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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 살거야 (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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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어느 집사님이 저에게 “목사님 목사님은 지금까지 살아오신 일중에  후회하신 일은 없으신지요“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저는 저의 삶에 요즘 제가 고민하는 것 중에 하나는 인생을 잘 사는 길이 무엇일까하는 것입니다.
20대에는 꿈을 좇아 살고 30대에는 기반을 닦으려고 살고 40대에는 뻗어나가 보려고 일에 미쳐 삽니다. 그리고 50대에는 안정을 추구하려 살고 60대에는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후회를 하게 됩니다. 70대 이후에는 죽을 날을 생각하며 삽니다. 60이 너머서부터는 “아 내가 망상에 사로잡혀 살았구나” 후회합니다. “아, 내가 일에 지나치게 미쳐 살았구나,” “아 내가 헛된 것을 좇아 살았구나!” 하고 후회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어떻게 살든지 간에 인생의 막판에 가서 후회하게 된다면 더 늦기 전에, 지금, 좀더 잘 사는 길을 택해볼 순 없을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펠리컨이 되려고 합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어딘가에 안주하고 언제나 수고 없이 던져지는 현실의 먹이만을 받아먹으려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요행만 바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신이 썩어버리고 굶어죽게 됩니다. 이런 펠리컨들이 재벌 2세들 가운데서 많이 나옵니다. 미국에 가면 이런 재벌 2세들이 소위 유학을 많이 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공부하러 와서 좋은 차에 풍족한 생활 등으로 공부 대신 유흥가를 돌며 타락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 대기업 회장 아들도 공부는 안하고 방탕하다가 어느 날 음주 운전으로 교통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재벌부모는 스스로 먹이를 찾고 풍족한 삶을 누렸지만 그 2세들은 먹이를 찾는 법을 모릅니다. 단지 부모가 해 주겠지 하는 의타심만 갖습니다. 결국 부모가 죽으면서 재산 물려주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전 재산을 다 말아먹기도 합니다. 잡아놓은 고기를 먹을 줄만 알았지 고기 잡는 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펠리컨처럼 평생 무기력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요행심만 바라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카지노에 가 보세요. 작년에 문을 연 강원도 정선의 카지노에서는 올 매출액이 2조원에 달했다고 합니다. 일하지 않고 돈을 벌어 보려고 사람들이 노름으로 돈을 날린 액수가 2조원이니 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일하지 않고 열매를 얻겠다는 펠리컨 같은 생각입니다. 

요즘 3D 업종에 일군이 없습니다. 산업연수생이나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중소기업체들의 공장 가동이 불가능합니다. 힘든 일에는 사람이 없고 쉽게 일할 수 있는 서비스업종에는 젊은이들이 차고 넘칩니다. 한국 젊은이들의 생각이 쉽게 열매를 얻으려는 펠리컨 같은 태도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요즘 자녀를 키우는 부모를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자기 스스로 숟가락을 들만큼 컸는데도 부모들이 따라 다니며 밥을 입에 넣어 줍니다. 아이들의 두 손이 있지만 그들은 부모가 밥을 입에 넣어 줄 때까지 기다릴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어려서부터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정신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어려서부터 이렇게 무기력이 습관화되면 정말로 무섭습니다. 왜냐면 잠재의식 속에 습관이 스며들고 결국 고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능력을 개발할 생각도 하지 않고 어떻게 되겠지 하며 남만 의지하는 정신이 이 때부터 생기기 때문입니다. 감이 떨어지길 입만 벌리고 있는 것입니다. 행운만 기대합니다. 결국 시간만 낭비할 뿐 아무런 열매도 주어지지 않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생활 가운데도 간혹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기복 신앙에 젖어 하나님께로부터 포장된 선물을 받기를 원합니다. 기도만 할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뭔가 큰 선물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길 기대합니다. 그러다 보니 굶어 죽게 되는 가여운 펠리컨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본문설명]그러나 오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보십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 이스라엘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왔을 때에 그들의 조국은 황폐화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그들은 눈물로 씨를 뿌리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이 말씀의 교훈은 기쁨의 열매를 맺고자 하면 반드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가 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언에서는 “너희는 개미에게서 그 하는 일을 배우라.” 하였습니다.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훌륭한 열매를 얻으려면 누구든지 성실하게 일하고 진실하게 일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긍정예화]야곱은 빈털털이로 고향을 떠났던 젊은이였습니다. 하지만 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아내를 얻기 위해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러나 삼촌에 속아서 다시 7년을 일하고서 아내 라헬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 뒤 물질을 얻기 위해서 삼촌의 속임수를 견디어가며 또 7년을 일했습니다. 한 마디로 성실한 삶 그 자체였습니다. 그 성실이 그를 부자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 성실한 그를 하나님이 도와 주셨습니다.

