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랑한다면... (눅 7:36-50)

  • 잡초 잡초
  • 222
  • 0

첨부 1


어느 날 희귀한 혈액형을 가진 아이가 급히 수술을 하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피가 모자라 생명이 위독해지게 되었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만 그 혈액형을 구하지 못했습니다. 식구들 중에서 같은 혈액형을 가진 사람을 검사했는데, 그 아이의 어린 동생이 같은 혈액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워낙 시간이 촉박한지라 어린 아이지만 급한 대로 수혈을 하고자 했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애야, 지금 형이 몹시 아프단다. 어쩌면 하늘나라로 갈지도 모른단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네가 너의 피를 좀 형에게 주어야겠다. 좀 아프겠지만 형이 다시 살수 있단다. 어떻게 하겠니?”아이는 한동안 말이 없이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수혈이 끝나고 모든 주사 바늘을 뽑았는데도 그 아이는 눈을 감고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물었습니다.“애야 다 끝났다. 근데 왜 눈을 감고 있지?”아이는 말했습니다.“하늘나라에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놀랬습니다. 그 아이는 헌혈을 해본 적이 없기에 자신의 몸에서 피를 뽑아서 형에게 주고나면 자기는 곧 죽는 줄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의사가 또 물었습니다.“애야 그럼 넌 네가 죽는 줄로 알면서도 왜 형한테 헌혈을 한다고 했었니?”아이가 말했습니다.“네, 저는 형이 좋거든요”곁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아무 말을 못하고 울고만 있었습니다.

사랑은 힘이 있습니다.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를 살리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은 사랑을 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게 유익한 사랑을 하려하고 내가 원하는 사랑만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사랑을 받는 데는 갈망을 하면서도 주는 데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해 보면 결국 사랑은 세 가지의 사랑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는<만약에의 사랑(Love of If)>입니다. 이것은 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네가 이렇게 해주면 내가 사랑하지”하는 주고받기 식의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때문에의 사랑(Love of Because)>입니다. 이것은 상황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당신이 나에게 이렇게 해주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지.”혹은“당신이 지금 아름답기 때문에 나는 사랑합니다.”하는 식의 사랑입니다. 그럼 나중에 늙어서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면 사랑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즉 상대방의 가치에 따라 사랑하는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 사랑법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Love of Nevertheless)>입니다. 상대방이 내 사랑을 받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 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푸는 사랑입니다. 그의 조건과 그의 상황이 어떠한지가 상관없습니다. 그가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지라도 나는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니 더 적극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나를 싫다고 멀리하려하고, 미워한다고 말할지라도 나는 그를 사랑하는 후회 없는 사랑입니다. 또 하나 내 쪽에서 봐도 그렇습니다. 감히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 모릅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언감생심(焉敢生心)우러러 볼 수 없는 고귀한 존재요, 자격으로 보자면 내가 사랑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모든 것을 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것은 사랑 받는 것 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비밀을 아는 사람의 사랑법입니다.[갤 브레이드]라고 하는 사람은“사랑을 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사랑을 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것은 천사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알게 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사랑 때문에 인생이 바뀌어져 버린 한 여인이 있습니다. 죄 많은 여자였습니다. 사랑 받는 것은 물론 이거니와 감히 사랑할  용기조차도 없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처음 느껴보는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게 됩니다. 지금껏 알고 있었던 피상적이고 육체적이고, 향락적인 사랑의 느낌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파괴 되고 피폐된 자기 영혼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줄 말로 못할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에 이끌리어 자기 인생에 가장 소중한 것을 갖다 바칩니다. 평생을 모아 둔 생명과 같은 가치를 쏟아 붓는 헌신적인 사랑을 하게 되고 그 사랑이 그를 변화시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유명한 신학자[윌리암 바클레이(W. Barclay)]는 이글을 쓰고 있는[누가]가 미술가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생생하게 사실적인 묘사를 했다고 극찬을 한 부분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도 사랑한다면 반드시 일어나야 할 무슨 일인가가 있어야합니다. 사랑하는 곳에 그 사랑을 보여 줄 수 있는 결정적인 행위들이 일어났을 때 훨씬 아름다운사랑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어도 오늘 본문의 여인이 사랑하는 것을 보면 그렇고 오늘 우리도 그 사랑을 가져야합니다.

여러분은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야 그 사랑이 잔정 아름다운 사랑이 되겠습니까?

