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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보혈의 능력 (히 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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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순절 두 번째 주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에 관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신구약성경  66권의 중심은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우리의 몸 어느 부분을 바늘로 찌르면 피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가 나옵니다. 육신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피가 섞여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아무리 잘해줘도 아버지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피의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보혈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왜 보혈의 피를 흘려야 했는가? 오늘 본문 결론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22절).” 인류에게 죽음과 비극이 온 것은 죄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 자체가 ‘죄’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죄를 지어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가 없다하면 그것은 거짓말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인간이 죄인임을 어떻게 압니까?

율법과 양심을 통해서입니다. 인간은 죄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는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율법이 내게 임하면 그 숨겨져 있던 모든 죄들이 다 드러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의 양심을 통하여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증거 하십니다. 양심은 하나님이 인간의 영혼에 두신 ‘경찰관’과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일상생활을 할 때엔 작동하지 않다가도 죄를 지을 때면 이 양심이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를 짓는 순간 양심이 ‘쿵쿵’ 뛰기 시작합니다. 아무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죄를 지어도 우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 이 양심도 죄를 반복해서 짓다보면 둔해진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릴 때는 그 양심이 송곳처럼 날카롭고 민감하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상습적으로 죄를 짓다보면 웬만한 죄로는 전혀 가책을 느낄 수 없게 됩니다. 마취 주사를 맞은 사람이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듯 양심에 마취 주사를 맞은 것입니다. 이런 단계를 넘어서면 양심이 화인을 맞아 완전히 죽어갑니다. 이런 사람들은 밥 먹듯 죄를 짓고 삽니다. 독일의 히틀러와 연쇄살인범과 같은 무서운 죄를 저지른 자들입니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호랑이나 사자가 아니라, 양심에 화인 맞아 죄를 짓고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우리의 행위가 모두 적혀있는 생명책이 있습니다(계 20:12-13).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이 생명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과학이 발달되어 거의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습니다. 녹음기는 목소리를, 비디오카메라는 모든 화면을 저장할 수 있습니다. 사실 녹음기와 비디오의 진정한 발명자는 하나님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이미 우주 안에 만들어 놓은 녹음기와 비디오의 원리를 이용해서 기계를 만든 것뿐입니다. 만일 비디오의 원리를 가지신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면, 하나님은 분명 인간의 모든 말과 행위를 기록할 수 있는 기계를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기계를 책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큐 라스란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간증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출판했습니다. 그 책에 보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자기의 일생이 찍힌 비디오를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깐 본 것 같은데 자기 일생의 모든 부분이 다 찍혀있는 비디오라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 자기의 모습이 부끄러워 자신 스스로 지옥으로 갈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 죄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그 모습 그대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보상을 하려고 합니다. 지난번 대통령으로 출마한 분의 아들이 병역의 의무를 하지 않아 여론의 비판을 받자 그 대신 소록도에 가서 자원봉사로 보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놓고도 찬반의 의견이 나뉘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많은 사람들은 자선 사업과 선행으로 하나님께 점수를 따려고 합니다. 종교인들은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죄과를 눈감아 주시리라 착각합니다. 그들의 죄에서 그들이 행한 선행만큼 에누리가 있으리라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종교행위도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선행도 양심의 가책을 무마할 수는 없습니다.

죄를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은 단 한 하나,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스스로 죄를 용서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범죄는 하나님께 대한 것이므로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 하나님께 달렸습니다. 죄 사함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 예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여러 차례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오직 예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구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신 것은 예수님의 보혈로 모든 사람의 죄를 씻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도말’은 지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전히 지워 주셨습니다. 선배 목사님이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자기가 다니던 시골 중학교가 겨울에 난로에서 불이 붙어 전 교정이 불에 타서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너무 기쁘더라는 것입니다. 아니, 모교가 불에 타서 없어졌다는데 기쁘다니 말이나 됩니까. 그런데 말인즉, 자기가 중학교 다닐 때의 성적이 엉터리였는데 그 엉터리 성적표가 불에 타 없어졌다는 것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나쁜 성적표가 불에 탄 것도 기쁜데 우리의 모든 죄가 기록된 죄의 기록들이 지워졌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죄의 기록은 인간의 힘으로는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지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컴퓨터에는 Delete(삭제)라는 키가 있어 그 키를 누르면 컴퓨터의 하드 드라이브를 삭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Delete 키와 같은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이것을 사건으로, 그림으로 그려서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이 애굽의 바로에게 내린 열 번째 재앙이 나옵니다.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바른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에는 재앙이 비켜갔으나, 문설주에 양의 피가 없는 애굽 사람의 집에서는 장자가 죽어나왔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항복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의 전설 중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유대인의 가정에 어린 아들이 있었는데, 그 맏아들이 잠자리에 누웠다가 일어나서 자기의 아버지에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랐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버지는 “오냐, 발랐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맏아들은 그래도 불안한 마음이 생겨서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그때에 아버지가 그 아이를 데리고 문 밖에 나가서 문설주를 보니까 피가 조금도 발라지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급히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에 애굽 사람들의 통곡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신약의 예수님의 보혈을 예표해주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의 피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린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죄에 짓눌려 괴로워하는 인생을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21장에는 광야 생활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을 무엇보다 싫어하셨습니다. 불뱀이 나와서 그들을 물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불뱀과 같은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살리라고 했습니다. 놋뱀은 불뱀의 독에 죽어가는 백성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실로 믿어지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금방 죽을 것만 같은 자들도 일단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누구나 살았습니다. 네! 이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 기적이요 신비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표한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의 독으로 죽어가는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에 달리셨으며 그 후로부터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치유와 회복을 경함하게 하는 유일한 생명의 길이 되신 것입니다(행4:12).