[긍정예화2]세계 최고의 갑부였던 록펠러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 록펠러”라는 저서에 보면 그가 30대에 기반을 닦기까지 그는 온갖 고생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방탕하였고 집은 찢어지게 가난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어려서부터 록펠러는 혼자 삶을 꾸려가야 했는데 남들이 꺼리는 굳은 일까지 스스로 도맡아 일하며 어려서부터 그는 성실하게 일하는 습관이 붙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힘은 바로 그의 성실한 삶의 태도가 오늘의 그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성실하게 살면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가난하지 않습니다. 성실하면 삶이 아름답고 늙어서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권면]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사모하기 전에 먼저 성실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먼저 성실한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늙어서도 후회가 되질 않습니다. 이것이 잘 사는 비결입니다. 성실한 여러분의 삶의 자세가 여러분의 생애를 빛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늙어서 후회하지 않는 두 번째 비결은 욕심을 버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며 사는 것이 참 쉽게 보이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욕심 때문에 사람이 미치고 이 욕심 때문에 사람답게 살지 못합니다.
[문제제기]욕심 때문에 범죄가 일어난다고 굳이 더 이상 말씀드리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삶을 불행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욕심을 좇아 사는 사람은 남과 비교를 잘 합니다. “아무개는 저 정도인데 나는 요 모양이구나!” 하면서 나보다 뛰어난 사람, 나보다 잘 난 사람을 보며 속상해 합니다. 친구가 잘 되면 아예 가까이 하기도 싫어하고 접촉조차도 끊어 버리며 폐쇄적이 됩니다. 그리고 자기 보다 못한 사람을 보면서 위로를 받으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못난 사람입니다. 특히 사치가 강하고 자존심이 강하면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자신을 한탄하며 스스로 폐쇄적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당사자보다도 부인들이 더 합니다. 남의 남편보다 내 남편이 지위가 낮고 돈벌이가 시원찮으면 부인들이 기가 죽습니다. 남편에게 불평을 잘합니다.

제가 13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와서 이곳 효성교회에 와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 후배들이 한국에 나왔다고 연락하는 사람은 누구냐면 앞길이 잘 풀린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후배 목사님들은 전화도 안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까? 자존심의 문제입니까? 자존심보다도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나도 이 만큼 공부했으니 이 정도 위치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괴로워합니다. 이런 생각을 한마디로 욕심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 지나친 사람의 특징은 조급함입니다. “남이 저 나이에 저 정도 되었으니 나도 저 정도는 되야 하지 않나” 하고 조급해 하고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취직 자리를 찾고 있던 사람이 기도합니다. “하나님 한 달에 200만원만 받는 직장에 취직하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하고 기도하였는데 정말이지 십 원한 장 빠지지 않는 연봉 2400만원의 직장에 취직하였습니다. 감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감사는 며칠이 못 갔습니다. 자기보다 능력이 떨어져 보이는 사람이 매달 300만원을 받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그 사람만 바라보면 화가 납니다. 그리고 불행한 마음이 싹트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문제입니까?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이 지나칠 때에 마음과 생각이 불행해 지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생각이 무엇입니까? “나도 언젠가는 길이 열릴 것이고 꿈을 이룰 날이 다가오겠지 서두르지 말자. 성급해 하지 말고 준비하며 기다리자. 성실하게 일하며 기다리고 믿음으로 기다리자.” 이런 자세로 앞서간 사람들을 축하해 주고 자신을 향해서도 “하나님이 내게도 기회를 주실 거야”하면 삶이 편안해 지고 여유가 생깁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부족한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설명]오늘 하나님 말씀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이 말씀에는 욕심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 다음을 보세요.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하였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자신을 불행하게 여길 틈이 없습니다. 오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선을 다해서 일할 뿐입니다. 게다가 남과 비교하지도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만 바라보며 일할 뿐입니다. 3절 4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리소서. 하나님이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자신들을 회복시키신 것에 대한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고 또 남방의 마르지 않는 강처럼 이스라엘을 풍요롭게 만들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씨를 뿌려 기쁨으로 얻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하나님을 바라보며 해결하려는 믿음입니다.

[긍정예화]제가 구약의 인물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다윗입니다. 그는 젊어서부터 이스라엘의 제 2인자 위치에 올라갔습니다만 일인자인 사울왕의 시기로 오히려 도망가는 신세가 되야 했습니다. 하늘을 지붕 삼고 돌을 베개삼고 광야에서 굴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러기를 무려 십 년이나 견디어야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신을 그렇게 만든 사울왕에 대해서 독기를 품고 복수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겠지요. 그런데 다윗에게도 실제 그런 날이 다가왔습니다. 다윗이 숨어있는 동굴 속에 들어와서 사울왕이 무장을 풀고 변을 보고 있었습니다. 손만 쭉 뻗으면 사울 왕을 단칼에 죽일 수 있었습니다만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왕을 그렇게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울 왕을 죽이면 자신이 제 2인자에서 일인자의 위치에 올라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그를 살려 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는 하나님이 때가 되면 자신을 들어올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때까지 기다리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이 들어올리실 때까지 찬양하며 악기를 치며 기다렸습니다. 시편 57편에 보면 다윗은 가장 암울했던 시절에 비파와 수금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다리며 겸손히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안개와 같은 어둠이 걷히자 마침내 다윗은 그의 믿음대로 이스라엘의 존경받는 왕이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여러분, 그의 특징은 한마디로 욕심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던 광야생활 때에도 그는 악기를 타며 노래하였고 욕심을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도 절제하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광야에서도 행복했고 동굴 속에서도 기뻤으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았습니다.

