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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람이 걸어갈 길 (딤전 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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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한평생 어디론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통행의 수단으로서의 길입니다. 사람이나 차가 다니는 통행로를 모두 길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지켜야 될 도리를 길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도덕적 존재이기 때문에 지켜야 할 윤리적 도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혹은 '도'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생활에는 제각기 걸어야 할 길이 있읍니다. 스승은 사도를 걸어야 하고, 신사에게는 신사도가 있고 상업을 하는 사람은 상도가 있고, 예술가에게는 예도가 있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도 걸어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에 대해 말씀하셨고 당신이 길이라고 직접 선언하셨습니다.

오래 전에 미국 뉴저지의 어느 산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산에 여행을 와 있었고, 또 농부들은 산중턱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그 산 아래서부터 산불이 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위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이 산불에 포위되고 말았읍니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서 저마다 산불을 피하여 그 산 아래로 내려가 모험을 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타서 죽기도 하였읍니다.

그때 갑자기 어떤 사람이 이 많은 무리를 향해서 이렇게 소리쳤다고 합니다. "여러분! 허둥대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 산꼭대기로 올라갑시다." 그의 침착한 인도를 받아서 사람들이 산 정상에 올랐을 때, 온 수풀이 불타고 있었지만 산 중턱에서부터 개울을 따라 흐르고 있었던 물가에는 그들이 걸어갈 수 있는 분명한 길이 하나 있음을 보았읍니다. 그래서 이 지혜로운 사람의 인도를 받은 사람들은 모두 그 개울을 따라 산불을 무사히 피했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당황스런 일을 만날 때 놀라지 마십시오. 허둥대지 마십시오. 높은 곳으로 오르십시오. 길이 있읍니다. 주께서는 아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가야 할 것과 우리가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를... 이 난관중에도 길을 내시며 요단강에 길을 내시고 홍해 바다에 길을 내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삶이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 때마다 주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보여 주십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인생의 참 길을 발견하는 귀한 은혜를 입게 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사람이 걸어갈 길은 경건한 길입니다.(11)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라고 부릅니다. 디모데로 하여금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큰 기대를 환기시키려는 목적입니다. 너는 마귀의 사람이 아니다. 너는 시시한 세상의 사람이 아니다. 자기안에서 일어나는 충동에 따라 살아가는 육에 속한 사람도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따라서 너는 세상의 다른 사람들이 모두 걷는 길을 아무 생각없이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야 합니까? 무엇보다 먼저 경건한 길을 걸어야 합니다. 경건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게, 좋게, 반듯하게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바른 길을 걸어가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헛된 이야기로 관심사를 다른 곳으로 향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경건한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오로지 경건한 길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혹과 시험을 피하고 부패하게 만드는 해로운 욕심을 피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혹을 뿌리치지 못하여 믿음에서 떠나기도 했다고 말슴합니다. 또 어떤 이는 돈을 사랑하고 돈을 쫓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메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많은 근심으로 자기 스스로를 찌르는 불행한 삶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경건하게 살려면 피하기만 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쫓아가야 합니다. 바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의와 경건의 길입니다. 의가 인격적인 덕목이라면 경건은 신앙적인 덕목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며 주님을 닮아가는 자세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고 하나님앞에 진실한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2) 믿음과 사랑의 길입니다. 의와 경건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날 덕목이라면 믿음과 사랑은 인간관계에서 나타나야 할 덕목입니다. 신뢰할만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는 사랑의 삶의 길을 좇아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서 믿음과 사랑을 기대합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서 믿음과 사랑이 넘쳐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3) 인내와 온유의 길입니다. 인내와 온유는 우리 주변의 환경에 대해 반응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답게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대할 때도 참고 친절하게 대해야 합니다. 인내는 주변의 고통을 가져다 주는 환경을 대하는 자세를 가리킨다면 온유는 주변의 괴롭히는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를 가리킵니다. 손해를 보고 억울한 일을 만날때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용납하며 지낸다면 여러분은 크게 성장한 사람으로 인정받을 것입니다. 인내와 온유로 모든 사람을 대할 수 있기 시작할 때 여러분은 비로서 승리자가 되고 여러분을 대적하는 자들이 보이지 않는 권위를 느끼고 머리를 숙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큰 손해를 본 것 같지만 사실은 큰 유익을 얻은 것입니다.

위의 여섯가지는 한 마디로 경건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품어야 할 성품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있다면 바로 경건한 사람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설사 훌륭한 아버지요, 교회의 열심있는 일꾼이며, 적극적인 그리스도의 대변자요, 능력있는 전도자라 할지라도 경건한 사람이 못된다면 이 직위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겉치레가 되고 맙니다. '경건한'이라든가 '경건'이란 말은 신약성경에 불과 몇 번밖에 나오지 않지만, 경건은 성경 전체의 주제가 되어 있습니다. 이 말들 속에는 수많은 의미와 교훈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정수를 한 마디 짤막한 문장으로 정리하면서 초점을 맞추었던 내용도 바로 이 경건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1-13)라고 서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끊임없이 경건을 추구해 나가야 합니다. 이 '추구'라는 말 속에는 무자비하리만치 냉혹하고 뼈를 깎는 수고가 뒤따라야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됩니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므로 금생과 내생에 대한 확실한 약속이 있습니다(딤전4:8).

