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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다 증인이라 (행 2: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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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가장 무서운 사람이 죽기 살기로 대드는 사람입니다. 죽음 앞에 장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죽을 각오로 덤벼드는 사람을 누가 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죽을까봐 두려워서 벌벌 떨던 사람이 어느 날 확 변해서 전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은 어이가 없을 것입니다.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남들 앞에서 말 한마디로 옳게 하지 못하던 사람이 오히려 당당하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될 때 사람들은 무엇이 저 사람을 저렇게 변하게 만들었는가 싶어서 그 이유를 알고자 할 것입니다. 항상 근심 걱정으로 가득하던 사람이 즐거운 표정으로 가득합니다. 언제 근심 걱정으로 지새웠던가 싶게 달라져 있습니다. 그럴 때 고개를 갸웃거리게 됩니다. 작은 일에도 부르르 하던 사람이 심한 모욕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싱글벙글하고 있다면 모욕 주던 사람이 오히려 어이가 없어서 기가 질리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으로 충만해진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남들 앞에서 말 한마디도 못하고 벌벌 떨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오히려 당당하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저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시키시는 대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시키는 대로 각각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한 제자들을 보고 어리둥절하여 모여든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일어서서 전하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서 베드로가 모여든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저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하지만 지금이 몇 시 입니까? 지금은 아침 아홉 시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은 여러분이 생각하듯이 술에 취한 것이 아닙니다. 이 일은 예언자 요엘을 시켜서 말씀하신대로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엘 선지자가 예언하였던 내용을 상기시켜 줍니다.
이렇듯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이 임한 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예언자 요엘을 통해서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아들들과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그 날에 나는 내 영을 내 남종들과 내 여종들에게도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다.”

이 성령을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르며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어 구원을 받은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미 예언자 요엘을 통해서 예언하신 대로 성령이 우리 안에 부어졌으니 우리도 마땅히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고 꿈도 꾸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주시는 말씀을 따라 은혜를 함께 나누기도 하고 주님 안에서 우리의 앞길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게 되었으며 또한 그 비전을 따라 살아가게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장 13절로 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셔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염원하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하십시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왜 생깁니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을 품게 하시고 그 소원을 따라 실천하게 하시더란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불평과 시비를 하지 말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불평하고 시비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악한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성령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에게는 아무런 두려움도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깨우쳐 주시며 환상과 꿈을 통해서 보여주시는 그 길을 우리로 하여금 기쁨으로 실천하며 나아가도록 성령께서 내 안에 은혜를 더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불평할 것이 없고 시비할 것이 없습니다. 기쁨으로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 믿음의 고백을 하도록 가르쳐 주셨고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바울 사도처럼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요 이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이루어 가시는 것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정말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었는데 “주님께서 함께 하시니 내가 할 수 있습니다.” 고백하고 시작하였더니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때로는 불평하게도 되고 지쳐 쓰러지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새 힘을 주시는 주님의 은혜 아래 다시 일어서게 되고 다시 사랑으로 화합하게 되는 역사들이 나타나더란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도무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우리는 해내고 있습니다. 전 같으면 작은 일에도 금방 갈라지고 토라질 수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잠시 흔들리기는 해도 금방 다시 은혜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단 말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이 소멸되지 않도록 언제든지 말씀으로 살아가야하는 것이요 이 성령의 능력이 내 안에서 힘 있게 역사할 수 있도록 언제든지 기도하기를 쉬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선지자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이 죄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치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깨달을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감동대로 순종하며 주님을 섬겨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마음에 내가 주님과 교회를 위하여 무슨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그 마음을 따라 순종하여 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 섬김의 모습은 이미 예수님께서 우리들 앞서서 보여주셨던 모습이기도 합니다. 빌립보서 2장 5절로 8절에서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하는데 그 예수님처럼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바울은 빌립보서 1장 1절로 4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주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바로 이러한 모습으로 섬기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그러니까 한 마음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모습 중 하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언제든지 한 마음이 되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요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앞에서 인도하는 이의 기쁨도 되는 것이요 인도자를 세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세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얼른 그 마음을 지워 버리십시오. 내 뜻을 주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뜻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인지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불평하는 마음이 생기거든 빨리 그 마음으로부터 벗어나십시오. 누구를 판단하는 마음이 내 안에 들거든 얼른 그 마음을 오히려 감싸주는 마음으로 바꾸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상대방을 먼저 세워가도록 하십시오. 이런 사랑의 사람, 이런 성령의 사람 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가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입니까? 어떻게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실 수가 있으며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빌립보서 2장 5절로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의 삶이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따라 미리 알고 계신 대로 된 일이라고 베드로는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이 세상에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을 따라 철저하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자기 백성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순종하신 예수님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서 살리셨습니다. 이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다윗이 무어라고 고백했습니까?

“나는 늘 내 앞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기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체도 소망 속에 살 것이다. 주님께서 내 영혼을 지옥에 버리지 않으시며, 주님의 거룩한 분을 썩지 않게 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나에게 생명의 길을 알려 주셨으니, 주님의 앞에서 나에게 기쁨을 가득 채워 주실 것이다”

다윗의 고백처럼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앞에 계십니다. 나를 흔들리지 않게 하시려고 주님께서 내 오른 쪽에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예수님이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셨기에 우리들도 죽음에 매이지 않고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계속해서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다윗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말하기를 “그리스도는 지옥에 버려지지 않았고, 그의 육체는 썩지 않았다” 하였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모든 성도들이 모두 이 일의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보았고 만져보았고 또 함께 식사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의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것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리셔서, 자기의 오른쪽에 앉히셨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베드로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일을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철저히 예수님께서는 미리 말씀하신 그대로 하나님께로부터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서 우리들에게 부어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예수님을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부르게 될 때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이시오 나를 구원하시는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구원받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이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는 믿음 안에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자녀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우리도 기꺼이 주님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찔렸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말합니다.
“형제들이여,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 이 약속은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밖에도 많은 말로 증언하고, 비뚤어진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그들에게 권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세례를 받았고 이렇게 해서 그 날에 신도의 수가 약 삼천 명이나 늘어났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약속의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만의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이 약속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녀와 또 멀리 떨어져 있는 모든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약속을 전하는 증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내가 왜 예수님을 믿는지 분명히 알아야 하고 내가 어떻게 구원을 얻었는지 그렇다면 구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전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구원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모든 사람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내 마음을 통해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주시는 감동을 따라 우리가 누구에게 가야할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잉태하는 힘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영혼을 잉태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마음에 주시는 감동대로 그 심령을 마음에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령의 뜻을 따라 마음에 품은 심령이기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다가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입술에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요 따라서 그 심령들이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되는 귀한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이 주님의 뜻을 따라 생명을 마음에 품으시기를 바라고 그래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새 생명을 출산케 되는 귀한 증인된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담대하게 주님을 전할 수 있었습니까? 성령으로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저와 저의 입술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성령 안에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주님을 전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먼저 주님이 내 안에 말씀을 주셔서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게 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고 주님이 내 안에 품도록 이끄시는 생명들을 주님 앞에 드리기까지 돌보며 관심을 가지고 섬겨나가는 귀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성령 안에서 교제하며 성령 안에서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저의 기쁨이 넘치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심으로 말미암아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주님 앞에 큰 기쁨의 도구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인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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