[권면]여러분, 후회함이 없는 인생을 살길 원하십니까? 욕심을 버리며 자유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불평 불만이 사라집니다. 남편에 대해서 아내에 대해서 자녀에 대해서 욕심을 버리십시오. 나 자신에 대해서 욕심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바라보며 사십시오. 마치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가듯 하나님의 인도하심만을 따라가며 그 분의 인도하심을 기뻐하며 사십시오. 그러면 인생 말년에 잘 살았다고 평가하게 될 것입니다. 욕심을 버린 경건한 삶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I. 인생의 말년에 잘 살았다고 후회하지 않는 또 다른 삶의 원칙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몇 년 전에 야당지도자가 그 당시의 정부가 불법이라고 규정하며 민주화 운동을 부르짖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감옥에 붙들려 갔습니다. 사형을 당하겠느냐 대통령의 정통성을 인정하겠다고 발표를 하겠느냐는 협박에 굴복하여 그 분은 군사 정권을 정통성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변심을 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 사람은 사쿠라라는 이름이 붙고 영원히 정치적으로 죽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한 지도자는 감옥에 가고 사형 선고 자리에서도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극적으로 풀려나자 사람들은 그를 최고의 사람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 나라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지금의 김대중 대통령입니다. 사쿠라였던 그 지도자는 가끔 그런다고 합니다. “생명보다 명예를 택했더라면 내가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텐데...”

그러고 보면 사람은 생명을 위해 일을 하고 살아갑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명예입니다. 명예가 떨어지면 살아있으나 죽은목숨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명예를 위해서 살아갈 때에 존경을 받습니다. 그리고 인간답습니다. 여러분들은 물질보다도 생명보다도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명예를 좇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특별히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좇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몇 년 전에 김해에 있는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러 간 적이 있는데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목사님에 대한 간증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목사님이신대요. 6.25 직전에 평양에서 목회 하던 목사님은 공산당이 예수 믿지 말 것을 요구하며 예수님 사진을 밟고 지나가면 살려 주겠다는 말에 성도들이 보는 앞에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이후에 목사님은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었고 평양 근처에서 살다가 1.4후퇴 때에 남하하여 김해에서 평생 혼자서 외롭게 살았습니다. 가끔 후회하곤 했다고 합니다. “난 성도들에게 죽어도 죽지 않고 부활하여 천국 간다고 외쳤는데 죽음이 두려워 예수님을 더럽혔어...” 쏘는 듯한 양심의 가책으로 인해서 그는 매우 괴로웠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힐 때에 고통이 가중됩니다.

[긍정예화]그러나 요셉을 보세요. 그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외국에 노예로 팔려 가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때에도 그는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집 아내가 유혹합니다. 그 때에 요셉은 하나님 믿는다고 큰소리치던 것 다 팽개치고 인생을 즐기자며 하나님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유혹의 손길 앞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찌 득죄하리요?” 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세우기 위해서 자신의 쾌락보다도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이런 선택 때문에 그는 일시적으로 깊은 수렁에 빠졌습니다만 결국 그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떳떳하게 풀려났고 하나님이 들어 올려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지킨 자는 반드시 끝에 가서 웃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에도 떳떳합니다.

[본문설명]오늘 본문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이스라엘은 포로로 붙잡혀 갔다가 해방된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해방되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켰고 하나님의 명예를 세워나가느라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만 보더라도 풀무 불에 들어갈지언정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변절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믿음으로 살다가 하나님이 해방되어 돌아오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떳떳하였을까요?

예수님을 보세요. 십자가의 길을 늘 가야 할 것을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셔야 할 운명의 날이 왔을 때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자신을 잡으러 다가오는 군졸들을 보면서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리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왔느니라.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슬프고도 고통스러운 상황 앞에서도 당당한 이 모습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지키겠다는 신념뿐입니다.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부활하셨으며 저 천국으로 들어가시면서 하나님과 온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적용]오늘 날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며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말씀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불결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정결하게 사는 것입니다. 타락한 세상에서 고결한 인격과 믿음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비판과 헐뜯는 말이 난무하는 세상 속에서 은혜를 덧입은 자답게 은혜를 베풀며 사는 것입니다. 허물을 들추어내는 세상에서 허물을 덧입으며 용서를 덧입은 사람답게 이웃을 용서하며 허물을 덮고 사는 것입니다. 비 진리가 춤을 추는 세상에서 진리를 덧입은 자답게 진리를 실천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되던 날 두 종류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그룹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얼싸안고 춤을 추었고 한 그룹은 부끄러워 숨었던 그룹이었습니다. 기뻐하며 떳떳했던 그룹은 나라와 민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싸웠던 사람들이었고 불안했던 그룹은 민족을 팔았던 친일파들이었습니다.
[권면]우리가 하늘나라에 올라가면 두 종류로 나눠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던 사람들은 부끄러워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충성과 사랑을 하나님께 드렸던 사람, 특히 하나님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 살았던 사람은 기뻐하며 춤을 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까? (박유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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