오늘 내가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하겠다”는 말 ‘데이’는 신적 명령의 배경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즉 예수님이 사캐오의 집에 유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임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이었습니다.

이 말은 누가복음 4장 43절에서도 사용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리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받았노라.“ 아멘. 여기서 ”전하여야 하리니“에 ”데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복음을 여러 동리에 다니며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명령임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충실하게 전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기도도 해야 하지만 잃은 양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배척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서는 누구나 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구제불능은 없습니다. 포기하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십시다. (황광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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