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막 5:21-24, 35- 43)

  • 잡초 잡초
  • 217
  • 0

첨부 1


  아프리카의 한 크리스챤 청년이 중병에 걸려서 고열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좀처럼 열이 떨어지지 않았답니다. 유럽에서 온 선교사가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한 가지 아는 사실이 있다면, 열을 내리기위해 얼음 주머니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정글 한 가운데서 얼음을 얻는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환자의 어머니는 말하기를 “선교사님이 언젠가 설교하실 때, 하나님은 불가능이 없다고 하셨지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다고 했으니 우리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다.”하고 기도를 청했습니다. 선교사님이 난처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여보세요. 여기는 이 더운 여름 아프리카 정글인데 어디서 얼음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말했지만, 이 환자 청년의 어머니가 하도 간곡히 부탁하기에 그들은 환자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주님, 제 아들을 치료하는데 얼음이 꼭 있어야 된답니다. 얼음을 보내주세요.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실 수 있는 분임을 제가 믿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가 끝났을 때, 갑자기 그 무더운 여름에 뇌성이 울리고 큰 공만한 얼음 덩어리가 이 오두막 위에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박이었습니다. 우리도 종종 여름에 우박을 경험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마침내 청년은 얼음 주머니를 만들었고 열을 내릴 수 있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중소도시의 교회에서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꽤 오래 전의 이야기입니다. 예전의 교회 건축은 업자에게 맡겨서 다 일임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기술자 한 두 사람 구하고 교인들이 발 벗고 나서서 땅을 파고 벽돌을 쌓고 모래를 날라 동참했었습니다. 기초를 쌓아가면서 어느 날 축대를 높이 쌓았습니다. 바로 그 날 저녁, 일이 끝날 때 쯤 보니 하늘에 어두운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비가 오겠구나. 비 오면 축대 쌓은 것 무너지는데 큰일났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 장로님 한 분이 슬그머니 사라지시더니 이부자리 하나를 가져 오셨습니다. 그리곤 축대 옆에 깔고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누가 보든지 말든지 아랑곳 하지 않고 그 깔린 이불위에 덥썩 눕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 마음대로 해 보시라는 얘기입니다.
  제일 놀란 분이 누구겠습니까? 하나님입니다. 만약 비를 내린다면 축대가 무너질 것이고, 축대가 무너지면 이 장로님은 압사 당할 것입니다. 장로님을 사랑해서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께서 장로님의 생명을 걷어 가실 리가 있겠습니까? 이 뱃심 좋은 장로님에게 하나님이 손을 드셨고 그 밤에 비가 오지 않았고, 물론 축대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장로님의 생명도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교인들은 두고두고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아... 장로님 데모가 하나님께도 먹혀들어가는구나. 축대가 무너지지 않고 건축이 잘 된 것은 그 장로님의 기도 때문이었다.”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들은 믿음 하면, 예수 믿고 죽어서 천당 가는 것 그것만을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추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현실 속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믿음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을 변화시키고 하나님의 도우심과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만큼 믿음을 활용하고 적용하며 살아가고 계십니까?
  세상의 많은 분들은 교회와서 예배드릴 때의 믿음이 다르고 세상에 살아갈 때의 믿음이 다릅니다. 사업하고, 공부하고, 살아가는 것은 믿음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아름다운 믿음의 사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이로라는 회당장의 딸이 병이 들었습니다. 거반 죽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좋다는 약은 다 써 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회당장이라고 하면 한 지역의 유지요, 지도자입니다. 유대의 회당에는 그 회당을 관리하는 장로의 그룹이 있고, 장로의 그룹의 가장 우두머리를 회당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백성의 원로요, 종교지도자입니다. 그의 나이는 추측해보건대 40~50대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모든 체면을 다 버리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30대 초반의 젊은 예수 앞에 가서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합니다.

  “내 딸을 고쳐주소서!”