먼저 사랑한다면 내 이익에 관계없이 가까이 하고자 하는 몸부림이 있어야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의 모든 행동이 관심의 대상입니다. 그리고 그의 움직임에 따라 나도 행동합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있고 싶어진다는 말입니다. 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나도 따라갑니다. 가까이 하고 싶은 것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오늘 이 여인이 그랬습니다. 사실 이 여인은 깨끗지 못한 여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죄인인 한 여자”라고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 동네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죄인이었고 가까이 하기를 꺼려했던 여자였습니다. [윌리암 바클레이(W. Barclay)]는 이 여자를 창녀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여자가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갔습니다. 그러나 집주인 시몬을 만나러 간 것이 아닙니다. 물론 만나주기나 하겠습니까마는 어쨌든 평소와는 다른 동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손님을 끌어서 돈이나 벌어보자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인 친분을 넓혀서 자기 영업에 이익을 얻고자 나아 온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만나야겠다는 동기에서였습니다. 그것도 누구처럼 먼발치에서 쳐다만 보고 가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뭐라고 했습니까?“예수님의 발 곁에 섰다.”고 했습니다. 오늘 이 장면을 우리들의 식탁처럼 이해하면 안 됩니다. 당시 풍습으로는 신발을 벗고 발은 쭉 뻗은 채로 옆으로 비스듬히 기대서 휴식을 취하면서 한 손으로 자유롭게 식사를 하는 모습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의 발치에 이 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서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곁에 가까이 있는 그 감격에 복받쳐 지금 울며 서 있는 것입니다.<열 두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인>이 예수님 곁에 서기를 그렇게 갈망했었습니다.“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처절하게 외치던<소경 바디매오>가 그랬습니다. <뽕나무 위의 삭개오>가 그랬습니다. 모두가 예수님 곁에 서고 싶어 몸부림쳤던 사람들이고 하나같이 주님의 사랑을 체험했던 사람들입니다. 단지 이 여인의 탁월한 점은 주님께 나아 온 동기가 훨씬 아름답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수로보니게 여인>도 끈질긴 믿음 때문에 칭찬을 받았지만 사실은 귀신들린 딸을 고쳐 달라는 부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이스라엘 중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노라.”고 칭찬을 받았던 백부장도 사실은 자기 하인의 병 때문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 여인은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하게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나왔습니다. 내심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으로 나왔는데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그 분이 내 과거를 아시고 내 죄를 아시면서도 나를 외면치 아니하시고 받아주셨고 그 사랑에 감격해서 지금 주체 할 수 없는 눈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눈물은 흘리고 있지만 왜 이렇게 후련합니까? 왜 이렇게 행복한지 모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의 먹을 것과 제 멋대로의 시간을 즐기고 있을 때 이 여인은 주님 곁에 서서 단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다면 차를 타고 혹은 부지런히 걸어서 교회로 와서 사람들만 만나고 시몬만 만나고 돌아간다면 대단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하고자 하는 몸부림을 가지고 돌아가야 합니다.

또 한 가지 예수님을 사랑하다면 아낌없이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무엇이든지 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정말 나에게 필요한 것일수록 그에게도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이 여인이 어찌나 울었든지 눈물로 발을 씻길 정도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의 여인들에게서 풀어헤친 머리로 사람들 앞에 보인다는 것은 매우 점잖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풀어헤친 머리카락으로 주님의 발을 닦았다는 것은 이 여인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요, 자기 체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면 일어날 수 있는 이 마음을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너무도 유명한<탕자의 비유>에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곳이 있는데 그 부분이 바로 비유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아들이 타국에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섰다가 아들이 돌아오는 모습이 눈에 띄자 먼 거리를 달려가 안아 줍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어른이 달려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입니다. 남자 성인 유대인이 발목이나 발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발바닥을 드러내 보이는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모욕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지금도 정통 유대인들은 상대방이 다리를 꼬고 앉으면 자신들을 모욕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 자리를 뜬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비유하신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고서 달려가 그를 맞이했다고 하신 말씀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체면을 포기하는 것은 물론 남의 손가락질까지도 감수하겠다는 사랑 많은 아버지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가진 이 여인이 오늘 말씀에 주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고 했는데 원문의 의미로는 계속해서 입을 맞추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숨이 막히도록 입을 맞추었다.”는 의미입니다. 감격에 겨워서 이대로 숨이 멈추어도 좋을 행복이었다는 말입니다. 즉 생명을 다 드려도 다 감사할 수 없는 감격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옥합의 향유를 주님의 발에 쏟아 부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옥합의 향유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치 있는 재물이었다는 말입니까? 몇 백 만원, 몇 천 만원 의 금전적 가치를 지닌 물질이었다는 것에 중요성이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이 여인이 쏟아 부은 향유는 생명에 버금가는 의미였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물질적인 가치를 따지자면야 이 여인보다 훨씬 더 많이 드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시몬이 베풀어 주는 만찬이 더 정성스럽고 고마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의 칭찬은 시몬보다 여인에게 주어집니다. 왜 그렇습니까? 영적가치 때문입니다. 생명에 버금가는 소중한 진액입니다. 어쩌면 죄를 지으면서까지 부끄러운 생활로 겨우겨우 모은 목숨 값이요, 이제 그 생활도 청산했으니 더 이상 모을 수도 없는 생명의 전부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형식적인형식적인 예물이나 드릴 줄 알았던 제자들 앞에, 우리들 앞에, 이제껏 헌신다운 헌신 한번 해 본적 없는 바리새인들 앞에, 우리들 앞에 진정한 경배가 무엇이여 참다운 헌신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었고 머리털은 온통 헝클어져 있습니다. 얼마나 추한 모습입니까? 주님이 뭐라고 하시든지 아니면 시몬이 보기 흉측하다고 당장 쫒아낼지도 모르는 불안한 마음으로 불호령도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서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시몬을 향해 이렇게 묻습니다.“이 여자를 보느냐?”44절-46까지 시몬을 향한 주님의 책망을 보면“너는 왜 이 여인만 같지 못하느냐?”는 책망입니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초대했느냐?”는 시몬의 속과 우리의 마음을 되짚어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까? 사랑한다면 오늘 우리에게도 일어나야 할 역동적인 힘이 있어야합니다. 가까이 가고자 하는 몸부림이 있어야 하고, 내 진액을 아낌없이 드리고자하는 마음이 일어나야합니다. 늘 변두리 인생처럼 살아가지 마시고 주님을 사랑한다면 오늘 이 여인을 보시기 바랍니다. (김철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