그리고 여호수아서 2장은 여리고성이 함락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모세의 후계자가 된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의 일입니다. 여호수아 장군은 전쟁이 시작되자 먼저 두 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 성에 잠입시켜 정보를 알아보도록 작전을 폈습니다. 두 정탐꾼은 성문 옆에 있는 라합의 집에 잠입해 들어가 유숙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유대인과 가나안 사람들은 피부색이나 옷차림이 다르기 때문에 정탐꾼이 들어왔다는 정보가 곧 여리고 왕에게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왕은 군대를 보내어 기생 라합의 집을 수색하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자기 집에 온 두 정탐꾼이 방금 다른 곳을 나갔다고 해서 위기를 모면케 했습니다. 그들이 간 뒤에 라합은 지붕위에 숨겨두었던 정탐꾼들에게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내 부모와 형제들과 그들에게 딸린 모든 식구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기생 라합은 두 정탐꾼을 굵은 밧줄에 달아서 성 밖으로 탈출시켰습니다.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들은 여리고성이 함락될 때 창문에 붉은 줄을 드리우면 이 집은 한 사람도 상하지 않도록 보호해 줄 것이라는 다짐을 하고 떠났습니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 붉은 줄을 드리운 기생 라합의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기생 라합은 붉은 줄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고 다윗 왕과 예수님의 족보에 그 이름이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 붉은 줄은 구원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그림을 그려서 예수님의 구속의 사건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은 그 예언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진 것을 말해줍니다. 신약은 문자 그대로 새로운 언약(New Covenant)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 바로 전날 저녁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하여 죄사함을 받게 하려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여러분이 믿어야 합니다.

필리핀에서 있었던 실화입니다. 어느 가톨릭 수녀가 있었는데 이 수녀는 가끔 기도를 하는 중에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이 추기경의 귀에까지 들렸습니다. 추기경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믿자니 너무 신비주의에 빠지는 것 같고, 믿지 않기에는 그 수녀의 삶이 너무 진실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추기경은 기도하는 가운데 지혜를 냈습니다. 그리고 수녀를 불러 말했습니다. “수녀님, 기도 중에 가끔 예수님을 만난다지요?” “네, 가끔 만납니다.” “ 그러면 다음에 만나면 한 가지를 예수님께 여쭈어 보실래요. 제가 대학에 다닐 때 큰 죄를 지은 것이 있는데 그 죄가 무엇인지 예수님께 여쭈어 볼래요?” 추기경은 수녀가 그것을 알아 오면 진실이 밟혀질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후 수녀가 기도 중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녀를 불러 물어보았습니다. “예수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저의 죄가 무엇이라고 하시던가요?” 수녀는 말했습니다. “예, 추기경님, 제가 예수님께 추기경이 젊어서 지은 죄가 무슨 죄냐고 물었더니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추기경이 젊어서 큰 죄를 지었나본데 그가 회개하였기에 그 죄가 다 지워져서 나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귀한 복음의 말씀인가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에 하나님조차 기억하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죄를 십자가 앞에 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보혈은 여러분의 죄를 다 사하시고 기억조차 하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이 십자가의 보혈의 능력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비행기표를 샀다고 목적지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지로 가는 비행기를 탑승해야 합니다.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사건을 믿어야 합니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혈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인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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