2. 하나님의 사람이 걸어갈 길은 승리의 길입니다.(12)

유치원생 : 울면 진다. 초등학생 : 코피 나면 진다.
중학생 : 많이 맞은 쪽이 진다. 고등학생 : 넘어지면 진다. 사회인 : 때리면 진다.
그리스도인 : 낙심하고 포기하면 진다. 기도생활, 예배생활, 감사생활, 전도생활, 경건생활 등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합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를 조직신학적으로는 전투교회라고 한다. 그만큼 지상에 있는 교회는 사탄의 공격을 많이 받고 있으며, 또한 그들과 투쟁하지 않으면 천국을 쟁취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천국은 침노하는 자에게 침노 당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 속에서 하나의 구성요소가 되어 있는 우리들의 영적인 삶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싸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나 자신과 싸우지 않으면 우리 속에 거하시는 성령을 만족하게 할 수 없고, 나아가서 사탄의 앞잡이가 되고 맙니다. 육신을 안고 사는 우리들의 영적인 삶은 이 육신과 끊임없이 투쟁하며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와같은 전쟁은 영혼을 거스리는 육신이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도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베드로전서 2:11)고 권면하였습니다. 나의 영적인 삶에서 가장 큰 적은 나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쳐서복종시키는 자아와의 투쟁을 계속해야 합니다.

바울은 인생의 종착점에 이르러 "내가 선한 싸움을 다 싸웠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평생 대적과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적으로부터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지켜 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선물이 어떤 것들입니까? 여러분으로부터 빼앗으려고 사단이 노리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 영생, 성령의 은사, 성령의 충만, 기쁨, 평안, 사랑, 감사, 교회,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은 빼앗기고 잃어버리기에는 아까운 너무나 고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쉽게 항복하고 사단에게 다 내어주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서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위해서는 날마다 믿음을 무너뜨리려고 은혜를 쏟아버리게 하려고 다가오는 사단의 술책에 말려 들지 않기 위해 자신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항상 성령충만한가 점검해야 합니다. 자기의 가장 약한 부분은 점검하고 잘 방어해야 합니다. 늘 기도에 힘쓰고 영적인 건강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부싸움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목숨을 걸고 하는데 사단과의 영적 싸움은 싸워보지도 않고 싱겁게 물러섭니다. 어떤 사람은 지체와의 싸움은 끊임없이 하는데 사단과 해야 하는 선한 싸움은 거의 안하고 살아갑니다. 잘못되도 보통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싸움은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입니다. 그러나 사단과 하는 믿음의 선한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사단의 권세를 몰아내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람이 걸어갈 길은 순결한 길입니다.(14)

믿음의 선한 싸움을 잘 싸운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을 깨끗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14)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게 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성공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나라에서 인물을 천거하면 그의 정적들은 흠집내기에 열심입니다. 인격과 능력과 지혜를 갖추어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만한 사람을 천거했는데 치명적인 약점이 드러나 몇 일만 장관자리를 내 주고 내려오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미워서 아무리 공격해도 별 허물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평상시 자신을 잘 관리하고 깨끗하게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은 중요한 자리에 발탁이 되어 오래 나라를 위해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단도 흠집내기의 명수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무너뜨리려고 안간 힘을 씁니다. 주님께 쓰임받지 못하게 하려고 흠집을 내려고 합니다. 흠과 허물이 생겨야 수치를 당하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것을 잘 알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타나실때까지 귀하게 쓰임받도록 흠도 없고 점도 없이, 책망받을 것도 없도록 자신을 지키고 명령을 잘 지켜야 합니다.

한 남자가 오래동안 마음에 두고 있던 여인에게 프로포즈를 했다고 합니다. 여인이 앞으로 100일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제 집 창앞에서 꽃을 들고 밤을 새우신다면 사랑을 받아들이겠다고 했답니다. 다음 날부터 여인은 매일 밤 꽃을 들고 자기 집 창을 지키는 남성을 보게됩니다. 엄청난 비바람과 번개, 폭풍이 치던 99일째 밤 마침내 감동먹은 이 여인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위해 문을 열고 창앞으로 달려가 비에 흠뻑 젖은 남자를 끌어안습니다. 이때 남자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저는 알바(이트) 생인데요" 진정한 사랑은 살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결한 만남에서 오는 선물일 따름입니다. 돈의 유혹을 극복할 때 우리는 진정한 사랑을 만날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는 순결한 성도가 될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를 붙들고 있는 이중적인 기준, 가치들을 포기하셔야 합니다. 주일과 월요일이 다른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교회와 가정에서의 태도가 다른 모습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교회와 직장에서의 모습이 다른 것을 회개하셔야 합니다. 숨겨진 죄가 없어야 합니다. 은폐하고 있는 어둠이 없어야 합니다. 자신과 이웃에게 투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정직하셔야 합니다. 회개는 단순히 죄를 뉘우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버려야 합니다. 죄를 떠나야 합니다.
성도의 모든 타락은 주님이 아닌 다른 무엇이 우리를 만족하게 할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기 시작할 때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다. 주님이 아닌 다른 무엇으로 우리는 결코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인 것을 말입니다. 이미 주어진 믿음, 이미 주어진 예수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다른 쾌락을 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순결이고 거룩입니다.

어떤 사람이 넓은 사막을 정처없이 방황하며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물이 다 떨어져가고 있는 것을 알고 걱정과 불안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빨리 오아시스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이젠 살았다" 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발자국만 따라가면 분명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계속 따라갔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따라가도 발자국은 끝이 없고, 해는 점점 기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자기 발자국을 되밟아가면서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윽고 저녁 노을과 함께 북극성이 반짝였습니다. 별을 보고 그는 제대로 방향을 찾아서 바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걸은 똑같은 길을, 자기 발자국을 쫓아가며 거기에 길이 있는 것처럼 한평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어서 하늘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고 그분이 가리키는 길을 걷는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야 비로소 생의 궤도가 바른 길에 서게 될 것입니다. 다른 길로 가지 마십시오. 오로지 하나님의 사람의 길로 걸어 가십시오.(문기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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