  예수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청을 승낙하시고, 그의 집으로 함께 가십니다. 가는 도중에 한  사건에 부딪치게 됩니다.

  열두해 혈루병 앓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깃에 손을 댐으로써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하인이 달려와 이야기하기를 “회당장님, 당신의 딸이 죽었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마시고, 그냥 놓아드립시다.”하고 얘기합니다. 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회당장에게 말합니다.

  “두려워말고 믿기만하라!”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두려워말고 믿기만해라!” 옆의 분도 불안하고 염려가 많은 분들이니까 옆 분께 얘기해 주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시고 믿기만 하세요.”
  다시 회당장 야이로는 힘을 얻어서 예수님을 모시고 집까지 안내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어있는 이 어린 딸을 향해서 “달리다굼!” 즉,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실 때, 마치 잠에서 갓 깨어난 것처럼 소녀가 일어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사건이요, 믿음의 기적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도 이런 기적과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요? 저는 믿음 안에서 우리들의 삶에도 이런 기적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이런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적을 체험하는데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당하는 인생의 여러 가지 고통과 시련과 위기 앞에서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 기적을 체험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예수 앞에 나와 간구하셔야 합니다.

  야이로는 예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부르짖어 간구했습니다.
  22절, 23절 말씀을 읽습니다.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아멘.
  야이로는 예수님의 발 앞에 와서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많이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절박한 심정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했다는 얘기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 앞에 나올 때 인생의 변화는 시작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올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여러분들이 예수 앞에 나오실 때 몸만 오지 마시고 마음도 주님 앞에 나오시고 더 나아가서 마음을 활짝 열고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 앞에 마음과 육신이 함께 나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인생의 문제를 내어놓고 주님 앞에 간구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심히 간구하여, 많이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인생의 변화는 기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만나고 싶었는데 키가 너무 작아서 볼 수가 없어서 뽕나무위에 올라갔더니 예수님이 그를 불러 내리셨습니다. “삭개오야! 내가 오늘 너희 집에 유하여야겠다.”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의 인생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여리고의 소경인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오는 순간,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하고 예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부르짖을 때, 바디메오는 눈을 뜨게 되고 예수님을 따르는 기적의 인생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십시오. 그리고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기적의 출발입니다.

  다섯 살짜리 아주 깜찍한 소년이 있었답니다.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시장에 갔습니다. 이것 저것 필요한 것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길에 과일가게 아저씨하고 얘기를 나누는데, 이 아이가 과일가게에 보니 사과, 감, 복숭아, 감등이 많은데 빨간 앵두를 보았습니다. 먹고 싶은 기색이 역력한데 그냥 잡지도 못하고 침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과일 가게 아저씨가 그걸 보더니 안됐던지 “너 그거 먹고 싶어 그러지? 한 줌 집어 먹으렴.”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냉큼 집지 않고, 엄마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엄마보고 집으라는 거지요. 엄마는 이상하다 하면서도 한 줌을 집어 아이에게 주었습니다. 아이가 씩 웃으면서 하는 말이 “엄마! 내 손은 작잖아요. 그런데 엄마 손은 크잖아요. 엄마 손으로 한 줌 집는 게 훨씬 낫잖아요.”

  무슨 일입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우리는 일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아무것도 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건축할 때 보면, 땅 팔 때도 좋은 장비가 많습니다. 삽으로 100번을 파는 것 보다 포크레인으로 한번 쓰윽 뜨면 바로 한 차입니다. 어떤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열심히 삽질을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한번 덤프트럭으로 들어서 쓰시도록 하시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기도의 능력입니다. 예수께 나아와서 기도할 때 기적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문제 앞에 기적을 체험하려면 응답의 지연에도 불구하고 인내해야 합니다.

  야이로는 인내했습니다. 25절부터 34절까지의 본문은 제가 읽지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잘 아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회당장 야이로와 함께 그의 집을 향하고 있을 때 한 군중의 무리와 부딪치게 됩니다. “예수님이다!” 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둘러쌓습니다. 그 중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아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내가 예수님의 옷깃에 손만 대도 병이 나을거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아무도 모르게 예수님 곁에 와서 아무도 모르게 손을 댔는데 예수님은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것을 아셨습니다. 그 여인은 자기에게서 혈루의 근원이 마른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말합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여인은 앞으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칭찬하십니다. 성경에 보니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하고 칭찬해서 보냈습니다. 이러느냐고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병 든 딸을 눕혀놓은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급했겠습니까?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얼른 빨리 가야지, 딸이 죽기 전에 도착해야 예수님이 뭔가 하실 텐데... 시간이 많이 지체되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가족 중에 누가 아파서 갑자기 병원에 싣고 간다고 했을 때 빨간 불만 들어와도 답답하지 않습니까? 웬 서울에는 이렇게 차가 많아 하고 불평하지 않습니까? 지금 마음은 조급합니다. 촌각을 다투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테스트는 응답이 늦어질 때, 시련이 길어질 때 여러분이 어느만큼 잘 견디어 내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야이로가 힘들다고 그냥 내팽개치고 그냥 가버렸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이로는 끝까지 기다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인내했습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들을 기다리게 하시는 분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다림을 통해서 믿음의 성숙을 경험하게 합니다. 믿음의 연단을 경험하게 하고 우리를 테스트하시는 것입니다. 기다리게 하시는 하나님, 여러분의 기도가 때로 응답이 늦을지라도 포기하지 말고 기다리실 때 여러분의 인생에 기적이 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문제 앞에 기적을 체험하려면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어야 합니다.

  35절, 36절 말씀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쌔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아멘. 

  오늘 회당장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마음은 조급하고 안타까워죽겠습니다. 지금쯤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너무 안타까운데 드디어 하인 한 사람이 달려왔습니다. 그리곤 딸의 죽음을 전합니다. 더 이상 선생님을 괴롭게 마시고 그냥 보내드립시다며 이제 상황은 끝났다고 합니다. 숨이 붙어있을 때, 살아있을 때 의사가 필요하고 예수님이 필요한 것이지, 이제 아이가 죽었는데 예수님이 온들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늘 이 하인의 믿음은 차원을 넘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한 사람의 인물로만, 인간으로만 보는 것입니다. 생명을 만드시고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으로 예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도 그런 분이 있습니다. 감기 걸렸으면 누가 와서 기도 좀 해 주면 낳을 것 같은데, 암에 걸리면 누가 기도해도 잘 안 낳을 것 같다고 말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는 감기 걸린거나, 암 걸린거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자, 오늘 이 아이가 죽었다는 최악의 상황에서 야이로는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요? 성경에는 없지만 몹시 당황하고 슬펐을 것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이 야이로가 너무 놀라서 쓰러질 뻔 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지금 너에게 최악의 상황이 왔을지라도 아니, 끝이라고 선언되었더라도 공포에 떨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줄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난번 남신도 조찬 기도회 때 말씀드렸습니다만, 야구의 월드컵이라고 불리는 WBC 클래식 경기 중 한국과 일본이 지난 주일 일본 도쿄 구장에서 야구를 했습니다. 4, 5회 까지는 진 것 같은데 5회인가 가서 한 점을 올려서 2:1이 되었습니다. 경기를 보면서도 저는  이기긴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8회에 가서 이승엽 선수가 홈런 하나를 치니, 순간에 그냥 전세가 뒤집어져서 우리가 이겼습니다. 3:2로 이겼습니다.
  믿음도 그런 것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밑바닥까지 갔다고 해도 이젠 끝장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언제 뒤집어질지 모릅니다. 저는 야구 보면서 제가 이씨인게 그렇게 자랑스럽더라구요. 일본 선수가 친 안타를 4회 말에 받아낸 선수가 이진영입니다. 그것을 받았기에 한국이 이겼습니다. 전세가 뒤집어 졌습니다. 패배의 흐름이 승리로 바뀌었습니다. 또 이종범 선수가 안타를 참 잘 쳤습니다. 이승엽 선수가 홈런을 날렸습니다. 이씨가 없으면 야구가 안되겠더라구요. 축구에 가면 이영표가 있어야 되고, 야구에 가면 이씨가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야구를 봐도 막판에 뒤집어 지지 않습니까? 거기에 야구의 묘미가 있습니다. 믿음의 묘미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상황이 끝난 것 같지만 막판에 가서 상황이 뒤집어 지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여기에 인생의 역전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카네기라는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는 말하기를, 성공하는 사람들은 세 가지를 하면 안 된다는데, 첫째는 ‘없다’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합니다. 재능도 없다, 시간도 없다, 가진 게 없다라고 하지 말랍니다. 두 번째는 ‘다 잃어버렸다.’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합니다. 내게 아직도 남은 게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모든 게 끝났다는 말을 하지 말라는 얘기입니다. 이제부터 시작인데 말입니다. 인간이 끝이라고 할 때부터 하나님은 시작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르밧 과부의 가정에 아들과 떡 만들어서 먹으면 끝일 식량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선지자가 와서 떡을 만들어 오랍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먹고 죽으려고 하는 것 뿐이지만 그것을 선지자에게 드릴 때, 거기서 새로운 출발이 시작되어서 이 기근이 다 끝날 때 까지 통에 가루가 끊이지 않고 병의 기름이 늘 넘쳐흐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끝났다고 말하지만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두려워말고 믿으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문제 앞에서 기적을 체험하려면 끝까지 동행하셔야 합니다.

  회당장은 포기하지 않고 일어납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자기 집에까지 안내합니다. 거기에 승리가 있습니다. 중도에 가 봐야 뭐합니까? 애가 죽었다는데... 선생님 가고 싶은대로 가세요라고 했다면 예수님이라도 가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예수님과 동행했습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때로 실패할지라도, 넘어질지라도, 좌절할지라도 끝까지 주님과 동행해야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집에 갔더니 역시 장례가 났으니 그 집안의 사정이 어땠겠습니까? 성경에 보니 훤화하며 심히 통곡했다고 했습니다. ‘훤화한다’는 것은 시끄럽게 떠드는 것, 소요가 일어난 듯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곡하는 모습이 울려 퍼졌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어릴 때 보면 누가 돌아가시면 곡을 합니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며느리가 곡을 하는데, 밥 먹고 웃고 있다가도 시간이 되면 가서 곡합니다. 또 돌아와서 밥 먹고, 웃고 합니다.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슬퍼서 우는 것만이 아니라 습관이겠지요.

  유대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곡하는 사람을 사서 곡을 시켰습니다. 그러니 곡 소리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 시끄러운 가운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왜 이렇게 훤화하며 시끄럽게 구느냐, 다 나가라.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는 잠자는 것이나 죽은 것이나 똑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잠자는 나사로를 부르듯이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니 나사로가 걸어나왔습니다. 잠 자는 거나 죽은 사람 깨우는 거나 예수님 보시기에는 똑같습니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비웃습니다. 뭐 저런 말도 안되는 얘기를 하냐구요.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비웃는 분들이 잇습니다. 저 믿음있다고 하는 사람들, 다 거짓말에 사기라고 비웃습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사람들을 다 내어 보내십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이 아이의 부모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는 곤 말씀하십니다. 달리다굼! 아이의 손을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소녀야!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는 말씀입니다. 그 때 아이가 마치 잠자다가 일어난 것처럼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납니다. 먹을 것을 주어라 했더니 먹을 것을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늘 인생의 문제 앞에 부딪칩니다. 좌절하고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믿음을 가지고 일어나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이 험한 세상 가운데서 절망의 자리, 한숨의 자리, 포기의 자리, 피곤의 자리에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 달리다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오른손을 일으키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낙심과 절망의 자리에서 과감히 일어나시고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기도함으로 기적을 체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